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 가득한 응답하라 1994 감상, 왜 응사앓이인가
‘응사’는 재미와 로맨스 그리고 감동이라는 3가지 무기로 시청률 3%를 넘어서는 등 시청자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케이블 시청률 3%는 공중파 20%와 맞먹는 정도니 적지 않은 수치다. 다만 ‘응사’가 전작의 흥행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고비가 있다.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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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간다. 소설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기억에 호소하는 작품은 흥행에 유리하다. 그런 면에서 <응답하라 1997>의 후속작인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는 인기를 끌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응사’가 바로 기억에 호소하는 드라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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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직한 배우, 정우

 

평소에 드라마는커녕 TV도 잘 보지 않는 내가 ‘응사’를 본 이유는 ‘정우’라는 배우 덕택이다. 부산에서 (남자)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한다는 영화, <바람>. <바람>을 권했던 친구는 과장 조금 보태 10번이나 그 영화를 봤다고 했다.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인지라, 그 말을 듣고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과연 <바람>은 명작이었다. <친구>가 남자 고등학교 주먹 세계의 엘리트 버전이라면 <바람>은 남자 고등학교 주먹 세계의 일반인 버전. 그만큼 보통의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영화에 공감할 만한 장면이 많다. 장동건이 <바람>에 출연했다면 1,200만은 거뜬히 넘겼을 법한 작품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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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에서 다소 어리숙하고 껄렁한 연기를 보여준 정우.

물론, 이미 20대 후반이었던 그가 고등학생 역을 맡은 게 비쥬얼상 어색하긴 했지만.

 

이 작품은 소름 끼칠 만큼 사실적으로 부산의 (남자)고등학교 풍경을 묘사했으나 <친구>류의 작품이 더는 인기를 끌지 못하는 2009년에 나왔다는 점, 당시만 해도 이렇다 할 유명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그럼에도 청소년 관람 불가였다는 점으로 흥행하지는 않았던 영화다. 어쨌든 이 작품을 보면서 나는 정우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막장 이야기였던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마저 정우가 출연한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보고 말았다.

 

그런 정우가 ‘응사’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알았을 때, 삶에서 절대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채널고정, 본방사수라는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 나는 TV 앞에 앉아 광고가 빨리 끝나길 바라는 한 마리의 순한 양이 되고 말았다.

 

서울이 고향이 아니면서 서울에서 사는 사람이 공감할 만한 드라마

 

1994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시트콤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웃기다. 다양한 요소가 드라마를 재밌게 만들지만, 그중에서 압권은 등장인물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온 대학생들이 한 집에서 하숙하는데, 이들은 출신도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이다. 경상도 삼천포와 마산, 전라도 순천과 여수, 충청도 괴산 등 이들은 모두 각자 지방의 사투리를 쓴다. 


매회 등장하는 신선한 사투리는 드라마가 가진 다양한 매력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대뽀 깐다’, ‘눈까리 노름에서 꼬란나’를 인상 깊게 들었다. 사투리와 함께 이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오면서 겪는 문화 충격을 드라마는 재밌게 묘사한다. 여기서 끝났다면, 서울을 고향으로 둔 시청자로부터는 공감을 못 받을 텐데, 칠봉이라는 존재로 지역별 균형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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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처음으로 접한 KFC 비스킷.

그 비스킷은 이 비스킷이 아니었다.

 

칠봉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서울이 낯선데, 이들은 서울에서 겪는 하루하루가 새롭다. 지하철 타는 법을 몰라 서울역에서 신촌 하숙집까지 가는 데 한나절이 걸린 삼천포의 사연이나 미팅에서 여대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KFC 비스킷을 40개씩 시키는 장면은 4회까지 내용 중 압권이었다. 이런 식으로 드라마는 지방에서 서울로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묘사해, 94학번이 아니라도 서울에서 문화 충격을 한 번이라도 받았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사연이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드라마에 빠질 수 없는 로맨스

 

지방 출신이 서울에서 겪는 일화는 발굴하면 많겠지만, 언젠가는 소재가 고갈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이 중국만큼 땅이 넓은 나라가 아닌지라 지방과 서울 간 차이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가 시청자에 호소하려면 추억 외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로맨스다. ‘응사’는 지방 출신의 다양한 인물이 겪는 코미디 요소와 여성 1명과 남자 5명이 만들어가는 로맨스라는 극적 요소가 공존한다. 물론 4회까지 내용에서 로맨스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갈수록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특히 친남매인 줄 알았던 쓰레기(정우)와 성나정(고아라)이 합법적으로 연인이 될 수 있는 관계로 밝혀지며 묘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 5명은 저마다 개성이 강한 인물이다. 집에서는 허점투성이나 학교에서는 천재로 불리는 의대생 쓰레기. 대학야구 최고 에이스 칠봉이(유연석)는 잘 생긴 외모와 튼실한 덩치 등 하드웨어가 강점이다. 신입생이라 믿기지 않는 노안의 소유자 삼천포(김성균), 순천 날라리 해태, 얌전한 샌님 이미지의 빙그레도 저마다 묘한 매력을 풍긴다. 


게다가 삼천포, 해태, 빙그레 모두 명문대생에 지방에서는 잘 나가는 집안의 자제다. 현실이라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 5명 모두 성나정이 누구를 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상적인 배우감이다. 등장 인물 모두가 부유한 집안의 자제라는 설정은 로맨스 전개 뿐만 아니라 극 전반의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드라마가 우울해지지 않고 경쾌할 수 있어서다.

 

소소한 감동은 보너스

 

시트콤에서 느낄 만한 재미와 다양한 인물 간에서 교차되는 사랑의 작대기. 여기에 ‘응사’는 감동이라는 필살기를 장착했다. 4회에서는 자식과 부모 간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2번 나왔다. 재혼하는 엄마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칠봉이가 삐삐로 엄마가 남긴 '사랑한다'는 소리를 듣는 장면. 그리고 해태가 엄마와 통화하면서 잊고 있었던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에 눈물 흘리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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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와 엄마가 통화하는 장면에서 함께 오열(?)했다는 시청자 사연이 속속 인터넷을 장식했다

 

이렇듯  ‘응사’는 재미와 로맨스 그리고 감동이라는 3가지 무기로 시청률 3%를 넘어서는 등 시청자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케이블 시청률 3%는 공중파 20%와 맞먹는 정도니 적지 않은 수치다. 다만 ‘응사’가 전작의 흥행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고비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 지방 출신 등장인물이 서울에서 겪는 황당한 사건은 회가 거듭할수록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삐삐, 농구대잔치 등 1994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얻을 소재도 적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엮어가는 로맨스와 감동을 어떤 장면에 배치하느냐가 드라마가 종영할 때까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할 듯하다.


* 쓰고보니 배우 정우 예찬으로 시작한 글인데 정작 드라마 속 정우를 다룬 내용이 없네요. 어쨌든 1년 동안 잠잠했던 ‘여의도 삼인회’를 다시 시작합니다.


[관련 기사]

- 황정음과 지성의 <비밀>

- <메디컬탑팀> 과연 드라마계의 탑팀이 될까

- <스캔들> 선과 악의 경계에서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 <상속자들>, 견디는 자가 이기는 게임

- <사랑해서 남주나>, 우리네 삶을 볶은 순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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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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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목

2013.11.03

음...나는 이미 늦었고...딸래미라도 정우같은 사람 만났으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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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ziner

2013.10.29

다 필요 없고, 정우 연기력이 짱.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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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spring6

2013.10.29

'서울이 고향이 아니면서...' 저는 이 드라마 보진 않지만- 뮤지컬 '빨래'를 생가나게 하는 구절이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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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