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주위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30-40대 여성을 만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글ㆍ사진 한미화
201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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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30-40대 여성을 만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몇 년 전만해도 결혼이 늦어지는 선후배를 만나면 '더 늦기 전에 어서 결혼을 해야 할 텐데'하고 걱정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이 든다. 때로는 '촌스럽게 아직도 결혼을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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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전후의 여성들을 만나보면 이제 우리 시대의 여성들이 결혼에 대한 과도한 환상이나 기대를 품지 않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그렇다고 결혼을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 결혼 앞에서 이런 저런 고민이 많다.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이 국내 여성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누린 것 또한 이런 망설임에 대한 공감 덕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같은 제목부터 여성들에게 전하는 울림이 절절하다. 이토록 고민할 바에야 그냥 해버려 싶지만, 덥석 해버릴 만큼 결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쟁에 나가기 전에는 한 시간을 기도하고, 바다에 나가기 전에는 두 시간을 기도하고, 결혼하기 전 세 시간을 기도하라”는 말도 있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소설 제목도 있다. 안 해도 탈이지만 해도 어렵다.

 

혹 오늘도 결혼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함께 보고 싶은 그림책이 있다. “이대로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하고 고민하는 미혼 여성들도, “내가 어쩌자고 결혼 같은 걸 했을까” 투덜거리는 기혼여성도 함께 웃을 만한 책이다. 옛이야기를 패러디하는 작업으로 유명한 존 세스카가 글을 쓰고 스티브 존슨이 그림을 그린 『개구리 왕자 그 뒷이야기』다. 


그림형제의 개구리 왕자』는 공주와 왕자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끝났지만 과연 그 둘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뒷이야기를 상상으로 풀어낸 그림책이다.개구리 왕자』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아름다운 공주가 샘물에 빠트린 금공을 개구리가 찾아주면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기로 약속하며 시작된다. 그림형제의 원전에서는 개구리와 한 침대에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던 공주가 개구리를 벽에 내동댕이친다. 그때 개구리가 왕자로 변하고 침대에서 함께 밤을 보낸 두 사람은 충성스러운 신하 하인리히와 함께 왕자의 나라로 떠난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아마 공주가 개구리를 내던졌다는 설정이 불편했나 보다. 결론 부분이 공주가 개구리에게 잘 자라는 키스를 하자 마법이 풀렸고 둘은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미국인 존 세스카 역시 이 버전을 패러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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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자 삶이 시작되듯, 옛이야기는 행복하게 끝났지만 개구리 왕자와 공주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왕자는 더 이상 개구리가 아니지만 본성이란 변하지 않는 법이라 벽지에 그려진 잠자리를 보고도 혀를 낼름거리고, 밤마다 개골개골 코를 곤다. 급기야 공주는 “끈적거리는 개구리에게 입을 맞추다니 내가 정말 미쳤지! 차라리 당신이 개구리로 그대로 있는 편이 우리에게 더 좋았을 거야”라고 말해버린다. 이 말을 들은 왕자는 그날로 집을 나가 마녀를 찾아다니며 자신을 개구리로 되돌려 달라고 부탁한다. 집밖에서 갖은 고생을 다한 왕자는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오고 자신을 걱정하고 있던 아내를 보고 사랑을 되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성에 대한 암시가 가득했던 원작과 달리 존 셰스카의 패러디는 결혼생활을 빗댄 코믹 버전으로 태어났다. 사랑해서 결혼했을 지라도 결혼은 두 사람을 때로 원수로 만든다. “처음에는 팔이 하나 끊어지고 다리가 하나 잘려도 좋을 정도로 사랑”했을지라도 같이 살다보면 종내는 “팔과 다리를 물어뜯으며 싸우고” 만다. 존 셰스카는 사랑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가족이데올로기를 조롱한다. 어쩌면 결혼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을 해야 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늘 공주처럼 개구리였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고 불평하며 평생을 보낼 것이다. 그럼에도 존 셰스카의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왕자는 공주가 자신을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주에게 입을 맞춘다. 물론 그러자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궁금하신 분은 그림책을 보시라).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란 소설에서 주인공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나이가 들자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웃의 하밀 할아버지를 찾아가 둘이 결혼하라고 부탁한다. 할아버지는 “오십년 전에 내가 로자 부인을 만났더라면 결혼했을지도 모르겠구나”라며 거절의 뜻을 밝히지만 모모는 “그때 결혼했으면 오십 년 동안 서로 미워하게 됐을 거예요. 지금 결혼하면 미워할 시간이 없어요.”라고 답한다. 모모의 말처럼 결혼은 서로 미워할 시간이 없을 때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결혼이라도 사랑이 현실이 되는 한 때때로 미워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금도 개구리 왕자를 찾는 공주들, 왕자인줄 알았으나 실은 개구리인 남편을 보고 한숨 쉬는 아내들이여, 그림책을 보며 함께 보며 수다나 떨자.

 





개구리 왕자 그 뒷 이야기

존 셰스카 저 | 보림 

마법에서 풀려나 왕자로 변한 개구리가 공주와 결혼하는 것으로 끝나는 '개구리 왕자' 이야기의 패러디 그림책. 그 뒤에도 과연 개구리 왕자와 공주는 영원히 행복했을까? 과거의 버릇을 못 버린 개구리 왕자, 잔소리만 심해진 공주,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과정이 코믹하게 전개됩니다. 그림에서도 공주와 왕자는 모두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회화적인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마스다 미리 글,그림/박정임 역 | 이봄

남자친구도 애인도 없는 30대 중반의 수짱은 카페 매니저로 일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결혼을 안 해도 좋을지 고민이 많다. 30대 여성의 일상과 고민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만화책.

 

 

 



#개구리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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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