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패배할 수는 없어!
지금은 죄가 아니라도 생각할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글ㆍ사진 임재청(서평가)
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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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더구나 그건 죄악이거든.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죄가 아니라도 생각할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게다가 나는 죄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난 죄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데다 죄를 믿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아. 고기를 죽이는 건 어쩌면 죄가 될지도 몰라. 설령 내가 먹고살아 가기 위해, 또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한 짓이라도 죄가 될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죄 아닌 게 없겠지.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노인과 바다』

 

살라오


스페인 말로 살라오는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무언가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인생의 커다란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 끝이 의지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 산티아고는 살라오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노인은 84일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디도 낚지 못했으니 운이 다했다고 할 정도로 형편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노인은 배짱이 있었습니다. 85를 재수 좋은 숫자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내장을 빼고도 450킬로그램이 넘는 고기를 잡아 가지고 돌아올 신념을 잃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어느 누구보다도 운명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바다를 ‘라 마르’라고 불렀습니다. 바다를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바다를 나쁘게 말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했습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달이 여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어부들은 가운데 몇몇은 바다를 ‘엘 마르’라고 남성형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팔아 번 큰돈으로 모터보터를 사들인 부류들로 바다를 두고 경쟁자, 일터, 심지어 적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디마지오


그는 어떤 어부보다도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정확히 그가 바라는 수심에다 미끼를 놓고 그곳을 헤엄쳐가는 고기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다만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만 그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로 여겨 오히려 빈틈없이 일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노인은 굉장히 큰 고기가 미끼를 입에 물고 도망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기한테 끌려가면서 낚싯줄을 어딘가에 단단히 잡아맬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몸이 밧줄 걸이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고기가 다이빙 선수처럼 온 몸을 물 위에 드러냈다가 유연하게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마치 자기가 얼마나 큰지 자랑이라도 하려고 솟아오른 것 같다고 생각한 노인은 고기한테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고기가 자신보다 힘이 세더라도 자신보다는 똑똑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노인은 자신의 의지와 지혜로 고기와 맞서 싸웠습니다. 이틀이 지나도록 결과를 모르는 상황에서 노인은 양키스의 디마지오를 생각하며 그에 못지않은 사람처럼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디마지오는 발뒤꿈치에 뼈돌기(발꿈치에 잘 생기는 돌기)가 박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참고 최후까지 멋지게 승부를 겨뤘습니다.

 

패배할 수는 없어


마침내 노인은 모든 고통과 마지막 남은 힘, 그리고 오래 전에 사라진 자부심을 총동원해 고기의 마지막 고통에 작살을 꽂았습니다. 그렇게 싸움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피 냄새를 맡은 상어가 우연히 나타나자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에게는 단호한 결의가 있었지만 희망은 별로 없었습니다. 상어가 공격해 오는 걸 막을 수 없더라도 혹시 해치울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노인은 상어의 습격을 받아 몸뚱이가 30kg쯤 뜯겨져 나간 고기를 더 이상 바라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기가 습격을 받을 때마다 마치 자신이 습격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윽고 고기를 공격한 상어를 죽이고 나서 노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은 파멸을 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의 말처럼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와 패배를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패배할 수는 있어도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삶은 용감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런데 실패는 이런 용감함마저 없으며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반면에 패배는 노인처럼 84의 끝에 다시 85에 희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무언가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85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패배를 아는 사람만이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자 꿈


노인은 고기와 싸움에서 지고 말았을까요? 노인은 자신이 고기한테 진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노인의 꿈에는 오직 여러 지역과 해안에 나타나는 사자들뿐입니다. 김욱동은『노인과 바다』「작품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언뜻 보면 ‘패배’와 ‘파멸’ 사이에 이렇다 할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실제로 사전을 보아도 전자는 어떤 대상과 겨루어서 지는 것을 뜻하고. 후자는 파괴되어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파멸’은 ‘패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헤밍웨이는 산티아고의 입을 빌려 물질적 승리와 정신적 승리를 엄밀히 구분 짓고 있다. 즉 ‘파멸’은 물질적 ? 육체적 가치와 관련된 반면, ‘패배’는 어디까지나 정신적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노인은 육체적으로 파멸을 당해도 정신적으로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노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자 꿈이라니! 지금 이 순간 패배를 정면 돌파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사자 꿈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갈 커다란 용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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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저/이인규 역 | 문학동네
쿠바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헤밍웨이 특유의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1952년 9월 『라이프』지에 발표했고, 당시 작품이 실린 『라이프』지 9월호는 불과 이틀 만에 5백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에 힘입어 일주일 만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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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바다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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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

2015.01.27

앙ㅋ님..패배할 수 없다는 노인의 음성이 너무나 고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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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5.01.22

언뜻 보면 ‘패배’와 ‘파멸’ 사이에 이렇다 할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실제로 사전을 보아도 전자는 어떤 대상과 겨루어서 지는 것을 뜻하고. 후자는 파괴되어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파멸’은 ‘패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헤밍웨이는 산티아고의 입을 빌려 물질적 승리와 정신적 승리를 엄밀히 구분 짓고 있다. 즉 ‘파멸’은 물질적 ? 육체적 가치와 관련된 반면, ‘패배’는 어디까지나 정신적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라는 교훈이 가득든책이지만 영어로 읽어도 읽어도 헤밍웨이 작품중 가장 지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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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청(서평가)

책만 보는 바보. 그래서 내가 나의 벗이 되어 오우아(吾友我)을 마주하게 되지만 읽은 책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때만큼은 진짜 외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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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