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12] 클래식계의 코스모폴리탄, 헨델을 아시나요 - 헨델 <메시아>
<메시아>는 분명 신을 노래하고 있지만, 신보다도 신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먼저 보이는 음악이다.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이 느끼는 기쁨, 놀라움, 두려움, 불안 등의 감정이 먼저 다가오는 곡이다.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합창은 지금 듣기에도 이렇게 세련된 느낌을 주는데,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연주자에게 연주되고, 관객에게 사랑받는 고전으로 남은 이유일 터. 대중성과 예술성을 양손에 거머쥔 헨델의 감각을 다시 한 번 감탄하게 한다.
201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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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닮았고, 많이 달랐던 헨델과 바흐
헨델의 이름을 듣자 바흐가 떠올랐다. 지난번, 바흐의 <골든 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면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소개할 때, 헨델의 이름을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음악가다. 1685년 같은 해, 같은 국가에서 태어난 이 둘의 특별한 인연 덕분에, 헨델을 이야기할 때도 바흐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STEP 8] 바흐, 보러 가기-http://ch.yes24.com/Article/View/22208)
헨델은 내게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음악가지만, 바흐는 나에게 음악으로 기억되는 작곡가다. 문학이나 영화에서도 곡 제목으로, 혹은 한 소절로 접한 적이 있어서, 음악의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유명하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여덟 번째 미션에서 ‘흥부 바흐’를 만났을 때, 바흐와 헨델의 음악적 위상이 지금과 예전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걸 알게 됐다. 워낙 예상 밖의 이야기라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스무 명의 자식을 거느렸던 바흐는, 성실한 가장이자 충실한 종교인으로 평생 교회에서 헌신했다면, 그에 비해 헨델은 당대 굉장히 유명하고 인기 많은 음악가였다. 헨델은 청중이 반길만한, 대중적인 음악을 많이 작곡했고, 그만큼의 사랑과 부와 명예를 누렸다. 과연 당시 두 사람은 서로 알고 있었을까?
왼쪽이 헨델, 오른쪽이 바흐. 두 사람은 외모도, 체격도 비슷했고, 둘다 비만이었다.
“독일의 한 소도시에서 주야장천 하나님 찬양만 했던 바흐는 달리, 헨델은 여러 나라를 떠돌았던 코스모폴리탄이었지. 영국에서 왕족들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다가 결국 영국에 귀화했지. 바흐가 당시 헨델을 존경해서, 개인적인 만남을 몇 번이나 시도했다고 하는데, 잘나가던 헨델은 바흐한테 그다지 관심이 없었나봐.”
헨델의 음악이 잘 보존되어 시간을 타고 오늘날까지 무사히 건너온 데 비해, 바흐는 죽고 나서 그의 악보나 작품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묻혀 버렸다고 한다.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바흐의 음악을 발견한 것은 100년 후에 등장한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였던 멘델스존 덕분이었다. “지금은 헨델보다 바흐 쪽이 좀 더 대접을 받고 있으니 바흐가 저승에서라도 섭섭함을 좀 달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았던 두 사람의 성격이, 운명이, 행보가 이토록 달랐다는 게 곱씹어볼수록 흥미롭다. 두 사람 모두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로 나란히 고전 반열에 올랐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달랐던 것처럼, 그 둘의 음악의 색깔도 참 다르다. 선배가 이번 미션곡 <메시아>를 줬을 때, 서곡에 해당하는 심포니가 울려 퍼질 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종교음악이라는 장르적 편견을 날려버릴 만큼, 세련되고 풍성한 연주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들었던 종교음악 모차르트의 <레퀴엠>와도 바흐의 음악과도 아주 달랐다. 극적이고, 장엄한 분위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번 들으면 인상적으로 귀에 꽂힐 만큼 감각적이었다.
가사는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음악 자체로는 신에 대한 경외감만큼이나,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세상사의 역동, 활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헨델이라는 사람도, 그의 음악도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 있었다.
명예 얻고 인기 얻고 영국에서 승승장구, 귀화까지 한 헨델
헨델의 음악 중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
그의 성공적인 <오페라>에 나오는 곡이자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많이 알려진 곡 ‘울게 하소서’,
그가 당시에 어떤 인기를 누렸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곡이다.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하니까, 또 그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곱슬머리 긴 가발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헨델이 여자냐고도 묻더라. 헨델은 1685년, 바흐와 같은 해, 독일에서 태어난 남자 작곡가야.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당시 천재라고 불렸던 음악가들이 보통,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음악공부를 시작한 것과 달리 외과 의자이자 이발사였던 헨델의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길 바랬어. 음악가는 배곯는 직업이라고 반대했지. 헨델은 몰래 다락방에서 음악공부를 스스로 한 거야.
본인이 빼어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헨델은 자기 재능을 사업으로 연결하는 수완도 꽤 좋았어.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은 건, 음악으로 살림을 꾸려갔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 독일 함부르크에서 오페라 <알미라>를 작곡했고, 이후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돌며 음악공부를 해나갔어.”
17세기. 성가대 반주나 예배용으로 음악을 작곡하던 바로크 음악 세계 속에 있다가 이탈리아에서 각양각색 이야기를 지닌 오페라, 다양한 음악에 귀도 눈도 뚫렸을 20대 헨델을 떠올려본다. 얼마나 짜릿했을까?
“결국 헨델은 영국 런던에서 정착해. 당시 경제 개혁이 진행되던 영국의 활기찬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고, 당시 앤 여왕이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이유도 있었어. 헨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인으로 귀화했고, 영어로 작품을 썼어. 영국 작곡가로 분류될 만큼,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어.”
헨델과 바흐는 출생에만 인연이 있는 줄 알았는데, 말년에도 이상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헨델과 항상 바흐가 함께 거론되는 걸 보니 두 사람은 아무래도 큰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 같지? 둘은 외모나 체격도 비슷했고, 둘 다 비만에 시달렸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눈 질환을 앓았는데, 둘 다 실명했어. 바흐가 돌팔이 의사를 만나 현대로선 믿기지 않을 만큼 엉터리 치료를 받고 실명했는데, 그 의사한테 헨델로 치료를 받은 거야. 한 돌팔이 의사가 세기의 음악 천재 둘을 보낸 거야.
바흐는 65세로 실명한 지 3개월 만에 사망했고, 헨델은 바흐보다 10년쯤 더 살면서 작품 활동을 지속했어. 마지막에 <메시아> 공연을 보고 쓰러졌는데, 그 일주일 후에 사망했지. 참 음악가다운 마지막이지? 헨델은 지금까지 소개된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풍족하게 살았고, 인기도 많았어.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은 경쾌하고 쾌활한 게 특징이야.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게 된 데에는, 동시대를 살다 간 두 위대한 음악가가 현대 음악의 큰 틀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지. 더불어 경건하고 엄숙한 바흐의 음악에 비해 헨델의 음악이 화려하고 섬세한, 여성적인 성격이기 때문이었어. 이런 걸 기억하려고 할 필요는 없고, 이만큼 중요한 작곡가니까, 대표작을 놓치지 말고 들어보라는 얘기로 들으면 돼.”
영국 왕도 자리에서 일으킨 합창, ‘할렐루야’
헨델의 <메시아>는 종교 음악으로 분류된다. 앞서 모차르트 <레퀴엠>처럼, 미사 같은 종교 행사에 쓰이거나,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곡을 종교 음악으로 분류한다. 가사를 살펴보면 이사야, 누가복음, 시편 등의 구절이 그대로 쓰였다.
“<메시아>는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줄거리가 있고, 무대 위에 가수들이 배역을 갖고 있어. 다만 움직이며 연기하지 않지. 이런 음악을 오라토리오(Oratorio)라고 해. 하이든이 작곡한 <천지창조>와 <사계> 그리고 바흐의 <수난곡>이 오리토리오에 속하는 곡이야. 오페라보다 제작비용이 적게 들어서 귀족 뿐 아니라 중산 계층에게도 어필한 장르야.”
헨델의 <메시아>라고 하면 갸웃할지 모르겠지만, 연말이면 교회나 공연장에서 익히 듣는 음악 ‘할렐루야’는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할 거다. “42번 합창 ‘할렐루야’가 가장 유명하잖아? ‘할렐루야’ 합창은 영화 속에서도 많이 등장하는데, 보통 연말이나 성탄절이면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와 함께 가장 많이 들리는 합창이지.
초연 당시 영국 왕이 감동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대. 그때부터 관객이 기립하는 게 관례가 되었다고 해. 안타깝게도 나도 아직 <메시아>를 직접 관람한 적이 없어서 사실인지 확인을 못했지만, 꼭 확인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야.”
2004년 뉴욕 Radio City Music Hall에서 연주된 ‘할렐루야’
헨델한테는 이 <메시아>의 성공적인 공연이 남다른 의미였을 테다. 이 공연 이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걸 보니, 그때 몸 상태도 좋지 않았던 모양인데, 헨델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몸과 마음은 물론, 재정 상태까지 상당히 위기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메시아를 작곡할 당시 헨델은 극장경영의 난항으로 파산 직전이었고, 지병은 악화한 상황이었어. 의뢰를 받고 불과 24일 만에 작곡한 메시아는 초연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단번에 헨델의 경제적 상황을 회복시켰지.” 아무렴, 영국의 King of King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데.
믿기 어렵게도, 헨델은 음악사에 길이 남은 이 음악을 20여 일 만에 작곡했다. 작곡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고,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심취해 작곡했단다. “신이 오신 것 같았다”는 그의 소감을 들으니 그가 얼마나 혼신으로 곡을 써내려갔는지 짐작도 된다. 또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기분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신보다 신을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이 느껴지는 곡
헨델의 <메시아>
헨델의 <메시아>는 영어다. 귀를 쫑긋 세우면 ‘every-body' 정도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된다. 오페라가, 이탈리아를 써서 어렵다고 말할 수 없는 거구나. 영어로 불러도 딱히 가사가 잘 전달되거나, 가사를 잘 전달하려고 부르는 것 같지도 않다. 이건 음악이니까.
“간혹 독일어로 녹음되고 있는데, 그건 음악사에 영원히 반짝이는 천재 모차르트가 편곡한 버전이야. <메시아>에서 ’할렐루야‘가 백미이긴 하지만, 다른 곡들도 좋아. 하이라이트를 기다리며 골고루 들어봐.”
<메시아>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예언과 탄생, 2부는 수난과 속죄, 3부는 부활과 영생을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오’와 같은 수태고지와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네’ 등의 가사로 합창한다. 구구절절 성경 이야기를 해대는 게 아니라, 특정한 성경 구절을 반복해 부른다. ‘모든 천사 주께 경배하리라’라는 구절만으로 한 곡을 부르기도 한다.
가사보다는 리듬과 음계로 예언, 축복, 환희, 두려움, 비장, 공포 등의 분위기나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그러다 보니 곡마다 선율이 다채롭다. 만약 성경이 바탕으로 된 곡이라는 사전 설명이 없었다면, 어떤 오페라의 한 장면을 연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메시아>는 분명 신을 노래하고 있지만, 신보다도 신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먼저 보이는 음악이다.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이 느끼는 기쁨, 놀라움, 두려움, 불안 등의 감정이 먼저 다가오는 곡이다.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합창은 지금 듣기에도 이렇게 세련된 느낌을 주는데,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연주자에게 연주되고, 관객에게 사랑받는 고전으로 남은 이유일 터. 대중성과 예술성을 양손에 거머쥔 헨델의 감각을 다시 한 번 감탄하게 한다.
<메시아> 명반, 칼 리히터 지휘의 런던 필 연주반
<메시아>의 ‘할렐루야’를 깜찍하게 표현한 무대. 자막이 압권이다.
로맹 롤랑은 『헨델』이라는 저서에서 그의 음악을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대중에게 전혀 타협하지 않는 최상의 아름다운 형식을 지니면서도, 헨델의 음악은 만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써 만인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을 표현했다.” 이게 <메시아>를 우리집 거실에서도 기꺼이 즐겨 듣게 되는 비밀인 듯하다. 꼭 한번은 공연장에서 <메시아>를 들어보고 싶다.
헨델의 <메시아> 앨범 중 최고로 선정된 음반은 칼 리히터 지휘의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앨범이다. “지휘자이며 오르간 연주자였던 칼 리히터는, 그다지 많은 작품을 녹음한 연주자는 아니야. 바흐의 나라 독일에서 태어났고 바흐가 일하던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연주자로 있었던 지휘자야.
비범치 않은 경력에서 알 수 있듯 바흐 음악, 특히 종교음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연들을 남겼어. 1958년에 녹음한 바흐 마태 수난곡은 언제나 그의 첫 번째로 꼽히는 명연이야. 바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헨델의 작품도 여럿 녹음했는데, 그중 종교음악인 <메시아>가 단연 돋보여. 약간의 느린 템포가 종교음악의 경건함을 더욱 살려준다고 할까. 칼 리히터는 <메시아>를 영어 버전 외에 독일어 버전으로도 녹음했어. 둘을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야.”
헨델의 이름을 듣자 바흐가 떠올랐다. 지난번, 바흐의 <골든 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면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소개할 때, 헨델의 이름을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음악가다. 1685년 같은 해, 같은 국가에서 태어난 이 둘의 특별한 인연 덕분에, 헨델을 이야기할 때도 바흐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STEP 8] 바흐, 보러 가기-http://ch.yes24.com/Article/View/22208)
헨델은 내게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음악가지만, 바흐는 나에게 음악으로 기억되는 작곡가다. 문학이나 영화에서도 곡 제목으로, 혹은 한 소절로 접한 적이 있어서, 음악의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유명하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여덟 번째 미션에서 ‘흥부 바흐’를 만났을 때, 바흐와 헨델의 음악적 위상이 지금과 예전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걸 알게 됐다. 워낙 예상 밖의 이야기라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스무 명의 자식을 거느렸던 바흐는, 성실한 가장이자 충실한 종교인으로 평생 교회에서 헌신했다면, 그에 비해 헨델은 당대 굉장히 유명하고 인기 많은 음악가였다. 헨델은 청중이 반길만한, 대중적인 음악을 많이 작곡했고, 그만큼의 사랑과 부와 명예를 누렸다. 과연 당시 두 사람은 서로 알고 있었을까?
왼쪽이 헨델, 오른쪽이 바흐. 두 사람은 외모도, 체격도 비슷했고, 둘다 비만이었다.
“독일의 한 소도시에서 주야장천 하나님 찬양만 했던 바흐는 달리, 헨델은 여러 나라를 떠돌았던 코스모폴리탄이었지. 영국에서 왕족들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다가 결국 영국에 귀화했지. 바흐가 당시 헨델을 존경해서, 개인적인 만남을 몇 번이나 시도했다고 하는데, 잘나가던 헨델은 바흐한테 그다지 관심이 없었나봐.”
헨델의 음악이 잘 보존되어 시간을 타고 오늘날까지 무사히 건너온 데 비해, 바흐는 죽고 나서 그의 악보나 작품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묻혀 버렸다고 한다.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바흐의 음악을 발견한 것은 100년 후에 등장한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였던 멘델스존 덕분이었다. “지금은 헨델보다 바흐 쪽이 좀 더 대접을 받고 있으니 바흐가 저승에서라도 섭섭함을 좀 달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았던 두 사람의 성격이, 운명이, 행보가 이토록 달랐다는 게 곱씹어볼수록 흥미롭다. 두 사람 모두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로 나란히 고전 반열에 올랐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달랐던 것처럼, 그 둘의 음악의 색깔도 참 다르다. 선배가 이번 미션곡 <메시아>를 줬을 때, 서곡에 해당하는 심포니가 울려 퍼질 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종교음악이라는 장르적 편견을 날려버릴 만큼, 세련되고 풍성한 연주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들었던 종교음악 모차르트의 <레퀴엠>와도 바흐의 음악과도 아주 달랐다. 극적이고, 장엄한 분위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번 들으면 인상적으로 귀에 꽂힐 만큼 감각적이었다.
가사는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음악 자체로는 신에 대한 경외감만큼이나,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세상사의 역동, 활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헨델이라는 사람도, 그의 음악도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 있었다.
명예 얻고 인기 얻고 영국에서 승승장구, 귀화까지 한 헨델
헨델의 음악 중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
그의 성공적인 <오페라>에 나오는 곡이자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많이 알려진 곡 ‘울게 하소서’,
그가 당시에 어떤 인기를 누렸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곡이다.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하니까, 또 그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곱슬머리 긴 가발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헨델이 여자냐고도 묻더라. 헨델은 1685년, 바흐와 같은 해, 독일에서 태어난 남자 작곡가야.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당시 천재라고 불렸던 음악가들이 보통,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음악공부를 시작한 것과 달리 외과 의자이자 이발사였던 헨델의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길 바랬어. 음악가는 배곯는 직업이라고 반대했지. 헨델은 몰래 다락방에서 음악공부를 스스로 한 거야.
본인이 빼어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헨델은 자기 재능을 사업으로 연결하는 수완도 꽤 좋았어.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은 건, 음악으로 살림을 꾸려갔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 독일 함부르크에서 오페라 <알미라>를 작곡했고, 이후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돌며 음악공부를 해나갔어.”
17세기. 성가대 반주나 예배용으로 음악을 작곡하던 바로크 음악 세계 속에 있다가 이탈리아에서 각양각색 이야기를 지닌 오페라, 다양한 음악에 귀도 눈도 뚫렸을 20대 헨델을 떠올려본다. 얼마나 짜릿했을까?
“결국 헨델은 영국 런던에서 정착해. 당시 경제 개혁이 진행되던 영국의 활기찬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고, 당시 앤 여왕이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이유도 있었어. 헨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인으로 귀화했고, 영어로 작품을 썼어. 영국 작곡가로 분류될 만큼,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어.”
헨델과 바흐는 출생에만 인연이 있는 줄 알았는데, 말년에도 이상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헨델과 항상 바흐가 함께 거론되는 걸 보니 두 사람은 아무래도 큰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 같지? 둘은 외모나 체격도 비슷했고, 둘 다 비만에 시달렸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눈 질환을 앓았는데, 둘 다 실명했어. 바흐가 돌팔이 의사를 만나 현대로선 믿기지 않을 만큼 엉터리 치료를 받고 실명했는데, 그 의사한테 헨델로 치료를 받은 거야. 한 돌팔이 의사가 세기의 음악 천재 둘을 보낸 거야.
바흐는 65세로 실명한 지 3개월 만에 사망했고, 헨델은 바흐보다 10년쯤 더 살면서 작품 활동을 지속했어. 마지막에 <메시아> 공연을 보고 쓰러졌는데, 그 일주일 후에 사망했지. 참 음악가다운 마지막이지? 헨델은 지금까지 소개된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풍족하게 살았고, 인기도 많았어.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은 경쾌하고 쾌활한 게 특징이야.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게 된 데에는, 동시대를 살다 간 두 위대한 음악가가 현대 음악의 큰 틀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지. 더불어 경건하고 엄숙한 바흐의 음악에 비해 헨델의 음악이 화려하고 섬세한, 여성적인 성격이기 때문이었어. 이런 걸 기억하려고 할 필요는 없고, 이만큼 중요한 작곡가니까, 대표작을 놓치지 말고 들어보라는 얘기로 들으면 돼.”
영국 왕도 자리에서 일으킨 합창, ‘할렐루야’
헨델의 <메시아>는 종교 음악으로 분류된다. 앞서 모차르트 <레퀴엠>처럼, 미사 같은 종교 행사에 쓰이거나,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곡을 종교 음악으로 분류한다. 가사를 살펴보면 이사야, 누가복음, 시편 등의 구절이 그대로 쓰였다.
“<메시아>는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줄거리가 있고, 무대 위에 가수들이 배역을 갖고 있어. 다만 움직이며 연기하지 않지. 이런 음악을 오라토리오(Oratorio)라고 해. 하이든이 작곡한 <천지창조>와 <사계> 그리고 바흐의 <수난곡>이 오리토리오에 속하는 곡이야. 오페라보다 제작비용이 적게 들어서 귀족 뿐 아니라 중산 계층에게도 어필한 장르야.”
헨델의 <메시아>라고 하면 갸웃할지 모르겠지만, 연말이면 교회나 공연장에서 익히 듣는 음악 ‘할렐루야’는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할 거다. “42번 합창 ‘할렐루야’가 가장 유명하잖아? ‘할렐루야’ 합창은 영화 속에서도 많이 등장하는데, 보통 연말이나 성탄절이면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와 함께 가장 많이 들리는 합창이지.
초연 당시 영국 왕이 감동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대. 그때부터 관객이 기립하는 게 관례가 되었다고 해. 안타깝게도 나도 아직 <메시아>를 직접 관람한 적이 없어서 사실인지 확인을 못했지만, 꼭 확인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야.”
2004년 뉴욕 Radio City Music Hall에서 연주된 ‘할렐루야’
헨델한테는 이 <메시아>의 성공적인 공연이 남다른 의미였을 테다. 이 공연 이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걸 보니, 그때 몸 상태도 좋지 않았던 모양인데, 헨델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몸과 마음은 물론, 재정 상태까지 상당히 위기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메시아를 작곡할 당시 헨델은 극장경영의 난항으로 파산 직전이었고, 지병은 악화한 상황이었어. 의뢰를 받고 불과 24일 만에 작곡한 메시아는 초연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단번에 헨델의 경제적 상황을 회복시켰지.” 아무렴, 영국의 King of King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데.
믿기 어렵게도, 헨델은 음악사에 길이 남은 이 음악을 20여 일 만에 작곡했다. 작곡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고,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심취해 작곡했단다. “신이 오신 것 같았다”는 그의 소감을 들으니 그가 얼마나 혼신으로 곡을 써내려갔는지 짐작도 된다. 또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기분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신보다 신을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이 느껴지는 곡
헨델의 <메시아>
헨델의 <메시아>는 영어다. 귀를 쫑긋 세우면 ‘every-body' 정도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된다. 오페라가, 이탈리아를 써서 어렵다고 말할 수 없는 거구나. 영어로 불러도 딱히 가사가 잘 전달되거나, 가사를 잘 전달하려고 부르는 것 같지도 않다. 이건 음악이니까.
“간혹 독일어로 녹음되고 있는데, 그건 음악사에 영원히 반짝이는 천재 모차르트가 편곡한 버전이야. <메시아>에서 ’할렐루야‘가 백미이긴 하지만, 다른 곡들도 좋아. 하이라이트를 기다리며 골고루 들어봐.”
<메시아>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예언과 탄생, 2부는 수난과 속죄, 3부는 부활과 영생을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오’와 같은 수태고지와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네’ 등의 가사로 합창한다. 구구절절 성경 이야기를 해대는 게 아니라, 특정한 성경 구절을 반복해 부른다. ‘모든 천사 주께 경배하리라’라는 구절만으로 한 곡을 부르기도 한다.
가사보다는 리듬과 음계로 예언, 축복, 환희, 두려움, 비장, 공포 등의 분위기나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그러다 보니 곡마다 선율이 다채롭다. 만약 성경이 바탕으로 된 곡이라는 사전 설명이 없었다면, 어떤 오페라의 한 장면을 연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메시아>는 분명 신을 노래하고 있지만, 신보다도 신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먼저 보이는 음악이다.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이 느끼는 기쁨, 놀라움, 두려움, 불안 등의 감정이 먼저 다가오는 곡이다.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합창은 지금 듣기에도 이렇게 세련된 느낌을 주는데,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연주자에게 연주되고, 관객에게 사랑받는 고전으로 남은 이유일 터. 대중성과 예술성을 양손에 거머쥔 헨델의 감각을 다시 한 번 감탄하게 한다.
<메시아> 명반, 칼 리히터 지휘의 런던 필 연주반
<메시아>의 ‘할렐루야’를 깜찍하게 표현한 무대. 자막이 압권이다.
로맹 롤랑은 『헨델』이라는 저서에서 그의 음악을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대중에게 전혀 타협하지 않는 최상의 아름다운 형식을 지니면서도, 헨델의 음악은 만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써 만인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을 표현했다.” 이게 <메시아>를 우리집 거실에서도 기꺼이 즐겨 듣게 되는 비밀인 듯하다. 꼭 한번은 공연장에서 <메시아>를 들어보고 싶다.
헨델의 <메시아> 앨범 중 최고로 선정된 음반은 칼 리히터 지휘의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앨범이다. “지휘자이며 오르간 연주자였던 칼 리히터는, 그다지 많은 작품을 녹음한 연주자는 아니야. 바흐의 나라 독일에서 태어났고 바흐가 일하던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연주자로 있었던 지휘자야.
비범치 않은 경력에서 알 수 있듯 바흐 음악, 특히 종교음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연들을 남겼어. 1958년에 녹음한 바흐 마태 수난곡은 언제나 그의 첫 번째로 꼽히는 명연이야. 바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헨델의 작품도 여럿 녹음했는데, 그중 종교음악인 <메시아>가 단연 돋보여. 약간의 느린 템포가 종교음악의 경건함을 더욱 살려준다고 할까. 칼 리히터는 <메시아>를 영어 버전 외에 독일어 버전으로도 녹음했어. 둘을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야.”
두 번째로 선택된 음반 존 엘리옷 가디너 : 헨델 : 메시아
역시 바흐 종교음악으로도 널리 알려진 존 엘리옷 가디너의 헨델 메시아는, 가능이면 음악이 작곡된 그 시절의 악기의 소리를 살려보자는 모토의 소규모 오케스트라의 원전연주이다. 연주 자체도 훌륭하며, 현대악기의 웅장함과는 다른 청명하고 카랑한 소리의 원전 악기가 내는 조합이 아름답다. 메시아 연주 중에서 꼭 들어봐야 할 음반 가운데 하나다.
헨델 메시아의 좋은 연주들은 적지 않다. 난다긴다하는 종교음악에 강한 지휘자들이 한 번씩은 꼭 녹음하고 가는 작품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독특한 음반을 하나 골랐다. 바로 한국인들에 의해 연주되고 녹음된 메시아이다. 헨델이 초연한 더블린 판본을 사용했으며, 바로크 전문 연주단체와 전문 성악가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2012년 그래미 어워드 녹음부문 수상자인 황병준이 녹음을 맡았으니 음질 면에서도 남부럽지 않을듯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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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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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sind1318
2013.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