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헤드윅>이 국내 공연 10주년을 맞아 백암아트홀에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조승우, 송용진, 박건형, 김다현, 김동완, 손승원 등 역대 헤드윅들이 총동원돼 저마다의 독특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7월부터는 ‘웅드윅’으로 불리는 최재웅 씨도 가세했습니다. 2009년과 2011년에 무대에 올랐던 그는 평소 깊이 있는 연기로 골수팬들이 많은 배우죠. 기자 역시 최재웅 씨의 팬입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라는 지령을 받고는 대놓고 다른 배우로 바꿔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과거 몇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관객으로 무대에 선 최재웅 씨를 만나는 것은 좋지만, 기자로 무대 밖의 그를 만나는 것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자들이 인터뷰하기 힘든 배우로 꼽는 최재웅. 그러나 어려운 숙제를 껴안듯 기자는 다시 그를 만나야만 했습니다.
“유언비어예요. 아니 왜 그런 얘기가. 도대체 다른 배우들은 인터뷰 때 어떻게 얘기하는지 궁금하네요.”
기자들이 기피하는 인터뷰이라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극구 부인하네요(웃음). <헤드윅>에는 7월부터 참여하고 있습니다. 캐스팅이 많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꼴로 무대에 서는데, 감정선을 유지하기에는 더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는 않아요. 짜인 리듬이 중요하고 상대방과 주고받는 작품이 아니라 어차피 혼자 하는 거라서 상관없어요. 리듬을 제가 만들고 조절하면 되니까요.”
10주년이라서 <헤드윅>이라는 작품 자체도 의미가 있겠지만 무대에 서는 배우들도 남다른 마음일 것 같습니다. 특히 배우가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작품인데, 최재웅 씨는 어떤 것에 주력하고 있나요?
“배우마다 독특한 폼이 있고 자기 스타일이 있는데, 오랜만에 대본을 봤더니 있는 걸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대본도 원본에서 분량도 줄어들고 많이 바뀌었거든요. 이미 많이 함축해 놓은 거라서 이걸 굳이 내가 다르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대본을 토대로 안 벗어나려고 해요. 지난 시즌 때는 욕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해봤는데, 이번에는 잘 정리된 것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이에요.”
<헤드윅>의 관객층은 무대에 서는 배우보다 어린 편입니다. 사실 내용이 대중적이거나 정서가 우리와 맞지는 않는데 이렇게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배우들도 모두 하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잖아요?
“저는 기피하는 작품이었어요, 처음에는. 글쎄요, 음악이 워낙 좋으니까. 작품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노래를 좋아하시고, 신나는 록이 잘 어우러지면서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것 같아요. 또 더 깊게 들어가는 분들은 가사도 굉장히 좋아하시고. 저 같은 경우는 초반에는 혼자 주고받고, 혼자 쇼잉을 해야 하니까 정신없기도 하고 어려웠어요. 그런데 하고 나니까 무척 도움이 되더라고요. 혼자 하다 보면 포즈가 생길 때가 있는데 처음에는 어떡해야 할지 몰랐죠. 분위기가 다운되면 업 시키느라 걱정하고. 그런데 이제는 그런 상황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어요.”
여장인데, 다른 작품과 다르게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살을 뺀다든가, 피부 관리를 받는다든가...?
“전혀 없어요. 제모 정도? 처음에는 예쁘게 보이려고 했는데, 어차피 헤드윅이 보여주려는 건 그런 게 아니니까.”
역대 헤드윅들이 출연하다 보니 어쨌든 여장이 가장 예쁜 배우를 꼽을 것 같은데요.
“(김)다현이가 제일 예쁘죠. 원래 예쁘게 생겼으니까. 저는 안 어울리지만 몸이 여자 같다고. 허리가 얇거든요. 허리는 가늘고 엉덩이는 크고 허벅지는 두꺼우니까 오히려 여자 같대요.”
김다현 씨는 올해 최고의 여장 배우로 뽑히지 않을까 싶네요. 최재웅 씨는 연기파, 심리적으로 잘 파고드는 배우로 평이 나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대극장 공연은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보기에 그런 거예요. 많이 했어요. 외국 사극을 많이 안 한 거죠. 그런 걸 해야 대극장에서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런 이미지가 있는 것 같긴 해요.”
외국 사극, 신선한 표현이네요. 이른바 대형 라이선스 작품은 의외로 많이 하지 않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재미없거든요. 재미없는 게 아니라 제가 뭘 할 수 있는 꺼리들이 줄어든다는 말이 맞겠네요. 그런 작품은 어차피 다 정해져 있거든요. 기피하는 건 아니고, 하다 보니까 이런 쪽으로 가는 것 같아요.”
공연 12년째인데, 질리지는 않으세요?
“아니요. 제 직업인데요. 이 재밌는 게 왜 질려요. 저는 다른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다른 건 전혀 모르고 엄두도 안 나요.”
8월 10일부터 방영되는 OCN 드라마 ‘리셋’에서는 천정명 씨와 라이벌 구도를 이룬다고 들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쪽은 계속 생각이 있나 봐요.
“들어오면 열심히 하는 거죠. 제가 (조)승우도 아니고(웃음).”
초반에 신경 써서 조금 길게 답을 하던 최재웅 씨는 다시 시큰둥한 답변으로 일관했습니다. 아내와도 이렇게 대화하는 걸까요? (최재웅 씨는 2003년 <지하철 1호선> 의상팀에서 일했던 그녀와 8년 연애 끝에 2011년 결혼했어요.)
“이렇게 라니! 저 말 많이 해요.”
아니면 이 기자가 언어의 유희나 내 유머를 알아듣나 테스트 하는 건가요(웃음)?
“아니에요. 아니, 무슨(웃음). 그런 건 있어요. 인터뷰 같은 건 말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다고 할까.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요.”
문득 배우들도 기자의 얼굴을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여러 번 만났으니 덜 부끄럽지 않을까요(웃음)? 얘기가 나온 김에 결혼 이후 달라진 건 없는지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로 철이 들었다거나 다소 현실적으로 바뀌었다거나.
“똑같은 거 같아요. 어차피 그 친구도 의상팀 출신이라 공연을 잘 이해하고 서로 연애를 오래해서 특별히 달라졌다기보다는 더 즐긴다고 해야 하나? 딸이 8개월 됐는데, 아기를 낳고 지나다 보니까 공연보다는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고, 재밌고. 애가 예쁘니까 일찍 들어가게 되는 건 있어요.”
트위터에 야구하는 사진이 있던데요.
“뮤지컬 배우들로 구성된 인터미션이라는 야구팀이 있어요. (오)만석이 형이 단장이고 저는 내야수죠. 공으로 하는 운동을 좋아해요. 다들 할 걸요. (송)용진이 형은 축구에 빠져 있고, (박)건형이 형은 야구해요. 저도 헬스처럼 지루한 거 빼고는 운동은 다 좋아해요.”
예전에 재밌게 사는 게 목표라고 했던 게 생각나는데, 서른여섯 살의 최재웅 씨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뭔가요?
“그런 것들을 따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편이에요. 여전히 재밌게 사는 게 제 목표예요.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이 정말 재밌었던 것 같아요.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운동하고. 그러다 대학 가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군대에서도 뭐하고 살까 걱정하다 보니까 재미가 없더라고요. 데뷔 하고 나서도 이런저런 걱정할 때가 있었는데, ‘어차피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계획대로 사는 것도 아니니까 재밌게 살아야 한다’로 정리가 돼서 그렇게 살고 있어요. 결론적으로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순간순간 재밌게 즐기면서 살면 돌아봤을 때 재밌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재밌고요.”
이번에도 최재웅 씨와 인터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녹음한 걸 다시 들어보니 여전히 기자가 말을 더 많이 했고, 조금은 시큰둥한 답변에 무안하지 않으려고 과하게 웃었던 게 들리네요. 그래도 ‘최재웅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좀 더 편해진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기자는 여전히 최재웅 씨 팬입니다. 무대 밖에서 그는 기자를 힘들게 하는 인터뷰이지만, 무대 위에서 그는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배우니까요. 뮤지컬 <헤드윅>은 9월 28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무대를 이어갑니다. 아직 역대 헤드윅들이 모두 출연하지 않은 만큼 또 어떤 배우가 새롭게 무대에 설지도 궁금하네요. 일단 기자는 ‘웅드윅’부터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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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Fokiroll
201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