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수평형 기내 의자, 비즈니스 클래스를 변화시키다
잔뜩 흐렸던 9월 둘째 주 수요일 저녁, 민음사 사옥에서 이색적인 강연회가 열렸다. 글로벌 디자인회사 ‘탠저린’의 공동 대표인 이돈태의 저서 『포어사이트 크리에이터』 출간을 기념해 ‘디자인 컨설팅 토크’ 행사가 열렸다.
글ㆍ사진 장미경
201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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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돈태 대표가 ‘탠저린’에서 성공시킨 대표적인 프로젝트 사례들과 이러한 성공의 토대가 된 디자인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어 디자인 업계에서 취업이나 창업에 대한 열망을 품은 독자들과 함께 본격적인 ‘디자인 컨설팅 토크’를 진행했다. 쉴 틈 없이 질문들이 쏟아졌던, 그 빛나는 디자인 컨설팅 토크의 시간으로 들어가 보자.

“사실 일반인들은 디자인 회사 ‘탠저린’을 잘 모른다. 주로 B2B를 하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 전공자 중에서도 하드웨어 쪽 관련자가 아니라면 잘 모를 수도 있다. 탠저린이 대외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애플의 수석 부사장인 ‘조너선 아이브’가 근무했던 회사라는 것인데,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 에 보면 조너선 아이브와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탠저린이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탠저린은 런던에 본사를 둔 24년 정도 된 회사이고, 현재는 서울과 브라질에 지사를 두고 있다. 대부분 다국적 회사와 일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기사에도 보도된 ‘아시아나 A380’이라는 세계 최대 항공기를 내년 5월에 런칭하기 위해 관련한 작업을 3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


성장 한계점에 다다른 기업들을 위해, Stall Point를 돌파하라

이돈태 대표의 가장 큰 고민은, 수많은 CEO들을 만나면서 ‘성장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기업이 성장 정체를 겪으며 매출이 둔화가 두드러지는 지점을 스톨 포인트(Stall Point)라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 대해 많은 CEO들이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디자인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 혁신을 일으키고자 한다고. 그동안 디자인 역시 ‘인사이트’를 가질 것을 강조해 왔지만 이돈태 대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단언한다.




더 이상 ‘인사이트(Insight)’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사이트’를 중시한다. 그러나 그 용어 사용의 객체가 다 다르다. 금융가, 엔지니어 등 직업에 상관없이 통용되어 쓰이는 말이다. 인사이트란, 고객을 관찰하고 행동을 분석해서 데이터화시키는 정량적인 작업을 가리킨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러한 인사이트만을 가지고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주변에 성공한 CEO들이 많이 있지만, 통계나 수치만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동물적인 감각을 훈련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즉, 이러한 정량적인 데이터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는 ‘포어사이트(Foresight)’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감각이나 감성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요소가 너무 많다. 날씨, 감정, 상황, 관계 등, 수만 가지 과정을 통해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감성공학’이라고 하는, 인간의 감성을 수치화하고 통계를 낼 수 있다는 논리를 아직까지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 시장이 침체되어 있는 것이다. 통계와 인사이트 위주로 산업을 끌고 가다 보니 비전이 없어지는 거다. 그렇다고 인사이트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인사이트를 존중하되, 다른 경쟁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것이 바로 ‘포어사이트’다. 좌뇌와 우뇌, 직관과 논리로 무장했을 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돈태 대표의 저서인 『포어사이트 크리에이터』 에서도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창조적인 혁신을 위해 ‘포어사이트(foresight)’ 능력을 기르고 이를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포어사이트’란 데이터를 토대로 한 정량적(定量的) 자료와 축적된 경험에서 나오는 정성적(定性的) 판단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고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자유로운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경쟁력 있는 미래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상상력과 포어사이트는 디자인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며, 특히 디자인이 창조산업의 선두에 서 있는 만큼 창조산업을 역동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디자인 경영 실패의 결론 역시 ‘디자인 경영’이 답이다
포어사이트의 감각을 함께 활용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들


“예전에 ‘영국항공’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서 브랜드 혁신을 꾀한 적이 있었다. 결론은 디자인 경영이었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도가 비행기 꼬리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었다. 여러 데이터를 토대로 해서, 비행기 꼬리 디자인을 전 세계 취항지 별로 다 바꿨다. 그 결과는 시장에서의 철저한 실패였다. 실패 원인 중 하나는, 비행기가 계류장에 서있을 때 여러 항공기가 섞여 있어서 영국항공사에서도 본인들의 아이덴티티를 의아해 할 정도로 구분이 안 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꼬리 디자인 때문에 각 취항지에서 민족적인 감정이 작용해 해당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는 고객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비행기 한 대를 칠하는 데에는 몇 십억이 든다. 이렇게 항공기를 400~500대 칠하다 보면 비용이 4천 억, 5천 억 드는 거다. 그렇다면 과연, 디자인 경영을 하지 말아야 하느냐. 그럼에도 영국항공에서는 계속 디자인 경영을 해야 한다는 니즈가 있었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 ‘포어사이트적인 감성’으로 접근을 했다.”




1. 인사이트와 포어사이트를 결합시킨 성공 사례

“좌석 리뉴얼을 위해 영국항공은 그들의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 고객을 호텔로 데려와 약 20억 정도를 들여 그들이 원하는 좌석의 모습이 뭔지 리서치를 진행했다. 15년 전인 당시에 리서치를 이러한 방법으로 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조사 방법은 바뀌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과 감성을 찾아내기 위한 방법은 거의 비슷하다. 다시 말해,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많은 리서치 학자들이 새로운 방법론이 없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방법론은 거의 비슷하다. 즉, 인간의 감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새로운 요소를 파악하는 것보다 핵심 가치에 더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탠저린은 세계 최초로 비행기 의자를 평평하게 누울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그 계기는 단순하다. 비행기 의자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 있어도 장시간 비행 중에 수면을 지속적으로 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석을 수평으로 디자인하면 원하는 시간만큼 잘 수 있다. 대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기존의 좌석 수를 절대 줄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같은 공간에 들어간 좌석 수는 동일하면서도 좌석을 수평으로 개발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뽑힌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이 바로 다른 항공사들의 비즈니스 클래스가 바뀌게 된 결정적인 시발점이 된 셈이다.”





2. 헤리티지, 즉 그 나라의 유산을 활용한 성공 사례

인사이트를 통해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포어사이트, 이 요소 중 하나로 각 나라나 도시의 ‘문화적인 유산’을 활용하여 디자인을 한 성공 사례가 있다. 이돈태 대표는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건설 주택사업부 디자인 고문을 지냈다. 그 기간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 중에서도 ‘한국형 욕실 디자인’이 널리 알려졌다. 그가 한국형 욕실 디자인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파트의 좌식 문화는 충돌이 생긴다. 특히 남자들은 발을 많이 씻는데, 욕실에는 발을 씻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욕실을 이단으로 만들어 애완동물 목욕을 시키거나 손걸레를 세탁하고, 발을 씻을 수 있는 정도 크기의 작은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이런 것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헤리티지를 활용한 디자인 사례에 속한다.”


3.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승부하라

“포어사이트를 활용한 세 번째 성공 요소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과 함께 ‘굴삭기’ 디자인을 같이 했었는데, 가장 큰 고민은 두 가지였다. 굴삭기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그리고 굴삭기가 땅을 파다가 멈췄을 때 버켓을 교체하는 데에 노동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 그리하여 ‘소금쟁이’의 컨셉을 떠올려 굴삭기 바퀴를 네 개로 분리하고, 가파른 언덕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장점이 있지만 앞으로 상용화되려면 10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개발했던 단계별 기술들의 ROI(투자자본수익률)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게차’ 디자인 작업도 했었는데, 이 과정에서 포어사이트를 통해 도출한 결과가 있었다. 지게차가 짐을 들고 앞으로 가야할 때에는 그 짐 때문에 운전자의 시야가 가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고의 원인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운전석에 회전축을 달아서 앞으로 가면서도 짐 때문에 시야를 가리지 않는 장점을 만들어냈다. 이런 아이디어나 발상은 인사이트를 통해서는 나올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한 접근이다. 디자인을 하면서 이러한 포어사이트를 많이 만들어내고 고민해야 한다.”





5퍼센트의 혁신은 불가능하지만, 30퍼센트의 혁신은 가능하다

이돈태 대표는 어느 대기업의 부회장이 한 말을, 마음 깊이 담고 다닌다고 했다. “5%의 혁신은 불가능하지만, 30퍼센트의 혁신은 가능하다”는 것. 이를테면, 아침 기상 시간을 5~10분 정도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어렵지만, 3시간 일찍 일어나려고 생각을 한다면 이미 잘 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혁신을 하려면 작은 것부터 생각하기보다는, 가장 큰 것부터 바꿀 때 작은 것들도 자연스럽게 바뀐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높게 이상을 갖되, 작은 행동의 혁신에 맞춰 가면 각자의 영역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돈태 대표의 1부 강연이 끝나고, 현장에 자리한 독자들과 함께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강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디자인을 전공으로 한 대학생, 디자인 회사에 취업하고자 하는 취업 준비생, 디자인 회사 창업을 모색하거나 직접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CEO 등 디자인을 매개로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디자인 전공 학생들은 진로와 관련해 선배 디자이너로서의 조언을 듣고자 했고,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은 경영자인 동시에 디자이너로서 회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운영하는지를 물었다. 또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조직 관리나 운영 노하우를 질문하는 등, 각자의 위치에서 궁금했던 질문들을 던지고 진솔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인생에서 대박은 아직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며 계속해서 조금씩 작은 성취를 이루면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그는 이처럼 작은 성취의 수많은 과정과 결과를 통해 본인을 끊임없이 단련시키며 지금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 아닐까. 디자인 철학과 신념은 물론, 인간적인 진솔함과 겸손함까지 엿보였던 이돈태 대표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기다려진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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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어사이트 크리에이터 Foresight Creator 이돈태 저 | 세미콜론
이 책의 저자 이돈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 회사 탠저린을 이끌고 있는 산업 디자이너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성공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많은 글로벌 CEO들의 선택을 받아 왔다. 기업의 생태와 조직 운영 원리를 잘 알고 있는 경영자로서, 그리고 수많은 기업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산업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디자인 경영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실행하는지, 시장에서 파괴력 있는 제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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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태

196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으나 집안의 반대로 꿈을 접고 미술 대신 디자인을 택했다. 삼수 끝에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oyal Collage of Art, RCA) 제품디자인과에 들어갔다. 1998년 영국의 대표 디자인 회사 탠저린에 인턴으로 입사한 후 7년 만에 공동 대표 자리에 올랐다. 탠저린에서 진행한 영국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디자인으로 항공기 인테리어 디자인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왔고, 항공사에는 지금까지 10조 원이 넘는 영업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물산 건설 부문 주택사업부의 디자인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아파트 디자인 콘셉트를 구축하는 일들을 했으며, 이때 디자인한 한국형 욕실로 2008년 대한민국 굿 디자인대상 대통령상을 비롯해 독일의 레드닷과 iF 디자인 어워드를 여러 차례 수상했다. 그 외 수상 내역으로는 영국의 IDEA 그랑프리상, 미국 굿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고, 2012년 중앙일보가 선정한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 ‘K-디자인 1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7년 중앙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한국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CEO’상과 2009년 프리챌이 주관한 대한민국 창조경영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런던과 서울에서 디자인 컨설팅 회사 탠저린을 운영하면서 도요타, 시스코, 히드로 익스프레스, LG전자, 삼성물산, 삼성전자, SK텔레콤,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아모레퍼시픽 등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지금도 20여 개의 국내외 글로벌 기업 및 중소기업의 의뢰를 받아 각 기업과 제품에 맞는 디자인 전략을 세우고 있다. 2005년부터 모교인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겸직 교수로, 2013년부터 베이징성시대학교(北京城市學院)에서 객좌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전 세계를 무대로 디자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