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입학을, 누군가는 개강을 하는 등 처음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해 일상을 이어가던 날의 저녁, 3월 4일이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상상마당 카페 6층에는 그 누군가들의 서로 다른 열기들이 피어올랐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 말을 건네며 고종석 작가는 모인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마지막 책, 『해피 패밀리』 출간을 기념해 ‘향긋한 북살롱’ 행사가 진행되었다. 고종석 작가는 신문사의 기자로 재직하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서얼단상』, 『고종석의 여자들』, 『기자로 산다는 것』 외 다수가 있다. 그는 작년 9월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절필 선언 전 마지막 원고가 『해피 패밀리』다.
그의 마지막 책인 『해피 패밀리』는 가족의 이름으로 묶인 개인들의 이야기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가족이라는 ‘이미 정해진 관계’의 일원이 된다. 가족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그 속의 개인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살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가족이 아니었다면 한민희와 한민형은 누나와 동생의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가 되어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사회가 금기시하는 사랑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짧고 간결한 인사처럼 그의 말은 거의 시원스럽게 간단했다. 행사의 진행은 임경선 작가가 맡았다. 임경선 작가는 칼럼니스트로서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이라는 칼럼으로 독자와 소통해왔다. 저서로는 『러브 패러독스』, 『엄마와 연애할 때』 등이 있다.
‘해피 패밀리는’
“가족 이야기라기보다는 외딴 섬에 사는 개개인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가족은 혈연으로 연결되니까 당연히 서로 사랑해주고 당연히 서로 위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이 아니라면 충분히 친해졌을 사람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섞이지 못하고 친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각자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맞부딪치며 불화가 일어난다.”
섞이지 못하는 그들은 책 속에서도 따로 생각하고, 따로 말한다.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일을 공유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융화되지 못한다. 작가는 관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작중인물 한민형의 내면 부분을 낭독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마저도 내가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것 같진 않다. 어쩌면 가장 가깝다 할 P마저도. 가족들에 대한 내 감정이 그렇듯. 그 친구들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그리 대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나를 진정으로 대하겠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친분과 우정이라는 그럴 듯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 (p.25) | ||
“세상에서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책에서 치과 치료 중에 술을 마셔도 되겠냐는 민형의 질문에 치과의사는 말했다. 세상에 금지된 것은 없다고. 여러분은 금지된 것을 해보신 적 있나요?”
그는 같은 핏줄 내에서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근친혼을 금기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 반도덕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종석 씨는 『해피 패밀리』가 지금의 가족제와 결혼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라 말했다.
한편, 임경선 작가는 유약하고 섬세한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고종석 페르소나를 이 책에서는 한민형이 따르고 있다고 했다. 이 인물이 고종석 작가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작가는 답했다. “아니요. 나는 허무하지도 않고, 허무주의자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작중인물 민희가 죽음에 앞서 썼던 일기에 대해 언급했을 때 작가는 동감하며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사실 저도 이걸 쓰면서 핑, 돌았거든요.”
짧지만 빛나는 삶을 살았던 민희. 보통 사람들이 작가를 두고 한민형의 내면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사실 민희에 투사된 부분이 많다.
“나는 민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제일 생동감 있는 인물은 서현주라는 느낌이 들고요. 민희는 죽음으로써, 현주는 살아남음으로써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지요.”
글과 위선 그리고, 절필.
글은 자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넘쳐나는 글의 바다 속에 살며 수많은 사람들은 표현을 하며 산다. 서로 믿지 못한다면 표현은 위선으로 전락한다. 임경선 씨는 자신의 고민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글을 쓰다보면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에 부흥하지 못하고, 또 그래서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책으로 알던 그 사람과 다를 때 느끼는 배신감은 곧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점에 관해 소설에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이라곤, 대학교 때 겉핥기로 공부한 인류학 쪽 글이나 아무런 전문 지식이 필요 없는 문학적 글이겠지. 그러나 그런 글에서 위선을 파하기는 어렵다. 내 편견을 드러내지 않기는 어렵다. 나는 편집자로, 독자로 남게 될 것이다. 저자들의 선을 혐오하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때로는 찬양하는 편집자이자 독자 말이다. 글과 글쓴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는 아주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p.26) | ||
임경선 : 위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종석 : 저도 당연히 위선자고, 속물이죠. 어쩌면 속물이 더 정직하다고 볼 수 있죠. 한민형의 엄마가 남편에 대해 ‘남편이 법조인이라면 더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하잖아요. 굉장히 정직한 부분이에요. 교황 요한 바오로도 ‘하나님이 내 머릿속을 보실 수 있다면 나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죠.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습니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다만 사람들은 그것을 밖으로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을 뿐이지요.
임경선 :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 작가님 글의 애독자라면 누구라도 계속 작가님의 글을 볼 수 있기를 바랄 텐데요.
고종석 : 나는 지난 30년 동안 써왔어요. 글쓰기의 위선을 피하기 위해. 어느 날은 글쓰기가 싫어졌어요. 기자로 시작했기 때문에 재직 당시. 하루에 짧든 길든 꼭 글을 써야 했어요. 정말 많이 썼죠, 그동안.
임경선 : 그렇다면 30년 글쓰기의 휴식기네요.
고종석 : 아니죠, 종식기죠. 글쓰기의 힘이 굉장히 미약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영향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격문같이 사람들 마음에 불을 지르는 글을 쓰지는 못해요. 제가 직업적 글쓰기는 접을지 몰라도 죽기 전에 이 말은 꼭 해야겠다는 말이 있으면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까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산 것 같아요. 어떤 형식으로든. 아마 다시 글 쓸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임경선 : 직업적 글쓰기는 그만 두셨는데 그 어느 때보다 트위터는 활발히 하고 계시는데요.
고종석 : 트위터는 글이라기보다는 말이죠. 글은 아무리 짧아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트위터는 짧은 글자수 안에서 내 할 말을 하는 것이고요. 직업적 글쓰기는 접었지만 말은 하고 살죠. 지금의 저를 두고 ‘트잉여’라고 하시더군요. '트잉여' 맞는 말이에요. 노동하지 않고 사는 것이 어쩌면 가장 좋은 것이죠.
작가와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사인회가 진행되었다. 작가의 자취를 책에 남기려 줄을 서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사가 시작하기전의 기대와 열기가 제각기 다른 설렘과 많은 생각으로 바뀌어 있었다.
- 해피 패밀리 고종석 저 | 문학동네
고종석의 신작 소설, 세 번째 장편소설 『해피 패밀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친근하고 가깝다 여겨온 ‘가족’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날카롭고 서늘하게 파헤친다. 소설은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민형의 목소리부터 시작해, 아들이 일하는 출판사의 사장인 아버지 한진규, 고등학교 역사교사이자 어머니인 민경화, 한민형의 처이자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서현주, 한민형의 동생인 한영미와 한민주, 대학 후배인 이정석, 장모인 강희숙, 딸 한지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한민형의 누나 한민희까지 모두 화자로 나서 각자의 사연과 감정 들을 토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신혜정
읽고 쓰고 말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채사모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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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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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