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ono」, 「LUV」 그리고 이번 곡까지 오면서, 에이핑크는 하나의 전략을 잡아낸 것 같다. 레퍼런스에 대한 비판이 계속된다면 아예 복고적인 느낌을 팀의 색깔로 흡수하겠다는 것. 하나 둘 셋 뒤로 깔리는 코러스, 오르골과 펜플릇, 빠른 댄스곡이면서 슬프게 느껴지는 분위기 이런 장치들은 타이틀곡 전반에 걸쳐 등장하며 노래의 인상을 주도한다.
에이핑크를 좋아하는 대다수가 과거의 색깔을 경험하지 못했고 트렌디하게 느껴지지 않음에도, 이들에게는 이전 세대의 향취를 간직하는 것이 곧 꾸미지 않는 수수함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앨범 전체를 이렇게 꾸려 신인들과 살짝 다르게 다가오게 한다. 신사동호랭이와의 오랜 작업이 정착을 도왔겠지만, 덕분에 에이핑크는 작곡가마다 흔들리지 않을 색채가 만들어졌다.
타이틀곡 몰아주기로 인해 여러 그룹들이 놓치고 있는, 수록곡의 흐름 역시 안정적이다. 그 중에서도 발라드 트랙은 사근사근한 모습을 정직하게 담고 있어 팀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또 다른 강점이 된다. 덕분에 감상을 반복할수록 장식을 더한 「I Do」나 「Perfume」보다 음색을 따스하게 풀어내는 「꽃잎점」, 「Dejavu」, 「신기하죠」 쪽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곡들이 음반 전체에 여성스러움을 불어넣고, 그 우아함이 멤버들의 목소리로부터 풍겨져 나온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이처럼 신보는 그동안 지적되어온 한계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며, 소녀들이 아주 천천히 다른 길을 가고 있음을 알린다.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 청순함을 넘지 않기 위해 조심해왔고 그렇기에 성장을 보여주는 단계에서도 역동과 재미 대신 변하지 않는 순수함을 택한다. 동시에 그런 소극적인 태도가 마치 한계에 다다르기 전 걸음을 늦추며, 최대한 결과를 미루기 위한 전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심을 두는 곳에 따라 누구에게는 달콤함과 안정감으로 다른 이에게는 지루함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
에이핑크는 앞으로도 안전함과 성숙함을 동시에 가져가기 위한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것이 음악 스타일을 흐릿하고 연하게 만들었고, 말괄량이 댄스곡 대신 발라드가 다수 들어선 앨범은 팀이 어느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수수함에 몰두한 나머지 아이돌로서의 본질적인 패기나 매력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결과 음악을 즐기기 위해 이들의 앨범을 찾는 층이 얻어갈 수 있는 재미나 놀라움이 줄어들고 있지 않을런지, 이 여백을 「새끼손가락」과 「Remember」 등 팬과의 서약을 담은 노래들이 채워줄 수 있을지. 에이핑크가 단발적인 기획에 흔들리길 바라지 않지만, 소극적인 행보로 스스로 수용 층을 좁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된다.
2015/08 정유나(enter_cruise@naver.com)
[관련 기사]
- 비교적 덜 알려진 마이다스의 손, 피제이
- 여름을 잊게 하는 앨범, 나인 뮤지스 < 9MUSES S/S EDITION >
- 세련된 멜로디 라인의 팝 앨범, 원더걸스 < Reboot >
- 20년 만에 다시 만난, 삐삐밴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