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옥 " 지금 여기의 의미를 찾을 때, 책을 읽는다"
학교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연구실로 올라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어둠이 짙어지고 사위가 고요해집니다. 이 때가 책 읽기의 적기죠.
글ㆍ사진 예스24
201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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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연구실로 올라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어둠이 짙어지고 사위가 고요해집니다. 이 때가 책 읽기의 적기죠. 간혹 자정이 넘어 귀가할 때도 있습니다. 지난해 일본 나고야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 커피를 사랑하던 청년이 운영하던 커피숍 한 구석 또한 내 책상이었습니다.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일종의 직업병인데, ‘지금 여기서’의 의미를 찾기 위해 어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그곳은 조선시대 어느 곳이기도 하고 세잔이나 고흐의 화실이기도 합니다.

 

전공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편입니다. 특히 정치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직업인 필자로서는 ‘쓴다’는 것이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좀 더 풍부하게 사물을 드러낼 수 있는 ‘그린다’는 것에 주목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점에서 그림들에서 상상력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필자의 삶에 많은 책들이 영향을 미치고 갔습니다. 마음 도저한 곳 어디엔가 그러한 기억들이 켜켜이 남아있을 겁니다.

 

명색이 교수이고 그 생활이 벌써 20년째입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은 아버님의 무게입니다. 지금도 여든을 훌쩍 넘기셨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을 읽으시고 일상의 생활을 한시로 옮기시는 중이죠. 물론 컴퓨터에 앉아 글을 쓰고 한시선집을 정리하는 것은 온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그런 아버님이 오덕헌(伍德軒)이라는 서재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내 이름의 옥(玉)을 풀이한 것인데, 무릇 내 공부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지를 늘 자문하게 됩니다.

 

요즘 중국이 붐입니다. 중국은 이미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고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과 개인 모두 생존전략을 모색 중입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는 다소 경박스럽기까지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제대로 된 공구서(工具書) 하나 가지지 못했습니다. 국가와 기업은 물론이고 대학도 호흡이 긴 책이나 중국연구의 인프라에 눈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소장으로 있는 ‘성균중국연구소’에서 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뜻있는 74명의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고 『차이나 핸드북』을 발간했습니다. 우리 연구의 자부심과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독자들은 가뭄의 단비처럼 이 책을 반가와 했습니다. 이 책을 가진 독자들은 우리 중국학계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죠. 이들의 성원이 학문의 토대를 깊게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명사의 추천

 

풍속의 역사

에두아르트 푹스 저/이기웅,박종만 공역 | 까치(까치글방)

대학원 다닐 금서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상상력을 발전시켰다 이 책은 그 무렵 일상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살아나고 그것이 역사로 구성되는가를 보여주었던 책이다. 이를 통해 경제사나 정치사에 매몰된 거친 당시의 의식세계를 흔들었다. 이러한 자산은 이후 필자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구술사나 생애사로 접근할 수 있었던 자산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공저/김한영 역 | 문학동네 |

그림의 매력은 ‘그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쓴다’는 것의 결핍을 보완해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림이 하나의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대상이 떠난 후에도 그 대상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 그림의 도저한 철학이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를 의무감으로 읽었다면 이 책은 그림이란 기억, 희망, 슬픔, 균형회복, 자기이해, 성장, 감상의 기능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중국의 붉은 별

에드가 스노우 저/홍수원,안양노,신홍범 공역 | 두레

대학시절은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불과 몇 사람으로 시작한 중국공산당이 거대한 대륙의 주인이 되기까지의 역사는 한편의 장대한 드라마와 같았다. 무엇보다 그 길을 따라나선 벽안의 기자가 기록이다. 죽의 장막 속에서 중국의 존재방식을 서양에 일린 당시로서는 교과서와 같았다. 중국정치와 오늘날 중국공산당이 유지되는 비밀을 해결하는 열쇠가 이 혁명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강의

봅신영복 저 | 돌베개

신영복의 강의는 동양고전에 대한 독법이지만, 사실은 사회과학적 뿌리에서 시작한 문명론적인 통찰력에 기반한다. 동양의 사회구성을 관계론으로부터 접근한 것이 그렇고 고전을 미래의 길을 과거에서 묻는다는 것도 그렇다. 이처럼 고전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오늘의 문제의식으로 되돌릴 때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국제관계가 인간관계의 연장에서 나온다는 믿는 나의 생각도 『강의』에서 연유한 바 크다.

 

 

 

어제까지의 세계

제레드 다이아몬드 저/강주헌 역 | 김영사

지나온 것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하는 점은 중국연구의 기본이다. 더구나 중국예외주의, ‘중국적’이라는 것을 과학화하는 데 관심이 많은 필자로서는 어제의 세계에서 상상력을 자극 받는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제도가 끊임없이 설계되고 있지만, 제도의 실패는 다시 되돌아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과 산업이 분리된 채 질주한 미국의 금융위기나 트랙터로부터 호미와 낫으로 되돌아온 김정일체제 북한의 실패는 모두 우리가 믿고 있는 제도와 새로운 것에 대한 맹신, 전통에서 배우기를 소홀히 한 당연한 귀결이다. 

 

 

카핑 베토벤



영화를 보면서 화면에 집중하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영화이다. 신의 언어가 음악이라면, 그것은 단연 합창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합창이 신의 언어를 완성한 환희의 송가가 아니라, 그 도저한 목소리를 찾아가는 지난한 순례와 같다. <합창>을 위해 돌 틈의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 나는 모든 ‘자연’을 소리로 표현해야 하는 베토벤의 고독한 영혼을 엿볼 수 있고, 더구나 연주석 뒤에 숨어 귀먹은 베토벤의 지휘를 영혼으로 이끄는 안나 홀츠의 눈물이 새롭다.

 

 

 

더 비지터



리차드 젠킨스가 열연했던 교수들의 삶은 평범하고 단조롭다. 낯선 모험 보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자신의 것에 완고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과 겸허를 생활에서 구현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어느 교수가 완고한 것을 꺾고 또 다른 소통을 찾아가는 과정은 근엄한 피아노와 발랄한 아프리카악기인 젬베와의 대비를 통해, 그리고 낯선 이민자와의 소통을 통해 그리고 있다. 사람과 문화는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만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소중한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는 것이라는 것도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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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차이나 핸드북 #중국 #신영복 #알랭드 보통 #eBook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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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asuna

2014.04.05

너무나도 재미있게 잘 봤으며, 주위사람들에게 이 기사 내용을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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