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가면 들러야 할 서점
독서는 영국인들이 가드닝과 티타임 못지않게 즐기는 여가 생활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벗해온 이들에게 ‘세계 독서율 1위’라는 수사는 당연해 보인다.
글ㆍ사진 박나리
201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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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영국인들이 가드닝과 티타임 못지않게 즐기는 여가 생활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벗해온 이들에게 ‘세계 독서율 1위’라는 수사는 당연해 보인다. 복잡한 전철 안이나 카페, 공원 할 것 없이 가벼운 포켓북이나 킨들 전자책을 품에 안은 모습은 오랜 시간 이어온 그들의 문화라 할 만 하다. BBC 뉴스를 통해 세계 최고 권위의 맨부커상Man Booker Prize을 생중계하고, 1960~1970년대 빛바랜 펭귄북스 문고를 빈티지 마켓에서 쉽게 구하며, 런던 근교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도시 ‘헤이온와이Hay On Wye’를 조성한 나라. 조지 오웰,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J.R.R 톨킨, 조앤 K.롤링……. 많은 영국 작가들이 그들의 전통을 기록하며 영국의 오늘을 일궜다. 이 영국 문학의 모든 것을 압축한 가장 낭만적이고 운치 가득한 공간이 바로 서점! 동네마다 들어선 책방들은 애서가는 물론 책을 멀리하는 이들의 발길마저 사로잡는다. 남다른 셀렉션과 아름다운 건축미 등 100여 개가 넘는 런던의 독립 서점들은 저마다 독특한 매력으로 영국인들의 독서 문화를 고취시킨다.

 

 

왕실이 후원하는 300년 전통의 서점
해처즈 북샵Hatchards Boo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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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시골에서의 삶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주인공 댈러웨이 부인이 런던 시내를 거닐던 중 걸음을 멈추는 곳은 서점 앞. 진열장에 놓인 책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삶을 꿈꾸며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한참을 고민한다. 그 소설 속 서점이 바로 해처즈다.


1797년 존 해차드John Hatchard가 설립한 이 건물은 책을 판매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박물관이나 유서 깊은 도서관을 연상시킨다. 포트넘앤메이슨 본점 옆, 피카딜리 서커스 도로변에 위치. 왕실 조달 허가증을 받은 ‘풀 하우스full house’ 소유의 건물로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이 서점을 후원 중이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진한 나무향기와 종이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고풍스런 목재 간판에 새긴 영국 왕실 문양이 서점의 명성에 힘을 싣는 듯하다. 지난 300년 간 영국의 지성을 대변한 작가들의 사인이 서점 안을 채우며, 100년 이상 된 서적, 스페셜 에디션 등이 눈길을 끈다. 서점 한쪽에는 젊은 시절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진과 왕실 관련 서적을 진열한 별도의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진지하게 책을 고르는 애서가들의 뒷모습, 낡은 목재 창틀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 카펫을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그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인 런던의 유산이다.

 

 

<피키딜리 지점>


open 월~토요일 오전 9시30분~오후 7시, 일요일 오후 12시~6시
tube Piccadilly Circus, Green Park
add. 187 Piccadilly, London, W1J9LE
contact www.hatchards.co.uk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돈트 북스Daunt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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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얼마나 황홀하고 근사할 수 있는지, 돈트 북스는 이에 명확한 답안을 제시하는 서점이다. <론니 플래닛>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책방’으로 꼽기도 한 서점은 런더너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첼시Chelsea, 홀랜드 파크Holland Park, 햄스테드Hamstead 등 런던 내 6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며, 본점인 말리본점은 여행자들에게 가장 유명하다. 선명한 녹색 간판과 고동색 목조 건물이 대조를 이루는 서점 간판을 마주하면 고급스럽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영국의 대형서점들이 ‘1 get 1 free’의 공격적 마케팅을 앞세울 때, 돈트 북스는 묵묵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독자들을 모은다. 추천 도서 리스트와 여러 작가와의 강연을 제공하며 서점 본연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설파하는 것을 중시한다. 에드워디안 양식으로 지은 서점은 마치 작은 대학도서관을 연상시킨다. 세월을 입어 반짝반짝 윤이 난 오크나무 바닥, 헌책으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2층 갤러리, 섹션별로 말끔하게 정리한 도서 리스트가 반갑다. 특히 20년 전 여행책 전문 책방으로 시작한 초기 뿌리를 반영하듯 여행 섹션이 유독 풍성하다. 런던 관련 여행서를 포함해 소설, 영국 역사책과 지도, 에세이 등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콜렉션도 다양. 돈트 북스에서 판매하는 재활용 에코백은 런던 애서가들 사이에 잘 알려진 만큼 의미 있는 기념품이 될 듯하다.

 

open 월~토요일 오전 9시~오후7시 30분,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tube Baker St.
add. 83 Marylebone High Street, London W1U 4QW
contact www.dauntbooks.co.uk

 

* 이 글은 『런던 클래식하게 여행하기』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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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클래식하게 여행하기박나리 저 | 예담
왕실, 애프터눈 티, 정원, 앤티크, 펍과 스포츠, 서점과 갤러리 등 클래식 테마를 중심으로 밀도 있게 정리한 내용을 통해 오랜 세월을 견뎌 영원불멸한 진리로 굳어진 것들, 유행을 타지 않아 언제 꺼내 봐도 부족함이 없는 영국의 전통미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이 책 한 권이면 런던 구석구석에서 근교까지, 우아한 브리티시 문화의 감수성을 체득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관련 기사]

- 산타가 되고 싶은가?
- 영국 애프터눈 티 즐기기
- 여행지에서 안 좋은 날씨를 만난다면
- 남미 볼리비아에서 어디까지 털려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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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영국 #서점 #여행 #런던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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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2015.06.10

300년 전통의 서점이라니 굉장하네요. 대형 서점이 대부분인 한국과는 상황이 많이 다른가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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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리

4년째 영국에 살고 있지만 런던 방문은 언제나 설레는 여행자. 이야기가 있는 삶과 사람을 동경하는 서른 중반의 둥근 인격체. 문청文靑의 꿈을 안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으나 낯선 도시와 문화를 마주하는 일에 매료돼 오랜 시간 여행&라이프스타일지 기자로 근무했다. 네이버 윙버스 [트래비] [럭셔리] 에디터를 거쳐 2012년 영국에 정착했다. 비 오는 날의 얼 그레이, 평일 오후의 프리미어리그 경기, 주디 덴치의 영국식 악센트와 장미향 가득한 리젠트 파크는 언제 즐겨도 좋다. 해를 거듭할수록 ‘클래식’이야말로 영국의 참 멋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중이다. 가끔씩 노루와 꿩이 출몰하는 정원 딸린 작은 집에서 생활하며 [매거진B] [디자인] [아레나 옴므] 등에 크고 작은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