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말했다. 인간은 다시 완전한 모습이 되기 위해 사랑을 한다고. 아주 오랜 옛날, 샴쌍둥이처럼 본래 두 사람이 한 몸이었던 인간은 신들에게 저항하다 신의 분노를 샀다. 신들은 다시는 자신에게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반으로 갈라 현생 인류와 같은 모습을 만들었고, 그 결과로 인간은 평생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에로스적 사랑은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려는 인간의 발버둥인 셈이다. 대부분의 로맨스 드라마가 제공하는 달콤한 환상 역시 이런 운명적 사랑을 전제한다. 드라마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단 하나뿐인 사랑을 찾을 수 있노라고, 나보다 날 더 잘 이해하는 또 다른 자신을 찾아 완전한 한 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로맨스 장르가 태생부터 보장하던 판타지다.
여기 이런 운명적 사랑을 묘사하는 또 다른 드라마가 하나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제목부터 두 남녀 주인공의 운명적 사랑을 암시하는 이 작품, 진행될수록 흥미로운 면면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로맨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우연한 만남으로 인연을 시작해 필연적 사랑을 찾는다. 황당할 정도로 놀라운 우연을 거듭해 남녀 주인공은 서로에게 존재를 각인시키고, 드라마는 결국 그들이 운명임을 암시한다. 여기서 ‘운명’은 숙명과 같은 의미로 어떤 논리적 인과관계나 노력 여부를 포함하지 않는 결정론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이런 운명 속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조차 예정된 결과를 위한 톱니바퀴 역할을 할 뿐이다.
이것을 로맨틱 코미디 버전으로 재해석해볼까. 운명은 두 주인공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에 빠질 것을 예정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바이블인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김선아)과 진헌(현빈)은 호텔 남자 화장실에서 실연당한 삼순이가 통곡할 때, 호텔 베이커리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우연히 계속 마주쳐 인연을 이어나가고,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은찬(윤은혜)과 한결(공유)은 은찬을 남자로 오해한 상태에서 호텔 방에서, 비 오는 길거리에서 거듭 관계를 맺어 나간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 이르면 이런 우연은 더욱 견고히 쌓인다. 제목부터 ‘운명’을 말하는 드라마는 반복되는 우연으로 그들의 운명을 강조한다. 두 남녀 주인공 이건(장혁)과 미영(장나라)는 청혼 준비와 사소한 심부름을 위해 나섰다가 사탕가게에서 만나 우스운 인연을 맺고, 심지어 이런 우연은 연거푸 반복되어 뜻하지 않은 하룻밤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나마 끝났다면 둘 모두 성인남녀인데다 반쯤 심신상실 상태였으니 어쩔 수 없는 실수였다고 생각하면 될 텐데, 운명은 당연히 미영의 뱃속에 아이를 잉태시킨다. 손이 귀한 건의 집안에서는 미영을 쌍수 들어 환영하고 둘의 파란만장한 결혼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우연한 하룻밤으로 건과 미영이 인연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서로 갈라진 두 명의 내가 다시 한 몸이 되기 위해 느끼는 욕구가 성적 사랑, 즉 에로스(Eros)다. 신화에서 풍요의 신인 아버지 포로스(Poros)와 빈곤의 신인 어머니 페니아(Penia) 사이에서 태어난 에로스는 언제나 제 빈곤을 인지하고 부족함을 채우길 갈망하는 신이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나에 대한 갈망이며,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갖는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구다.
성적 관계로 인연을 맺은 이건과 미영은 결혼 생활을 시작하며 스스로 얼마나 결핍된 사람이었는지 깨닫고, 자신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상대방임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세상 무서울 것 없지만 오직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연인은 없었던 건에겐 다정하고 세심한 미영이, 자신감 없고 소극적인 미영에겐 당신 자체로도 값지고 소중하다 말해주는 건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에로스가 서로의 빈곤을 깨우고 충족시킨 셈이다. 그야말로 운명적 시작이라 할 법하다. 게다가 건과 미영에게 있어 결핍을 일깨운 것이 서로라는 점은 13회 이후의 전개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운명적으로 시작되었던 그들의 인연은 12화에서 끝난다. 12회, 유전병이 발발할 것을 염려한 건은 미영을 차가운 말로 밀어내고 충격을 받은 미영은 교통사고로 아이를 유산하고 만다. 아이를 잃은 미영은 다니엘(최진혁)에게 같이 떠나자 청하고, 둘은 함께 프랑스로 떠난다. 3년 후 유망한 작가가 되어 돌아온 미영은 성공적으로 첫 전시회를 열고, 우연히 건과 마주치지만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하며 냉정히 돌아선다.
이 부분, 수없이 많은 우연으로 만들어졌던 그들의 인연이 정말 끝나는 시점이 될 수도 있었다. 미영의 단호한 의지는 드라마가 묘사하던 운명조차 거스른 것처럼 보이고, 이미 그들의 인연은 너무 많이 흘러왔으니까. 하지만 둘의 인연을 다시 잇는 것은 건의 의지다. 계속 미영의 자취를 쫓던 건은 몰래 그녀의 전시회를 찾아 화환을 보내기도 하고, 그녀가 그린 그림 속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그림을 구입하기도 한다. 3년간 건의 곁을 지키던 세라에게도 흔들리지 않던 건의 모습은 미영에 대한 그의 갈구를 짐작케 한다.
에로스는 성적 욕구에서 나아가 결핍에 대한 자각이 되고, 필연적으로 충족에 대한 욕구가 되기 마련이다. 에로스를 성적 사랑에만 국한하지 않는 해석은 여기서 기인한다. 드라마의 터치가 가볍고 발랄한 데 비해 건의 감정은 이런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발전한다. 하룻밤의 욕망은 미영과의 관계를 낳았고, 그녀는 건의 결핍을 깨닫게 했으니까. 플라톤의 말처럼 에로스를 통해 결핍을 깨닫는 것 역시 운명이라면,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운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터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라는 제목이 심심하고 우스웠을 시청자들에게 이런 해석은 새롭지 않을까. 운명이라는 말은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은 심심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감정도 행복한 결말도 예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적 사상보다 이쪽이 훨씬 더 매력적인 해석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신선하고 기발한 드라마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 클리셰는 지나칠 정도로 넘쳐나고 이야기는 뻔히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흐른다. 하지만 드라마 속 세심한 연출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놀라울 정도다. 무엇보다도 우연히 누군가와 만나 운명처럼 자신의 결핍을 깨닫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 그 일련의 마법을 그리는 데 있어서만큼은 탁월한 실력을 자랑한다. 사랑의 보편성을 묘사하는 데 있어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고, 대중의 공감을 사야 할 로맨스로서 가장 출중한 능력을 갖춘 셈이다. 천천히 상승하는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이 이를 증명한다.
건과 미영의 당연한 해피엔딩보다 그에 다다르는 과정이 궁금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제 빈 곳을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서로뿐임을, 결핍을 깨닫게 해 준 당신이 나의 사람임을 깨닫게 될 건과 미영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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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
사람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길어 주절거리는 것이 병이 된 사람. 즐거운 책과 신나는 음악, 따뜻한 드라마와 깊은 영화,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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