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 1979년 가수 김만준은 「모모」라는 노래를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는 알고 흥얼거리지만, 노래의 모모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모모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에 나온. 지난 5월 26일의 봄밤은 그것을 알려준 시간이었다. 그 봄밤은 황홀했다고 고독해야겠다. 문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것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얼마나 또 아름다운지 실감했던 시간이었으므로.
낭독과 대화가 있는 봄밤
사회자인 서평가 금정연의 이야기로 봄밤의 낭독이 열렸다. 너무나 많은 로맹 가리가 있다고 했다. 수많은 정체성과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 로맹 가리만을 위한 행사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한 작가의 100년을 낭독이라는 오래된 방식으로 기리기 위해 모였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그렇다. 로맹 가리는 어쩔 수 없는 휴머니스트이자 인간에 대한 혐오로 점철한 사람이다. 그것은 곧 문학의 존재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문학이라는 얄궂은 삶의 형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다니엘 올리비에 주한프랑스문화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올해는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라며 “이 작가는 과감함과 100km의 생을 살았던 다양함 때문에 내게 중요하고 그래서 아직도 살아 있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승우, 함정임, 조경란 작가가 함께 등장했다. 사회자가 근황에 대해 물었다.
이승우 : 광주의 한 대학교에 재직 중인데, 소설이 잘 안 팔리다보니 10여 년 전에 취직을 했다(웃음). 취직할 때는 5년만 하고, 그때쯤이면 책도 좀 팔릴 거야 싶었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다. 학생들 원고를 보느라 내 원고를 못 쓰고 있다.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신 것을 보니 로맹 가리 인기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열심히 써야겠다.
함정임 : 나는 부산의 한 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오늘 아름다운 저녁시간을 로맹 가리와 보낼 수 있어서 참 좋다. 이십대 초중반에 로맹 가리와 이승우를 만났고, 좋아하는 조경란 작가와 함께 로맹 가리를 들려줄 수 있어서 오늘 밤이 뜻 깊다.
조경란 :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로맹 가리와 이승우, 함정임과 함께 한다고 해서. 남아공을 다녀온 지 일주일 됐다.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몰랐다가 남아공에서 보고 돌아왔다. 『흰 개』를 다시 읽으니 느낌이 각별하다. 『흰 개』를 낭독할 수 있게 돼서 무척 좋다.
이승우, 솔로몬 왕의 고뇌
이승우 소설가가 『솔로몬 왕의 고뇌』를 낭독하기 전, 독자들에게 말을 건넸다.
“로맹 가리를 좋아한다. 내 책 두 권에 로맹 가리가 담겨 있다. 하나는 『가면의 생』을 인용했고, 다른 하나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인용하며 언급했다. 로맹 가리를 낭독하는 게 그래서 참 좋다. 오늘 낭독을 위해서는 『솔로몬 왕의 고뇌』를 선택했다. 이 소설을 1979년에 읽었다. 당시 책 제목은 『달려라 모모』(민희식 옮김, 문학예술사 펴냄)였다. 그때 책을 최근에 펼쳐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그래서 재출간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두 번 읽기가 꽤 어렵다. 그런데 재출간이 되면 다시 읽게 된다. 다시 나온 책을 보면서 30년 전에 내가 뭘 읽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책을 재출간하는 것이 그래서 참 좋다(웃음).”
로맹 가리가 나이듦에 대한 성찰을 많이 했는데, 『솔로몬 왕의 고뇌』도 그 중 하나다. 이승우 작가는 지난해 동인문학상을 받고 오래 많이 쓰겠다는 소감을 남겼는데, 로맹 가리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또 이승우 작가에게 나이듦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도 그렇고, 다른 작품도 보면 나이듦에 대한 문제를 이렇게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감탄한다. 이 작가가 남성성에 대한 동경을 많이 표현한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에서는 성적 능력을 상실해가는 남성의 마음이 얼마나 황폐한지 잘 나온다. 그걸 읽으면서 심란했다. 주인공이 내 나이와도 비슷하고(웃음). 로맹 가리는 60대 후반에 『솔로몬 왕의 고뇌』를 썼다. 소설은 신동이 없는 장르다. 10대에 세계 명작을 쓴 작가는 없다. 원숙한 노년에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본다. 체력과 지력이 문제긴 해도. 나는 오랫동안 쓰고 싶다. 좋은 소설이 안 나오는데, 많이 쓰는 건 중요하지 않겠지. 요즘 그래서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웃음).
낭독한 부분은 코라의 입장에서 진행되는데, 코라의 대화 부분을 고른 이유가 있다면?
처음에는 더 강렬한 부분을 골랐는데, 낭독하기 낯 뜨거운 부분이라...(웃음) 서로의 고집과 자존심을 지키면서 솔로몬과 코라가 사랑을 합치지 못하면서 지낸다. 그러다가 택시기사 장이 중개하는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아름답고 이 밤에 어울릴 것 같아서 그 부분을 골랐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다른 이름으로 상을 받았다. 그는 왜 에밀 아자르를 만들었고, 작가에게 필명이나 예명은 어떤 의미일까?
로맹 가리에 대해 글을 기고할 기회가 있을 때, 이렇게도 썼다. 이 작가처럼 살 순 없다. 격렬한 연애도 못할 거고, 엄청나게 좋은 소설도 못 쓸 거고, 권총 자살도 못할 거고. 대신 다른 이름으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소설가의 이름은 심하게 말하자면 낙인 같은 것이다. 잘못하면 그걸 벗어나기 어렵다. 가령 이승우,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수식이 붙으면 굉장히 힘들다. 그런 딱지가 붙으면 재밌는 걸 써도 독자들의 선입견의 벽을 뚫기 힘들어진다. 벽을 부수기 위해 다른 이름으로 내볼까도 생각해봤다. 필명을 써도 이승우가 쓴 소설과 다르지 않겠지만 이승우에 대한 선입견을 벗고 볼 수 있어서 굉장히 다르고 재밌지 않을까.
함정임, 자기 앞의 생
함정임 소설가가 낭독하기로 한 책은 『자기 앞의 생』이었다. 역시 낭독 전에 말을 꺼냈다.
“『자기 앞의 생』을 세 번 만났다. 같은 제목의 문학사상판을 갖고 있는데, 중고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불문과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간 곳이 문학사상사였다. 그때 제대로 『자기 앞의 생』을 만났고, 지금 여러분이 보는 개정판 『자기 앞의 생』까지 세 번을 만났다. 누구에게나 평생 식구처럼 같이 가는 작품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자기 앞의 생』이다. 이 작가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도 부럽고, 독자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에도 부러움이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소설의 시공간을 마련할 때 로맹 가리나 카뮈, 이승우 등을 펼쳐보면서 대화하고 물어본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게 맞는 환경을 만들고 울림을 받으며 희망을 품고 쓴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여러 차례 칼럼 등의 형태로 쓰고 소개하고, 소설의 무대에도 갔었다.”
로맹 가리가 예순 하나에 이 책을 썼다. 적지 않은 나이에 어린 화자(모모)를 두고 책을 썼는데, 이렇게 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당연한 것이다(웃음). 작가가 그런 존재다.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처음이자 끝이다. 사람을 생각하면 그 사람 안에는 자기가 있고, 자신을 포함한 가족, 인류 등이 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쓰기 때문에 늘 깨어 있게 된다. 그건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건 시간과 생물학적인 나이를 초월하는 것이다. 로맹 가리가 예순 하나에 이 책을 썼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 책의 프랑스어의 원뜻은 ‘여생’이다. 모모에겐 길게, 하밀 할아버지에겐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이 여생이다. 대가들은 파란만장한 삶을 거쳐 나이듦에 도달하면서 단순해진다. 그리고선 많은 것을 쳐내고 작고 담백한 것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래서 예순 하나의 문장이 아이의 문장처럼 투명하고 단순하게 형상화될 수 있는 것이 않을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흥미롭다. 바람둥이 로맹 가리의 변명은 아닐까?
로맹 가리는 남성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20세기 작가 중의 하나다. 나머지 한 명은 헤밍웨이지. 그런데 바람둥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웃음). 로맹 가리는 소설을 통해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의 모든 소설은 사랑소설이다. 그에게 사랑은 인류애나 휴머니즘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를 부추기는 결핍감이나 동력이 있는지?
소설은 특히, 행복하면 쓸 수 없다고 본다. 남들이 보기엔 다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결핍이나 자기만이 가진 생의 욕망에 따라 결핍의 정도가 달라진다. 원초적으로 작가는 문제아다(웃음). 원초적인 부재가 결핍을 뛰어넘는다. 나는 한 살 때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사춘기에 그런 원초적 결핍으로 인해 글쓰기에 몰두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작가가 되려고 하진 않았다. 무엇이든 썼던 행위가 결국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이 저 세상으로 가서 엄청난 결핍이나 부재가 삶을 압도했다. 결핍이 저주 받은 축복이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결핍은 글쓰기의 동력이 맞다.
조경란, 흰 개
조경란 소설가가 들고 온 것은 『흰 개』였다. 1장의 일부분을 빼고 전체를 낭독했다.
『흰 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적당한 답을 할 수가 없다. 한 사람이 좋으면, 그냥 좋잖나. 제목도 그렇고, 로맹 가리 작품이며, 첫 문장이 “그것은 회색 개였다” 그것에 압도당했다. 1장을 거의 낭독한 이유는 이 낭독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 2장을 읽어보라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웃음). 여러분도 읽어보면 내가 왜 이 책을 좋아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지?
새, 봉천동 주변의 들고양이, 개 등이 내 소설에 여러 번 나온다. 고등학교 때 집을 잃고 좁은 집에 가족들과 모여 산 적이 있다. 그때 개가 함께 있었는데, 그 개가 죽으면서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있고 지킬 것이다.
이 책에 로맹 가리는 실명으로 나온다. 진 세버그와의 이야기도 날 것처럼 등장한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놓지 못한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보고 있나?
슬프지.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가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로맹 가리가 그랬다. 우리가 상처도 받고 배신도 당하는데 그것 때문에 사람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두 사람이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다. 헤어져서 가능한 사랑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전통적이지 않은 스토리텔링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겹이 많은 소설이다. 어렵게 해석하자고 들면 한 없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에 읽은 로맹 가리의 작품이 『밤은 고요하리라』인데, 이 책에 나온 샌디라는 개가 『흰 개』라는 작품을 쓰게 했다. 『밤은 고요하리라』에는 로맹 가리가 『흰 개』에서 하려고 한 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집에 돌아가서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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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저/김남주 역 | 마음산책
『솔로몬 왕의 고뇌』는 『가면의 생』에서 결벽증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하며 에밀 아자르의 죽음을 명한 로맹 가리의 긴장감을 극복하고,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 사이의 긴장 관계를 즐기게 된 그의 유연함과 초월적 면모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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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저/용경식 역 | 문학동네
『자기 앞의 생』은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아픈 소설이다. 모모의 등에 지워진 삶의 무게는 산을 오르기는커녕 어린 그에겐 가만히 서 있기도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가슴 아픈 것은 어린 모모의 인생을 짓누르는 그 삶의 무게가 아니다. 하지만 어린 모모는 그 무거움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인생의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시니컬한 냉소로 그 무게를 떨쳐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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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 로맹 가리 저/백선희 역 | 마음산책
1960년대 격동기의 미국, 그 혼란한 자리에 프랑스 사람 로맹 가리의 미국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흰 개』가 국내 초역되었다. 1968년부터 1969년까지 2년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흑인과 백인, 개인과 집단, 남성과 여성,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 각종 대립 구도로 사회 갈등이 한창 고조되었던 격변기 미국에 관한 생생한 현장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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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시인풍경
201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