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차 <웃는 상어> (2014), 캔버스에 유화, 65*50
첫째, 해를 입히지 마라.(First, do no harm-Primum non nocere.) 이것은 기원전 5세기에 쓰였다고 하는 히포크라스 선서의 내용 중 하나이다. 이것은 오늘도 전 세계적으로 의사 졸업식 때 쓰이는 선서이며, 우리 치료사들도 많이 생각하는 선서이다. 나는 비슷한 표현이지만 다른 울림이 있는 ‘아힘사ahimsa’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아힘사는 인도 고어인 산스크리트 어로 ‘비폭력’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요가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이다.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가 그의 삶을 바쳐서 실천한 비폭력이 바로 이 아힘사이다.
나는 청소년거주치료센터에서 일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아힘사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비폭력이란 단어에 관념적으로 끌렸다면 이번엔 비폭력에 관해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어떤 깊은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한테 맞지 않고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하는.
또한 폭력 안에 깃든 두려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두려움은 폭력의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곳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질러대는 욕이나 휘두르는 주먹에 동요한다면 내 안에 있는 두려움과 자기 보호 본능이 발동하여 나도 함께 욕을 내뱉거나 주먹을 쓸지도 모르고, 그렇게 한다면 내가 분명 그들에게 맞을 거다. 그래서 나는 맞지 않고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라도 폭력 앞에서 두려움이 없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내 스스로의 폭력성을 잘 알고 있어야 했다. 내 내면에 있을 수 있는 폭력성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을 타인에게 투사할 수도 있고, 부정하다 보면 어느 날 이상한 데서 이상하게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은 아힘사가 포함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단순히 ‘나는 하나도 안 무서워. 해볼 테면 해봐’ 하는, 그런 식의 싸우자는 소리가 아니라, 폭력을 자비와 측은지심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아바야abhaya(두려움 없음)가 필요한 것이다. 내 경험상 ‘아힘사’와 ‘아바야’가 우리 아이들한테 맞지 않고 직장을 다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상대방이 내 편인지 아니면 적인지를 알고자 하는 것은 동물적인 본능인 것 같다. “나는 네 편이야”라고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만나지만, 아이들이 정작 그 말을 믿기 위해서는 정말 그렇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여러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불안정한 가정에서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받고 자라온 아이들은 이 동물적인 본능이 더 많이 살아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과의 처음 만남은 기쁘고 설레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이뤄지는 일종의 의식이고 시험이다. “너는 내 편이니? 내가 너를 이렇게 나쁘게 대해도 내 편이니?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편이니?” 하고 묻는다. 물론 말로 묻는 것이 아니라 아주 적극적인 표현 방식으로 묻는다. 미운 짓, 버림받을 짓을 반복한다. 이런 행동으로 이 애들이 말하는 것은 “이래도 나를 끝까지 안 버릴 거야? 그럴 수 있어?” 하는 것과 “이래도 나를 버리지 말아줘”라고 하는 두 가지일 것이다.
아이들이 내 눈앞에서 별별 욕을 다 한다. 나에게 “씨발, 이 쌍년!FUCK You, You Mother FUCKER Bitch!”이라고 귀청이 날아가게 소리를 지른다. 아는 욕이란 욕은 다 붙여서 퍼붓는다. 별별 욕을 다 한다고 하지만 사실 가짓수로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씨발fuck’이란 단어를 문장 중간중간에 끼워 넣고 가끔 어머니란 단어를 끼워 넣거나 남자의 경우는 ‘개의 아들’ 여자의 경우는 ‘여자 개’ 정도의 단어로 양념을 치는 것이다. 더 강도를 세게 하기 위해서는 이 단어들을 여러 번 반복한다. 이것은 표현의 종류와 강도의 레벨이 많은 한국어 욕에 비해서 참 배우기 쉬운 실전 영어이다. 아무튼 갖가지 욕을 반복하면서 코앞에서 주먹을 흔들거나 물건을 잡고 던지겠다고 위협을 한다. 레이저 광선이 바로 나올 것처럼 부릅뜬 눈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이들이 욕을 할 때, 주먹을 휘두르며 협박을 할 때, 기물이 날아올 때 동요함이 없는 것이 내가 살 길임을 일찍이 깨달은 후 나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법을 배웠다. 비록 나중에 집에 와서 내가 왜 이것들에게 이런 서러운 꼴을 당해야 하나 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며 한탄을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다가 이 ‘척’하는 것도 반복 학습을 해서 그런지 어떤 때는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벽을 부수고 하는 사이에 틈틈이 새어 나오는 그들의 혼돈감, 두려움, 절망 등이 보이기도 한다.
열네 살짜리 애니는 아주 예쁘게 생긴 흑인 여자아이이다. 반듯한 콧대며 가는 얼굴의 선이 동양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쁘다는 것은 입을 열지 않거나 인상을 짓지 않는 드문 경우에만 알 수 있다.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이 아이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입을 열면 나오는 게 다 욕이다. 애니가 나를 처음으로 만나자마자 한 얘기가 “아이 헤이트 유I hate you!”였다. 증오스럽단다. 그 후로 나오는 말은 다 욕설. ‘아이들한테 좋은 소리 들을 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참 서럽다 서러워. 내가 미술 치료사가 되려고 이 먼 곳까지 와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내 나이의 반도 안 되는 애한테 이런 욕을 들어야 하다니!’ 속으로는 이래도, 겉으로는 그저, “하이, 마이 네임 이즈 은혜. 나이스 투 미트 유”, 즉 “안녕, 나는 은혜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라고 할 수밖에.
첫 만남은 차라리 나았다. 그 후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애니는 콧등을 찌푸리고 벌레라도 씹은 듯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째려본다. 이때도 나는 “하이, 하우 알 유?” 한다. 내 질문이 기가 막힌 듯, 애니는 더 째려본다. ‘아, 표정 하나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몇 달 동안 우리는 째려봄과 “하우 알 유?”라는 인사를 주고받기를 매일 반복하였고, 그러면서 이 아이한테 안 맞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미술 치료 시간에는 어땠을까? 애니는 미술 치료 시간에 순순히 와서 순순히 하트를 반복적으로 그리고 시간이 끝나면 순순히 기숙사로 돌아갔다. 애니는 규율을 철저히 지켜서 치료센터의 당근을 다 챙겼고, 다른 치료사들과 감독관들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로 여겨졌다. 하지만 미술 치료를 통해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전면 거부했다. 그날의 주제와 상관없이 매번 그리는 하트 그림을 저항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그것 말고는 그릴 줄 아는 것이 없는 것인지, 정말 하트 그리기를 좋아하는지 판단이 안 섰다.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 아이는 지속적으로 나를 볼 때마나 더러운 것을 본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것도 몇 달이 지나니 이력이 나서 더 이상 그 애의 눈이나 말투가 무섭지 않았다. 더 시간이 가니 째려보는 것도 덜하고, 혐오감이 가득하던 표정도 누그러졌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인사성이 밝아졌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규칙은 잘 지키지만 언젠가는 폭발할 듯 보이는 애니는 나와 관계 맺기를 거부하면서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애니는 욕을 하고 째려보는 정도였는데, 처음 만남부터 내 눈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배은망덕한 못된 놈들도 있었다.
기숙사 C동의 남자아이들은 나를 조금, 아니 사실 많이 기죽게 했다. 열너댓 살 정도의 남자애들이 여섯 명 사는 기숙사동인데, 이 녀석들이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다들 포기한 상태다. 기숙사 스태프들도 얼마 못 가 자주 그만두었다. 방과 거실은 난장판이고 가구도 자꾸 부수곤 해서 멀쩡한 가구가 없다.(그런데 텔레비전과 플레이 스테이션은 멀쩡하다는 놀라운 사실!) 게다가 밤이 되면 몰래 도망 나가서 숨겨놓은 마리화나를 피우다 들어오기도 하고, 밤에 여자애들과 도망가서 무슨 짓을 하다가 오는지 아무런 통제가 안 되는 놈들이다. 이렇게 전혀 통제가 안 되는 애들과 미술 치료 그룹을 하겠다고 들어갔다가 신체적 위협을 느끼고 짐 싸서 나온 적이 몇 번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실력 있는 미술 치료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술 치료를 시작도 못하게 하는, 그러니까 나를 무능력자로 만드는 못된 놈들이다.
한 주는 찰흙을 주물럭거리고 두드리면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까 해서 찰흙을 준비해 가지고 갔다. 예상했던 대로 찰흙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때리고 하는 것까지는 다 좋았는데, 그 다음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날아오는 찰흙 덩어리가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는 벽에 퉁 하고 붙는다. 나는 하나도 재미없는데 뭐가 재미있는지 조롱 섞인 웃음으로 나를 자극한다. 망할 놈들. 속은 엄청 놀라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꿈쩍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으니 제2단계로 접어든다. 한 녀석이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다른 손으로 찰흙 덩어리를 내 입으로 집어넣으려 하지 않는가! 기숙사 스태프가 달려와서 봉변은 피했지만 너무 놀랐다. 놀라고 당황한 나를 보고는 이제야 원하는 반응을 얻었는지 웃느라 자지러진다.
미술 치료는 적합하지 않은 거 같으니 차라리 운동이나 연극 치료를 해보라고 상부에 제안을 했지만, 그 애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여기에 왔고,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나는 치료사이니 치료를 하라는, 하나도 틀린 말 없는 답변을 들었다. 그 애들이 나에게 인종 차별적인 농담을 하면서 낄낄거리며 웃을 때, 얼굴을 들이대면서 성을 돋울 때, 당황스럽기도 하고 위협을 받는 것 같아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열이 얼굴로 확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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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미술 치료사이며 화가다. 캐나다에서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하고 한국에서 뉴미디어 전문 미술관인 아트센터 나비의 기획자로 일하다, 자신이 바라던 삶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소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도울 때 기뻐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치료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의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미술 치료 석사 학위를 받고 시카고의 정신 병원과 청소년치료센터에서 미술 치료사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