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세 먼지가 장난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이 죽고 죽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백골이 진토되어 미세먼지가 많아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주차장에 가면 깜짝 놀란다. 더러움에 굉장히 관대한 편이나, 누런 반점을 온몸에 두른 차를 그저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마침 주말이고 해서 차를 닦기로 했다. 몸을 씻을 때도 냄새나는 주요 부위만 씻는 필자이기에, 차도 보이는 부분만 대충 닦는다. 그럼에도 시간은 훌쩍 1시간이 흘러, 이제는 집에 들어가 낮잠이나 자야지, 하던 찰나.
“야이 XXX아.”
평온하던 일요일 오후의 주차장을 깨운 일갈. 그것은 욕이었다. 인간의 한 성(性)을 숫자로 표현한 형태의 그런 욕.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니 차 안에서 연인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다투고 있었다. 아니, 다툰다기보다는 남자가 일방적으로 욕설을 내뱉는 상황이었다. 등 뒤로 땀이 흘렀으나 태연하게 차를 닦는 척했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필자도 언어폭력이나 물리적 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을 굉장히 두려워한다. 등 뒤의 땀이 서서히 마르면서 한기가 올 때까지도 남자의 욕은 끊이지 않았다. 그때 중년의 한 남성이 차 앞으로 지나가며 그 남자를 쳐다봤다.
“뭘 봐, XXX야. 그냥 가던 길 가.”
말릴까 말까를 고민하는 건 사치였다. 이번에 나온 욕은 특정 동물의 어린 시절을 지칭한 단어였다. 지금 저 둘 사이에 개입했다가는 욕 듣고 쫓겨날 게 뻔했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다 정말 위급한 사태로 번지면 신고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남자가 담배를 물면서 상황은 좀 진정되는 듯했다. 물론 그 뒤로도 욕은 간헐적으로 들렸으나 30여 분 뒤, 차는 서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좀 더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본격적으로 욕설을 뱉을 건지 화해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필자는 후자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떠나는 차를 쳐다봤다.
폭력, 도박, 술버릇을 확인하는 순간 즉시 남자를 떠날 것
<롤러코스터 - 남녀 탐구 생활>을 만든 김성덕 PD는 『네 남자친구가 제일 문제다』에서 이렇게 썼다.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이든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든 폭력, 도박, 술버릇을 확인하는 순간 무조건 헤어지라고. 이 3가지는 ‘재앙’이며 쉽게 고쳐질 성격이 아니다. 폭력에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언어폭력도 해당함은 물론이다.
남자가 홧김에 욕을 할 만한 이전의 상황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는 반박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려가 되는 건, 사회 전반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최근 한 대학에 ‘김치녀’에 관한 자보가 붙었다. ‘김치녀’란 한국 여성을 비난할 때 쓰는 말로 다양한 맥락에서 여성 혐오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그 대학에 다니는 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철도노조 파업으로부터 촉발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보다 시즌 투라고 할 만한 ‘김치녀’ 대자보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성 문제를 민영화보다 지엽적이라고 여겨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정말 여성의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여성 혐오 정서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여성 혐오 정서가 존재하고, 이는 마초 성향의 회원이 모인 특정 커뮤니티가 아니라 포털 댓글이나 SNS 게시물에서도 흔히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얼마나 여성 혐오로부터 자유로울까
사실, 여성 혐오는 한국사회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흔하다. 일본의 사회학자인 우에노 치즈코도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는데,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남자가 가지는 자원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 것부터 차례로 늘어놓으면, 폭력, 권력, 재력의 순이 될 것이다. 권력과 재력은 지위와 경제력으로 바꿔 부를 수 있다. (125쪽)
이후 논의에서 그녀는 가부장제에서의 욕망과 폭력 문제를 다루는데,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위의 문장이다. 일부 사회, 예컨대 이슬람 사회에서는 상황이 다르나 적어도 한국에서는 여성의 지위와 경제력이 예전보다 많이 상승했다. 국가고시나 명문대 수석을 여성이 차지했다는 소식은 이제 뉴스 축에도 못 끼며,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뤄진다. 여기서 당당히(?) 고백하자면, 필자도 부인보다 권력과 재력이 떨어진다.
역설적이게도 이럴수록 남자가 기댈 자원은 폭력일 가능성이 크다. 운동경기 대부분 종목에서 남자의 기록이 여성을 압도한다. 어릴 때부터 운동에 전념한 선수들은 그나마 신체를 단련할 기회가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성이라는 가치는 근육과 비례하지 않기에 물리적인 능력은 여성이 남자에 미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뉴스에서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불상사로 이어진 사건이 심상치 않게 등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가 더 힘이 세기 때문.
주차장에서 욕설로 자신의 여자친구를 몰아친 그에게도 그런 자신감이 있었을 테다. 하지만 힘이 세다고 언어폭력을 행사도 된다는 정당성은 생기지 않는다. 그가 그렇게 용감하게 욕을 뱉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성 혐오라는 정서가 있었을 테고, 인정하기는 싫겠지만 그런 정서는 ‘김치녀, 된장녀’라는 단어가 보여주듯 우리 사회에 꽤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미세먼지에서 시작하여 세차로 이어지고, 욕설을 뱉는 남자로부터 김치녀 대자보와 여성혐오로 끝난 이글은 필자가 보기에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가득하고 맥락 없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쓴 이유는, 아무래도 곧 태어날 딸 덕택이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물리적, 언어폭력이 없는 좀 더 고요한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간디처럼 말랐어도 상관 없다. 폭력적이지 않은 남자친구를 만났으면 더 소원이 없겠다.
여러분, 아무리 화가 나도 욕하지 말고 성내지 맙시다. 대화로 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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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껌정드레스
2014.02.03
저는 요즘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 현상을 보면, 1차 대전 이후 나치 독일의 유대인과 집시 혐오가 떠올라요. 가부장제의 문제, 강자의 약자를 대하는 자세의 문제에 더하여 현 한국 사회의 근본적 갈등을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돌려 무마하는 기능이 더 있다고 생각해요.
cregoal09
2014.02.01
시간의빛
2014.01.28
문제의 원인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결책을 모색하게 도와주는 책 소개와 기사라서 특히 더 좋았습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이런 상황에 적극적인 모색과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 같아서 채널의 이 기사는 특히 더 좋네요. 가부장제의 욕망과 폭력 문제는 잘 짚어주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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