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군사력이 센 나라도 아니요, 경제력이 강한 나라도 아니다. 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오직 문화적 수준이 한없이 높은 나라다”라고 백범 김구 선생은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의 일이다. 해방은 되었으나 나라가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던 그 시기에 선생은 민족의 나아갈 길을 이렇게 설파했다.
나와 같은 50대가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던 1980년대, 젊은 시절 우리는 김구 선생의 ‘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에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1980년대는 군사 독재의 총칼 밑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심하게 짓밟힌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젊은이들에겐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 급박한 과제였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2010년대. 지금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 달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에 걸쳐 있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고 남녀 차별 지수가 세계 꼴찌 그룹에 속하는 등 부끄러운 모습도 많다. 한 가정이 자동차 두 대를 보유하는 나라가 되었음에도 청년 실업은 심각하고 대학생들의 눈빛은 불안하다.
다시 30년의 세월이 흐른 2040년대 우리는 오늘의 10대들에게 모든 권리를 넘겨주고 인생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30년 후 오늘의 10대들은 기성세대로부터 대한민국을 건네받고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있을까? 청소년들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미래와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 가지를 생각한다.
첫째,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경제권이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을 것이다. 19세기는 영국이 세계 경제를 이끌었고, 20세기는 미국이 세계 경제를 이끌었다. 21세기 중반에는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다.
이 예측은 굳이 경제 전문가의 권위를 빌려 말할 필요도 없다. 간단하다. 2013년 현재 미국의 GDP가 17조 달러이고 중국의 GDP가 9조 달러다. 지금 중국의 1인당 GDP가 7000달러인데, 이 수치가 1만 달러를 넘어서는 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만간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경제가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라는 예측은 큰 무리가 아니다.
영국과 미국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세계를 이끌었다. 영국과 미국은 인류에게 가난을 극복하는 과학기술과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기술을 주었으나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에 빠뜨렸고, 약소국가들을 수탈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동아시아가 세계사를 주도하는 시기가 온다면 동아시아의 지도자들은 영국과 미국의 지도자들과 뭔가 달라야 할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에는 오랜 역사가 있고, 그 역사 속에 깃든 시와 사상이 있다. 우리는 『논어』와 『도덕경』을 알아야 한다. 두보(杜甫)의 시를 읽어야 하고 『맹자』와 『장자』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서양인을 만나 동아시아의 특성과 가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서양의 인문 정신을 알아야 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논의할 줄 알아야 하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에 대해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30년 후 동아시아 경제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게 되어 있으니, 동아시아 청소년들이 미래에 대비해 세계인의 지성을 예비하는 것은 시대의 요청이다. 이것이 오늘의 청소년들이 고전을 공부해야 하는 첫째 이유다.
둘째, KTX가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달리고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경제가 세계를 이끄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나 KTX가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달리는 것은 남과 북의 정치적 지도력에 달려 있다. 아직은 남북의 통일이 요원한 과제이지만 우리 민족도 스스로의 힘으로 대승적 통합을 이루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나는 남과 북이 통일되고 KTX가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그날을 어서 보고 싶다. 서울에서 KTX에 올라타 평양과 신의주를 지나고 만주의 길림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르쿠츠크로 달리고 싶다. 끝없는 시베리아 숲을 헤치고 모스크바를 거쳐서 베를린을 지나 파리에 가고 싶다. 내친김에 런던까지 가자.
오늘의 청소년들은 지금부터 세계 시민의 교양을 쌓아야 한다. 베이징에 가면 중국인들과 두보의 시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모스크바에 가면 러시아인들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대화재를 거론할 줄 알아야 하며, 파리에 가면 프랑스인들과 『레미제라블』의 하수도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런던에 가면 누굴 이야기할까? 그렇다. 뉴턴과 다윈을 말하고, 더하여 1850년대 영국 현실을 담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말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이야말로 세계 시민이 아니겠는가?
나는 우리 청소년들이 차표 한 장으로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달려갈 수만 있다면, 유럽인들과 함께 철학과 문학을 논하면서 동아시아의 시와 사상을 전할 수 있다면, 나는 여한 없이 눈을 감겠다. 세계 시민의 교양을 쌓는 것, 이것이 청년들이 고전을 공부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셋째, 한국 경제는 조만간 1인당 GDP 3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고 주 4일 노동제가 도입될 것이다. 필요로 하는 것이 가장 적은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한 적이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보배는 한가로움이었다. 한국 사회가 주 4일 노동하는 사회로 진입할 경우 일하지 않는 주 3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 모두가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삶과 죽음에 관해 나름의 생각을 갖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유행하는 삶의 양식이나 주어진 쾌락에 머물지 않고, 자기 나름의 행복의 원리를 찾아야 한다.
나는 인간의 행복한 삶은 인간 본성의 건강한 실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금언에 따르면 인간은 알고자 하는 본성을 지닌 존재다. 왜 공부하는가? 알고자 하는 본성 때문이다. 왜 책을 읽는가? 새로운 진리를 깨달을 때 인간은 최고의 순수한 기쁨을 누리기 때문이다. 독서는 삶의 방편이 아니라 삶의 목적, 즉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난날 공부는 생존하기 위한 삶의 방편이었다. 이제 이런 공부는 그만하자. 공부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고전을 읽자. 고전의 지혜로 나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자. 한국인 모두가 철학자가 되고 세계 시민의 교양을 갖추자. 한국이 선진국이 되는 길은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할 세 번째 이유다.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으라고 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고전을 읽자. 학생에게 고전을 권유만 하지 말고 선생님이 먼저 고전을 읽자. 청소년에게 고전을 읽으라고 하기 전에 기성세대가 먼저 고전을 읽자.
“아는 것은 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라고 공자는 말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배워야 할 인물은 미국의 허친스 총장이다. 서른 살 젊은 나이에 시카고 대학의 총장이 된 허친스는 말했다. 자신은 법률에 관한 전문 지식은 갖고 있지만 교육에 관한 철학은 없다고 고백했다. 이후 대학 총장이 손수 대학생들과 함께 고전을 읽고 토론을 했다. ‘위대한 저서(Great Books) 읽기 운동’은 이렇게 허친스의 정직한 자기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고전 읽기의 필요성이 갖는 의미심장함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고전을 학생 혼자만의 힘으로 독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전 그 자체가 난해한 까닭도 있으나 고전을 이해하기 위한 교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이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선 반드시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고전을 안내해줄 선생님들도 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척박한 현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서울대가 선정한 고전 100선을 해설한 『고전의 시작』은 이처럼 척박한 우리의 지적 현주소에서 나온 책이다. 누군들 고전 한두 권쯤은 읽었겠으나, 권위 있는 기관이 선정한 책 100권을 다 읽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홍승기와 나도 이번의 해설 작업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책이 꽤 된다.
『고전의 시작』은 선생님들부터 읽어야 한다. 지난여름 밤을 새워가며 쓴 우리의 이 글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인류의 지성이 쌓아올린 금자탑에 절로 고개를 숙이고, 문득 고전의 지혜로 무장하고 싶은 열정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전의 시작』이 기대하는 바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
-
고전의 시작 세트황광우,홍승기 공저 | 생각학교
고전 읽기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나, 청소년들이 사상가의 깊이를 담아낸 고전을 완독하기에는 시간과 해석 두 가지 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고전의 시작』 시리즈는 사상가의 삶과 고민을 충분히 담으면서 고전을 쓰게 된 배경과 사상가가 품은 시대의 물음을 충분히 담아냈다. 더불어 원문과 해제를 충분히 보여주면서 청소년들이 고전을 쉽게 다가가면서 사상가의 시대적 고민을 이해할 수 있게 풀어냈다.
[추천 기사]
- 어찌 되었든 멸종은 피할 수 없다
-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 길을 떠나니 캠핑이 어느새
- 천천히 어슬렁거리며 혼밥먹기
황광우
앙ㅋ
2015.01.13
정본 제대로 번역 풀이한 책이 없다는것 ㅎㅎ
빛나는보석
2015.01.10
rkem
2015.01.08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