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음과 섹시함의 두 얼굴, <마마, 돈 크라이>의 임병근
“뱀파이어가 되고나서 빠른 비트의 곡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그동안 대극장 작품을 많이 하면서 좀 멋있게 보이거나 점잖게 보이는 역할들을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 중점을 둔 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자는 거였거든요. 망가진다는 표현을 이제껏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저를 확 놔버릴 생각이에요.”
글ㆍ사진 이예진
201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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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근, 그는 숙맥인가, 치명적인가?

사랑이 두려운 천재 물리학자 프로페서V가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뱀파이어의 유혹에 사로잡혀 파멸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 <마마, 돈 크라이>는 마치 세상의 모든 지식을 꿰고 있음에도 절망감과 환멸에 사로잡혀 자살충동을 느끼는 파우스트 박사가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고 환락에 빠지는 얼개와 비슷하다. 또 주인공 프로페서V는 아수라 백작처럼 상반되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지킬 앤 하이드의 ‘confrontation’ 만큼이나 수줍은 모습과 야수 같은 모습을 선보인다. 다소 익숙한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뱀파이어라는 신선한 미장센이 돋보이는 <마마, 돈 크라이>, 그래서 캐스팅에 많은 공을 들였나보다.

“프로페서V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도 건네기 어려운 수줍음이 많은 천재 물리학자죠. 뱀파이어로 변하기 전에는 제 모습과 비슷해요. 저도 나서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저도 좀 수줍어하고, 차분한 편이라 편했죠.”

첫인상으론 참 해맑은 미소를 지녔다 싶은 배우 임병근, 역시나 프로페서V의 내성적인 면과는 좀 닮았다 고백한다. 그렇다고 사랑 앞에서마저 나서지 못하는 성격은 아니다.

“사랑에 있어선 적극적인 편이에요. 예전엔 그렇진 않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 보호해야 할 사람, 아껴줘야 할 사람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랑도 쟁취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뱀파이어도 원하는 사람은 쟁취하잖아요.”

그래서 뱀파이어의 모습이 없는 건 아니라는 얘기. 뱀파이어 얘기를 할 땐 눈빛도 살짝 변한다. 이게 바로 배우의 변신?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보고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뱀파이어가 뮤지컬에선 잘 다뤄지지 않았잖아요. 드라큘라라는 캐릭터가 새롭게 정립된 거죠. 흡혈하며 느끼는 희열이나 카타르시스를 표현하는 게 영화나 연극에서도 그렇겠지만 뮤지컬을 통해 잘 알려진다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을 것 같아요.”

‘희열’, ‘카타르시스’ 뭐 이런 단어를 언급할 때 눈꼬리마저 올라간다. 역시 악마보단 뱀파이어가 매력적이다.




고독한 뱀파이어 임병근

송용진, 허규, 임병근, 고영빈, 장현덕 등 저마다의 매력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핫한 배우들. 그래선지 아이돌처럼 각각 이름마다 수식어가 붙는다. 배우 임병근은 어떤 뱀파이어?

“제 타이틀을 ‘고독한 뱀파이어’라고 해주셨더라고요. 저 자체가 양의 기운보다 음의 기운이 강한 사람이라 프로페서V의 아픔, 뱀파이어로서의 운명에 대한 자책감 같은 걸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달아주신 것 같아요. 괜찮다 싶었죠. (웃음)”

고독한 남자에게 여성들은 모성본능이 생긴다. (물론 멋있는 걸 기본전제로) 멋있고 고독한 뱀파이어로 분한 배우 임병근이 여성들에게, 혹은 여성관객에게 매력 어필할 치명적인 장면이 있을까?

“뱀파이어가 되고나서 빠른 비트의 곡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그동안 대극장 작품을 많이 하면서 좀 멋있게 보이거나 점잖게 보이는 역할들을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 중점을 둔 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자는 거였거든요. 망가진다는 표현을 이제껏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저를 확 놔버릴 생각이에요.”

얘기가 나온 김에 인터뷰 초반부터 눈여겨본 한쪽만 있는 쌍꺼풀을 상기시켜봤다.

“저는 진짜 나쁜 남자 스타일은 아니에요. 적극적이긴 하지만.”

라식 수술을 하고나서 생긴 한쪽 쌍꺼풀. 참 잘 만들어졌다. 그에겐 스트레스였던 한쪽 꺼풀이 지금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작용할 정도로.


“대사 잊는 악몽도 꿔요.”

2010년 초연 당시 모노드라마 형태에서 2인극으로 확장된 2013년형 <마마, 돈 크라이>는 쇼케이스 당시 드라마와 캐릭터가 강화되며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평가 뒤로 배우들이 소화해야 할 노래는 26곡, 드라마를 끌어가는 동시에 상반되는 감정을 표현하며 한 사람이 거의 20곡을 불러야 하는 부담감이 상당하다. 이 부담감, 배우 임병근에게 어느 정도로 무거울까?

“예전에 <에비타>라는 작품을 했을 때도 내레이터로 나왔기 때문에 노래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에 비하면…지금은 노래도 많고 대사도 거의 책 한 권이에요. 요즘 그래서 악몽을 꿔요. 무대 위에서 1분, 2분간 대사가 생각이 안 나서 가만히 서 있는 악몽을 꾸기도 해요. 주고받는 대사가 아니라 독백이나 방백이 많아서 한 번 머리가 하얘지면 아무 생각이 안 나거든요. 그래서 대본을 끼고 살죠.”

개막 전까지는 크게 줄어들 것 같지 않을 부담감, 그래서 정말 무대 위에서 대사가 생각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대책을 마련해뒀다.

“이 작품에선 대사가 생각이 안 나면 때울만한 게 없어요. 지금으로선 저만의 장치를 이용해서 무대 위에 연습할 때마다 까먹는 부분의 첫 글자를 어딘가에 써놓는 건 어떨까.(웃음)”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웃음으로 마무리했지만 아, 다소 처연하다.




“남들 앞에 서는 거 싫어했어요”

지금도 가끔 여의도에서 친구들과 팀을 짜 밤새 농구를 즐기는 임병근, 지금은 가장 큰 특기이자 취미가 되어버린 농구는 한 때 그의 전부였던 꿈이었다. 농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꿈을 놨던 그 시절, 그에게 새로운 길이 보였더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와 대학로에 갔다가 연극 한 편을 봤어요. 연극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래서 무턱대고 연극이 끝난 뒤에 분장실로 찾아가서 ‘저 연기하고 싶다고, 태어나서 연극을 처음 보는데 진로에 대해 뭘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는데 연극을 보고 너무 하고 싶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 때 그 선생님이 얘 참 당돌하다고, 너 참 마음에 든다고 하시면서 여러 사람도 소개시켜주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거죠.”

너무 간단한 듯 싶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는 일군의 연예인처럼. 그래서 캐물었다. 이쪽 일이 하고 싶다고 누구나 다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저도 제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지금도 신기해요. 대학교 1학년 땐 남들 앞에 서는 걸 너무 싫어했어요. 긴장되고, 쑥스럽고요. 그런데 저는 뭘 하나를 좋아하면 푹 빠지는 스타일이거든요. 군대 제대하고 학교에서 뮤지컬 레슨을 받게 됐는데 거기에 미치게 된 거예요. 학교 다니면서 술 마실 일도 많았지만 뮤지컬에 빠져서 학교, 연습실, 집 이렇게만 다녔어요.”

중앙대학교 음악극과를 다니면서도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여기지 않던 그에게 당시 학과장이었던 김성녀 교수는 그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조언을 남겼단다.

“교수님이 저에게 ‘너는 가지고 있는 건 많은데 그걸 네가 아직 모르니까 잘 계발하고 트레이닝해서 옥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혹시 나중에 사람들 앞에 서더라도 항상 겸손해 해야 한다. 무대라는 공간은 항상 겸손한 곳이다. 나이를 먹더라도 계속 트레이닝해야 배우로서 길게 남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일이 10년은 해야 그게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요즘은 뭔가 해보다 힘들면 금방 포기하게 되고, 힘들면 다른 일을 찾게 되고요. 그런데 저는 하나에 빠지면 굉장히 푹 빠지는 스타일이어서 하다보니까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잘 되든 안 되는 20년, 30년까지 할 생각이었다는 남다른 그의 뚝심이 지금의 그를, 앞으로 기대하게 만드는 그를 만들 것이다.

지금도 김성녀 교수의 말대로 보컬 레슨을 받으며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그, 그래서 여전히 타고난 주인공의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노력이 8할이라고 말한다. “임병근 씨, 설마 <마마, 돈 크라이>에서 선보이는 수줍은 미소와 섹시한 눈빛도 노력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겠죠?”


마마돈크라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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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근 #마마 돈 크라이 #뱀파이어 #뮤지컬 #충무아트홀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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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8509

2013.03.28

기사 잘 읽었습니다. 한 번 보고 싶은 공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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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826

2013.03.27

병근배우 마마돈크라이에서 처음 본 배우였는데.. 보고 반해버렸어요~ 연기도 일품~ 노래도 시원시원하게 고음처리 잘하시고.. 커튼콜때 수줍은 미소가 눈에 아른아른 거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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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u87

2013.03.09

마마 돈 크라이 제목만 슬쩍 보고 골치아프고 식상한 얘기일거라 지레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소재에 볼거리도 많은 뮤지컬인 것 같네요. 멋진 배우들 만나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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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일로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닌 지 벌써 15년.
취미는 일탈, 특기는 일탈을 일로 승화하기.
어떻게하면 인디밴드들과 친해질까 궁리하던 중 만난 < 이예진의 Stage Story >
그래서 오늘도 수다 떨러 간다. 꽃무늬 원피스 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