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고해성사는 아주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칸막이가 처진 어두운 고해소 안에서 사제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는 일련의 의식과 과정들은 영적이면서도 숭고하며 심지어 효율적이기까지 하다. 때로는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니까 ‘진짜’ 속마음.
일전에 몇 달 간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상담 선생님 앞에서도 속마음을 꺼내놓기가 힘들었다. 어머니뻘 정도 되는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아주 차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상담을 이끌어 주셨지만 결정적으로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아 결국 얼마 못가 중단하고 말았다. 알고 보니 나는 그런 걸 잘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진지하게 내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는 일에 일종의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몇 겹의 방어막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고 있다는데 나는 그 방어막이 조금 더 두껍거나 아니면 한 수 십 겹쯤 되는가 보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그러니까 스스로를 향해 많은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나가는 ‘혼자 놀기’ 비슷한 일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던 것은 방어막 따위가 아니라 단지 ‘용기’가 없었을 뿐이라는 사실. 나는 내 안에 고여 있는 추하고 나약하며 약해빠진 자아를 꺼내 보일 용기가 없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저지르고 있는 수많은 잘못들과 비뚤어진 생각들을 차마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제법 그럴싸한 인간이라는 포장을 걷어내고 진짜 ‘나’와 마주하기에는 나라는 인간은 너무나도 겁쟁이였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바뀐 건 없다. 여전히 나는 겉만 화려한 포장지 안에 숨어 지낼 것이고 또 한 번 상담의 기회가 온다 해도 입을 꾹 다물고 있으리라. 만약 고해소에 들어간다고 해도 비슷할 것이다. 진짜 속마음은 감춘 채 이런저런 자잘한(?) 잘못이나 털어놓겠지. 그러니 이 글 자체가 어쩌면 고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좀 치사하고 나약하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공개해 버리고 말았으니. 나 같은 인간에게 ‘조 힐’의 장편 소설 『뿔』은 아주 큰 공포로 다가온다.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한 쌍의 뿔을 얻게 된 주인공에게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감추어둔 어둡고 저속한 속내를 털어놓게 된다는 설정이니!
내 안의 악마
『뿔』의 주인공 ‘이그나티우스 마틴 페리시’(이그)는 자고 일어나 보니 머리에 작은 뿔 두 개가 돋아나 있다. 헤어진 여자 친구를 강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채 비뚤어진 삶을 살아온 주인공이기에 뿔의 출연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이 뿔, 묘한 능력을 가졌다. 누구든 이그 앞에만 서면 뿔의 능력 때문에 자신의 추악한 욕망과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그는 뿔이 상징하는바 그대로 점점 악마로 변해간다. 다른 이의 마음과 기억을 읽을 수 있게 되고 화염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설상가상 악마의 추종자들인 뱀마저 숱하게 꼬여든다.
『뿔』은 악마로 변해가는 주인공이라는 초자연적인 소재에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형식의 전개로 독자의 흥미를 끈다. 물론 나쁜 놈의 정체야 일찌감치 밝혀지지만 이드가 진실을 찾아가고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징벌을 내리게 되는 과정들이 기묘한 재미와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앞서도 말했지만 이그 앞에서 기꺼이 ‘내 안의 악마’를 꺼내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현재 이그와 동거 중인 글레나는 소설의 첫 몇 장에서부터 ‘식탐’을 고백하며 도넛을 쑤셔 넣는 화끈함을 보여준다. 병원의 접수원도, 우는 아기를 달래는 엄마도 이그 앞에서, 아니 이그의 뿔 앞에서 시커먼 마음을 토해낸다. 경찰관들도 예외 없다. 전형적인 백인 마초처럼 등장했던 두 경찰관이 자신들의 욕망을 충실히 표현하는 일화는 이 작품 곳곳에 숨은 비뚤어진 유머의 정수라 할 만 하다.
이그는 뿔을 통해 자신이 믿고 사랑했던 사람들조차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 존경하던 성직자는 뒤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인간이었고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듯 보였던 부모는 사실 이드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악마 이드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정상적이고 선한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개의 뿔과 삼지창, 그리고 불에 탄 붉은 피부를 가진 이드이다. 나는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악마에 대해 생각했다. 사탄, 즉 신의 대척점에 선 사악한 존재로서의 악마가 아니라 내 안에 깃든, 내 마음 속 심층에서 눈알을 뒤룩거리는 원초적인 욕망과 마음으로서의 악마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성선설을 믿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작은 악마를 품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욕심이라 불러도 좋고, 나약함이라 불러도 좋고, 그야말로 악한 마음이라 불러도 좋지만 아무튼 마음 한 구석에는 진득한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내 주위에는 그런 어둠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꽁꽁 숨겨 놓고 고해소나 상담소에서도 털어놓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도 있다. 어떤 유형의 삶이 더 바람직한지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다만 인간의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정확히 나뉜 것이 아니라는 생각만 어렴풋이 들 뿐이다. 실제로 『뿔』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초자연적인 호러로 시작해서 미스터리와 스릴러 장르까지 두루 섭렵하며 뻗어나가던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뭉클한 감동과 슬픔을 선사한다. 그 유려한 솜씨를 보면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편 소설 『하트모양상자』와 단편집인 『20세기 고스트』, 그리고 바로 이 작품 『뿔』로 영미 권 대중문학계의 인기작가 반열에 오른 ‘조 힐’은 바로 ‘스티븐 킹’의 아들이다.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작품을 읽으면 『뿔』의 곳곳에 스티븐 킹의 흔적을 발견하는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물론 두 사람의 작품 세계는 그 나이 차 만큼이나 다르다. 아버지가 익숙한 것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쪽이라면 아들은 새로운 것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그리고 내가 짐작하는 바, 스티븐 킹은 자신의 속마음을 마음껏 털어놓는 쪽일 것이고 조 힐은 그 반대일 것이다.
- 뿔 조힐 저/박현주 역 | 비채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케 하는 공포의 롤러코스터로 시작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몽환적 전개와 성장소설적 감동, 로큰롤의 대담함까지… 『뿔』은 서로 다른 맛을 한 번에 선사하는 환상문학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뿔이 돋아 있었다” 이 충격적인 서두만으로도 할리우드에 열띤 캐스팅 경쟁을 일으킨 소설 『뿔』을 한국어판으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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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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