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행이 즐거웠던 이유, 가장 인간적인 유럽인들을 만나서
일상을 벗어난 여행은 사람을 사유하게 한다. 생과 사, 소유와 무소유, 탐욕과 자족 등 답없는 화두를 짊어지고 떠나는 여행은 더욱 그렇다. 조현 기자의 여행길은 항상 그러한 화두와 함께했다. 서양의 철학과 역사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이제는 흔적만이 존재하는 옛 신들의 땅 그리스에서 그는 과연 무엇을 찾아 헤맸을까.
2013.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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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헤어스타일에서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따지고 보면 조현 기자의 삶이 그러했다. 인도와 이집트, 이스라엘과 티베트…, 세계 각국의 정신적 유산이 깃든 오지만을 돌아다닌 그의 기벽(奇癖)은 꽤 오래됐다. 신문기자의 삶이 견딜 수 없을 때면 그는 보란 듯 모든 것을 뒤로하고 길을 떠났고, 지친 영혼을 달래듯 선지자들의 숨결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글로 기록했다. 기자를 업으로 하는 덕분일까. 남다른 시선이 깃든 여정의 결과물은 그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인도 오지 기행』, 『은둔』, 『하늘이 감춘 땅』과 같은 역작으로 탄생했고 세계 각국의 정신의 원형을 궁금해 하는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그리스를 헤맸던 기록을 한권의 책으로 발표했다. 『그리스 인생학교』는 그간 동양문화의 원류를 파고들던 그가 경계를 넘어 서양으로 향한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의 결과물이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도자의 땅 아토스 산에서 시작한 그의 여정은 지상의 낙원으로 일컬어졌던 아기아나 수도원을 지나 신화의 무대였던 올림포스와 에게 해의 크레타 섬, 히포크라테스의 숨결을 느꼈던 코스, 영웅의 전설이 회자되는 트로이까지 이어졌다.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히며 보고 느낀 풍부한 자료의 양은 놀라울 따름이다. 순례자와 다름없는 고뇌와 여정에서 스쳐지나간 희로애락 또한 남다른 생생함으로 기록됐다. 그런 그가 두 눈에 소년과 같은 설렘을 머금고 독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나타났다. 비록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지난 여정에서 마주한 감흥은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인간 이성의 황금기를 거쳤던 그리스와 당대의 철학자들에게 대해 설명하는 그에게 독자들은 넘치는 호기심으로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왜 나는 그리스에 갔는가’를 강의 부제 삼으셨는데, 그리스에서 어떤 것들을 느끼셨는지 궁금하네요.
동양적인 정신을 탐구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곳을 다녔어요. 1년 동안 회사를 쉬고 인도로 떠나 돌아다닌 적도 있고 티베트와 히말라야, 한국의 깊은 산 속 암자도 많이 다녔죠.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산속 동굴에 들어가 얼마 간 머물러있기도 하고요. 그렇게 동양적인 순례를 많이 했는데, 사실 동양적인 것이 갖는 최고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거든요. 저는 ‘완벽하다’는 말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신화를 깨는 사람이 되고자했고요. 그런데 종교의 진리가 완벽하다는 것을 깨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이었어요. 전 그들이 무려 2500년 전의 사람들이지만, 현대인들에게도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들처럼 저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교만은 배제한 채로 그리스에 가서 신화의 세계 속에서 살던 철학자들의 고뇌를 느껴보고 스스로 의문을 던져본 거예요. 그리스가 서양의 모든 문명, 종교, 철학의 원류니까 그곳에 가서 초심자의 자세로 배워보자는 각오로 떠났죠. 그 결과물이 이 책인데, 저는 굉장히 배운 것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제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다고 생각해요.
저자께서도 아테네 사람들 못지않게 배움과 탐구의 삶을 사셨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요.
배우는 모든 것이 제 삶으로 나타나기를 바라지만 아직도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요. 저는 신화를 믿지 않습니다. 또 완벽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해요. 제 자신도 그렇고, 어떤 사람이 깨닫고 거듭났다는 것도 믿지 않습니다. 사람은 한때 부처일 수도 있지만 한때 망나니였을 수도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요. 그가 과거에 무엇을 깨달았고 얼마나 훌륭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사람의 본성에는 불성과 영성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현상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완벽하거나 영원하리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는 매 순간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리스 철학자들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했다고 하셨는데, 저자께서도 청중들과 술을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제가 그런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웃음). 강의보다는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죠. 안 그래도 전부터 조그만 한옥을 사서 종교인, 철학인 10명 남짓으로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술을 앞에 놓고 마시면서 공부를 해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꼭 그런 모임이 아니더라도 가정에서도 묻고 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봐요. 부모가 자식들을 가르치려고 해서 얻는 소득은 별로 없거든요. 사실 아는 것으로 따지면 부모라 해도 자식과 큰 차이가 없어요. 따라서 부모 역시도 끊임없이 자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아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눠보면 아이 스스로가 답을 얻게 되고 그게 완벽한 내공이 되는 것이거든요. 삶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죠.
최근 유럽의 금융 위기로 인해 그리스가 상당히 어렵다고 하던데, 직접 보신 느낌은 어떠한가요.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제국주의였고 아프리카 아시아에 식민지를 두고 침탈에서 부를 이뤘지만 그리스는 다른 나라와 사정이 달랐죠. 1830년에서야 독립했고 지금은 유럽 내의 약소국이이에요. 그런데 EU로 통합을 해서 한꺼번에 경쟁하다보니 문제가 생긴 거죠. 고대 그리스만 해도 당시에 이미 민주주의가 됐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살아야 했어요. 독재를 할 가능성만 있어도 시민들에 의해 추방됐을 정도였으니 지도자가 더 힘든 시대였죠.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은 잘못이지만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까지 꺾을 정도로 시민의 힘이 강력했던 거죠. 그러나 지금의 그리스는 지도자들이 타락했어요.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현실에 안주한 탓에 경제위기가 온 것이죠. 하지만 여행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리스 사람들은 아직 유럽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이기 때문에 여행하는 맛이 나죠. 오히려 한 교포식당에 가니까 아주머니가 “한국에서 선거철 복지논쟁 때문에 그리스의 예를 들며 복지를 늘려 망했다는 식으로 하도 부각시켜 한국에 있는 노부모에게 걸려오는 전화가 더 힘들다”고 하소연하더군요(웃음).
그리스 신화가 인류에 영향을 많이 준 것으로 아는데, 저자께서는 오히려 그리스 신화를 깨는 입장이라고 하시는 것이 조금 의아한데요.
(웃음) 제가 느낀 것을 말씀드린 거예요. 신화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거든요. 보통은 철학 이전에 신화시대였고 철학이 등장하고 인간의 시대, 중세에는 신의 시대, 계몽시대를 거쳐 다시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로 왔다고 하는데, 저는 그 분류가 맞지 않다고 봐요. 특히 중세는 인간이 신을 이용했을 뿐이죠. 신을 등에 업고 내세우면서 다른 자유로운 사상을 탄압했을 뿐이에요. 권력자들이 신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역시 오늘날까지도 ‘박정희 신화’가 있잖아요. 지배층이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신화를 만드는 거죠. 이를테면 자신을 신과 동격으로 하는 것이에요. 알렉산더도 자기가 신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신화 자체는 무의식의 발현이기 때문에 배울게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는 사실 그리스 신화에 비해 너무 도덕적이에요. 그리스 신화에서 미운 놈은 다 죽이고 예쁜 여자는 겁탈한 것이 제우스신이거든요. 인간 무의식에 적나라한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다는 것이 그리스 신화의 특징이죠. 그래서 신화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신을 따르는 것만이 최상이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논리는 정치권력에 의해 강요된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되거든요. 그런 것을 이미 소크라테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의문을 품고 깬 거예요. ‘ 신이 정말 훌륭한 모델일까’, ‘신이라고 정당화 되어야 하나’와 같은 식으로 깨나간 거죠.
여행을 하시면서 다양한 종교에 대해서도 공부해 오셨는데요.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죽음 이후 내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독교에서는 천국. 불교는 극락이라고 하고 신자들 중에는 자신의 경험을 투사해서 천국 혹은 극락에 갔다 왔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진짜 그런 세상이 있는지 제가 안 가봤으니 모르는 것이고요(웃음). 설사 임사 체험을 했다 해도 사람마다 말이 다르니 과학적인 검증을 할 수 없는 부분이죠.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미 살아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고 죽었으면 이미 죽었는데 뭘 걱정할 것이냐’고 했어요. 내세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면 종교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리스 최고의 대서사시 <일리아드>를 영화화 한 <트로이>에서도 아킬레스가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눈 여사제에게 한 말이 있어요. ‘신들이 인간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르지, 죽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란 말이죠. 그리스 고전에는 신을 불멸의 존재라고 해요. 반면 인간은 필멸이라고 표현합니다. 소크라테스도 ‘니들이 죽음을 아냐’고 말하고 웃으며 독배를 마셨잖아요. ‘죽어서 내세가 있다면 만나고 싶은 철학자들을 만나서 좋고, 그런 세계가 없다면 평생 골치 아픈 고민을 잊고 곤한 잠을 잘 수 있어 또 축복’이라고 하면서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처럼 죽음에 대해서도 정 반대의 관념을 가졌어요. 우리는 하나의 관념만 있죠. 살면서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죽을 때도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 삶은 조금 더 편해 질 거예요.
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리스 여행에서 실제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없었나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상대방에게 뭔가 배우는 것 보다는 자신이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지금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여러분들에게 계기를 마련해 줄 뿐인 거죠. 아는 척하지 말고 초심자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것이 제 소신이에요. 누군가가 나를 변화시켰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니거든요(웃음). 다만, 제가 가서 만났던 분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아토스 산 금녀의 구역인 수도원에서 뵈었던 늙은 수도사에요. 너무나 평화로운 눈빛을 마주했죠. 눈빛만으로도 저를 사랑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난방도 안 되는 곳에서 추운 수도원에서 밤을 보내면서도 그분 덕분에 따뜻함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죠. ‘인간이 그런 정도의 자비로운 눈빛을 가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도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 만남이었습니다.
종교 기자로서 오랫동안 취재를 해 오셨는데 사람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인간은 독립성을 가졌다고 하지만 참 연약한 존재에요.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이 들어 늙으면 병이 들게 마련이죠. 인간은 그런 삶 속에서 약한 존재임을 인식해요. 그러면서 실제적으로 의존할 무엇인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죠. 신화 속에 너무 빠져서 삶을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이성적으로 훌륭한 가르침을 줄 종교에 귀의해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자기 내면의 훌륭한 영성과 신성을 갖춰져 있는데 질문을 통해 불러내지 않으면 어떤 힘든 상황에 마주했을 때 쉽게 허물어질 수 있거든요. 물론 종교에 의지한다고 해도 단단히 주관을 가지고 스스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되죠. 종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행하시는 수행법이 있으신지요.
화두선(한 가지 화두를 가지고 참선을 하는 정신수양법)을 하는데, 그런 선을 할 때는 전문적인 선방에 가서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선방에서 배우고 나서는 혼자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보통 잠자기 전에 가장 쉬운 명상이 수식관이에요. 요즘 사람들 불면증이 많잖아요. 낮에 너무나 힘들게 머리를 쓰기 때문에 저녁에는 쉬어줘야 하거든요. 자고나서 피곤이 풀리지 않은 것은 제대로 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럴 때 쉽게 할 수 있는 명상이 수식관이죠. 그저 100부터 수를 거꾸로 세면서 평상시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되 내 쉴 때 몸의 모든 피로와 번뇌가 발끝으로 싹 빠져 나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내쉴 때마다 수를 세다보면 분명 80도 못 되서 잠에 빠져들 거예요. 또 그렇게 편안한 가운데서 잠에 빠져 들지 않더라도 한 20분만 집중을 하면 긴장을 완화하면서도 의식은 명료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는 그런 상태에서 잘 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것도 좋아요. 막연히 상상만하는 것 보다는 명상을 통해 또렷한 의식 속에서 시각화시키면 현실화시키는데 좋은 영향을 주거든요. 제가 자주 쓰는 방법이기도 해요(웃음). 기자도 마감이되면 늘 불안하거든요. 그럴 때면 기사를 써놓고 편안한 상태를 시각화하곤 하죠. 그렇게 하면 실제로 기사도 잘 써져요. 명상을 현실로 연결해 활용하는 방법이죠. 여러분들도 명상을 그런 식으로 활용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그리스를 헤맸던 기록을 한권의 책으로 발표했다. 『그리스 인생학교』는 그간 동양문화의 원류를 파고들던 그가 경계를 넘어 서양으로 향한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의 결과물이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도자의 땅 아토스 산에서 시작한 그의 여정은 지상의 낙원으로 일컬어졌던 아기아나 수도원을 지나 신화의 무대였던 올림포스와 에게 해의 크레타 섬, 히포크라테스의 숨결을 느꼈던 코스, 영웅의 전설이 회자되는 트로이까지 이어졌다.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히며 보고 느낀 풍부한 자료의 양은 놀라울 따름이다. 순례자와 다름없는 고뇌와 여정에서 스쳐지나간 희로애락 또한 남다른 생생함으로 기록됐다. 그런 그가 두 눈에 소년과 같은 설렘을 머금고 독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나타났다. 비록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지난 여정에서 마주한 감흥은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인간 이성의 황금기를 거쳤던 그리스와 당대의 철학자들에게 대해 설명하는 그에게 독자들은 넘치는 호기심으로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왜 나는 그리스에 갔는가’를 강의 부제 삼으셨는데, 그리스에서 어떤 것들을 느끼셨는지 궁금하네요.
저자께서도 아테네 사람들 못지않게 배움과 탐구의 삶을 사셨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요.
배우는 모든 것이 제 삶으로 나타나기를 바라지만 아직도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요. 저는 신화를 믿지 않습니다. 또 완벽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해요. 제 자신도 그렇고, 어떤 사람이 깨닫고 거듭났다는 것도 믿지 않습니다. 사람은 한때 부처일 수도 있지만 한때 망나니였을 수도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요. 그가 과거에 무엇을 깨달았고 얼마나 훌륭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사람의 본성에는 불성과 영성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현상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완벽하거나 영원하리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는 매 순간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리스 철학자들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했다고 하셨는데, 저자께서도 청중들과 술을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제가 그런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웃음). 강의보다는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죠. 안 그래도 전부터 조그만 한옥을 사서 종교인, 철학인 10명 남짓으로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술을 앞에 놓고 마시면서 공부를 해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꼭 그런 모임이 아니더라도 가정에서도 묻고 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봐요. 부모가 자식들을 가르치려고 해서 얻는 소득은 별로 없거든요. 사실 아는 것으로 따지면 부모라 해도 자식과 큰 차이가 없어요. 따라서 부모 역시도 끊임없이 자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아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눠보면 아이 스스로가 답을 얻게 되고 그게 완벽한 내공이 되는 것이거든요. 삶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죠.
최근 유럽의 금융 위기로 인해 그리스가 상당히 어렵다고 하던데, 직접 보신 느낌은 어떠한가요.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제국주의였고 아프리카 아시아에 식민지를 두고 침탈에서 부를 이뤘지만 그리스는 다른 나라와 사정이 달랐죠. 1830년에서야 독립했고 지금은 유럽 내의 약소국이이에요. 그런데 EU로 통합을 해서 한꺼번에 경쟁하다보니 문제가 생긴 거죠. 고대 그리스만 해도 당시에 이미 민주주의가 됐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살아야 했어요. 독재를 할 가능성만 있어도 시민들에 의해 추방됐을 정도였으니 지도자가 더 힘든 시대였죠.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은 잘못이지만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까지 꺾을 정도로 시민의 힘이 강력했던 거죠. 그러나 지금의 그리스는 지도자들이 타락했어요.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현실에 안주한 탓에 경제위기가 온 것이죠. 하지만 여행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리스 사람들은 아직 유럽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이기 때문에 여행하는 맛이 나죠. 오히려 한 교포식당에 가니까 아주머니가 “한국에서 선거철 복지논쟁 때문에 그리스의 예를 들며 복지를 늘려 망했다는 식으로 하도 부각시켜 한국에 있는 노부모에게 걸려오는 전화가 더 힘들다”고 하소연하더군요(웃음).
그리스 신화가 인류에 영향을 많이 준 것으로 아는데, 저자께서는 오히려 그리스 신화를 깨는 입장이라고 하시는 것이 조금 의아한데요.
(웃음) 제가 느낀 것을 말씀드린 거예요. 신화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거든요. 보통은 철학 이전에 신화시대였고 철학이 등장하고 인간의 시대, 중세에는 신의 시대, 계몽시대를 거쳐 다시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로 왔다고 하는데, 저는 그 분류가 맞지 않다고 봐요. 특히 중세는 인간이 신을 이용했을 뿐이죠. 신을 등에 업고 내세우면서 다른 자유로운 사상을 탄압했을 뿐이에요. 권력자들이 신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역시 오늘날까지도 ‘박정희 신화’가 있잖아요. 지배층이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신화를 만드는 거죠. 이를테면 자신을 신과 동격으로 하는 것이에요. 알렉산더도 자기가 신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신화 자체는 무의식의 발현이기 때문에 배울게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는 사실 그리스 신화에 비해 너무 도덕적이에요. 그리스 신화에서 미운 놈은 다 죽이고 예쁜 여자는 겁탈한 것이 제우스신이거든요. 인간 무의식에 적나라한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다는 것이 그리스 신화의 특징이죠. 그래서 신화에서는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신을 따르는 것만이 최상이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논리는 정치권력에 의해 강요된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되거든요. 그런 것을 이미 소크라테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의문을 품고 깬 거예요. ‘ 신이 정말 훌륭한 모델일까’, ‘신이라고 정당화 되어야 하나’와 같은 식으로 깨나간 거죠.
여행을 하시면서 다양한 종교에 대해서도 공부해 오셨는데요.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죽음 이후 내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독교에서는 천국. 불교는 극락이라고 하고 신자들 중에는 자신의 경험을 투사해서 천국 혹은 극락에 갔다 왔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진짜 그런 세상이 있는지 제가 안 가봤으니 모르는 것이고요(웃음). 설사 임사 체험을 했다 해도 사람마다 말이 다르니 과학적인 검증을 할 수 없는 부분이죠.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미 살아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고 죽었으면 이미 죽었는데 뭘 걱정할 것이냐’고 했어요. 내세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면 종교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리스 최고의 대서사시 <일리아드>를 영화화 한 <트로이>에서도 아킬레스가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눈 여사제에게 한 말이 있어요. ‘신들이 인간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르지, 죽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란 말이죠. 그리스 고전에는 신을 불멸의 존재라고 해요. 반면 인간은 필멸이라고 표현합니다. 소크라테스도 ‘니들이 죽음을 아냐’고 말하고 웃으며 독배를 마셨잖아요. ‘죽어서 내세가 있다면 만나고 싶은 철학자들을 만나서 좋고, 그런 세계가 없다면 평생 골치 아픈 고민을 잊고 곤한 잠을 잘 수 있어 또 축복’이라고 하면서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처럼 죽음에 대해서도 정 반대의 관념을 가졌어요. 우리는 하나의 관념만 있죠. 살면서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죽을 때도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 삶은 조금 더 편해 질 거예요.
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리스 여행에서 실제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없었나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상대방에게 뭔가 배우는 것 보다는 자신이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지금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여러분들에게 계기를 마련해 줄 뿐인 거죠. 아는 척하지 말고 초심자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것이 제 소신이에요. 누군가가 나를 변화시켰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니거든요(웃음). 다만, 제가 가서 만났던 분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아토스 산 금녀의 구역인 수도원에서 뵈었던 늙은 수도사에요. 너무나 평화로운 눈빛을 마주했죠. 눈빛만으로도 저를 사랑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난방도 안 되는 곳에서 추운 수도원에서 밤을 보내면서도 그분 덕분에 따뜻함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죠. ‘인간이 그런 정도의 자비로운 눈빛을 가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도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 만남이었습니다.
종교 기자로서 오랫동안 취재를 해 오셨는데 사람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인간은 독립성을 가졌다고 하지만 참 연약한 존재에요.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이 들어 늙으면 병이 들게 마련이죠. 인간은 그런 삶 속에서 약한 존재임을 인식해요. 그러면서 실제적으로 의존할 무엇인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죠. 신화 속에 너무 빠져서 삶을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이성적으로 훌륭한 가르침을 줄 종교에 귀의해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자기 내면의 훌륭한 영성과 신성을 갖춰져 있는데 질문을 통해 불러내지 않으면 어떤 힘든 상황에 마주했을 때 쉽게 허물어질 수 있거든요. 물론 종교에 의지한다고 해도 단단히 주관을 가지고 스스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되죠. 종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행하시는 수행법이 있으신지요.
화두선(한 가지 화두를 가지고 참선을 하는 정신수양법)을 하는데, 그런 선을 할 때는 전문적인 선방에 가서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선방에서 배우고 나서는 혼자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보통 잠자기 전에 가장 쉬운 명상이 수식관이에요. 요즘 사람들 불면증이 많잖아요. 낮에 너무나 힘들게 머리를 쓰기 때문에 저녁에는 쉬어줘야 하거든요. 자고나서 피곤이 풀리지 않은 것은 제대로 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럴 때 쉽게 할 수 있는 명상이 수식관이죠. 그저 100부터 수를 거꾸로 세면서 평상시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되 내 쉴 때 몸의 모든 피로와 번뇌가 발끝으로 싹 빠져 나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내쉴 때마다 수를 세다보면 분명 80도 못 되서 잠에 빠져들 거예요. 또 그렇게 편안한 가운데서 잠에 빠져 들지 않더라도 한 20분만 집중을 하면 긴장을 완화하면서도 의식은 명료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는 그런 상태에서 잘 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는 것도 좋아요. 막연히 상상만하는 것 보다는 명상을 통해 또렷한 의식 속에서 시각화시키면 현실화시키는데 좋은 영향을 주거든요. 제가 자주 쓰는 방법이기도 해요(웃음). 기자도 마감이되면 늘 불안하거든요. 그럴 때면 기사를 써놓고 편안한 상태를 시각화하곤 하죠. 그렇게 하면 실제로 기사도 잘 써져요. 명상을 현실로 연결해 활용하는 방법이죠. 여러분들도 명상을 그런 식으로 활용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리스 인생 학교 조현 저 | 휴(休)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인도 오지 기행》, 《운둔》, 《하늘이 감춘 땅》 등의 스테디셀러에서 인도와 이집트, 이스라엘과 티베트, 중국과 우리나라의 오지 기행 등 방대한 지역을 순례하며 정신의 원형을 탐구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살아 있는 역사와 신화의 땅, 그리스로 향했다. 저자는 책으로 만나는 그리스 신화나 ‘관광적’ 그리스가 아닌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생생하고 풍부한 자료를 보여준다. 또한 세속의 삶을 기꺼이 버리고 은둔 수행자의 신비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수도자들의 삶과 우리 삶의 크나큰 영향을 미친 수많은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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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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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황정호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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