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당신이라 반가워: <차이니즈 조디악>의 성룡
우리는 성룡이라는 배우가, 성룡이라는 감독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왔는지를 매순간,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진심으로 고군분투해 왔음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 한결같음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게 성룡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정말…….
글ㆍ사진 최재훈
201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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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자, 10년 만에 영화로 복귀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출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라스트 스탠드>는 꽤 균형 있고 흥미로운 웨스턴 영화로 만들어졌다. 시골 보안관으로 출연하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연기도 안정적이고, 이야기와 액션 스피드를 촘촘하게 이어가는 김지운 감독의 연출력도, 간간이 이어지는 유머 코드도 재미있다. 그럼에도 <라스트 스탠드>는 미국 현지에서는 물론,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내한하여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음에도 국내 성적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반면 최근 국내 배우만큼이나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 성룡의 <차이니즈 조디악>은 전성기 성룡 영화에 비한다면 훨씬 산만하고 균형 감각이 떨어진 영화임에도 지난 해 중국 현지 개봉 당시 1억 달러 이상의 수익과 함께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고른 흥행 수익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액션 영웅들의 귀환, 그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복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낭만적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팬들은 나의 영웅이 충분히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어 주길 바라는데 <라스트 스탠드>의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움직임은 둔탁하고 얼굴은 너무 주름져 있어 아쉬움을 남긴 반면 성룡은 전성기 때의 발랄한 유머와 조금 무뎌지긴 했지만 여전히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장면을 손수 소화해내면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나의 영웅이 나이를 딛고 서서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 어쩌면 가장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지만 영웅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영화팬들이 바라는 가장 믿어보고 싶은 판타지가 아닌가?




성룡, 여전한 그의 진심과 홍콩영화의 추억

워너브라더스에게 판권이 넘어간 이유로 제목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차이니즈 조디악>은 성룡의 색깔이 뚜렷하게 살아있는 <폴리스 스토리>같은 시리즈 중,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용형호제>의 세 번째 이야기이다. 영화의 주인공 JC(성룡)는 이전처럼 값나가는 유물에 눈독을 들이며 쫓아다니는 중이다. 시대의 영향을 받아 맨 몸으로 고군분투하던 과거와 달리 첨단 장비의 도움을 받아 일을 진행한다. JC의 이번 타깃은 전 세계 경매장에서 최고가로 거래되는 12개의 청동상으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6개의 청동상을 찾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나게 된다. <용형호제> 시리즈의 근간은 <인디아나 존스>같은 맨몸 활극이었는데, <차이니즈 조디악>은 훨씬 더 기술적이고 CG의 도움을 많이 받은 액션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성룡이 보여주는 활극은 여전히 가공되지 않은 진짜이다. 물론 전성기 때의 날렵함이 다소 무뎌지긴 했지만, 진짜이고자 하는 성룡만의 녹슬지 않은 진심은 여전히 그의 액션 사이로 날아다닌다.


<프로젝트 A>


<용형호제>

2010년 <베스트 키드>의 개봉 이후 2011년 <신해혁명>은 국내 개봉하지 않았기에 성룡의 공백기는 꽤 길어 보인다. 명절을 앞두면 당연하게도 성룡 주연의 영화가 극장에 연례행사처럼 걸리던 80년대를 떠올려 보면 참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십 년 전 장국영의 사망이 홍콩영화 사망의 상징처럼 여겨질 만큼, 홍콩영화는 전성기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지만 80년대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그리고 홍콩 영화 부흥의 중심에는 성룡이 있었다. 80년대 초 할리우드 진출이 무산된 성룡이 홍콩 내에서 직접 자신의 영화를 제작, 감독하면서 홍콩영화는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84년 <프로젝트 A>라는 영화를 통해 성룡은 홍금보, 원표와 함께 무술 삼인방의 화려한 액션과 사심 없는 코미디가 어우러진 성룡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NG 컷은 스턴트 없이 액션을 선보인다는 자신의 뚝심에 대한 증명이었다. 85년 <폴리스 스토리>는 한국의 달동네를 연상시키는 빈민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 해서 액션영화에서 보기 드문 리얼리티를 보여주는데, 의협심 강한 경찰 캐릭터가 굳어지는 캐릭터 영화였다. 86년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를 인용한 나름 블록버스터 <용형호제>는 한국 성인영화와 미국영화가 득세하는 극장가에 드물게 가족단위의 관람객을 위한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아비정전>

이소룡의 사망과 함께 사그라졌던 홍콩영화에 대한 관심을 성룡이 다잡아 일으켰을 무렵, 어쩌면 한국 최초의 컬트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웅본색>이 등장했다. 별다른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진 이 영화가 당시 청소년들의 아지트였던 재개봉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바바리와 삐딱하게 깨문 성냥,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는 멋쟁이 형님으로 나타난 주윤발은 그 시대 청소년의 영웅이며 지향점이 되었다. 장국영과 왕조현의 애달픈 로맨스 <천녀유혼> 역시 똑같은 수순을 밟으면서 그 당시만 해도 극장가에서 소외된 계층이었던 여자 청소년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고색창연한 영웅주의로 얼룩져 있긴 하지만 <첩혈쌍웅>은 쌍권총과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총격씬의 황홀함을 선보였고, 양자경은 <예스 마담> 시리즈와 함께 여성 액션 영화의 통쾌함을 선보였다. 하지만, 홍콩 영화시장은 홍콩 마피아 자본으로 굴러갔고, 영화시장은 당연하게도 싸구려 아류작들을 쏟아냈고 나중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비슷한 영화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형님들의 의리를 그리던 홍콩 느와르는 청바지와 오토바이로 기억되는 유덕화의 <열혈남아>와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대명사가 된 오천련과 공연한 <천장지구>로 자리를 옮겨 앉다가 <지존무상>과 카지노 신드롬에 발 빠르게 동승한 왕정과 주성치의 코미디 <도성> 시리즈를 끝으로 퇴락하기 시작했다.

홍콩의 반환을 앞둔 정체성의 상실과 우울한 기류를 가장 먼저 포착해낸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서극 감독과 임청하의 <동방불패>는 시대를 풍미한 홍콩 영화 쇠락 앞에서 다시 한 번 홍콩영화 붐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발 빠르고 파급력이 높은 홍콩영화계는 수많은 싸구려를 만들어 일순간에 무협영화의 불씨를 죽여 버리는 수순을 밟았다. <무간도>를 통해 부활한 느와르와 부동층에 가까운 마니아를 거느린 주성치의 영화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성룡은 멈추지 않았다. 성룡은 21세기 할리우드의 시스템을 활용하여 홍콩 영화의 잔상들과 그 불꽃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꺼트리지 않았다. 그리고 2013년, 장국영 사망 10주년을 얼마 앞둔 지금 우리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룡의 <차이니즈 조디악>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오래 지속되지 않을 행운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영화의 마지막에 기대하게 되는 NG 영상은 <차이니즈 조디악>에서도 유효한데, <차이니즈 조디악>의 NG 컷에서 성룡은 이런 독백을 남긴다.

위험한 액션씬을 찍을 때마다 두렵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든다. 이게 마지막 액션 씬이 되진 않을까, 내 생애 마지막 씬이 되진 않을까.
그의 진심어린 독백에 뭉클, 마음이 움직였다. 솔직히 성룡의 이전 작품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이 덜하고, 지나치게 산만한 구성에 다소 실망스러웠던 모든 감정을 그의 독백이 잠재워버리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성룡이라는 배우가, 성룡이라는 감독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왔는지를 매순간,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진심으로 고군분투해 왔음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 한결같음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게 성룡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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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차이니즈 조디악 #용형호제 #프로젝트 A #폴리스 스토리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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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6.30

성룡은 확고한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는 진정한 배우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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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tw

2013.04.30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는데 매우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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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heaeun

2013.03.26

어릴 때 성룡영화 정말 좋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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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