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이제까지 써 왔던 모든 글과 다름을 밝혀 둔다”
13년 전, 작가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통해 신과 재회한 경험을 들려준 바 있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이름’을 부르짖었고 그분은 “나 여기 있다. 얘야, 난 단 한 번도 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다독임으로 응답하셨다. 그렇게 그녀는 먼 길을 돌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신의 존재와 사랑에 대한 의심은 길 위의 돌부리가 되어 발목을 붙잡았다. 그때마다 신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말을 건넸다. 운명처럼 다가온 그 순간들을 작가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안에 기록해 놓았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 출간된 후, 제 생활의 절반 이상은 신앙에 대한 고민들이 차지하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 영혼, 영원에 대한 생각을 젊었을 때보다 더 많이 하게 돼요. 그런 부분에 대한 깨달음이 많이 있었고요. 마침 주변에서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 상담해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를 쓰자고 생각했어요.”
수도원 기행의 두 번째 여정은 경북의 왜관 수도원에서 시작되어 미국의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작가의 발길을 이끈 것은 우연인 듯 운명처럼 찾아온 사건이었다.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를 쓰기 위해 왜관 수도원을 찾아갔던 것이다. 공지영 작가는 한국전쟁 당시 1만 4000여 명의 피난민을 구조한 미국인 선장 레너드 라루의 이야기에서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다. 그리고 그의 흔적을 더듬는 과정에서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에 이르게 됐다. 그곳에서 레너드 라루 선장이 마리너스 수사로서 여생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한국의 왜관 수도원에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의 인수를 요청했다. 60여 년 전 그가 이뤄 보인 기적이 작가로 하여금 『높고 푸른 사다리』를 낳게 했고, 그녀는 이끌리듯 다시 수도원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길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걸음을 옮기며 수도원을 찾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작가가 수행과도 같은 떠남을 계속한 이유, 그리고 그 이야기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에서 들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에서 만난 K의 한 마디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해준다.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도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없었던 K에게 공지영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하느님을 만나고 그 분의 뜨거운 사랑을 깨닫게 되었던 순간들을 듣고 깊은 위로를 받은 K는 작가에게 묻는다. “공 작가님, 왜 이런 이야기를 책에 쓰지 않으세요?”라고.
“그 말을 듣고 제가 경험한 바를 책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에서 그 분의 이야기를 한 것도 같은 이유고요. K의 고민은 한 번쯤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이후에도 같은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이 이야기를 한 번은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K의 제안을 받고 작가는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래도 제가 여성 작가들 중에서 논리도 좀 되고 나름 비판적이고 지성적인 소설가예요. 이건 좀 이상하잖아요.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다 그러는 것 같잖아요’. 그러나 결국 그녀는 ‘할렐루야 아줌마’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각오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를 펴냈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이고 지성적인 소설가라는 대중들의 평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책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문 아닌 경고문도 적어놓았다.
먼저 이 글은 내가 이제까지 써 왔던 모든 글과 다름을 밝혀 둔다. (중략) 그러므로 이제까지 내가 발표했던 작품에 대한 기대만을 가지고 이 책을 선택하신 분은 이 서문만 읽고 그냥 이 책을 내려놓기를 권한다. 이 책은 당신을 아주 당황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곳에 내가 써 내려가게 될 체험들을 할 당시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p. 5~6
희망을 찾지 못하는 시대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동시에 그녀는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복합적이고 아주 절절한 동기가 필요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를 쓰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었던, 그 절절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야기가 무엇이었기에, 이토록 자신의 깊은 상처를 드러내 보이면서까지 말하기를 멈추지 않은 걸까. 쌓이고 쌓이도록 담아두기엔 너무 버거웠던 탓일까, 비슷한 상처를 가진 다른 이를 위로하기 위함이었을까. 어쩌면 둘 다였을까.
“저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이야기들이니까 쓰게 된 것도 있고요. 또 다른 이유는, 지금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희망을 찾지 못하잖아요.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에 더 그런 것 같아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의 집필을 세월호 참사 이후에 시작했거든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두에게 ‘나처럼 힘든 사람도 희망을 갖고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절대자의 따뜻한 시선을 믿고 꽉 붙들고 있다면 세파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거든요. 내적인 준비가 되어있는 거죠.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몸을 따뜻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겨울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시기를 잘 넘기도록 준비할 수는 있잖아요.”
우리의 아이들을 곁에서 떠나보내야 했던 슬픈 시간들을 견디면서 공지영 작가는 ‘소피아 언니’를 떠올렸다고 했다. 순례에 함께 참가하며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된 그녀는 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고통을 맞았다. 그러나 비틀거리는 자신을 붙들어주시는 그 분에게 기대어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공지영 작가가 “세월호 엄마들을 위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다. 작가는 자신의 딸에게 전하는 말을 빌려 위로를 건넨다.
“위녕, 엄마가 생각해 봤는데, 할머니가 엄마 낳을 때 엄청 난산이셨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죽을 뻔하셨대. 그런데 거꾸로 말이야, 아기였던 엄마도 얼마나 힘들었겠니. 편안한 자궁을 나와 좁은 산도 안에서 몇 시간을 고통스러웠을 거 아니야. 그렇게 오래 고통을 겪고 태어나면 사람들이 기뻐하잖아. 난산의 시간을 생각하며 울지는 않잖아. 만일 하늘나라도 그렇게 가는 거라면 순산이 있고 난산이 있겠지. 그 친구들 난산 끝에 하늘나라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냥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p. 178
신과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그녀가 건네는 위로는 아무런 힘도 없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소중한 이들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지금 나의 눈앞에, 나의 육체 곁에 있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그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마음을.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만이 남은 자들에게 허락된 선택일 지도 모른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저는 알지 못하지만, 그곳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니까 삶이 훨씬 더 좋아졌어요. 제가 죽고 난 후에 ‘사후 세계는 없더라’하고 생각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곳의 존재를 믿었던 이 삶이 훨씬 행복했으니까요. 그런 곳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을 때보다 훨씬 행복해졌어요.”
작가는 하느님과 만난 초자연적 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면서도 끝까지 이성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역시 전하고 있다. “종교라고 해서 이성이나 과학에 절대로 반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과 함께 가는 것이다”라는 균형 잡힌 시각 덕분에 독자들은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조차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힘든 시간들이 없었다면 하느님께 돌아가지 않았을 것
오랜 냉담을 끝내고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후 “인간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그녀는,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에 너그러워졌다고 고백했다.
“자신한테 너그러운 사람만이 남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가 있거든요. 저는 신의 경험을 통해서 빛을 비추어서 자신을 바라보게 된 거예요. 제가 용서해줘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니까 남의 잘못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진 거죠. 사실은 내 안에 성녀에서부터 살인자까지 모두 들어있는 거예요.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을 뿐이지, 가능성은 내재되어 있는 거죠.”
아픔과 실수로 점철되어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자, 다른 이 역시 나와 같이 실수하고 고통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무리 부족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 분께서는 똑같이 뜨겁게 사랑하신다는 사실에도 눈뜨게 됐다. 그 마음을 믿기에 당장의 고통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분명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행하시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만난 이후에 좋은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이것도 결과적으로 나한테 유익할 것이다’라고 믿었죠. 일종의 선한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믿으니까 그런대로 견딜만한 것 같기도 하고요. 이 모든 것이 합리화라 하더라도, 어떤 의미에서는 일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 일을 대하는 제가 편안하고 느긋하게 임하니까 아무래도 좀 낫지 않겠어요? 설사 결과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내가 덜 힘들잖아요.”
그 분의 큰 계획안에서 때때로 고통도 찾아오는 것이라면, 공지영 작가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아파해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길을 잃고 헤매는 그녀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함이었을까. 생각이 이에 미치자 문득 짓궂은 궁금증을 품게 됐다. 그토록 아픈 시간들이 없었다면 그녀의 선택은 달라졌을까.
“그렇게 힘든 시간들이 없었다면 하느님께 돌아가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나중에 내가 잘 되면 찾아가자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웃음). 자식들이 그렇잖아요. 군대에 가서 서럽고 춥고 배고파야 엄마 생각이 나지,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 때는 엄마 전화도 귀찮아하잖아요(웃음). 하느님을 떠난 후에 제가 아파했던 것도 비슷해요. 엄마 말 안 듣고 추운 날 옷을 얇게 입고 나가면 고생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하느님께서 저를 돌아오게 하려고 일부러 아프게 하지는 않으셨을 테고, 제가 그 분을 떠나왔기 때문에 추웠던 거죠. 제가 만약에, 만약이라는 건 인생에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하느님께 돌아갔더라면 지난 선택들은 안 했을 거예요.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생각하면, 인생에는 버릴 게 없더라고요. 더군다나 작가에게는 더 버릴 게 없고요. 제가 작가가 아니더라도 인생에는 버릴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다 주워보면 거름이 되는 거죠.”
수도원 안에는 사람들의 염원이 맺혀있었다
다시 하느님과 만난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되어준 이는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의 안젤름 그륀 신부였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를 집필하면서 직접 그륀 신부와 만나기도 한 작가는, 오랜 시간 그의 책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발견하며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안젤름 그륀 신부의 책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에서 “우리는 가끔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우리의 배심원으로 앉혀 두고 언제까지나 피고석에 앉아 변명을 지속하려고 한다”는 구절을 읽고 “천둥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바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인생을 심판하는 권한을 쥐여 주고 ‘언제까지나!’ 피고석에 앉아 변명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아 버린 것이다”라는 고백을 들려준다. 결국 우리를 괴롭히는 건 언제나 우리 자신인 걸까. 공지영 작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항상 1차 원인은 외부에서 왔어요. 그건 엄연한 현실이에요. 그걸 거부하면 ‘모든 게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저는 그 생각에는 반대해요. 예를 들면, 지금의 젊은 친구들이 힘든 게 내부에서 오는 탓은 아니거든요. 분명히 시스템 상의 문제 같은 게 있어요. 그리고 실제로 추웠기 때문에 추워했던 거예요. ‘네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춥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건 거짓말인 거죠. 기온이 내려가는 건 현실인 거고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거죠. 제가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
공지영 작가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른 이의 상처를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이 지독하게 앓았던 경험이 있기에 그 아픔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위로와 치유의 손길을 건네는 것뿐이다. 물론 하느님을 다시 만난 이후 공감은 더욱 짙어졌다.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이제는 그 분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요즘 그녀는 기도할 때마다 함께 부르는 이름이 많아졌다고 했다. 자신에게 고민을 상담해 온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은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을 때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기도의 효험이 ‘끝내준다’는 것.
“저도 놀랐어요. 그렇게 효험이 있는지 처음 알았거든요. 저의 개인적인 이익과 긴밀하게 관련된 기도는 안 들어주셔도, 저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을 위한 기도는 들어주시더라고요(웃음). 저 역시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온 거죠. 이름도 모르는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주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회심하게 된 거고, 안전하게 지내온 거죠. 기도에는 분명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도라는 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거거든요.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기도하는 거잖아요. 그게 바로 겸손함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다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기도를 통해 더 큰 존재에게 의탁하는 거죠. 교만하고 오만하면 분노하게 되고 평화를 잃어요. 그런데 겸손하게 되면 평화가 오더라고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에 기록된 열한 곳의 수도원에서 작가가 마주한 것도 평화였을까. 그 모든 공간과 시간 속에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그곳에는 사람들의 염원 같은 것이 다 맺혀있었어요. 신자들뿐만 아니라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다녀갔을 텐데, 공통적으로 그 안에는 선한 기운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소망과 좋은 마음들이죠. 사람들이 무언가를 염원할 때 그 기도 속에는 착한 마음이 있는 거예요. 나에게 잘해주고 싶고, 내가 아주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요. 그 착한 기운들이 수도원 안에 있었어요. 제가 수도원을 찾아다니는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교회가 아니더라도 절에서도 조금 다른 공기를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 기운이나 공기가 수도원 기행의 아주 큰 매력이에요.”
내년 여름, 공지영 작가는 산티아고를 향해 떠날 계획이다. 그녀보다 먼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딸의 권유로 시작된 여정이다. 40여 일간 걷고 또 걸으며 자신의 삶이 또 한 번의 변화를 맞기를, 작가는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롭게 만난 그 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할 준비도 하고 있다. 동시에 새로운 소설 ‘그 꽃들이 지기 전에’를 구상하고 있는 그녀는 독자들을 놀라게 할 작품이 될 거라며 눈을 빛냈다. 10여 년 전 신문 기사를 통해 접한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 갈 이번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에 대해 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한 엉뚱한 방향에서 접근할 거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그 꽃들이 지기 전에’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공지영 작가가 어떤 길을 걸어가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든, 우리는 그녀에게 주목할 것이고 그 안에서 위로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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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공지영 저 | 분도출판사
13년 만에 출간되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그 두 번째 이야기. 수도원 기행 첫 권에서 작가는 18년 만에 교회와 신앙 그리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 달간의 유럽 수도원 기행을 통해 자신과 인간, 신에 대한 성찰을 담담히 풀어냈다. 수도원 기행 두 번째 이야기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13년의 부침과 여러 사건을 통해 그녀의 신앙과 하느님 체험은 더 깊어졌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의 수도원 배경으로 그녀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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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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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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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2
인터뷰 내용 중에 시스템 상의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확실히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요즘 우리 젊은 세대가 지나치게 방탕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외부적인 요인... 그것도 이유가 되겠죠. 하지만 일상에서 보는 사람들의 눈빛, 말 한 마디, 행동들을 보면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시스템과는 관계 없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악한지 너무나 명확히 보인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게 아니고 어떤 습관처럼 툭툭 내뱉어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수준 이하의 위정자들이 얹히게 되면 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망이 선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모이면 각각의 마음도 이상하게 변질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참된 변화는 어떤 특별한 공간(수도원이나 교회, 절 같은 곳)이나 리더의 비전, 영향력 있는 사람의 사회적 발언이 아니라 작은 개개인의 깨달음과 선한 일탈(?)들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일탈들은 어떤 공통의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선한 양심을 지킬 때 더 큰 빛을 발하는 것 아닐까요?
의식하지 않은 가운데 자연스럽게 모인 하나의 큰 물결... 생각이 모자라서 표현이 애매하지만 저는 그런 의도되지 않은 하나의 큰 물결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얘기 같지만요...
좋은 인터뷰 보고서는 실없는 소리만 잔뜩 하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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