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펠트 예은,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을까?
자신의 의지대로 음악을 콘트롤할 수 있는 것, 그건 툴(tool)을 갖게 된다는 뜻 그 이상도 아니다. 그래서 예은을 응원한다. 그녀가 자기 재능을 자기 뜻대로 활용할 수 있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글ㆍ사진 차우진
201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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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

 

원더걸스를 좋아한다. 특히 2011년에 발매된 두 번째 정규앨범을 좋아한다. 「Be My Baby」가 실린 그 앨범. 진작부터 사람들은 앨범으로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지만, 이 앨범은 타이틀 곡 외에도 꽤 괜찮은 곡들이 실렸다. 최근에 나는 SM이나 JYP, YG 같은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앨범이야말로 ‘시대에 역행해서’ 앨범에 의미를 내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 항상 이 앨범을 떠올린다. 아무튼, 여기서 원더걸스의 멤버인 예은은 첫 곡인 「G.N.O.」를 작사/작곡했는데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트렌디한 곡이었다. 아무래도 원더걸스의 복고적인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시도 중 하나로 들렸다.

 

인상적인 건 바로 그 동시대의 감수성


예은의 예명인 핫펠트(HA:TFELT)의 솔로 데뷔작 <Me?>는 이런 감각을 다시 한 번 깨우는 앨범이다. 예은과 이우민(collapsedone)이 공동 작곡한 앨범의 첫 곡 「Iron Girl」은 하나씩 힘주어 짚어가는 록 비트가 강한 의지를 담은 가사와 어울리며 앨범의 전체 인상을 좌우한다. 수록곡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Truth」와 「Ain’t Nobody」, 그리고 빈지노가 피처링한 「Bond」다. 「Truth」는 단번에 엑스엑스(THE XX)가 연상되는 비트를 깔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영국의 신예 싱어송라이터인 뱅크스(Banks)와 상당히 닮았다. 혹자는 라나 델 레이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녀보다는 시기적으로 뱅크스가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건 누구와 닮았다는 게 아니다. 이런 유사성을 짚으면서 우쭐댈 마음은 없다. 다만 지금 저 두 음악가들이 현재 영국 쪽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선 짚어 봐야할 것이다. 사운드클라우드 같은 음악 서비스에 가면 엑스엑스의 비트를 활용한 미니멀한 알앤비의 싱글들이 그야말로 흘러넘친다. 뱅크스는 지금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악가 중 하나지만 한국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어둡고 습한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뱅크스의 스타일은 한국에서는 대중적으로 소개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예은의 음악은 이 사운드를 동시적으로 소화하며 정면 돌파한다. 인상적인 건 바로 그 동시대의 감수성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트랙은 「Bond」다.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보컬의 리드 뒤에 이어지는 <007 시리즈>의 메인 테마를 변형한 비트가 등장하는 타이밍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빈지노의 랩도 예리하게 다듬어진 인상을 풍긴다. 곡은 전반적으로 예리하고 날카롭다. 디자인이 잘 빠진 자동차를 보는 기분이다. 「Ain’t Nobody」와 타이틀을 경쟁했다고 하는 후문도 있는데, 이 곡만으로도 예은의 미래를 충분히 기대하게 된다. 보컬의 톤에서 로드(Lord)나 엘리 굴딩, 버디 등이 연상되는데 아무튼 최근 여성 알앤비 보컬의 경향에 포함된다는 게 중요할 듯싶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온 힘을 다해 이전과는 다른 아이돌 싱어송라이터의 출현을 선언한다.

 

이때 싱어송라이터에 대해서 부연해야할 것 같다. 보통 ‘싱어송라이터’란 말은 마치 음악의 완성도와 예술적 지위를 보장하는 만능열쇠처럼 여겨진다. 수많은 보도자료와 비평이 그걸 전제로 움직인다. 하지만 싱어송라이터는 그저 사소한 재능 중 하나일 뿐이라고 본다. 특히 음악에서 이것은 전능하지도 않고 뭔가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우리가 글을 쓸 때 언어를 다룰 수 있는 것처럼 곡을 쓸 때 음표와 화성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아이돌에게 싱어송라이터란 말을 붙이는 것은 그가 아이돌과는 다른 지위를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음악을 좀 더 재미있게,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음악을 콘트롤할 수 있는 것, 그건 툴(tool)을 갖게 된다는 뜻 그 이상도 아니다. 그래서 예은을 응원한다. 그녀가 자기 재능을 자기 뜻대로 활용할 수 있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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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은 #핫펠트 #ain't nobody #HA:TFELT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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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

2014.08.11

핫펠트 예은씨, 이번 곡은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했다고하던데, 그래서 그런걸까요? 기대했던것보다 훨씬 좋은 노래가 탄생했네요. 특히, 뮤직비디오나 실제 공연에서 보여지는 현대무용과의 적절한 믹스. 외국에서도 한창 인기있는 뮤직비디오도 비슷한 컨셉이지만, 둘의 느낌이 서로 많이 달라 각자의 매력을 뽐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네요. 앞으로도 좋은 노래 많이 부르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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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

음악웹진 <weiv> 편집장. 『청춘의 사운드』를 썼다. 대체로 음악평론가로 불리지만, 사실은 지구멸망과 부동산에 더 관심이 많은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