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작은 재즈동네이지만 이 동네 사람들이 몇 해 전부터 예의 주시하고 있는 독립 레이블 하나가 있다. 2년 전에 발족한 '일일 사운드'다. 이곳에서 나오는 음반들은 하나 같이 아티스트들의 개성이 선명했고 그래서 평론가들의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등장해서 일약 주목을 받은 색소포니스트 김오키는 이 레이블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하지만 레이블 전체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베이시스트 김성배는 이 레이블의 조타수라고 할만하다. 그는 아티스트이면서 어떻게 레이블을 만들었을까? 그가 생각하는 재즈란 어떤 것일까? 영국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그를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국에서 초청을 받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입국했나?
스코틀랜드에서 8일 동안 공연 하고 지난 8월 25일, 그러니까 이틀 전에 들어왔다.
어떤 행사였나?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열리는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라는 축제다. 음악축제라기 보다는 연극, 무용의 비중이 큰 축제다. 기본적으로 에딘버러에는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이라는 커다란 축제가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주류 축제에 반(反)하는 소규모 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연극을 새롭게 해석해 공연한다든가 하는 식의 시도가 자유롭게 열리는 축제였다. 그것이 성장하여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로 발전한 것이다. 이 축제는 실험적인 음악에도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어떤 연주자들과 다녀왔나?
작년에 음반을 발표한 (컨템포러리) 국악그룹 '세움'의 멤버로 다녀왔다. 작년에 세움은 서울아트마켓(PAMS: Performing Art Market in Seoul)에 참여했는데 그곳에 온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관계자가 우리를 보고 초대한 것이다.
에딘버러에서 세움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나?
에딘버러의 C 애버뉴 극장에서 일주일간 공연했다. 그런데 첫 날인 월요일과 다음 날인 화요일에 사람들이 너무 오질 않아 공연이 끝나고 우리들은 좀 낙담했다. 그러다가 근처에 있는 '리큐어 라이브러리'(Liquor Library)라는 라이브 바를 발견하고는 무작정 들어가 연주 한 번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주인이 출연료는 30파운드 밖에 못주며 대신 맥주를 무료로 주겠다고 하여 그곳에서 연주를 했다. 연주가 끝나자 반응이 좋았다. 한 나이 많은 관객은 다가와서 '내가 평생에 들었던 음악 중에 가장 충격적인 사운드'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공연이 있은 후 조금 용기를 얻었다.
축제기간에 열리는 공연들에 관한 평들이 지역신문과 웹사이트에 실리는데 우리 리뷰는 바에서 공연한 다음 날인 수요일에 실렸다. 그런데 평점이 별 다섯 개, 만점이었다는 게 중요했다. 그러자 그 다음 날인 목요일부터는 관객들이 극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공연이 끝날 때면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그들에게 낯선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감상하고 반응하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그곳 현지의 음악인들이 조금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잠비나이와 국악그룹 숨을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리커 라이브러리'에서도 두 번 더 공연을 가졌다. 그때 출연료로 60파운드를 받았다. (웃음)
세음의 멤버들을 소개해 달라.
트럼펫에 하승국, 소프라노, 알토 색소폰에 김성완, 가야금에 이준, 타악기와 구음에 이민경 그리고 베이스에는 나다.
작년에 앨범을 발표했을 때와는 멤버가 많이 바뀌었다.
그렇다. 재즈 뮤지션인 하승국, 김성완, 나를 제외하고 국악 연주자들이 전부 바뀌었다. 인원도 두 명으로 축소되었다.
그렇다면 음반에 수록되었던 내용과 현재 연주는 많이 바뀌었나?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곡을 전부 내가 썼고 전체적인 디렉션도 내가 했기 때문에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데 음반에는 '김성배 작곡'이라는 표기가 전혀 없더라.
음반에서는 내가 팀을 이끌었다는 점을 감추고 싶었다. 음악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를 해도 기본적으로 세움의 음반은 국악음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 국악 공부에 대해 일천한 재즈 연주자가 국악 작곡을 하고 팀을 이끌었다는 점을 밝히려니 쓸 데 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 같고 해서 그런 점들을 감췄다.
국악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
나는 천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내가 어릴 적 '80년대 우리 동네에서는 무속인들의 굿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 소리가 좋았다. 물론 음악을 좋아해 나중에 클래식을 전공하다가 재즈에 관심을 가져 분야를 옮기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릴 때 접했던 국악에 대한 관심은 내게 늘 있었다. 그래서 음반에 담긴 민요들을 채보하고 국립국악원에서 국악전공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국악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움은 국악그룹이라고 봐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데 우리가 국악을 한다고 해서 전통적인 한국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국악도 21세기 현대음악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징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마치 일렉트로닉 사운드처럼 들렸다. 언젠가는 그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볼 생각이다. 국악이 갖고 있는 현재성, 국제성에 나는 관심이 더 많다.
그러한 음악을 추구할 때 국악인들과는 견해 차이가 없었나?
당연히 많았다. 전통이라는 것은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지만 재즈 음악인이 보기에 국악계는 전통에 대한 관념이 훨씬 더 강한 것 같다. 그에 비한다면 나는 클래식 전공 했다가, 재즈 연주 했다가 한때는 홍대 주변에서 인디 음악도 했고, 그래서 내 음악은 족보가 없는, 무족보 음악인 것 같다. (웃음) 당연히 갈등이 있었다.
일일 사운드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2013년 여름이었는데 그때 김오키와 나는 각각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음반이 완성되면 어떻게 배포할 것인지, 홍보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가 직접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기존의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내면 무엇이 문제였나?
기본의 유통구조 속에 들어가면 온라인 매장에 음반 자료가 올라가고 몇몇 매장에 음반이 비치되어 있고 운이 좋아 매체에 나온다던지 그게 전부였다. 수많은 음반을 취급하는 배급사의 입장에서는 일일 사운드의 음반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고 하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배급사와 이익을 나눠야 했다. 실제로 일일 사운드를 시작하고서도 홍보는 직접 했지만 유통에 자신이 없어서 기존 배급사에게 부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대형 소매점에서 가격 덤핑을 하는 등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 결국에는 신촌에 있는 향음악사에만 우리가 직접 배급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오프라인 매장 중에서 향음악사에만 일일 사운드의 음반이 전부 있다.
너무 배급 통로가 좁은 게 아닌가?
우리의 음악이라는 게 다양한 팬들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그리고 실제 판매를 보면 우리가 공연 때 직접 파는 음반의 양이 더 많다. 그러니까 우리 음악을 좋아해 줄 사람들은 우리 공연에 오는 것이다.
음원 판매는 어떻게 하고 있나?
그 부분은 조합원들의 의견이 잘 수렴되지 않아 각자 결정하는 것으로 했다. 각각의 아티스트들이 자기 음원을 원하는 경로를 통해 팔고 있다.
조합원들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2014년 11월에 일일 사운드는 종로구의 협동조합으로 등록이 되었다. 그래서 속한 아티스트들은 조합원이 되는 것이다. 모두 매달 조합비를 내고 있다.
협동조합으로 등록이 되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
종로구에서 공연과 연주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줄 예정이다. 지원자들이 많아 우리가 선택 될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조합을 결성하면 우선적으로 그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10월에 심사 결과가 발표된다.
그렇다면 일일 사운드는 독립적인 아티스들의 모임인가?
그렇다. 모든 음반들은 그 아티스트가 직접 제작한 음반들이다. 단지 개별적으로 홍보하거나 개별적으로 공연하면 힘이 너무 없으니까 그런 뮤지션들끼리 모여 같이 활동함으로써 서로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모였다.
현재까지 몇 장의 음반이 나왔나?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꼽으며 세어본다) 김오키, 김성배, 김성준, 지박, 세음, 김오키 2집, 준킴, 아방 트리오, 오진원, 지박 & 바르당 오베스피앙, 신성아, 이렇게 모두 열한 장이 나왔다.
음반을 발표한 사람들은 모두 조합원인가?
아니다. 아방 트리오에 참여한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카 한은 조합에 속해있지 않고 당연히 외국인 피아니스트 오베스프앙도 조합원은 아니다. 반면에 아직 음반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허준혁, 김윤철은 조합에 속해있다.
속한 뮤지션들을 보면 재즈 뮤지션들이 많지만 국악 뮤지션들도 있고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그렇다. 성아 누나(신성아)는 현대음악 작곡가인데 다른 분야의 연주자들과 작업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일일 사운드의 성격과 딱 들어맞는다.
누구나 일일 사운드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여기 속한 음악인들과 작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작업하다가 서로 뜻이 맞으면 자연스럽게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일일 사운드는 왜 다양한 분야의 음악인들이 함께 하게 되었나?
일일 사운드는 해외의 다른 레이블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참신한 음악을 만드는 게 목표다. 내 개인도 그러한 목표를 두고 음악을 하고 있다. 나는 음악이란 원래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못 어울릴 음악이 없다. 서로 장벽을 치는 것은 새로운 음악의 탄생에 장애가 된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는 무용, 연극 등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도 적극적으로 만나 볼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재즈와 국악을 섞으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작업을 하면서 너무도 자기가 해오던 음악에 집착해서 그런 게 아닐까 본다. 아울러 상대방 음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그런 것이 너무 부족한 채 그냥 만나서 작업하다 보니 뭔가 어색한 음악만이 나왔던 것이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 보인다.
김성배 퀸텟의 첫 음반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후에는 활동이 없었나?
작은 공연들을 많이 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는 일본 간사이 지방 타카츠키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했었다. 우리 공연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려놨더니 그것을 보고 연락이 오더라.
일본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일본 전체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모두 앨범에 수록된 오리지널 곡을 연주했는데 그걸 보고 일본 재즈 연주자들이 많이 놀라더라. 그들은 스탠더드 넘버들을 주로 연주했다.
김성배 퀸텟의 향후 계획은 없나?
2집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멤버를 대폭 교체해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보고 싶다. 색호폰에 신현필, 피아노에 윤문희, 드럼에 한웅원 그리고 기타리스트 한 명을 물색 중이다.
그 밖의 다른 계획은 없나?
세음도 새로운 녹음 제의가 들어왔다. 독일에서 제안이 들어왔는데 무손실 마스터 음원으로 판매된다. 1집에 수록되었던 세 곡과 새로운 곡 두 곡을 새로운 멤버들과 곧 녹음할 것이다. 일일사운드의 음반들을 LP로 발매하는 프로젝트를 비트볼 뮤직과도 이야기 중인데 만약 성사가 되면 김성배 퀸텟 1집을 다시 녹음하고 싶다. 당시엔 처음 녹음이라 녹음에 있어서 여러 시행착오가 많았다. 새롭게 녹음한다면 훨씬 좋은 음향으로 녹음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 인천 문화재단 아트 플랫폼의 입주작가로 있는 만큼 이곳에서 원하는 성과물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무척 바쁘게 사는 것 같다.
그런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베이스 연주자로 찰스 밍거스난 데이브 홀랜드를 따라 잡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음악을 어렴풋이 만들기만 해도 난 음악인으로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 정리: 황덕호
사진: 이한수 (인터뷰), 방영문 (에딘버러)
2015/09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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