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목소리만으로 범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지난 10월 22일, 서울 왕십리, 영화 <공범>의 시사회가 열린 현장. 『공범들의 도시』 공저자인 표창원 전 교수가 자리를 함께했다.
201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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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공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10월 22일, 서울 왕십리, 영화 <공범>의 시사회가 열린 현장. 『공범들의 도시』 공저자인 표창원 전 교수가 자리를 함께했다. 표창원과 함께하는 영화 <공범> 시사회. 극중 정다운(손예진)은 아버지 정순만(김갑수)의 범죄를 의심하면서, 이전 경찰대 학생이 맞닥뜨렸던 표창원의 질문을 받는 상황에 처한다. 속살을 벗겨낼수록 합리적 의심은 점점 커져가고, 기자가 되겠다는 다은은 아버지 순만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표창원 교수가 영화에 얽힌 다양한 뒷이야기와 배경을 꺼내며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그놈 목소리>의 이윤상군 유괴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끝났다. 뉴스나 <그놈 목소리> 등을 통해 목소리가 공개됐으나 잡히지 않고 공소시효가 끝났다. 그런데 성문분석 결과, 90% 일치도가 나온 사람이 있었다. 그 용의자는 피해자 가족 중 한 쪽과 인척 관계에 있었고, 용의자와 함께 동거했던 여성이 그가 범인이라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 숨겨진 이야기인데, 본인은 끝까지 부인했으나, 정황 증거는 있었다. 결정적으로 발신지에서 전화를 걸었을 그 시간, 용의자가 경주를 다녀왔다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영수증을 제시하는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그런데 과연 톨게이트 영수증이 그 사람이 거기 존재했다는 100% 증거가 될까. 어떤 사람이 톨게이트 영수증을 꼬박 챙겨서 보관할까, 의심도 가지만 확실한 증거를 포착 못했다. 영화 <공범>은 또 다른 박초롱초롱빛나리 양 유괴사건도 포함하고 있다. 당시 범인은 만삭의 여성이었다. 협박전화를 남겼는데, 그 음성을 들은 고위 공무원 출신의 여성의 아버지가 많은 갈등과 고민을 했고, 유괴발생 시점에 딸의 이상행동을 의심한 뒤 경찰서에 갔다. 그리고 내 딸의 목소리가 맞고 의심이 간다고 해서 검거했다. 그런 몇 가지가 이 작품에 깃들어 있다.”
표창원에게 묻고 표창원이 답하다
목소리 분석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영화에서 성문분석 결과에 대해서도 좀 더 알고 싶고.
손가락의 지문이 현대 과학수사의 가장 확실한 신원수사 방식이다. 성문분석은 목소리가 억양, 높낮이, 사용음절, 길이 등에 있어서 각자의 특성이 독특해서 일치하는 음성이 없음을 활용한 것이다. 지문 분석은 물리적으로 동일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점이 있어서 동일한 사람이라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성문 분석은 퍼센트(%)로 한다. 100% 일치는 있을 수 없다. 동일한 사람이라도 조금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그놈목소리>의 실재 범인의 경우, 92%가 나왔고, 민간 대학에서는 96%가 일치했다. 문제는 ‘몇 퍼센트부터 법정의 증거능력으로 활용되느냐’, ‘다른 증거 없이도 그것만으로 증거가 될 수 있느냐’인데, 그게 없다.
당시에는 92%가 일치했음에도 기소를 못했다. 추가 증거가 필요했다. 범행 도구나 시신에 남은 범인 흔적이나 유전자라든지,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그 사건도 무수한 수사에도 기소를 못했다. <공범>의 사건 역시 마지막 순간에 급박하게 성문분석에서 불일치 결과가 나왔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정확하게는 100%가 아니라는 얘기다. 공소시효 만료 시점에서 국과수 감정관의 감정평가 소견서에 뭐라고 적었을까. 100% 동일인이라는 말은 못 쓰는 거지. (사건 이후) 15년이 지난 상태고, 92~93% 정도 나왔겠지만, 소견서에는 ‘동일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15년 시간차와 목소리 상황에서의 차이 등을 봤을 때 반드시 동일인이라고 볼 수 없음’이라고 나왔을 거다. 목소리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영화 상 설정이라고 봐야 하나? 목소리만으로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말했는데.
천기누설이지만(웃음), 영화상 설정이라고 봐야 한다. 유사 사건이 영국에서 있었다. 기찻길 옆 연쇄강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이 음성메시지를 남긴 게 있었다. 뉴스에서 반복해서 이를 틀어줬는데, 범인의 전 동거녀가 신고를 한다. 그것만 가지고는 증거가 안 됐다는 것이 수사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됐다. 경찰은 용의자에 대해 장시간 미행, 잠복, 행적수사는 물론 압수수색 등을 했다. 마침내 피해자의 소지품을 발견하고 기소하고 검거를 한다. 단서는 되지만 목소리만 갖고는 확정할 수가 없다. 영화상 설정은 그렇다고 믿고 보지만, 알고 보면 엉터리가 되는 거지(웃음).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분노하게 된다. 공소시효가 존재하는 이유가 뭔가? 또 이유가 있겠지만 왜 하필 15년 인가?
수준 높은 질문이다. 우리 사회의 숙제다. 법적 안정성 때문에 공소시효가 도입됐다. 만약 조상의 한을 풀기 위해 이웃집에 살던, 이미 돌아가신 분을 고소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공소시효가 없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토지 관련 문제라면 더 커지겠지. 300년 전 압구정 땅이 우리 집안 것인데, 강탈당했다, 이런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거지. 공소시효가 없으면 무수하게 많은 오래전 사건 때문에 후손들의 삶, 재산권 등이 뒤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효를 둬야만 우리 사회가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가 증거의 가치와 증명력이다. 오래전 사건의 용의자가 나타난들 이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가 문제다. 그 당시 사건에서 변치 않는 증거물이 있다면 모를까, 30년 뒤에 저 사람이 의심 되면 어쩔 것이냐는 거지. 증거가치의 시간에 따른 훼손 정도를 따져서 공소시효를 둔다. 세 번째는 말이 좀 안 되지만, 범죄를 저지른 자도 상당기간이 흐르면 조마조마 쫓기는 심정이라서 교도소 있는 것만큼의 고통을 치르니 죗값을 치른다고 보자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한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여성이나 아이 대상의 반인륜적 범죄는 법적 안정성을 변명거리로 일정시간이 지났다고 고소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극중 손예진이 말한다. 현장 증거가 없어도 현장에서 담배꽁초, 머리카락 등이 있으면 DNA 검사를 할 수 있으니 시간이 지났다고 증거가 소멸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또 쫓기는 심정 때문에 죗값을 치른다는 것에서도, 그런 감정을 가지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있다.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범죄자도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을 받는다는 가정도 반드시 맞는 것만은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 공소시효를 유지하되 살인, 유괴 등의 범죄에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있다.
공소시효 15년은 실은 아무 이유가 없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 치하에 있을 때, 일본의 공소시효가 15년이었다. 일본은 그것을 독일에서 들여왔고. 독일은 18~19세기에 공소시효를 논의하면서 어림짐작으로 15년을 잡았다.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공소시효의 가장 큰 문제는 식민 형법의 원소유주인 일본은 수년 전 살인죄 공소시효를 25년으로 상향했다는 점이었다. 한국은 그걸 모르다가 안 지도 오래되지 않는데, 2007년 12월부터 살인 사건에 대해선 공소시효를 25년으로 높였다.
아버지의 범죄에 이용당하면 공범이 되는지 궁금하고, 범죄 심리를 예측하는 게 프로파일러라고 알고 있는데, 그걸 통해서 검거한 사건이 있나?
법적으로는 공범이 될 수 없다. 범행 당시 형사 미성년자로서 범행에 사용될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쓴 것이라 공범죄 성립이 안 된다. 범인 은닉죄의 문제가 될 수는 있는데, 주관적인 진술 상 의심을 가질 수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찢어버린 자신의 필적이 확인되지 않는 한 범인 은닉은 입증되지 못한다. 가족, 친족에게는 범인은닉죄가 성립 안 된다. 그래서 영화 제목의 ‘공범’은 형사법적인 공범이 아니고 정서나 문화상 양심상의 공범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프로파일러는 직접 범인을 검거하는 직업이 아니다. 전 세계에 그런 예는 없다. 프로파일링은 범죄가 일어난 초기에 용의자에 대한 입증 자료가 없을 때 피의자 분석, 범행 동기 등을 분석해 ‘어떤 사람이 이런 일을 했을까’ 추정하는 것이다. 강력계 형사가 그 프로파일링을 갖고 용의선상을 줄이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누가 더 프로파일링이 맞는가 보는 정도다. 내가 했던 프로파일링이 가장 근접하게 도움이 된 것이 강호순 사건이었다.
표창원 교수가 영화 속 손예진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돌직구 질문이네(웃음). 경찰대 교관 당시 학생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이유가 있었다. 나 스스로는 그런 것에 대한 마음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찰은 사적인 관계 때문에 공적인 범죄수사에 지장을 줘선 안 된다. 부모나 형제가 범죄 용의자일 경우 수사를 하고 증거가 확보되면 체포해서 범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결정을 했었다. 그 뒤에 사식을 넣고 면회하겠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그래서 당시 경찰대 학생에게 그것을 물어봤다.
신생아를 유괴한 그런 사건이 있나? 그렇게 유괴해서 키울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양육 목적의 유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목적으로 한 유괴를 많이 알고 있으나 자식이 없거나 순간적으로 아이를 보고 충동적으로 유괴한 경우도 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그런 경우가 많다. 상상임신이나 유산을 했을 때 산부인과 병원 등에서 유괴하는 사건이 꽤 많이 발생한다. 가장 유명했던 사건은 다섯 살 남자아이가 실종됐는데, TV에서 보도도 됐었다. 알고 보니 아이가 실종된 곳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서 몇 달 동안 아이가 살고 있었다. 주변 신고를 받고 경찰이 검거했는데, 60세 노부부가 그랬던 거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순간적인 충동으로 아이를 데려가 정성껏 키웠다. 그렇지만 피해부모 입장에서는 돈을 노린 유괴와 다름없는 거지.
‘무죄추정의 원칙’은 언제 적용이 되는 것인가?
유죄추정의 원칙은 없다. 형사법상 대원칙은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 모든 사람은 무죄로 추정한다. 왜냐. 의심스럽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자는 아니잖나. 그래서 방어권을 보장해준다. 검찰, 경찰은 국가의 힘과 권력인데, 그것들이 한 사람의 약한 개인에게 ‘우린 널 범죄자로 생각하니까 네가 범인이 아닌 것을 입증하라’는 것이 말이 안 되잖나. 다만 요즘 국가정보원 사건에서는 다르게 봐야 한다. 국정원 수사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깨진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의심되는 혐의에 대해 적법한 수사와 절차를 다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지. 그건 무죄추정의 원칙과는 다르다. 적법 절차에 따른 수사는 진행돼야 한다.
공소시효관련 영화를 보면 궁금한 것이 있다.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시점의 기준이 법적으로 애매하지 않고 구체적이 돼야 할 것 같다. 100% 범인이라고 확정은 안 됐으나 공소시효를 넘겨도 확정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100% 범인임을 확정해야 하는지.
좋은 질문이다. 공소시효는 공소, 즉 ‘공적인 기소’를 제기할 수 있는 시간적인 데드라인이다. 체포나 증거 확보와는 상관없이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 검찰이 법원에 피의자에 대해 기소를 하는 시점이다. 영화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조금은 법적으로 볼 때 문제가 있는 설정을 했다. 국과수에서 성문분석 팩스가 오느냐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증거가 확보되지 않아도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고, 혐의를 가질만한 정도만 돼도, 법원에 공소를 제기할 정도만 돼도 기소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사건이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 2명의 살인 피의자가 있는데, 그런데 검찰이 이른바 바보 같은 기소를 하는 바람에, 한 명을 범인으로 기소하고, 다른 한 명은 범인 은닉으로 기소했는데,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났다. 새로운 증거는 없는 상태였다. 1명에 대해 한국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전에 기소를 했고, 그 용의자는 미국에서 다른 사건으로 잡혔다. 범죄인 인도요청을 했는데, 그 용의자가 미국에서 인신보호 청구 소송을 냈다. 한국엔 사형제도 있고, 민족적 정서 강해서 나를 보호해달라고 청구를 했다. 거기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내가 볼 때는 올 것 같은데, 공소시효 만료 전에 기소를 해 놓은 상태라 괜찮긴 하나, 국과수의 확실한 증거로 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소한 뒤 증거를 확보하겠다고 해놓고선 검찰이 내놓은 게 DNA나 지문 등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 정황 증거라는 거다. 공소시효 만료 전 뭘 해야 하느냐. 일단 용의자부터 특정돼야 한다. 용의자가 나오는 순간 기소하면 된다. 무죄가 되면 그 용의자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수 있다. 무리한 기소는 안 되겠지만, 공소시효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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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범죄의 인큐베이팅에서 거대 국가 범죄에 가담한 경찰까지, 친필 편지에 담긴 신창원의 안타까운 고백에서 연쇄살인을 복제하는 사회의 어두운 고리까지, 백트래킹 프로파일링에서 과학수사를 파괴한 사법 시스템까지, 정의로운 경찰관의 고독한 딜레마에서 국가에게 버림받은 원혼들의 복수까지. 범죄로 본 병든 우리 사회의 진단서이며 과학수사의 모든 것이 담긴 한국 범죄학의 바이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는 이웃들에게 던지는 표창원, 지승호 두 남자의 승부구! “혹시, 당신도 공범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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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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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