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예스24 대학생 리포터들이 ‘10년 전 베스트셀러’라는 제목으로
2004년 큰 인기를 모았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미쳐야 미친다』의 저자 정민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옛 선인들의 향취가 밴 무궁무진한 한문학 자료들, 고전을 발굴해내고 그것들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미쳐야 미친다』에서 그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내면을 사로잡았던 열정과 광기를 탐색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그는 허균, 박지원, 이덕무, 정약용 등 18세기 조선을 살았던 이들의 일화, 글, 시조, 편지들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면서, 그들의 삶을 빌려 21세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보고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미쳐야 미친다』 정민 저자
온전하게 진짜 삶을 살았던 이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 된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려면[及] 미쳐라[狂]. 지켜보는 이에게 광기(狂氣)로 비칠 만큼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내세우고, 미친 듯이 몰두하지 않고는 결코 남들보다 우뚝한 보람을 나타낼 수가 없다.” (『미쳐야 미친다』 13쪽)
정민 교수는 『미쳐야 미친다』에서 18세기 조선이 ‘광기’로 가득 찬 시대였다고 정의 내렸다. 무언가에 온전히 미친, 광기 넘치는 마니아들의 시대. 이전의 지식인들이 ‘수기치인’이라는 믿음 하에서 사물에 대한 탐구를 금기시하고 내면을 닦는 공부를 했다면, 18세기에 와서는 세상이 바뀌어 지식의 패러다임에도 본질적인 변화가 왔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리고 미쳐버린 ‘광인’들의 등장은 이 시기 지적 토대의 변화를 증명하고 있었다. 어딘가에 꽂혀 미칠 정도로 몰두하는 것이 추세가 될 정도였던 시대. 우리가 18세기를 살았던 지식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벽(癖)’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남들이 모두 손가락질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너무 사랑해 눈만 뜨면 꽃밭으로 달려가 하루 종일 꽃만 관찰했던 ‘김군’, 눈병에 걸려 눈을 뜰 수 없는 와중에도 실눈을 뜨고 책을 읽었던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 돌만 보면 벼루를 깎았다고 해서 ‘석치(石痴)’라고 불린 ‘정철조’. 처절한 가난, 미천한 신분, 세상이 등을 돌릴지라도 이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자신만의 세계를 세우며 온전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다.
1부가 미친 ‘벽(癖)’에 들린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2부에서는 허균, 정약용, 박지원 등 조선시대 지식인들을 둘러싼 여러 ‘만남’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만남은 맛남이다. 누구든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난 만남을 갖는다. 이 몇 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만남 앞에서도 길 가던 사람과 소매를 스치듯 그냥 지나쳐버리고는 자꾸 딴 데만 기웃거린다. 물론 모든 만남이 맛난 것은 아니다. 만남이 맛있으려면 그에 걸맞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미쳐야 미친다』 177쪽)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그 중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만남도 있고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만남도 있다. 허균은 기생 계량과 시문을 주고 받으며 함께 공감하고, 거문고와 불교에 심취하는 등 서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우정을 나누었다. 정약용이 강진으로 귀양 가 있던 시절 제자인 황상은 그의 나이 열다섯 살에 정약용을 처음 만난 이후 평생 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뼈 속 깊이 새겼고 죽는 순간까지 그의 마음 속엔 스승이 늘 함께 자리했다.
서로 마음을 나누었던 이들 사이에는 언제나 편지가 오고 갔다. 짧은 편지 안에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 주저리주저리 길게 쓰지 않아도 그 안에서 충분히 전해지는 그런 글들. 가치를 잃어가며 소모되듯이 쓰이는 것만 같은 오늘날의 말들과 그때의 말들은 무게부터 달랐다. 쓰는 이와 받는 이 사이에 통하던 마음, 오직 주고 받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었던 짧지만 깊고 맛있는 글. 곱씹을수록 그 향취와 풍미가 더욱 더해지는 이런 글들은 결코 짧은 시간 내에 쓰여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눈과 마음으로 제대로 보고, 오랜 시간 충분히 느끼고, 수많은 시간들이 쌓이고 묵혀졌기에 나올 수 있던 것들이었다.
지금 무언가에 미쳐 있는가
고수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그들의 눈은 남들이 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단번에 읽어낸다. 핵심을 찌른다. 사물의 본질을 투시하는 맑고 깊은 눈, 평범한 곳에서 비범한 일깨움을 이끌어내는 통찰력이 담겨 있다. (『미쳐야 미친다』 277쪽)
3부에서는 ‘일상 속의 깨달음’이란 소제목 아래, 매일의 일상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해 이를 글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남들은 쉽게 간과하고 넘어가기 쉬운 것에서도 이들은 깊숙한 구석까지 헤치고 들어가 보석을 발견해낸다.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인 ‘홍길주’는 이렇게 말했다.
'문장은 다만 책 읽는 데 있지 않다. 독서는 단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천운물(山川蕓物)과 조수초목(鳥獸草木)의 볼거리 및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모두 독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바라보면 천지만물 어느 것 하나 훌륭한 문장 아닌 것이 없고, 기막힌 책 아닌 것이 없다. 천지만물, 삼라만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텍스트다.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안목이 없어 그 멋진 책을 그냥 스쳐 지나고 있을 뿐이다. (『미쳐야 미친다』 281쪽)
우리는 모두 두 눈을 통해 많은 것들을 보고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그들에게는 본질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보려 하는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 그렇다면 본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잘 보아야 한다. 정신 차리고 똑똑히 제대로 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본다고 해서 다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숨겨진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미쳐야 미친다.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무언가에 홀려서 미친 듯이 그것만 파고들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분야에 통달해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 어떤 일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잘 아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 일에 파고드는 것이다. 바라건 바라지 않았건 18세기 지식인들의 광기 아닌 광기가 결국에는 그들을 어느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게 인도했다. 이들은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무언가에 몰두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저 이유 없이 좋아서, 그 순수한 열정 하나로 자신만의 세계를 갈고 닦았던 것이다. 그들은 껍데기의 삶을 살기 보다는 길이 남을 정신을 택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들에게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고, 세상이 자신을 등질지라도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리라. 그들을 미치게 만든 광기 어린 고집들로 지금 우리 앞에 그들은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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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정민 저 | 푸른역사
『한 시대를 열광케 한 지적, 예술적 성취 속에는 열정과 광기가 숨어 있다. 불광불급( 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허균, 이덕무 등 18세기 조선의 지식인. 이들은 당대의 마이너였으나 그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열정과 광기로 말미암아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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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원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슈퍼작살
2014.04.24
accacia
2014.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