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저녁 7시 종로구에 위치한 정독도서관 시청각실에서, 최근 책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를 출간한 사회학자 정수복의 강연이 진행됐다. 평소 바쁜 삶에 치여 살기 바빴던 우리가 그 동안 눈여겨보지 않거나 외면했던 일상 속 풍경들을, 그는 천천히 걸으면서 새로운 눈으로 다시 바라봤다. 정수복은 “쫓기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걷는 사람에게 헛걸음은 없고 이방인에게 당연한 풍경은 없습니다. 삶이 힘겨울수록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유년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서울에서 생활했던 그는 198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 후 7년 정도를 그곳에서 머물다가 공부를 마치고 다시 귀국해 한국에서 여러 활동을 펼치던 그는, 2002년 다시 파리로 돌아가 10년 정도를 살다가 2011년 한국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거의 절반의 시간을 외국에서 보낸 셈이다. 그는 그런 자기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칭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이곳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여기 사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겐 당연한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방인의 시선이죠.”
이방인의 눈을 가지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익숙한 것들이 이제는 그의 눈에 새롭게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말에서 조금은 슬프고 외로운 느낌을 발견할지도 모르지만, 이방인, 혹은 경계인의 삶이란 어떻게 보면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적으로라도 이방인의 눈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
“이방인의 시선으로 서울을 보려고 하는데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나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서울에 살 때는 몰랐습니다. 제가 파리에서 사는 동안 자유롭게 파리를 여기저기 걸어 다녀봤어요. 파리는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에요. 서울의 6분의 1 정도이고, 인구는 200만 명 정도죠. 외국에 오래있다가 돌아오면 낯설어 보이고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거든요. 예전에는 이상하게 느꼈던 것들이 자연스러워진 것도 있고요. 서울에만 계속 살았으면 보이지 않았을 텐데, 먼 곳에 갔다 왔기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써보고 싶었어요. 사진기로 서울을 찍은 것이 아니라 글로 스냅사진을 찍었다고 할 수 있죠.”
걷는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
그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타지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에게는 특별하게 눈에 띄는 것들을 글로 담고 싶었다고 전했다. 평소 걷는 것을 사랑하며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는 정수복이 기억하는 최초의 걷는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산다는 것이 곧 걷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적에는 집 안에서만 걸어 다니다가 시간이 흘러 집 밖에도 나가게 되고, 학교에도 가고, 자신이 사는 동네 밖으로 나가 점점 멀리, 다른 지역, 다른 나라로까지 가게 되죠.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매일 학교와 집만 오가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느 날 부모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제가 살던 약수동에서, 이모 집이 있는 청량리까지 걸어갔어요. 아마 그때부터 걷는 버릇이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무섭다는 생각이 들면 못 걷거든요. 저는 어린이 신분으로 그 당시에 걸었던 경험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걸으면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는 생각이 박힌 것 같아요.”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의 1부에는 평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2부에는 도시란 과연 무엇인지, 인간적인 도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들어 있다.
“좋은 도시의 기준에는 교통이 편리하고,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있고, 교육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것들도 있을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도시는 걸을 수 있는 도시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매일 도시를 걸어 다니잖아요. 도시를 걷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차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사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뇌가 커지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즉, 걷는다는 것은 바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도시를 걷기 위한 방법
그의 말에 의하면,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걸으면서 평소보다 더 깊이 생각하며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시각을 조금만 달리 해서 주변을 바라본다면 그 동안 볼 수 없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꼭 멀리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 일상을 여행하는 여행자가 되어보는 것이다.
“저는 도시를 걷기 위한 방법도 여러 가지 생각해봤어요. 요즘의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부분적인 지도만 보는데, 저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벽에 큰 지도 하나 걸어놓고 매일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도시의 지형지물을 머리에 익히는 것이죠. 중요한 장소들이 어디에 있는지 머리에 넣고 있으면, 어떤 곳을 가더라도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감이 사라지죠. 그리고 매일 가는 곳만 다니지 말고 가지 못했던 곳에도 가보는 것이 중요해요. 그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또 누구와 다니는가도 중요하죠.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어떤 사람과 가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져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곳을 다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소 우리가 많이 걸어 다니지 않는 이유를 꼽아 보자면, 걷는 것보다 앉아서 쉬는 것을 더 좋아하거나, 일상생활에서 TV나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비중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면 남는 시간을 걷는 데 쓸 수 있게 된다. 정수복은 “걷는 행위는 삶의 시야를 넓히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걷기를 통해 어쩌면 틀에 박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우리의 삶을 매일매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진정한 걷기의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태어난 도시를 마음 속 제1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서울이 제1의 도시인데, 살면서 제2, 제3의 도시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 도시의 공간적 구성 요소들을 배워서 내가 사는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집이라는 것이 단순히 우리가 사는 아파트 몇 동 몇 호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전체를 집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그 도시를 내 집처럼 꾸미고 점점 더 살기 좋게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독자들이 묻고 정수복이 대답하다
Q. 어느 철학자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걸으면서 눈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기 위해서는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지켜야 할 텐데, 그렇다면 서울을 어떻게 보존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요?
A. 유럽의 여러 도시를 걸으면서 서울과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장소가 과거에는 어떤 곳이었고, 어떤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 잘 명시돼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과거의 느낌을 그대로 받으면서 다닌다는 기분이 들면서, 내가 선조들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살다가 그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역사의식을 갖게 돼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서울은 오랜 세월의 역사가 잘 느껴지지 않잖아요. 그나마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궁궐들 몇 개 정도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서울의 중요한 장소들이 어떤 배경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해요. 그리고 시민과 연구자, 지역 국회의원 등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서 정부에 압력을 계속해서 줘야 합니다. 그렇게 공론화 과정과 타협을 거쳐, 더욱 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합니다.
Q. 사회학의 출발은 당연한 것에 의심을 품고 질문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새롭게 바라보고 질문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우리가 살면서 재미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 중에서 호기심이 가장 중요해요. 호기심은 편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걱정이 없을 때가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생겨나죠. 그런데 단순히 호기심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런가를 계속 탐구하는 탐구심도 있어야 해요. 호기심과 탐구심이 더해져야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호기심을 갖고 어떤 분야를 계속 탐구하다 보면 무언가 나오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더 좋은 도시를 만들려면 다른 도시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그렇게 호기심이 문제의식으로 발전하고 탐구로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존재로 사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우리 스스로가 인생을 만들어가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호기심을 탐구심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을 넓혀가는 과정이죠. 단순히 학교를 졸업해서 형식적으로 졸업장을 따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고 다른 이들과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것이야말로 문화국가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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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 저 | 문학동네
오랫동안 머물렀던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지겨웠던 서울의 풍경들이 파리에서 온 이방인 ‘정수복’의 눈에는 놀랍고 생생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이라는 화려한 거대도시, 그 도시 속 작고 고단한 서울 사람들. 이 책은 그 명암을 특유의 문학적이면서도 냉철한 문장으로 그려낸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인 서울의 풍경화이다. 유명한 관광지와 맛집이 아닌, 가장 사소하고 일상적인 풍경에서 건져올린 ‘정수복의 서울 33경’은, 서울 사람들이 매일 마주치지만 눈여겨보지 않거나 외면했던 현대인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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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원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