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에이, 방송도 하시잖아요.’라고 아는 사람은 반문하겠지만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하면서도 말을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나는 언제나 중얼거렸고, 말하고 나서 자주 후회했다. 집에 돌아오면 적절한 타이밍에 하지 못했던 말들이 입에 먼지처럼 쌓여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했다. 이것은 어쩌면 지방 사람의 ‘서울 콤플렉스’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사람들이 어찌나 새초롬하게 말을 잘하는지 참으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경상도에 관련된 농담 중에 이런 게 있다. 많이들 알겠지만,
1) 경상도 남자가 하는 하루 세 마디는?
밥 묵자.
아는? (아이는?)
자자.
다른 버전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다. 19금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버전으로 알고 있을 거다.
2) 경상도 남자가 하는 하루 세 마디는?
아는? (아이는?)
자자.
좋나?
밥은 매일 먹는 것이고, 아이 걱정도 매일 하는 것이고, 잠도 매일 자는 것이므로 1번 농담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2번 농담이 좀더 극적이다. 2번의 농담이 사실에 근거했다고 믿는다면 경상도 남자는 매일 저녁 잠들기 직전에 “좋나?”라고 물어보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 물론 ‘팔베개 해주니까 좋나?’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 이건 좀 남사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어릴 때 동네 사람들이 대화하는 걸 보고 참 신기하긴 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전투처럼 보였다.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지만, 거칠게 하는 경우가 잦았다. 목소리들은 근처에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컸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이 총알처럼 빗발치는 현장에서 나는 자랐다. 대화란 전쟁이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자랐다. 이제는 그들이 얼마나 다정한 마음을 주고받는지 잘 안다. 그래도 여전히 커다란 목소리로 싸우는 듯한 동네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주눅이 든다.
서울에 와서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은 ‘내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것 같은 상대방의 얼굴’이었다. 어쩐지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이야기를 듣는 척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이제 서울에 올라온 지 20년이 넘었고, 서울 사람들(이란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을 조금은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상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적게 하는 사람으로 나뉘지 않는다. 말을 세련되게 하는 사람과 거칠게 하는 사람으로 나뉘지도 않는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미리 얘기했지만, 나만의 결론이다.
말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대화를 나누기에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예전부터 듣는 일은 잘했다. 가만히 앉아서 적당한 추임새를 곁들이는 일을 잘했다. 내 얘기를 꺼내는 건 언제나 민망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건 지루하지 않았다. 가끔씩 도저히 참기 힘들 정도로 자기 자랑만 해대는 사람을 피해 도망친 적은 있었다. 쓸데없는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짜증나서 말을 자른 적도 있긴 하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화제를 주도하는 게 꼴 보기 싫어서 쉴 새 없이 말을 한 적도 있긴 하다. (남의 이야기 잘 들어주는 사람 맞니?) 내 얘기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늘 생각한다. 걱정한다. 그래도 나는 듣는 일이 여전히 즐겁다.
대형 서점의 처세술 코너에 갔더니 ‘화술’에 대한 책이 무척 많았다. ‘관계’와 ‘소통’에 대한 책도 많았다. 대화를 책으로 배울 수 있을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대화’의 목적이 ‘성공’이라는 데 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말을 잘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성공하길 원한다면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대화는 없다.
우리가 대화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고, 공감하기 위해서다. 대화의 결과는 이해여야지,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화 완전정복’에서는 성공하지 못하는 대화를 다룰 생각이다. 너무 사소해서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들, 중요한 내용이 없어 보이는 대화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반짝일 만한 대화들을 다룰 생각이다. 영화와 소설과 연극과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속에는 보석 같은 대화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본격적인 ‘대화 완전정복’은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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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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