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책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는 시인 신현림이 여전히 방황하는 세상의 모든 어른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90편을 모은 책이다. 오랫동안 신현림의 시를 즐겨 낭송했던 임주하 편집자의 손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201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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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에는 첫 번째 독자가 있습니다. ‘책의 또 다른 작가’로 불리는 편집자가 바로 그 행운의 주인공입니다. 저자의 좋은 글을 발견하고 엮어 독자에게 소개하는 편집자들을 <채널예스>가 만나봅니다. 저자와의 특별한 인연, 책이 엮이기까지의 후일담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격주 화요일, ‘내가 만든 책’에서 확인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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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작가에게 시는 ‘뜨거운 갈색 커피’와 같은 존재다. 멀고 오래된 추억으로 이끌고, 사랑과 사랑을 그립게 하는 커피 잔의 따스함. 그리고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 같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를 읽으면 내 안에 살아 있는 소녀를 느낀다”고 말하는 신현림. 그가 세상의 모든 어른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90편을 엮은 책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를 펴냈다. 지난해 2월부터 기획해 올해 1월, 독자의 손에 전달된 책이다.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가 탄생되기까지는 엮은 이 신현림과 편집자 임주하 씨의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서점에서 ‘미션 임파서블’을 찍다
북클라우드 임주하 편집자는 전직 잡지 기자였다. 그가 만들던 잡지에 오랫동안 시를 연재했던 신현림 시인. 임주하 씨는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신현림의 시를 처음으로 읽는 영광을 누렸다. 그 후 전직을 한 뒤에도 신현림 작가의 작품을 줄곧 찾아 읽었고, 새 책을 기획한 틈을 엿보았다.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는 세상에 많고 많은 수많은 시들 중에서, 꼭 전하고 싶은 보석 같은 시를 고르는 일이 주된 작업이었어요. 신현림 작가님과 저는 항상 같이 만나서 이 작업을 함께했는데요. 시집이란 시집은 다 사서 보고, 빌려 보고 훔쳐보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주머니 사정상 모든 시집을 구입할 수 없었던 저희는 꽤 자주 이 훔쳐보는 작업을 했는데요. 바로 대형서점 시 코너에 가서 몰래 몰래 시를 읽는 겁니다. 읽기만 했느냐? 아닙니다(웃음). 지나가는 서점 직원들 눈치 보며 좋은 시를 카메라로 찍기도 하고, 펜을 들고 종이에 휘갈겨 쓰기도 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이 따로 없었지요.”
두 사람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눈을 피해 만화책을 읽던 스릴을 서점에서 즐겼다. 때론 소녀들처럼 키득거리며, 때론 작전에 투입된 비밀 요원들처럼 시집을 몰래 훔쳐보며 사랑스럽고 멋진 시들을 만났다.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에는 기원전 600년경부터 지금 갓 태어난 따끈따끈한 시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색색의 보석 같은 시가 잔뜩 실려 있다. 임주하 편집자가 말하는 이 책의 매력은 “독자의 마음 상태나, 읽는 시간, 읽은 횟수, 누구에게 선물 받았느냐에 따라 시가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다가온다”는 것이다. 한국 시를 비롯해 미국, 영국, 일본에서부터 베네수엘라, 스페인, 이란,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의 시가 실렸을 뿐만 아니라 깊은 철학이 깃든 열린 결말의 시 덕분에 여러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임주하 편집자가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를 편집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다양한 소재의 시를 조화롭게 배열하는 일이었다. 시 하나에서 말하는 소재, 주제가 여러 개였기 때문에 하나의 주제로 나누기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모든 시를 읽고, 또 읽는 일이었다. 같은 소재를 쌍둥이처럼 붙여두거나, 뭔가 다르지만 묘한 대구를 이루는 시를 함께 싣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배열 작업을 반복했다.
시인 신현림과 편집자 임주하(오른쪽) |
“작가님이 함께 고민하고 아이디어도 많이 주셔서, 편집이 훨씬 수월했어요. 신현림 작가님을 처음 만날 때가 기억나요. 알록달록 화려한 색의 모자, 살구빛 입술, 핫핑크 자전거, 그리고 꾸밈없이 씩씩하고 천진한 미소. 어라? 순간 제 눈을 의심했어요. 제 머릿속 생각은 오로지 하나였죠. ‘예술가다!’ 개성이 넘치는 패션 센스와 그걸 소화해내는 작가님. 시인이기에 앞서 그냥 타고난 예술가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지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루한 세상에 던지는 불타는 구두처럼 열정적인 사람’. 더 쉽게 표현하자면 지금까지 스스로 써 온 시 작품들과 꼭 닮아 있는 시인이셨어요. 여기서 반전 하나, 헤어질 땐 수줍게 저기 길에서 파는 양말을 사왔다며 따뜻한 선물도 챙겨주셨습니다. 개성 넘치는 소녀 같기도, 포근함을 겸비한 이웃집 언니 같기도 했어요(웃음).”
신현림 작가와 임주하 편집자는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가 완성된 후, 시 게재를 허락해준 국내시인들에게 모두 손편지를 썼다. 신현림 작가는 양말 선물도 보탰다. 손편지를 쓰던 날, 임주하 편집자는 더없이 뿌듯한 마음을 느꼈다. 촌스럽지만 책이 나온 기념으로 신현림 작가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책 한 권이 탄생했을 때 그 뿌듯함을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편집자들은 흔히 이렇게 말해요. ‘아이를 낳은 것과 같은 고통과 기쁨’이라고. 편집자의 업무는 고되고 힘든 순간이 많죠. 책 마감일 때는 자주 야근하고, 주말도 반납하고 출근할 때도 많거든요. 하지만 완성된 책을 마주하는 순간, ‘아이코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새끼, 내 책’이 되고 말아요(웃음). 영화관계자들이 자신이 작업한 영화의 상영이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을 보며 감격에 차듯, 책 감독인 저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책의 판권을 보며 뿌듯함을 느낍니다.”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에 실린 90편의 시 중에 임주하 편집자의 마음에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시는 에드너 St. 빈센트 밀레이의 시 「이게 다 당신 거예요!」.
활짝 핀 손에 담긴 사랑, 그것밖에 없어요. 보석 장식이 없고, 숨기지도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사랑, 누군가 모자 가득 앵초 풀꽃을 담아 당신에게 불쑥 내밀듯이, 아니면 치마 가득 사과를 담아 주듯이, 나는 당신에게 그런 사랑을 드려요. 아이처럼 외치면서요. “내가 무얼 갖고 있나 좀 보세요! 이게 다 당신 거예요!” -에드너 St. 빈센트 밀레이의 시 「이게 다 당신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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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하 편집자가 추천한 또 다른 책 잊고 살았던 메마른 감성에 촉촉한 물을 뿌려 주는 에세이집이에요.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처럼 마음을 전하며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 추천하고 싶어요. 책 본문에 실린 ‘선물’이라는 글에는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더 설레는 이유는 단 하나에요. ‘오늘 밤 내 머리맡에 놓일 선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이 새벽의 숨바꼭질이 있어 크리스마스이브가 행복하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반복되는 일상을 크리스마스이브처럼 만들어 주는 특별한 설렘을 닮은 책, 읽어 보고 싶지 않으세요? ‘존 버거’를 아시나요? 우리 시대 대표적 지성 존 버거는 신현림 작가님 같은 ‘전방위 작가’입니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 미술평론가, 사진이론가, 사회비평가, 철학자, 화가입니다. 이렇게 들으면 어려운 글을 쓸 것 같지만, 그의 글은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젤리 속에 아주 묵직한 통찰이 스며 있어요. 수많은 그의 명작 중에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은 열화당 출판사에서 나온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이라는 소설입니다. 열화당에서는 ‘망자들이 건네는 가냘픈 희망의 메시지’라고 책을 소개하지만, 절대 가냘프지 않은 단단한 메시지로 우리 삶 구석구석을 어루만져 주는 이야기가 가득해요. 게다가 그가 쓴 문장은 읽는 것만으로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를 여러 번 독파한 것처럼 필력도 쑥쑥 성장해요. 읽는 즐거움과 깨닫는 즐거움, 그리고 훔치고 싶은 문장을 한 번 느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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