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생각해보면 사는 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다. 삶은 만남으로 문을 열고 이별로 문을 닫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잘 헤어지는 건 더 어렵다. 언제나 이별은 아픈 법인데, 뜻하기 않게 헤어지는 경우라면 심장이 쪼그라들고 피가 마를 만큼 아프다. 수식어가 아니라 정말 온몸이 아프다.
글ㆍ사진 한미화
201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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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사는 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다. 삶은 만남으로 문을 열고 이별로 문을 닫는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잘 헤어지는 건 더 어렵다. 언제나 이별은 아픈 법인데, 뜻하기 않게 헤어지는 경우라면 심장이 쪼그라들고 피가 마를 만큼 아프다. 수식어가 아니라 정말 온몸이 아프다.


내 경우는 이별하는 순간에만 의연하다. 타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한다는 방어 기제가 어지간히 강하게 작동하는가 보다. 문제는 다음이다. 그 다음날부터 혼자 끙끙 앓는다. 길을 걷다 가도 울고, 밥을 먹다 가도 울고, 빵집 문고리를 잡고도 운다. 여러 날 아니 오랫동안 앓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별은 이토록 사람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너무-울지말아라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이야기는 상실이 남긴 아픔을 잘 보여준다. 그녀는 어릴 때 집에서 식용 토끼를 기른적이 있었다고 한다. 블랙키라고 이름 짓고 특별히 아꼈지만 아버지는 토끼를 푸줏간에 보내려 하고 그 일을 엘리자베스에게 시켰다. 죽은 블랙키가 담긴 자루를 받았을 때는 그녀는 손이 덜덜 떨렸다고 한다. 자루를 건네며 푸줏간 아저씨가 “조금만 기다렸으면 좋았을 걸, 이틀 후면 새끼를 낳았을 텐데.”라고 한 말을 들은 후 그녀는 다시는 울지 못했다고 한다. 40년이 흐른 후 매사에 지나치게 알뜰했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집 주인을 만나 울음을 터트리기 전까지는. 바로 그때 그녀는 어린 시절 블랙키를 잃어버렸던 소녀로 되돌아가 울 수 있었던 것이다. 삶에서 어쩔 수 없는 게 이별이라지만, 이별했을 때 슬퍼하지 못하면 엘리자베스처럼 다시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울지 못한다. 마음이 딱딱해지고, 몸이 아프고, 삶이 표류한다.


우리 이웃이 생떼 같은 아이들을,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그들과 함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을 그림책이 있다. 『여우의 전화박스』로 익숙한 다카스 가즈미가 그림을 그리고 우치다 린타로가 글을 쓴 너무 울지 말아라』다. 이 책에서 역시 다카스 가즈미는 파스텔을 이용해 부드럽고 따뜻한 그림으로 독자의 마음을 달랜다.


아직 어린 소년이 비가 쏟아지는 정류장에서 홀로 오도카니 앉아있다. 우산을 하나 더 챙겨 간  걸로 봐서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소년은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알지만 믿지 못해 우산을 들고 갔는가 보다. 왜 안 그러겠는가. 소년은 아주 어릴 때부터 많은 날들을 할아버지와 함께 보냈고 언제나 함께 지낼 줄 알았던 것을. 강가에 나란히 앉아 휘파람새 소리를 함께 들었고 들판에서 고추잠자리를 잡을 때도 함께 있었는데, 이제 소년은 혼자다.


할아버지의 나레이션이 책을 이끌어가는 구성이다. 글은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당부의 말을 전하지만, 그림은 소년의 쓸쓸한 일상과 할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의 시간을 보여준다. 마치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손자를 지켜보고 그러다 손자가 걱정되어 어루만지는 듯한 목소리다. '내가 없어도 이 녀석이 잘 살아야 할 텐데'하고 염려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너무울지말아라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도 손자 걱정이다. 손자가 울음이 많은 걸 알기 때문이다. 늘 같이 있었는데 혼자 있으니, ‘할애비가 죽은 걸 알면 많이 울 텐데’ 싶어서다. 그래서 말한다. “내가 죽은 것을 알면 너는 울겠지. 훌쩍 훌쩍. 너는 울보니까.”


하지만 할아버지는 알고 있다.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지만 한 해 두 해 세월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가며 저절로 잊게 된다는 걸. 그러다 불현듯 함께 고추잠자리를 잡던 들판을 지나갈 때면 할아버지 생각을 하고 걸음을 멈출 거라는 걸. 더 세월이 흘러 이 녀석의 손자가 잠자리를 잡고 뒤돌아서서 웃으면 그때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생명의 선물'이 이렇게 되풀이된다는 걸 깨닫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때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너무 크면 주변의 위로와 충고조차 서럽고 상처가 될 때도 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손자를 위로한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삶이고 늙고 죽는 것조차 생명의 순환임을 들려준다. 그러니 부디 할아버지의 당부를, 떠나간 사람들이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간절한 부탁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다.


“죽은 사람은 누구나 산 사람들의 행복을 바란단다. 행복하기만을. 울어도 괜찮다. 하지만 너무 울지 말아라. 내가 네 옆에 없다고…. 내가 좋아한 너는 웃고 있는 너니까.”
    

 

 


 ※같이 보면 좋은 책


마지막 이벤트

 



유은실 글/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손자 영욱이가 믿고 의지하던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과정을 담아낸 동화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유머러스한 문체로 그려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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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울지 말아라 #우치다 린타로 #그림책 #다카스 가즈미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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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그림자

2014.05.29

기사를 읽는 동안 눈물이 났어요,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거든요..
벌써 3년이나 됬지만 아직도 많이 슬픈데, 그 마음을 잘 위로하는 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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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4.05.29

죽은 사람을 위해 명복을 비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같은 의미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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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선영

2014.05.29

주책맞게 이 글 보고 아침부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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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