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게임> 편견이라는 이름의 독 사과
강한 어조로 강제하지 않지만, <이미테이션 게임>은 미화되지 않은 개인의 삶 속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국가와 사회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해진 폭력과 그 속에 감춰진 진실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글ㆍ사진 최재훈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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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럽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 있었다. 암호 해독반에 근무하며, 독일군으로부터 유럽을 구해낸 그는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앨런 튜링의 업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알려진 것은 영국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던 그가 실수로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다는 것 정도라고 한다. 대체 앨런 튜링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앤드루 호지스의 전기 『Alan Turing』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의 숨겨진 삶을 되짚으면서, 사회의 골 깊은 편견만큼 불가해하고, 폭력적인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유럽을 구했지만 조국에 의해 버려진 앨런 튜링의 아이러니한 삶을 다시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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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승리로 이끌었던 암호문 이니그마를 해독하여,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이니그마 전담 암호 해독팀과 그 팀을 이끌었던 앨런 튜링에 대해 이야기한다. 24살에 캠브리지 대학 교수가 된 천재,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은 기계는 기계만이 이길 수 있다며 이니그마를 만들어내는 기계에 대적해 이니그마를 해독할 수 있는 기계 ‘크리스토프’를 만든다. 암호 해독팀이 꾸려진 초반 멤버들은 앨런 튜링의 제안을 터무니없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곧 그의 방법만이 유일하게 이니그마를 풀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힘을 모은다. 흔한 영웅담 같지만,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의 영웅담이 아닌, 비극적인 삶을 재현한다.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세기의 천재 앨런 튜링은 특별사면이 결정된 2013년까지, 실형을 받은 범죄자이기도 했다.

 

1951년 집 안에 강도가 든 한 남자가 경찰서에 신고를 하면서 시작된다. 집에 강도가 든 것은 사실이지만, 없어진 것은 없다는 이상한 입장을 고수하던 그를 형사는 조금 더 깊이 파헤쳐 간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앨런 튜링이 되어 괴팍한 천재의 전형을 보여준다. 실증에 근거한 자료를 극적으로 재해석한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 튜링의 괴벽과 기행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극적으로 재단한다. 튜링이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을 가진 기계를 인격체처럼 대하는 이유도, 그토록 기계와 소통하고 싶었던 이유도 서사적 구조 속에 잘 녹여낸다. 관객들은 대부분 앨런 튜링이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미테이션 게임>은 색다른 미스터리를 선사하는데, 앨런 튜링의 숨겨진 과거와 흔들리는 정체성, 그리고 사회의 편견을 올곧게 극복하지 못하고 모함과 질시, 오해 속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더욱 세밀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모튼 틸덤 감독은 한 사람의 영웅 이야기로 치우치기 쉬운 전기 영화 속에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천재의 상처와 1950년대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했던 사회의 분위기까지도 매끈하게 녹여낸다. 괴짜 천재 그 자체가 된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그의 조력자가 되어 균형을 맞춰준 키이라 나이틀리는 각각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모튼 틸덤 감독(사진 오른쪽)은 감독상 후보에 올라있으며 그 결과는 2월 22일에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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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미테이션 게임>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을 칭송하지 않는다. 수많은 불면의 밤과 동료들과의 반목을 딛고서야 겨우 만들어낼 수 있었던 ‘크리스토퍼’와 앨런 튜링은 전쟁과 함께 지워진다. 기밀을 이유로 튜링의 복무 기록은 사라지고, 동시에 앨런 튜링이라는 인물도 지워버린다. 대신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범법자가 되어 버린 초라한 남자만이 남았다. 크리스토퍼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앨런은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선택한다. 호르몬 주사로 동성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당시의 믿음 때문이다. 영화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앨런은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물고 자살을 선택한다. 애플은 끝내 부인하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한 입 베어 문 사과라는 애플의 로고가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설은 여전히 믿어볼 만한 추측이다.

 

강한 어조로 강제하지 않지만, <이미테이션 게임>은 미화되지 않은 개인의 삶 속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국가와 사회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해진 폭력과 그 속에 감춰진 진실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여기에 앨런 튜링의 정신적 애인인 조안 클라크의 삶을 배치하면서, 사회적 편견 때문에 꿈과 재능을 맘껏 펼치지 못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한 여성에 대해서도 들여다본다. 2009년 영국 정부는 튜링의 동성애 유죄판결에 대해 사과하고, 2013년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시행된 특별 사면으로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사회에 의해 희생된 개인의 명예를 정부가 다시 복원시켜주었다는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울러 앨런 튜링과 조안 클라크에게 용기를 준 말을 우리도 기억하면서, 우리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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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테이션 게임 #최재훈 #시네마트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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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5.02.22

이미테이션이란 게 모방이지만 제2의 창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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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선

2015.02.22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글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스포일러성이 있어서 읽기가 조금 망설여지는 칼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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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죠

2015.02.21

와,,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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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