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마음』은 뉴욕대학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영미권에서 가장 뜨거운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화이트가 썼다. 저자는 직접 인간 행동을 관찰하고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제시했으며, 진보와 보수의 도덕적 뿌리 등을 언급했다. 책은 특히 ‘바른 마음’에 대한 흥미로운 논쟁과 사고를 불러일으켰다.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진정 이해하고 싶다면, 즉 우리가 어떤 식으로 분열되어 있고, 또 어떤 한계와 잠재력을 가졌는지 알고 싶다면, 이 순간만큼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윤리 도덕은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바른 마음』26쪽)
근황이 어떤가? 왜 이 자리에 나왔을까, 생각해 봤나?
노회찬 : 바깥에서는 와신상담, 절치부심이라는데 ‘방학’을 맞아 즐겁게 지내고 있다. 이 자리에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주최 측을 보고 수락을 했는데, 그때까지 책이 이렇게 두꺼운지 몰랐다(웃음). 책이 읽기 쉽도록 많은 예를 들고 있는데, 미국의 연구지만 한국에서도 고민이 맞닿는 부분이 많아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전중환 : 아직 학기 중인데,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내고 있다. 도덕적 혐오와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고, 하이트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소개를 한 바 있다. 도덕과 혐오를 연구하고 있어서 이 자리에 섭외를 받은 것 같다.
지승호 : 얼마 전에 인터뷰집(『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이 나왔고, 섭외를 받고 의아했다. 바른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은데(웃음). 함께 나온 세 분의 팬이라 이 자리에 구경하러 왔다.
이 책은 ‘코끼리에 올라탄 기수인 우리의 나약한 이성’에 대한 이야기다.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고 말한 바 있다. 반박도 있는데, 조너선 라이트는 흄의 말이 옳다며,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감정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우리의 코끼리를 이해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지 앎으로써 다른 코끼리에 타고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각자 어떻게 봤나?
전중환 : 첫째 파트는 사회자가 잘 요약해줬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것은, 코끼리에 올라탄 것처럼, 합리적인 이성과 추론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분히 정서적인 직관이 우리의 도덕 판단을 주도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둘째 파트는 도덕의 토대는 공정함, 돌봄뿐만 아니라 공손함, 충성, 방탕하지 않고 순수하게 몸과 마음을 가꾸는 것 등도 있다고 말한다. 과거 칼럼을 통해 하이트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있었다. 정치인들, 특히 진보적 정치인들이 빈민층을 위해 정책을 만드니 우리를 지지함으로써 덕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나, 그렇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하이트의 주장에 의하면, 서구의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으나 비서구의 빈곤층이 보기에 공동체의 도덕, 충성, 공경 등의 차원에선 비도덕적이라는 거다. 국가안보나 사회질서에 관심이 없는 비도덕적이고, 덜 순수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서 진보세력은 전략을 바꿔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회찬 : 이 책의 주제는 미국에서 지난 10여 년간 자주 다뤄진 것이다. 체계적으로 가설을 세우고 적용해가면서 논리를 풀어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이 왜 진보적인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는지, 이 흐름을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적 현실에서 부딪히는 지점과 유사한 것도 많다. 하이트의 이론이 맞느냐 틀리느냐의 논쟁은 생산적이 아닌 것 같다. 한계가 있더라도 현실에 대입시키면서 어떻게 바꿔나갈지 논의를 풀어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이트의 주장처럼, 보수주의자들의 도덕적 지향을 옳다 그르다 차원에서 묵살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라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와 상대의 옳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둘 중 하나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보수 세력이 한국에 과연 있는지 의문이지만, 그걸 차치하고, 상대를 인격 이하의 대상으로 판단하고 모멸하거나 비하하는 자세를 가진 것이 아니었는지 반성도 한다. 다만, 저자와 다른 생각이 있다. 충성이 보수 세력의 지향이었느냐, 진보는 충성을 싫어했느냐. 또 책의 내용이 세계적 현실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역사적이고 지속적으로 진보가 저소득층의 지지를 받아온 경우도 꽤 있다. 성공한 좌파는 저소득층의 지지를 받아왔다.
지승호 :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진보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인데, 진보 정치인들이 왜 자꾸 선거에서 질까를 생각하면서 책을 봤다. 진보개혁 진영은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남편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진보개혁 진영이 인내심이 부족한 듯싶었다. 진보주의자,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세 부류에게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지 추론해보라고 했을 때 상대방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지 못한 쪽은 진보주의자였다. 미국의 실험결과지만 우리도 그러지 않았나 싶다.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고 있는데, 진보진영은 그동안 상대방 진영을 도덕적으로 모욕했던 것 같다. 인내심 있게 사람들과 대화하고 이해해야 하지 않나 싶다.
최근 있었던 6˙4지방선거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가령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세차를 쓰지 않는 등 감성에 호소하거나 고도의 지적작업이었을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노회찬 : 이번 선거가 (진보진영의) 승리라고 보지 않는다. 2002년 이후 진보가 이긴 선거는 딱 두 번이었다. 탄핵 열풍과 2010년 지방선거, 외풍이 크게 작용한 선거 외에는 다 졌다. 하이트가 제시한 해법인 유권자들의 보수 지향의 가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것일까. 김부겸 후보의 선거 전략은 책과 유사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김 후보는 ‘대통령은 박근혜, 대구시장은 김부겸’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외부적으로 봤을 때 하이트의 해법을 수용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충성, 고귀함 등이 부족해서 진보가 반복되는 패배에서 못 빠져나오는 것일까, 진보가 왜 가난한 사람의 지지를 못 받을까.
역사적으로 현상적으로 성공한 사례를 봐도, 진보는 이념지향적이고 당장의 이익을 천시한 것도 아니다. 이 책은 미국적 현실에는 잘 들어맞으나 역사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진단과 해법인지는 의문이다. 한국적 현실에서는 야권 전체가 상대방을 너무 가볍게 안 것은 잘못인 것 같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야권이 더 개혁적이라고 볼 근거가 많지 않았다. 차세대 리더를 키우는 방식에서도 여권이 더 진화적으로 다음 세력을 길러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이후 더 돌아볼 과거가 없어서, 더 미래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 책이 말하는 진보의 가치인 배려와 공정도 우리의 경우 진보의 몫으로 쥐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책을 좀 더 응용해서 도덕적 가치를 한국식으로 재편성해서 스스로를 평가하고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상대방을 나쁜 놈, 악마라는 틀에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 책의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지승호 : 박원순 시장의 재선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묵묵히 정책적 실천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네가티브를 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다. 송영길 인천시장이 패배한 것과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권처럼 노골적으로 (토건정책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차이가 없었다고 본다. 그래서 재선할 것 같았는데, 실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전중환 : 투표는 사실 비용이 드는 행동이다. 진화심리학자는 투표 행위에 대해 ‘비용이 드는 처벌’로 설명한다. 남에게 비용이 드는 처벌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기꺼이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때문에 야당이 압승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프레임 때문이다.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을 정부나 여당으로 각인시키지 못하고, 우리도 죄인이라고 나오니까 (유권자들이) 야권에 표를 던지기도 어려웠다고 본다. ‘잊지 않겠다’는 프레임은 잘못 설정한 것이다.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프레임을 설정했다면 야권에 표가 갔을 것이다. 박 시장의 재선은 새정치연합의 색깔도 옅었고, 정몽준 후보 아들의 ‘미개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반면 다른 지역에서 선거 막판 박근혜를 도와달라는 호소가 먹힌 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 등의 가치가 움직인 거다. 그렇다고 하이트의 주장이 진보주의자들도 보수주의자들이 원하는 가치를 채택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진 않는다. 하이트의 조언은 진보개혁 진영의 정책이 위험하지 않다는 정서적인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노회찬 : 한국에 제대로 된 보수가 없다는 말은 틀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다. 건강한 보수는 분명 있지만 한국의 정치 주류가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인가 의문이 든다. 우리 사회는 이념적 지형도 다른 나라에 비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태도는 그들에게 도덕적 흠이 없어서가 아닌 진보 기준의 도덕적 기준에 함몰돼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성찰해봐야 한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으로 이기긴 어렵다.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보수가 지닌 장점을 포착해서 배우고 따라붙어야 한다. 도덕으로 승부하면 계속 질 것이다.
전중환 : 보수는 공동체의 도덕, 국가에 대한 충성, 윗사람에 대한 공경, 아랫사람에 대한 모범 등을 중시한다. 하이트는 잘 정제된 논리로는 토론에서 이길 줄 몰라도 투표장에선 어렵다고 말한다. 진보개혁진영은 정서적인 접근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어렵다. 정치적으로 진보인 사람들이 통계적으로도 똑똑하다. 논리적으로 틀린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맞보기 위함이 아니라 설득을 해야 한다. 정서적인 토대를 만들고 어루만져야 한다.
노회찬 : 토론에 나가서 올바른 이야기를 하는 것, 내가 많이 해봤다(웃음). 그러나 투표장에서 내가 늘 이기느냐. 그렇지 않다. 새누리당이 더 잘하는 것은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다. 욕망을 채우는 것을 나쁘게만 보지는 말자. 이번에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은 진보 이념의 승리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 아이를 더 나은 교육을 시켜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앞서 몇몇 진보교육감이 그것을 보여줬기에 가능한 것이다.
진보는 어떤 도덕관념을 가지고 어떻게 지켜왔을까?
지승호 : 많은 분 가운데, 진중권 씨를 예로 들겠다. 그는 한마디로 ‘착한 사람’이다. 약자를 위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왔고, 정치관련 글을 쓰거나 토론에 나가서 돈을 받으면, 꼭 이를 기부해 왔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그 분의 독한 말이 상대편에 상처를 주지 않았나 싶다.
독자가 묻다
하이트의 주된 주제가 감정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합리성이 아닐까 싶은데, 도덕적 판단이 감정 위주로 가야 한다면 민주주의의 가치가 퇴색되지 않을까?
노회찬 : 하이트는 ‘감정’보다 ‘직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민주주의가) 이성만으로 재단되고 규정되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이트의 문제 제기가 유의미하다고 본다. 민주주의의 룰을 흐트러뜨린다고 보지 않는다. 도덕도 보편적인 가치로서 인정되는 도덕이 있는가하면 해당 시대에는 통용되나 다른 시대엔 통용되지 않는 것도 있다. 특정 문화에서는 통용되나, 다른 문화에서는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민주주의도 긴 역사 속에서 오늘날의 민주주의보다 더 긴 기간 여성이나 노동자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적도 있었다.
욕망을 채워준다는 것이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챙겨주는 파벌주의로 생각될 수 있지만 그건 전부가 아닌 것 같다. 유권자의 욕망을 채워줄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노회찬 : 아까 진보가 늘 진다고 말한 것은 지금 눈에 띠는 현상이지만, 역사적으로 늘 사실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진보세력이 오래 집권한 나라를 보면, 욕망을 채워주고 이것을 보편적인 제도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경우다. 욕망을 실현한다고 말한 것은 기회의 균등을 포함해 가장 근원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다. 교육, 의료 등에 대한 욕망을 지속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 우리나라의 진보개혁세력은 그것을 하지 못했다.
전중환 : 하이트가 말한 것처럼, 조사를 해보면 유권자들은 현실적인 이득을 공약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투표하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는 크거나 직접적이고 즉시 이득을 약속할 때다. 가령 노인기초연금 20만원과 같은 공약이다. 많지 않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도덕적인 차원에서 비용을 감수하면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서 투표를 한다. 오바마 케어도 사람들의 윤리적인 토대, 돈 없다고 해서 죽어 가면 안 된다는 것을 건드려서 지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 줄 테니 찍어달라는 것은 효과가 없다. 코끼리의 호소를 해야 한다. 평소에 좋은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거 국면에서는 어떻게 윤리적인 토대에 호소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뭘 해준다기보다 ‘돈 없다고 치료 못 받으면 되겠나’ 등과 같은 얘기를 해야 한다.
- 바른 마음: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저/왕수민 역 | 웅진지식하우스
그동안 윤리와 정의를 다룬 책들이 도덕적 딜레마의 상황에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하이트는 직접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고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그 이유를 밝혔다.그가 굳이 ‘바른 마음’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은, 이 도덕이라는 감정이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서의 힘과 개인의 잠재력에 대한 측면을 새롭게 부각하기 위해서이다. 도덕은 사고와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과 신체적인 영역에서 더 중요하게 작용하며, 또한 집단적인 힘과 리더십의 문제, 개인의 행복이나 취향의 차원에서도 어떤 신념이나 이념보다 강력하다고 그는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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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