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고 염치 없는 ‘용감한 형제’
형제는 비겁했다. 빈손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돌아가야 할 곳과 돌봐야 할 사람들을 외면했다. 형제는 치졸했다.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끌려오듯 다시 찾은 고향집에서조차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데 열중했다. 그런데도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그들은 용감했다’고 기록한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 ‘로또’를 찾느라 혈안이 되어서 상가(喪家)의 대문까지 걸어 잠근, 이 철딱서니 없는 두 남자가 용감하다니. 무언가 ‘사건’이 발생할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위아래 없고 싸가지 없고 염치 없고 예의 없는 썩을 놈 죽일 놈”이 용감한 형제로 거듭날 수는 없을 테니까. 도대체 그 ‘사건’이 뭔지, 그들이 바뀌기나 할는지, 궁금함에 사로잡힌 관객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수밖에.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의 원형은 한 편의 이솝우화에서 찾을 수 있다. 포도밭에 보물을 묻어두었다는 유언을 남긴 채 숨을 거둔 아버지의 이야기, 아마도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들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온 밭을 헤집어 놓았고 그 결과 큰 수확과 교훈을 얻으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의 뼈대를 이루는 사건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포도밭이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이 아니라 안동 이씨 종갓집이라는 한국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게 차이점이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보물은 비교적 실체가 뚜렷한 ‘로또’로 탈바꿈했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수확’이다. 부모의 죽음을 통해 자식들이 획득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전달되는가. 이 두 가지 요소를 어떻게 변주하느냐에 따라 ‘아버지의 포도밭’ 우화는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더라도 여정과 목적지를 달리하면 전혀 다른 여행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이 과제를 유려하게 풀어냄으로써 초연 이후 7년 동안이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죽음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만 극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다. 갈등과 대립의 순간들을 조명하면서도 웃음이 배어나오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다. 작품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유려하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다. 마치 얼레에 감긴 줄을 풀었다 감으며 바람 속에서 연을 춤추게 하듯,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긴장과 이완을 솜씨 좋게 교차시키며 관객들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죽음을 통해 밝혀지는 가족의 이야기
석봉과 주봉 형제의 관심사는 오로지 ‘로또’ 뿐이다. 종갓집이라고는 하나 문중의 재산은 일찌감치 형 석봉이 ‘말아먹었고’ 동생은 변변한 일자리조차 갖지 못한 백수 신세이니, 아버지가 남긴 한 장의 ‘로또’는 가장 값진 유산이자 유일한 희망이다. 그 앞에서는 부모의 죽음도 뒷전으로 밀려난다. 사실 형제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할 마음도 없다. 늘 차갑고 엄격했던 분으로 기억될 뿐이고, 어머니를 지켜내지 못한 매정한 위인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흔적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형제는 알지 못했던, 오래된 순간들과 감춰진 진실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눴던 애틋한 감정들이, 자식들이 떠난 뒤 쓸쓸하게 남겨졌던 부모의 시간들이 새겨져있다.
이렇듯 죽음은 침묵의 언어로써 말을 걸어온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들이 비로소 죽음 이후에 깨어나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이미 떠나갔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곁에서 숨을 쉰다. 죽음은 존재의 부재가 시작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영원히 실재하는 존재를 낳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가 관객에게 남기는 유산이라 할 만하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는 당의정 같은 작품이다. 짙은 페이소스를 품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관객을 가둬둘 생각은 없어 보인다. 풍자와 해학이 깃든 대사, 명랑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캐릭터, 전복과 반전을 보여주는 음악과 안무로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깨알처럼 톡톡 터지는 재미가 관객들을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는 부지불식간에 가족과 죽음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았으니 ‘똑똑한’ 작품이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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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양명욱
2015.12.08
양명욱
2015.12.08
양명욱
201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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