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빵집 앞에 줄을 서게 하는 마법
오븐에서 갓 꺼내어진 신선한 바게트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빵을 들고 좁고 비탈진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시험에 들게 된다.
글ㆍ사진 팀 알퍼
201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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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기의 흰색은 “?galit?” 즉 평등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흰색은 밀가루의 색깔을 닮았다. 갓 구워진 바게트를 손으로 뜯었을 때 볼 수 있는, 우리를 만족스럽게 하는 바로 그 순백색이다. 프랑스의 파인 다이닝에 아직도 우월감과 제국주의적 성향이 남아 있다면, 프랑스에서 빵은 민주주의와 평등, 휴머니즘과 동의어이다.

 

프랑스 남동부의 지중해 연안 코트다쥐르 쪽빛 해안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지방에 있는 고급스런 빌라에 살든, 항구도시 마르세유에 있는 슬럼가의 아파트 블록에 살든 상관없이 모든 프랑스의 가정에서는 아침 6시 45분쯤 되면 가족 중 한 명을 동네 빵집으로 보낸다. 6시 45분, 빵을 떠올리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이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틀린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새벽 5시에 구워지는 바게트가 오후 5시쯤 되면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는 프랑스에서는, 알람시계의 스누즈 버튼에 손이 닿게 되는 순간, 바로 지게 되는 것이다. 파리에서는 아침 7시 반쯤 되면 새벽부터 구워져 나온 빵들이 이미 대부분 팔려 나가고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아침 8시가 지나서도 맛있는 바게트를 구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기다렸다가는, 아마도 몇몇 빵집들이 하루 중 두 번째로 빵을 굽는 저녁이 될 때까지 배를 곯아야 할 것이다.


아침 7시의 빵집은 프랑스가 살아나 숨을 쉬고, 그리고 무언가가 시작되는 공간이다. 만약 그 시간 바깥으로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없는 빵집이라면, 그곳을 두 번 다시 찾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그 동네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맛있는 빵집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만약 불랑제리(boulangerie : 빵집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있다면, 재빨리 그 줄에 동참해라. 이 줄은 단순히 빵만을 사기 위한 줄이 아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꽤나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사람들이지만 빵집 앞의 줄에서만큼은 수다쟁이로 돌변한다. 아마도 버터가 잔뜩 들어간 갓 구워진 크루아상의 냄새와 신선한 아침 공기가 무언가 신비로운 마법을 부린 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묻고, 칭찬을 주고받으며, 심지어는 빵집 점원들도 무대에 선 소프라노와 같은 쾌활한 목소리로 거스름돈을 내어준다. 아마도 이보다 훈훈한 아침 광경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참고 들어주기 힘들 만큼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괴팍한 프랑스 사람들이지만, 이른 아침의 빵집 앞에서는 월급날을 맞은 산타클로스보다 더 친절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오븐에서 갓 꺼내어진 신선한 바게트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빵을 들고 좁고 비탈진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시험에 들게 된다. “르 부(le bout)”라 불리는 바게트의 양 끝 동그란 부분을 뜯어서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것은 빵에 있어서는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여는 것과도 같다. 오직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만이 르 부를 탐하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 따뜻한 빵 조각을 한번 맛보게 된다면, 열반의 경지에 든 라마승조차도 두 번째 빵 조각을 뜯어내기 위해 손이 빵으로 향하는 것을 참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쯤에서 상황은 급속도로 더 나빠진다. 이미 반으로 줄어든 바게트를 들고 있는 아저씨와 그를 호되게 나무라는 부인이 등장하는 안쓰러운 광경은 프랑스의 아침 길거리에서는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들은 집까지 가는 도중 절반도 못 미처 이미 빵 한 덩이를 해치우고 다시 빵을 사기 위해 빵집으로 되돌아가기 일쑤다. 이렇게 프랑스 빵은 정말 맛있다.


매 끼니마다 거르지 않고 빵을 먹는 프랑스 사람들의 빵 사랑은 남다르다. 사실 프랑스 빵은 다른 것을 곁들이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맛있다. 아침 식사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큰 사발에 담긴 카페오레에 빵을 담갔다 먹기도 하고, 때로는 커피나 핫 초콜릿을 빵 위에 부어서 밀가루 죽 같은 형태가 되도록 푹 적셔 먹기도 한다. 점심때 그들은 생선, 스테이크, 야채 그리고 감자로 만든 다양한 요리와 함께 빵을 먹는다. 저녁에는 말린 소시지인 소시옹(saucisson)과 고약한 냄새가 나는 치즈를 함께 썰어 또 빵을 먹는데, 이때 종종 걸쭉한 스프를 곁들이기도 한다.

 

천주교나 기독교를 믿는 다른 국가들에서, 주기도문의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란 구절의 daily bread는 각 나라마다 깊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해석된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은 기도문에 쓰여 있는 그대로 매일의 빵(daily bread)을 의미한다. 날마다 프랑스 사람들은 몇 덩어리의 빵을 소비하며, 프랑스의 빵집들은 일 년 내내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연다. 그리고 빵집 근처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은 동네 버스 운행 시간보다 빵집에서 빵 나오는 시간을 더 잘 꿰뚫고 있다.


프랑스에서 좀 큰 규모의 불랑제리를 들르게 된다면, 아마 빵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폭신폭신하게 잘 부풀어오른 커다란 브리오슈(brioche)가 마치 유혹이라도 하듯이 쇼윈도의 진열장에서 빛나고 있고, 다루기 까다로운 호밀로 만들어진 퉁퉁한 팽 드 세이글( pain de seigle)은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신부님처럼 흡족한 표정으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다. 왕관이라는 뜻의 화려한 이름이 붙여진 바게트의 사촌쯤 되는 쿠론(couronne)과 길고 가는 막대 모양을 한 플룻 (flute)이 나무로 엮어 만든 커다란 빵 바구니에 조심스럽게 담겨 있고,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쁘띠 팽 오 쇼콜라( petit pains au chocolat )가 버터나 계란 노른자로 광택을 낸 크루아상 옆에 놓여 있다. 쁘띠 팽 오 쇼콜라 안에는 오븐에 데워졌을 때, 찐득하게 녹아 이빨을 썩게 만들기 안성맞춤인 얇은 초콜릿이 한 층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들 옆에는 건포도가 올려지고 에그 커스터드가 들어가 있는 그들의 사촌 쁘띠 팡 오 레쟁(petit pains au raisins)이 자리를 잡고 있다. 프랑스의 모든 아이들은 이런 달달한 간식들을 먹고 자란다. 설탕과 버터와 같이 몸에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것들이 잔뜩 들어있지만, 대부분의 프랑스 부모들은 거의 매일 아이들에게 이런 간식들을 사주며 자녀들의 버릇을 망쳐놓는다. 불랑제리 안에는 심지어 팡 바타르(Pain B?tard)라고 불리는 빵도 있다. 실수로 잘못 만들어진 빵(B?tard는 프랑스어로 서자나 사생아라는 의미이다.)이라는 이름처럼 오븐에서 꺼낸 모양은 할로윈 데이같이 흉측하지만 그 맛만큼은 섣달 그믐날처럼 근사하다.


이것은 역사상 프랑스 사람들을 가장 분노하게 했던 말이 “그들에게 빵 대신 케이크를 먹게 해라” 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빵을 달라고 항의하는 프랑스 민중들에게 빵이 없으면 대신 케이크를 먹으라는 어이없는 말로 응수했다. 왕비의 신분으로서 그녀가 민중의 역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자체가 크나큰 죄이자 그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가들의 생각이다. 아마 프랑스 사람들은 여왕이 케이크 따위가 프랑스 빵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에 정말 화가 났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진짜 프랑스 빵을 먹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 역사선생님의 설명보다는 내 의견에 공감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더 이상 바게트를 먹지 말고 이제부터 케이크 쪼가리나 먹으라고 말한다면 나 또한 그들을 단두대로 끌고 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프랑스 사람들과 그들의 빵 사이에 끼어드는 것은 아주 나쁘고도 위험한 생각이다. 

 

 

* 이 글은 『바나나와 쿠스쿠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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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와 쿠스쿠스 : 요리하는 철학자 팀 알퍼의 유럽 음식 여행팀 알퍼 저/조은정 역 | 옐로스톤
럽인이 유럽의 음식을 탐험하는 최초의 맛기행 책으로, 음식이 만들어진 역사와 유래, 저자 자신의 경험 등이 유머와 번뜩이는 비유로 묘사되어 있어 이름이 낯선 음식들에 당황함을 느끼며 책을 펼쳐들 독자들도 어느 순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낯선 유럽 어느 지역의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그 음식을 먹어보고픈 유혹과 그리움까지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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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바게트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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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2015.04.14

뜬금없지만, 마리앙투아네트의 빵아니면 케이크 발언이 조작되었다는 말도 있던데... 진짜인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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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