천 살 넘은 신림동 굴참나무를 아시나요? -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12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다가 나무가 좋아 무작정 떠났다. 이 땅의 큰 나무들을 찾아 다닌 지 10여 년이 흘렀고, 그곳에서 만난 나무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칼럼, 강연, 방송을 통해 전했다.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은 나무 칼럼니스트이자 나무 인문학자인 고규홍이 나무에 스며든 우리 삶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현장 일기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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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앞에만 서면 가슴 셀레는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그는 틈만 나면 오래된 자동차를 끌고 팔도를 누비며 나무를 찾아 다닌다. 나무의 안부를 묻고 또 그 나무와 더불어 사는 이들의 안부를 묻고 나무가 허락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고, 폭풍우가 치면 나무가 무사한지 잠 못 이루며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단숨에 달려가는 사람이다. 고규홍은 어떠한 인연으로 나무와 사랑에 빠진 걸까.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 『절집나무』, 『옛집의 향기, 나무』, 『나무가 말하였네』, 『행복한 나무여행』 등 그의 저서만 보아도 얼마나 나무를 사랑하는 지 눈치챌 수 있다.



첫 만남

나무여행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전공 분야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나무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자연물입니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그리고 흔히 있는 존재여서, 그의 존재감을 깊이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저 역시 늘 나무와 가까이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지요. 특별히 나무를 더 가까이 하겠다는 마음은 그야말로 천둥처럼 찾아왔습니다. 매우 바쁘게 시간을 보내던 일간신문 기자 생활을 정리하던 마흔 살 즈음에 천리포수목원에서 두 달을 홀로 지낸 적이 있습니다. 1999년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였지요. 그때 수목원 숲에서 겨울에 피어난 목련 꽃을 보게 됐어요. 원래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피어나는 종류의 목련이지만 그때는 그걸 모르고, 나무가 이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운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그걸 알아보고 싶어한 게 처음 시작이었고, 또 지금까지 나무에 얽힌 사람살이의 사연을 찾아 다니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의 존재

감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고 나무처럼 늙고 싶다고 하셨는데, 선생님께 나무는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주로 오래 된 나무, 즉 노거수(老巨樹)를 찾아 다닙니다. 제가 찾아본 나무들은 오래 살아 늙었지만, 세월의 연륜이 깊어진 만큼 더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늙어가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생명체는 ‘나무’밖에 없다”는 말씀을 자주 드립니다. 스스로 자리를 옮겨 다니지 않고, 말 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마치 수도승처럼 비바람 눈보라 그리고 세월의 풍파를 묵묵히 이겨내는 고행을 이겨낸 까닭이겠지요. 나무처럼 늙고 싶다는 건 그저 바람일 뿐, 평범한 사람으로서 나무가 그 긴 세월 동안 겪어내는 고행을 말없이 겪을 수 있겠어요.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나무처럼 세월의 깊이를 품격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버리지 못합니다.


영감

한국의 많은 나무들을 만나고 관찰하면서 어떤 영감, 감동을 받았나요?

늘 나무 이야기를 하지만, 저의 나무 이야기는 그 안에 담긴 사람살이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건 제가 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가 아닌 탓도 있겠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닙니다. 나무는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사람살이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생명체입니다. 그가 사람의 언어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는 필경 제 곁을 스쳐간 사람살이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가만히 나무 줄기 껍질에 드러난 나뭇결을 바라보고 또 그 곁에서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면,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의 온갖 사연이 하나 둘 새어나옵니다. 나무는 말하지 않으면서 많은 말을 하는 생명체입니다. 그가 지닌 숱하게 많은 이야기들을 듣는 건 지금 그 곁에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인생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을 통해 많은 나무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선생님께 가장 감동을 주었던 나무의 인생은 무엇인가요?

어느 한 그루를 딱 짚어서 이야기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굳이 한 그루를 꼽자면 경기도 화성시 전곡리 물푸레나무를 꼽아야 하겠습니다. 이 나무는 물푸레나무 가운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나무입니다.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 제2장에서 이야기한 나무이지요. 마을 당산나무였던 이 나무는 사람들이 마을을 떠난 뒤로 오랫동안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는 몇 가지 계기를 맞으면서 두 번에 걸쳐 꽃을 피웠습니다. 나무는 분명 떠나간 사람들이 그리웠던 것이고,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운 겁니다. 자세히 말씀 드리고 싶지만, 사연이 복잡하면서도 신비로워 짧게 설명 드리기 어렵네요. 하여간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놀라운 신비를 보여준 훌륭한 나무로, 책에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

큰 나무

크기가 큰 나무가 아닌,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큰 나무’는 무엇일까요?

물론 시야를 압도할 만큼 규모가 큰 나무를 바라보노라면 자연스레 감동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하나의 생명체가 저리 크게 자랄 수 있는가, 또 저 높은 나뭇가지 꼭대기까지 어떻게 물을 끌어올려 생명을 유지할까 등 많은 수수께끼가 줄을 이어 떠오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큰 나무’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온갖 세월의 풍진을 헤쳐나가면서 생명의 신비 혹은 생명의 지혜를 보여주는 나무들입니다. 이를테면 책의 제4장에서 이야기한 ‘정선 정암사 주목‘이 그렇습니다. 옛 스님의 지팡이로 알려진 나무가 죽고 썩어서 속이 텅 비게 되자, 그 안쪽에서 새로 씨앗이 싹을 틔워 새 생명을 이어가는 건 놀라운 생명력이지요. 작지만 큰 나무는 바로 그런 나무를 일컫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선 정암사 주목>

한 맺힌 나무

나무들의 한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지금까지 본 나무 중에 가장 한이 깊다고 생각한 나무는 어떤 나무인가요.

제 책의 제13장부터 제16장까지에서 소개한 나무들이 그런 나무입니다. ‘나무의 한’이라고 제가 표현한 건, 따지고 보면 사람의 한입니다. 그러나 거듭 이야기합니다만, 나무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서 사람보다 오래 살아가는 생명체입니다. 결국 자신의 곁에서 벌어진 사람살이가 한스러웠다면, 그 역시 말 없이 사람의 한을 품어 안았을 겁니다. 해미읍성의 회화나무는 그 대표적인 경우일 겁니다. 하필 나무가 자리잡고 자란 곳이 얄궂게도 감옥터 앞이었고, 한때 그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가지에 매달려 신음과 비명을 내뱉으며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고, 나무는 말없이 이 모든 한 많은 사람살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사람들이 나무 곁에서 겪었던 고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오로지 나무만이 살아남아 그때의 한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참 한이 깊은 나무이지요.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도시의 나무

주로 지방에 있는 나무들을 소개했는데,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가 유일한 서울 나무입니다. 신림동 굴참나무를 꼽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서울 나무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도시의 나무의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나무는 있습니다. 물론 도시에도 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분주한 사람살이는 나무에 대한 관심을 앗아가 버리지요. 그래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의 상황도 꼭 짚어보고 싶었습니다. 도시의 나무로는 서울의 신림동 굴참나무와 인천의 신현동 회화나무 두 그루와 전주 삼천동 곰솔을 이 책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두 그루 모두 번화한 도심 한복판에 살아있는 큰 나무입니다. 특히 신림동 굴참나무는 고려 때의 명장 강감찬 장군이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전설을 가진 1천 년이나 된 나무입니다. 매우 귀중한 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어렵게 살아갑니다. 그 상황을 꼭 한번 상기하고 우리 곁의 나무의 의미를 더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겨울

벌써 눈이 내렸고 추운 겨울입니다. 겨울의 나무는 다른 계절의 나무들과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나무의 겨울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나무도 짐승들처럼 겨울에는 생명활동을 최소화합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것과 같지요. 나무의 생명활동에 꼭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뿌리에서부터 나무 꼭대기의 잎사귀까지 물을 끌어올려야 왕성한 생명활동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추운 겨울에 그렇게 많은 물을 머금고 있으면, 자칫 동해(凍害)를 입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에 제 몸 안의 물을 덜어내고, ‘떨켜층’이라는 특수한 조직을 생성해 물이 통하는 통로의 상당 부분을 막습니다. 겨울잠 자는 짐승들처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명활동만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에 따라서는 벌써부터 봄을 기다리며 가지마다 솜이불을 덮은 꽃봉오리를 잔뜩 피워 올리고, 차츰차츰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준비하는 나무도 있습니다. 바로 지금 한창 꽃봉오리가 가득 솟아난 목련이 그런 나무입니다.


소통

나무와 사람은 어떻게 소통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무도 살아있는 생명체인 까닭에 다른 생명체와의 소통을 늘 욕망합니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겠지요. ‘토마스 후버’라는 사진가가 있습니다. 그는 나무 사진을 찍을 때에 ‘나무가 촬영을 허락하는 순간’을 기다려서 셔터를 누른다고 합니다. 나무와의 소통을 수굿이 기다린다는 이야기겠지요. 나무와의 소통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하염없는 기다림입니다. 수백, 혹은 수천 년을 살아가는 나무와 소통하기 위해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사진가 토마스 후버가 그랬듯이 나무는 오랫동안 공들여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진정한 소통을 허락합니다. 나무는 앎의 대상이 아닙니다. 가만히 바라볼 때, 그는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게 지켜주는 가장 고마운 생명체임을 알려줍니다. 그게 바로 나무와 이룰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통이지 싶습니다.


사람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 특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비슷한 점은 무엇일까요?

나무를 찾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나무를 곁에 두고 공들여 지키는 분들은 모두가 자신의 삶에 성실한 분들이었습니다. 시골의 젊은 농부에서부터 깊은 산골의 병든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랬지요. 또 그들은 자신 스스로도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임을 분명히 깨닫고 있는 지혜롭고 현명한 분들이었어요. 자신을 둘러싼 자연 생태 환경에 대해 늘 고맙게 받아들이는 분들이죠. 그래서 오래도록 사람의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나무의 삶을 존중합니다. 나무뿐 아니라, 그 분들은 자연의 섭리, 혹은 우주의 이치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말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 땅, 이 시대의 참 주인입니다. 나무가 평안하게 오래 잘 자랄 수 있는 건 그런 분들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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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
고규홍 저 | 휴머니스트
우리나라의 나무라는 나무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연구하고, 그것과 얽힌 문화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이 지난 십여 년 동안 만난 우리 강산의 크고 오래된 나무들을 정리한 현장감 넘치는 기록이자, 나무에 스며든 우리 삶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나무를 찾고 또 찾은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 140여 컷이 함께 수록되었다. 또한 그가 전해 주는 나무 이야기와 더불어 나무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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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나무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 #신림동
1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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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8509

2013.05.03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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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이끼

2013.03.20

커다란 그늘과 푸르름으로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나무.. 늘 주는 마음을 닮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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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nta

2013.02.27

나무 칼럼니스트라니, 매력적인 느낌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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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