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교수와 함께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시사회
지난 2월 22일, 서울 종로구 시네코드선재에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시사회가 열렸다. 매즈 미켈슨 주연의 이 영화는 말 상인인 미하엘 콜하스가 권력의 부당한 횡포에 명예와 가족을 잃고 복수에 나선 남자의 외로운 투쟁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강렬하다. 국가와 사법체계의 문제점, 개인의 투쟁이 사회와 어떻게 갈등하는지 등을 보여준다.
201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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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뒤 진중권 교수가 무대로 올랐다. 영화의 원작인 『미하엘 콜하스』 와 역사적 배경 등에 대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실화에서 비롯된 이야기
“『미하엘 콜하스』 책을 읽었다. 중편소설인데, 몰입도가 아주 강하다. 바탕은 실화다. 역사적으로 ‘한스 콜하제’라는 사람이 있었다. 1500년경 태어나 1540년에 처형당했다. 말 상인이자 꿀, 베이컨, 식료품도 팔고 상인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말을 뺐기는 일을 겪고 항의했으나 되찾지 못했다. 내 권리를 되찾겠다며 할 수 있는 방법, 사법적 조치를 다 취했다. 법원뿐 아니라 작센왕국, 브란덴부르크에서도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아내까지 죽는다. 합법적인 방법을 다 동원했으나 실패했다. 사법적 행동을 통해서 정의를 구할 수 없음을 알고 행동을 취한다.”
한스 콜하제, 모든 사법적 시도가 실패한 뒤 1534년 격문을 썼단다. 세상에 대해 복수를 하겠다는 선언을 담았다. 그는 이어 방화와 약탈 등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시 상황은 불안정했다. 십 수 년 전부터 농민 전쟁이 있었고, 독일의 봉건주의가 무너지는 시기였다. 지배계급은 체제 유지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콜하제가 반란을 일으켰을 당시 고향에선 그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시절은 불안했다.
진 교수는 영화에도 등장한 마틴 루터의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 속 루터는 콜하스의 봉기를 제어하고자 한다. 교회 개혁의 대표주자가 마틴 루터는 콜하제를 비난하는 격문을 쓴다. 소설 속에선 비밀리에 콜하스를 찾아가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루터는 세상의 권력, 왕에 복종하라고 콜하제를 설득한다. 루터는 콜하제와 권력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한다. 루터는 근대적이고 개혁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지만, 민중이 일어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이중적인 면모가 있다고 진 교수는 설명했다. 루터의 한계였다는 것. 루터는 권력이 농민들의 봉기를 진압하는데도 찬성을 했다고 덧붙였다.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 진 교수는 소설이 복잡한 플롯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주는 콜하스를 용서하려 했으나, 콜하스의 옛 동료가 사고를 친다. 그것은 콜하스와 상관없음에도 말로만 무기를 내려놓은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콜하스는 위험에 처한다. 그런 한편으로 정의는 이뤄진다. 콜하스의 조건은 간단했으나 간단하지 않았다. 남작이 자신의 말 2마리를 본래 상태로 돌려놓을 것을 요구했다. 문제는 귀족이 말을 돌보는 건 굉장히 모욕적인 일이었다. 문제가 복잡해진 이유는 그것이었다.
혁명 아닌 개혁을 바랐던 작가
“결국 콜하스는 사형을 당하는데, 역사적으로 콜하제는 베를린에서 공개 처형을 당했다. 콜하제가 죽기 직전 세 시간동안 연설을 했는데, 청중들이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다더라. 그리고선 바퀴에 온몸을 짓이겨 처형을 당한다. 소설을 보면 아이가 둘 있는데, 역사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잘 컸다고 하더라. 이런 정보가 나와 있는 콜하제 협회가 있고, 이름을 딴 도시도 있다. 콜하제는 말하자면 로빈훗과 같은 존재였다. 270년 정도 지난 후 작가가 소설을 쓴다. 1808년에 단편으로 썼다가 1810년 산문집을 내면서 이게 실렸다. 작가가 소설을 쓸 때도 융커(지주계급)가 존재했었다. 그 세력은 20세기까지도 존재했다. 클라이스트는 프랑스 대혁명을 보고 독일도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혁명의 방식은 아니고 개혁이어야 한다고 봤다.”
진중권 교수에 의하면, 클라이스트는 농민계급이 융커계급에게 착취당하는 상황에선 국민대통합이 불가하다고 봤다. 국가 통합을 위해서 사법 개혁과 융커가 지배하는 봉건적인 제도의 혁파가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이 소설이 탄생했다. 역사적 소재인 한스 콜하제가 그것을 담기에 제격이었던 것.
“클라이스트는 애국주의자였다. 독일어를 쓰는 민족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수주의적 느낌이 드는 시를 쓰기도 했다. 클라이스트는 사람들과 잘 사귀지도 못하고 문제 많은 개인이었던 것 같다. 누나들에게 소설이나 쓰는 폐인 취급도 당하고. 결국 작가는 모르는 여자와 일종의 동반 자살을 선택한다. 당시 자살은 신에 대한 범죄였다. 그래서 가문에서 제명당하다시피 하고, 죽은 지 100년이 지난 1911년 가문에서 그를 다시 인정해줬다.”
진중권 교수는 소설의 콜하스, 영화의 콜하스, 역사적 콜하제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낭만주의자인 클라이스트의 영향으로 소설 속 콜하스는 낭만주의자로 나온다는 것. 즉 소설 속 콜하스가 작가 자신이었다. 진 교수는 콜하스가 나치에게도 주목받았던 사실을 언급했다. 클라이스트가 그린 콜하스라는 남성적인 영웅상이 나치의 취향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나치는 클라이스트를 자신들의 아이콘인양 추켜세웠다. 콜하스가 사회정의를 세우는 인물로 비춰졌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불만을 폭력적으로 표출한 것에 불과했다는 시선도 있었다. 부띠 부르주아적 영웅주의에 빠진 테러리스트로서의 콜하스.
“클라이스트의 낭만적인 영웅으로서의 콜하스가 있고, 공산주의자가 본 콜하스가 있으며, 민중 속의 콜하스가 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데, 미화돼 있지도 과장돼 있지도 않다. 이웃집 아저씨, 친근한 로빈훗 정도의 뉘앙스가 있다. 인물 해석에 있어서 이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원작을 읽어보면 영화와 다른 부분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연법과 실정법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악법도 법이니 지키라는 실정법이 있는 한편, 법은 인간이 아닌 자연법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상도 있다. 이 둘이 부딪히는데, 영화에서는 법정 장면이 없으나 책에서는 당시 사법부의 논증 등이 자세하게 나온다.”
진중권 교수는 덧붙여 실존인물인 콜하제가 살았던 1500년경은 근대 사법이 탄생하는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신학적인 신정재판이 앞선 시기에 있었다면, 16세기 들어 원시적인 사법시스템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법정은 귀족 세력에 의해 자유롭진 못했기에 그것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기도 하다. 사법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했는데도, 정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스스로 정의를 집행할 권리가 있는지 화두로 던진다는 것. 근대 사법은 개인의 복수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가 대신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에 영화에서는 근대 사법 초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식인의 사회참여는 의무인지 선택인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지식인이라는 말, 사실은 낡았다. 계몽의 산물이다. 계몽주의 운동이 일어났을 때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민중이었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는 통치의 주체와 대상이 일치한다. 권력을 행사할 줄 알려면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계몽운동이었다. 그때의 지식인상은 민중을 대신해서 싸우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지식인은 리영희 선생이 아닐까 싶다. 지식인이 아닌 일반 민중, 시민에게도 두 개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적인 생활을 할 권리, 공적인 정치에 참여할 권리. 지식인은 지금 직업의 이름이다.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책 쓰는 사람. 그러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참여를 하는 거지.
영화를 보면 콜하스는 영웅적이라기보다 죽을 때 후회를 많이 하는 것 같더라. 영화에서 콜하스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는 소설의 현대적 해석일 것이다. 처형 분위기를 놓고 보면 지금과 당시는 굉장히 달랐다. 지금은 사형 집행이 없는데, 당시의 사형 집행을 보면 지금 감각에선 황당하다. 사형하는 장면은 엔터테인먼트였다. 도시락을 싸갖고 와서 보는. 재밌는 사형집행이 있다며 광고도 하는, 축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죄를 지은 사람이 뉘우쳤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찍소리 않고 참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거지. 감동의 드라마처럼 연출되기도 하고. 국가나 교회에 반역한 사람도 있는데, 민중들도 통쾌함을 느꼈다. 민중이 흥분해서 사형집행자를 때리거나 사형수를 풀어주기도 했었다. 오늘날 감성에 맞게 감독이 마지막 장면을 그렇게 선택한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콜하스의 눈빛이 남아 있다. 1540년 즈음이면 우리로 보면 조선시대인데, 전근대적이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보면, 500년 전보다 더욱 민주적이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영원한 문제지. 사법은 정의로워지는 진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는 사실 신적 개념이다. 인간이 만든 사법제도가 신적 개념에 근접할 수 있을까? 사법의 역사를 보면 재미있다. 인간주의화 되는 경우도 많다. 시민들의 권리도 서구의 많은 나라는 보장돼 있다.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나라는 개인의 권리가 많이 보장돼 있다. 중국도 스타디움에서 공개처형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도 내란음모죄를 때린다. 영원한 정의는 없다고 본다.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콜하스처럼 한국에도 민중들이 정당하게 일어난 경우도 많았다. 어쨌든 정의는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하게 이뤄질 수 없고, 노력을 통해 정의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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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에서 비롯된 이야기
한스 콜하제, 모든 사법적 시도가 실패한 뒤 1534년 격문을 썼단다. 세상에 대해 복수를 하겠다는 선언을 담았다. 그는 이어 방화와 약탈 등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당시 상황은 불안정했다. 십 수 년 전부터 농민 전쟁이 있었고, 독일의 봉건주의가 무너지는 시기였다. 지배계급은 체제 유지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콜하제가 반란을 일으켰을 당시 고향에선 그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시절은 불안했다.
진 교수는 영화에도 등장한 마틴 루터의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 속 루터는 콜하스의 봉기를 제어하고자 한다. 교회 개혁의 대표주자가 마틴 루터는 콜하제를 비난하는 격문을 쓴다. 소설 속에선 비밀리에 콜하스를 찾아가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루터는 세상의 권력, 왕에 복종하라고 콜하제를 설득한다. 루터는 콜하제와 권력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한다. 루터는 근대적이고 개혁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지만, 민중이 일어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이중적인 면모가 있다고 진 교수는 설명했다. 루터의 한계였다는 것. 루터는 권력이 농민들의 봉기를 진압하는데도 찬성을 했다고 덧붙였다.
“소설 중반에는 권력계급을 대변하는 루터가 개입한다. 그는 콜하스를 설득하여 기존 질서로 다시 편입시키려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문제점이 폭로된다.… 루터와 콜하스의 만남에서는 그리스도교의 권력옹호가 비판된다.” (p.380) | ||
“콜하스는 봉변을 당하기는 했지만 세상일이란 알 수 없다는, 몸에 밴 올바른 감각을 간직하고 있었다.… 자기가 당한 봉욕을 배상받고 자신 같은 백성들이 앞으로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의무라는 느낌이었다.”(p.18) | ||
혁명 아닌 개혁을 바랐던 작가
“결국 콜하스는 사형을 당하는데, 역사적으로 콜하제는 베를린에서 공개 처형을 당했다. 콜하제가 죽기 직전 세 시간동안 연설을 했는데, 청중들이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다더라. 그리고선 바퀴에 온몸을 짓이겨 처형을 당한다. 소설을 보면 아이가 둘 있는데, 역사적으로 안전한 곳에서 잘 컸다고 하더라. 이런 정보가 나와 있는 콜하제 협회가 있고, 이름을 딴 도시도 있다. 콜하제는 말하자면 로빈훗과 같은 존재였다. 270년 정도 지난 후 작가가 소설을 쓴다. 1808년에 단편으로 썼다가 1810년 산문집을 내면서 이게 실렸다. 작가가 소설을 쓸 때도 융커(지주계급)가 존재했었다. 그 세력은 20세기까지도 존재했다. 클라이스트는 프랑스 대혁명을 보고 독일도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혁명의 방식은 아니고 개혁이어야 한다고 봤다.”
“이 소설에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여진이 울리고 있다. 당시 프로이센에서는 혁명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클라이스트도 ‘혁명 대신 개혁’에 동의했지만, 개혁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거의 장편소설에 육박하는 분량의 「미하엘 콜하스」 에서 이러한 시대적 현안을 다루고 있다.”(p.378) | ||
“클라이스트는 애국주의자였다. 독일어를 쓰는 민족이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수주의적 느낌이 드는 시를 쓰기도 했다. 클라이스트는 사람들과 잘 사귀지도 못하고 문제 많은 개인이었던 것 같다. 누나들에게 소설이나 쓰는 폐인 취급도 당하고. 결국 작가는 모르는 여자와 일종의 동반 자살을 선택한다. 당시 자살은 신에 대한 범죄였다. 그래서 가문에서 제명당하다시피 하고, 죽은 지 100년이 지난 1911년 가문에서 그를 다시 인정해줬다.”
진중권 교수는 소설의 콜하스, 영화의 콜하스, 역사적 콜하제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낭만주의자인 클라이스트의 영향으로 소설 속 콜하스는 낭만주의자로 나온다는 것. 즉 소설 속 콜하스가 작가 자신이었다. 진 교수는 콜하스가 나치에게도 주목받았던 사실을 언급했다. 클라이스트가 그린 콜하스라는 남성적인 영웅상이 나치의 취향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나치는 클라이스트를 자신들의 아이콘인양 추켜세웠다. 콜하스가 사회정의를 세우는 인물로 비춰졌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불만을 폭력적으로 표출한 것에 불과했다는 시선도 있었다. 부띠 부르주아적 영웅주의에 빠진 테러리스트로서의 콜하스.
“클라이스트의 낭만적인 영웅으로서의 콜하스가 있고, 공산주의자가 본 콜하스가 있으며, 민중 속의 콜하스가 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데, 미화돼 있지도 과장돼 있지도 않다. 이웃집 아저씨, 친근한 로빈훗 정도의 뉘앙스가 있다. 인물 해석에 있어서 이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원작을 읽어보면 영화와 다른 부분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연법과 실정법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악법도 법이니 지키라는 실정법이 있는 한편, 법은 인간이 아닌 자연법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상도 있다. 이 둘이 부딪히는데, 영화에서는 법정 장면이 없으나 책에서는 당시 사법부의 논증 등이 자세하게 나온다.”
진중권 교수는 덧붙여 실존인물인 콜하제가 살았던 1500년경은 근대 사법이 탄생하는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신학적인 신정재판이 앞선 시기에 있었다면, 16세기 들어 원시적인 사법시스템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법정은 귀족 세력에 의해 자유롭진 못했기에 그것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기도 하다. 사법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했는데도, 정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스스로 정의를 집행할 권리가 있는지 화두로 던진다는 것. 근대 사법은 개인의 복수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가 대신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에 영화에서는 근대 사법 초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랑하는 리스베트, 나는 내 권리를 지켜주려 하지 않는 나라에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오. 발로 걷어차이는 신세라면 사람으로 사느니 차라리 개로 살겠소!”(pp.32~33) | ||
지식인이라는 말, 사실은 낡았다. 계몽의 산물이다. 계몽주의 운동이 일어났을 때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민중이었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는 통치의 주체와 대상이 일치한다. 권력을 행사할 줄 알려면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계몽운동이었다. 그때의 지식인상은 민중을 대신해서 싸우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지식인은 리영희 선생이 아닐까 싶다. 지식인이 아닌 일반 민중, 시민에게도 두 개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적인 생활을 할 권리, 공적인 정치에 참여할 권리. 지식인은 지금 직업의 이름이다.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책 쓰는 사람. 그러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참여를 하는 거지.
영화를 보면 콜하스는 영웅적이라기보다 죽을 때 후회를 많이 하는 것 같더라. 영화에서 콜하스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는 소설의 현대적 해석일 것이다. 처형 분위기를 놓고 보면 지금과 당시는 굉장히 달랐다. 지금은 사형 집행이 없는데, 당시의 사형 집행을 보면 지금 감각에선 황당하다. 사형하는 장면은 엔터테인먼트였다. 도시락을 싸갖고 와서 보는. 재밌는 사형집행이 있다며 광고도 하는, 축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죄를 지은 사람이 뉘우쳤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찍소리 않고 참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거지. 감동의 드라마처럼 연출되기도 하고. 국가나 교회에 반역한 사람도 있는데, 민중들도 통쾌함을 느꼈다. 민중이 흥분해서 사형집행자를 때리거나 사형수를 풀어주기도 했었다. 오늘날 감성에 맞게 감독이 마지막 장면을 그렇게 선택한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콜하스의 눈빛이 남아 있다. 1540년 즈음이면 우리로 보면 조선시대인데, 전근대적이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보면, 500년 전보다 더욱 민주적이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영원한 문제지. 사법은 정의로워지는 진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는 사실 신적 개념이다. 인간이 만든 사법제도가 신적 개념에 근접할 수 있을까? 사법의 역사를 보면 재미있다. 인간주의화 되는 경우도 많다. 시민들의 권리도 서구의 많은 나라는 보장돼 있다.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나라는 개인의 권리가 많이 보장돼 있다. 중국도 스타디움에서 공개처형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도 내란음모죄를 때린다. 영원한 정의는 없다고 본다.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콜하스처럼 한국에도 민중들이 정당하게 일어난 경우도 많았다. 어쨌든 정의는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하게 이뤄질 수 없고, 노력을 통해 정의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제가 말하는 추방당한 자란, 콜하스는 종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를 뜻합니다!” (p.56) | ||
(※ 이미지는 2013년 5월 13일 인터뷰 사진으로 본 시사회와 관계 없습니다)
- 미하엘 콜하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저/황종민 역 | 창비
오늘날 독일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손꼽히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중단편소설집 『미하엘 콜하스』 가 창비세계문학 14번으로 출간됐다. 클라이스트 특유의 문체를 그대로 살리고자 문단 구분, 간접화법과 직접화법 등을 충실히 따라 옮기되, 잘 읽힐 수 있도록 세심하고 적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한 것이 이번 번역본의 특징이다. 또한, 등장인물 및 사건전개를 설명해주는 부록을 실어 작품의 이해를 도왔으며, 본문 뒤에는 50여 페이지에 이르는 작가의 생애 및 수록작 각각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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