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꽃을 바탕화면으로 깐 아이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다가 도라지꽃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다.
글ㆍ사진 김민철
201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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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소설 작품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우리 주변의 꽃과 식물이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은 독자들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꽃’을 주목한다. 소설의 어떤 대목에서 야생화가 나오는지, 그 야생화가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소개한다.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다가 도라지꽃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다.


이 소설은 남들보다 빨리 늙는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열일곱 살 남자아이 아름이의 투병 이야기다. 여기에 열일곱에 애를 낳아 지금은 서른네 살인 어린 부모가 아름이를 돌보며 성숙해가는 이야기, 아름이가 역시 불치병에 걸린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다.


이 소설에서 도라지꽃은 두 번 나온다. 집안 형편상 더 이상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자 아름이는 성금 모금을 위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을 자청한다. 이를 계기로 골수암에 걸린 동갑내기 소녀 서하와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아름이는 이를 통해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가고, 태어나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설렘을 느끼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해 얼굴도 모르는 서하와 주고받은 메일들은 너무 예쁘면서도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어느 날, 서하는 아름이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낸다.

 

요 며칠 아빠랑 절에 있었어.

아빠가 요새 대체요법에 관심이 많거든.
근데 거기 스님이 나더러 도라지꽃같이 생겼다고 하더라. _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중에서

 

서하는 어떻게 생겼기에 스님이 도라지꽃 같다고 했을까. 아름이는 이 도라지꽃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얼마 후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승찬 아저씨가 문병을 왔을 때 노트북을 켜둔 아름이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근데 넌 바탕화면이 그게 뭐냐.”
“뭐가요?”
“걸그룹도 많은데 웬 도라지꽃이니. 늙은이같이.”
“왜요, 뭐가 어때서요?” _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중에서

 

도라지꽃을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 정도로 오매불망 서하 생각을 한 것이다. 도라지꽃이 다시 한 번 둘 사이의 우정 또는 사랑의 상징으로 선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라며 책을 읽었으나 작가는 더 이상 이 꽃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도라지꽃은 아름이가 유일하게 비밀을 나눈 아이, ‘첫사랑, 혹은 마지막 사랑’이었던 서하를 그리워할 때 등장한 꽃이어서 이 소설을 대표하는 꽃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세 개의 별을 가진 꽃


‘심심산천에’ 피는 도라지꽃은 6∼8월 보라색 또는 흰색으로 피는데, 별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진 통꽃이 기품이 있으면서도 아름답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도라지꽃은 밭에 재배하는 것으로, 나물로 먹는 것은 도라지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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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움


도라지꽃에는 여러 가지 꽃 이야기가 있다. 그중 ‘도라지’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처녀가 뒷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만난 총각을 사모하다가 상사병에 걸려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다.


문일평은 꽃 이야기 책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도라지꽃으로 말하자면 잎과 꽃의 자태가 모두 청초하면서도 어여쁘기만 하다”며 “다른 꽃에 비해 고요히 고립을 지키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적막한 빈산에 수도하는 여승이 혼자 서서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도라지꽃을 별에 비유하는 글들이 많은데, 가만히 보면 도라지꽃에는 세 개의 별이 있다. 먼저 꽃이 벌어지기 직전, 오각형 꽃봉오리가 별같이 생겼다. 도라지꽃은 개화 직전 누가 바람을 불어넣는 풍선처럼 오각형으로 부풀어 오른다. 이때 손으로 꾹 누르면 ‘폭’ 또는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꽃이 터져 어릴 적 재미있는 놀잇거리 중 하나였다.

두 번째로, 꽃잎이 활짝 펼쳐지면 통으로 붙어 있지만 다섯 갈래로 갈라진 것이 영락없는 별 모양이다. 그런데 꽃이 벌어지고 나면 꽃잎 안에 또 별이 있다. 꽃 안쪽에 조그만 암술머리가 다섯 갈래 별 모양으로 갈라진 채 뾰족하게 내밀고 있는 것이다.

 

아름이는 자신으로 인해 잃어버린 부모의 청춘을 돌려주고 싶다. 그래서 부모의 만남과 사랑부터 자신이 태어날 때까지 이야기를 글로 써서 부모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이메일을 주고받은 서하가 누구인지에 대한 반전이 있다.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김애란의 첫 장편이다. 김애란은 특유의 젊은 감각, 신선한 문체와 스토리로 문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작가다. 1980년생이어서 신세대 작가라고 할 수 있지만, 등단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은 중견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글은 발랄하고 재미있다. 『두근두근 내 인생』 곳곳에도 읽다가 절로 웃음이 나오는 구절이 많다. ‘엉뚱한 듯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문장이 흡인력 있다. ‘슬픈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경쾌하게 풀어내는 작가’라는데, 『두근두근 내 인생』에 딱 맞는 평인 것 같다. 이 소설에서도 아름이의 희망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자식이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가능한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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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꽃들 :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이야기김민철 저 | 샘터
김연수 [벚꽃 새해], 정은궐 《해를 품은 달》,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의 최근 소설에서부터 1980년대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가(양귀자, 조정래, 박완서, 성석제 등)의 소설까지 33편의 한국소설을 150여 점의 사진과 함께 야생화를 중심으로 들여다보았다. 소설의 어떤 대목에서 야생화가 나오는지, 그 야생화가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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