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전경 © Yoshitomo Nara, Hayward Gallery
아시아 생존 작가 중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작가이자 일본 카와이(kawaii) 문화와 영미권 로큰롤 정신의 결합으로 ‘귀여움 속 저항’을 캐릭터화한 독보적 스타일의 아이콘인 일본 현대미술가 요시토모 나라의 첫 영국 회고전이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열린다.
2025년 6월 10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요시토모 나라가 근 40년간 작업한 15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초기 드로잉 작품부터 회화 최신작까지 작가의 스타일 변화와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번 전시는 연대기적 작품 배열이 아닌 작가의 감정과 기억의 흐름에 구성을 택했다. 대형 설치물 옆에 작은 드로잉이 놓이고 작품들이 다양한 높이에 배치됐다. 관객은 아이처럼 목을 빼거나 고개를 숙이며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이목을 끄는 공간은 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한 설치 구조물이다. 작은 방 안에는 기타, 스케치북, LP, 빈 맥주 캔 등이 흩어져 있어 작가의 창작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업실을 재현한 설치 공간 © Yoshitomo Nara, Hayward Gallery
카와이(kawaii)의 반란
요시토모 나라의 그림 속 인물들은 대체로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귀여움의 이면에는 분노와 저항 정신이 있다. 대표작 <Knife Behind Back>(2000)은 칼을 숨긴 채 정면을 응시하는 소녀의 앳된 얼굴이 '폭력과 귀여움의 충돌’이라는 미묘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 작품은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2,500만 달러(약 340억 원)에 낙찰되며 아시아 생존 작가 중 최고가 기록을 세운 작품이기도 하다.
Sotheby's Hong Kong October 2019 contemporary art evening sale of Yoshitomo Nara's Knife Behind Back,1999. ©Sotheby's
로큰롤의 저항
작품 속 소녀들이 칼뿐만 아니라 못을 들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고 불난 집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이른바 ‘삐딱함’의 상징이다. 거친 생활을 드러내듯 붕대를 감거나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듯 눈을 질끈 감고 있기도 하다.
이는 작가가 좋아하는 로큰롤 음악과 관계가 있다. 미군 기지 인근 일본 북부 히로사키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 속에서 미군 방송을 통해 로큰롤에 빠져들었다. 비순응과 반체제를 기본 골자로 하며 ‘누구나 할 수 있는(DIY)’ 평등을 강조한 록 음악의 정신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작가가 열 살 무렵부터 수집한 레코드가 고스란히 플레이리스트화 되어 전시 공간에 흘러나와 공간과 음악의 조화를 보인다.
<Fire>(2009) © Yoshitomo Nara
마이너의 대중화
요시토모 나라는 ‘귀여운(카와이)’ 캐릭터들을 비틀었다는 점에서 마니아층의 지지를 얻기 충분했다. 귀여운 외모에 무기력과 불만을 내포하고 있는 캐릭터는 일본 사회의 억압된 감정을 투영하는 매개가 되었다. 이는 1964년부터 2002년까지 청림당에서 발간한 일본 최초의 청년 만화이자 대안 문화의 상징인 ‘가로’ 잡지에서 작가가 영감을 받은 것인데 과장된 묘사와 블랙 유머가 비주류 문화를 은밀히 즐겨온 일본의 오타쿠 문화인들을 열광하게 했다. 마이너의 대중화인 셈이다.
이는 예술 사조인 네오 팝과도 연결된다. 네오 팝 아티스트들이 지향하는 예술론인 ‘슈퍼 플랫’은세계대전 후 사회계급의 높낮이가 '평면화(flattened)'된 현상에서 기인하여 문화에도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하위문화적인 요소들을 상위예술 시장의 영역에 소개하는 경향이다. 네오 팝 아티스트인 무라카미 다카시가 이를 미디어적으로 구현했다면, 요시토모 나라는 캐릭터로 창조했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
<Harmless Kitty>(1994) © Yoshitomo Nara, Hayward Gallery
전환점이 된 재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작가의 작품세계의 전환점이 되었다. 재난 이후 그는 도자기와 청동 조각 작업을 병행한다.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심적으로 고되니 차라리 점토를 마주하겠다는 선택이었다. 그의 스튜디오로부터 불과 7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였던 만큼 희생자들을 기리며 자선 경매를 열었던 작가는 훗날 '사악한 모습'이라는 뜻의 청동 조각 작품인 <Wicked Looking>(2012)을 내놓으며 소녀를 상하게 만든 이들을 저격하는 메시지를 사회에 보낸다.
<Wicked Looking> (2012) © Yoshitomo Nara
영국 비평지 '가디언'은 본 전시를 "귀여움(cutesy) 속에 숨은 공포와 저항의 형상들"이라는 말로 만점을 부여했다. 연대순의 배치에 친절한 설명이 더해진 규격화된 전시라기보다 그저 감정이 흐르는 대로 직관적으로 체험하면 좋다. 런던에 있다면, 혹은 런던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이 전시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 : Yoshitomo Nara: First UK Institutional Exhibition
기간 : 2025년 6월 10일~8월 31일
장소 : 헤이워드 갤러리 (Hayward Gallery, 런던 사우스 뱅크 센터)
예매 : southbankcentre.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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