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카를로, 파리넬리로 태어나다
파리넬리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 열두 살 소년 카를로 브로스키의 삶은 끝나버렸다. 그에게 거세란 단지 남성성의 상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은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갈 권리와 자유도 함께 사라졌다. ‘신이 선택한 목소리’를 타고난 까닭에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야 했던 이 결정적 순간으로부터 뮤지컬 <파리넬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날의 ‘선택’은 소년의 몫이 아니었다. 작품 속에서 주교로 상징되는 교회의 권력, 낮은 신분과 가난이라는 현실, 그 속에서 작곡가로서의 꿈을 키우던 아이의 형, 그 꿈을 외면할 수만은 없었던 부정이 한 데 뒤섞이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실제로 파리넬리가 활동했던 18세기는 카스트라토(거세를 통해 여성의 음역을 소화해 냈던 성악가)의 황금기였다. 남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대가로 막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해마다 6,000여 명의 소년들이 카스트라토로 다시 태어날 정도였다. 그 배경에는 신을 찬양하는 최상의 악기로 인간의 목소리를 꼽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금지했던 모순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성의 몸으로 여성의 음역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필요했고, 아직 변성기가 찾아오지 않은 소년들의 맑은 목소리가 대안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카를로 역시 선택받은 소년이었다. 그 선택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신의 이름으로 부여됐다. 비극은 상냥한 얼굴 뒤에 숨어 다가왔다. 유럽의 귀족들은 파리넬리에게 열광했고, 그의 형 리카르도는 그토록 바라던 작곡가로서의 삶을 살게 됐다. 형제는 함께 음악적 재능을 공유하고 독려하는 완벽한 팀처럼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빛이자 그림자였다. 리카르도는 자신의 음악이 동생의 존재 뒤로 가려져버리는 현실과 마주한다. 파리넬리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노래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카스트라토라는 정체성을 제외하고 나면, 파리넬리라는 이름을 지우고 나면, 그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단지 노래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악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파리넬리는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불안에 사로잡힌다. 리카르도는 시간이 갈수록 화려한 기교에 집착함으로써 동생을 점점 더 갈등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에게도 비극은 이미 시작된 이야기였다. 리카르도가 느끼는 불안은 재능에 대한 것이었다. 더 훌륭한 작품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 그러나 이미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소진해 버린 것 같은 두려움은 그를 환락 속에 숨어들게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멀어져간다.
파리넬리에게는 형을 위해 노래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고 카스트라토로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형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그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안식처가 되어주는 한 사람, 안젤로 로씨니가 있었다. 그녀는 죽은 동생을 대신해 남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카스트라토이지만 파리넬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서로가 놀랍도록 닮아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음으로서 마음을 나누며 깊은 관계를 이어간다. 경쟁자로 조우하게 될 앞날은 알지 못한 채.
자유를 갈망하는 그를 ‘울게 하소서’
뮤지컬 <파리넬리>는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파리넬리의 내면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카를로에서 파리넬리로, 그가 거쳐 온 순간들을 목격하며 관객들은 파리넬리가 끌어안았던 고뇌의 실체를 바라보게 된다. 그 끝에서 만나게 되는 ‘울게 하소서’는 이전과는 달리 더 진한 비통함으로 다가온다. 비참한 운명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자신을 그저 울게 내버려 두라는 이야기는 파리넬리의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듯 느껴진다.
그러나 ‘울게 하소서’가 뮤지컬 <파리넬리>의 정점이자 모든 것이라는 판단은 섣부르다. 영화 <파리넬리>에 ‘울게 하소서’가 있다면 뮤지컬 <파리넬리>에는 ‘왜 하필’이 있다. 이 곡에서 파리넬리는 거스를 수 없었던 자신의 운명을 절규하듯 노래한다. 지금 나는 누구를 위해 노래하고 있느냐고 묻고, 왜 하필 나여야만 했느냐고 원망하지만, 정작 누구를 향해 물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렇게 음악을 통해 전해지는 파리넬리의 진심은 층층이 쌓이면서 감정에 깊이를 더하고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하나하나의 넘버들은 그 자체로 뮤지컬 <파리넬리>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가 응축되어 폭발할 때의 전율은 ‘울게 하소서’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니, 막이 내릴 때까지 긴장을 놓쳐선 안 된다는 사실을 귀띔해 둔다.
뮤지컬 <파리넬리>는 풍부한 음악적 요소들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작품 안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넘버, 16인조 오케스트라, 20인의 합창단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감동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그 중에서도 카스트라토가 부르는 곡을 직접 듣는 경험은 쉽사리 잊을 수 없다. 극 중에서 파리넬리를 연기하는 가수 고유진과 카운트 테너 루이스 초이가 카스트라토는 아니지만, 그들이 불렀던 노래를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은 채 재현해 내는 배우들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영화 <파리넬리> 속 목소리는 남성과 여성의 것을 합성해 만들어낸 것이다).
이밖에도 뮤지컬 <파리넬리>는 탄탄한 구성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자랑한다. 치밀하게 짜여진 사건들, 세세하게 표현된 인물들의 감정은 작품이 가진 흡입력의 비결이다. 파리넬리의 삶과 노래를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면, 뮤지컬 <파리넬리>와의 만남이 흥미롭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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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sunmi4108
2016.05.15
저도 뮤지컬파리넬리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비슷한견해와 식견을 가지고있는데요
한가지 안타까운것은 공연을보시면서 파리넬리는 이미 안젤로의성별을 알고있었다는 걸 놓치셨나봅니다 유일하게 안젤로의본명을 알고있던존재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