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러드 다이아몬드, 제레미 리프킨, 노암 촘스키, 장 지글러, 지그문트 바우만, 하워드 가드너... 한 자리에 올려놓을 수 없을 것 같은 이름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시대의 ‘거장’들의 목소리가 그야말로 ‘생생하게’ 담겨있는 책 『문명, 그 길을 묻다』이 출간된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사람은 라디오 PD로 활동하다 전문 인터뷰어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안희경이다. 그는 2014년 <경향신문>에 같은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연재했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이대로, 인류의 문명은 괜찮은가?
“제가 살아온 40여 년이 황금기였던 것 같다”는 저자 안희경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에게 스티븐 호킹의 말을 인용하며 던진 첫 질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티븐 호킹은 1,000년 이내에 인류는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안희경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놀랍도록 단호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스티븐 호킹은 틀렸어요.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에게는 1000년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아요. 단지 50년뿐입니다. 우리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한 문제를 풀든지, 아니면 완전히 망치든지 시도해볼 수 있는 시간 말이죠.”(21쪽)
50년. 인류가 지구의 자원을 소비하는 지금 속도대로라면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단 50년의 시간만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트롤어업 방식으로 무분별하게 어류를 남획해 바다 속 생물들은 죽어가고, 사치스럽게 나무를 소비하는 바람에 숲은 날이 갈수록 빠르게 황폐해진다. 세계 담수의 85퍼센트를 사용한 우리는 이미 쓸 수 있는 물을 거의 다 썼다. 저자는 되물었다. 그래도 인류에게는 문명과 기술이 있지 않은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다시 한 번 강하게 답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을 지속 가능하게 작동시킬 에너지 발전 기술을 알고 있으니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입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바람이나 태양 같은 자연을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겠다는 의지 말입니다.”(29쪽)
굶어죽지 않는다는 믿음
문제는 언제나 복잡하게 얽혀있고, 상황을 단순하게만 보는 것은 문제해결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4년 1월 캄보디아는 다국적 기업 봉제 공장의 저임금 착취 문제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봉제 노동자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스웨덴 소비자들은 자국 기업 H&M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H&M은 캄보디아 노동자의 최저 임금 인상을 발표했다. 스웨덴에서 일어난 불매운동이 캄보디아 근무 환경을 바꾼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고, 이 사건이 해피엔딩이라고 이해하면 우리는 상황을 아주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당장 국내 언론 역시 동남아 지역의 임금 인상으로 인해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기사를 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 공장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는 더 많은,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 시리즈를 하며 세상에 이것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것으로 “굶어죽지 않는다는 믿음”, “기회를 갖고 경쟁할 수 있는 교육 보장”등을 꼽았다. 전에 없는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이 시대에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한쪽에서 돈 잔치를 하는 동안 반대쪽에 있는 99%의 사람들의 삶은 불안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환상 아래 자본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여기에서, 어떤 경우에도 굶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있고,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의 기회가 모두에게 보장된다면 삶은 훨씬 지속가능하며 안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
“누구나 뭔가를 하고 싶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상황,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상황이죠. 욕망을 조금 해도 죽지는 않겠다는 믿음이요. 그걸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제레미 리프킨은 이미 변화의 시기에 와 있다고 말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근데 그 미래가 현재일 수 있죠.”라는 안희경은 제레미 리프킨과 ‘3차 산업혁명’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3차 산업혁명입니다.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에너지가 새롭게 수렵되고 있는 그 지점을 향해 있습니다. 그 3차 산업혁명의 추진력은 바로 인터넷입니다. 20세기 말에 일어난 매우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혁명이죠.”(64~65쪽)
“어렴풋이 제일 중요한 건 다양성 존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 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얘기를 할 때 ‘이건 메인 스트림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메인 스트림이 아니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변화가 있을까요? 장쉰(대만의 작가, 평론가) 선생이 한 말 중에 ‘모든 변화의 시작은 다 고독하다’는 말이 있어요. 다른 생각을 시작하는 사람은 고독해요. 메인 스트림은 과거의 흐름이에요. 우리가 현재를 사는데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죠.”
커뮤니케이션 혁명
인터넷을 기치로 한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더불어 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원의 변화는 제레미 리프킨뿐 아니라 장 지글러, 지그문트 바우만 등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바이오매스로 넘어갔다. 태양열 발전으로 전기를 개인이 만들 수 있고 소유하게 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만한 일이 이미 유럽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산다는 저자 역시 집 안에서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전기 회사에서 스마트그리드를 다 달아줘요. 인터넷과 연결시켜서 전기 사용량이 많은 오후 시간에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돈을 돌려줘요. 이게 기본적인 스마트그리드예요. 전기회사가 전기 쓰지 말라고 돈을 주는 거예요. 전기를 많이 써야 돈을 벌 것 같잖아요? 전기 팔아서 나오는 돈 보다 조절했을 때 수익이 나온다는 거죠. 이제는 바뀌었다는 거예요.”
에너지 민주화라고 하면 시장에서 에너지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개인이 존중받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요 에너지의 생산과 수입, 공급과 유통을 맡아왔던 기업 그리고 권력과 대등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을 만큼 개인이나 생산조합들의 영향력이 커져야 할 것이다. 재생에너지로 만드는 전력이 중앙집중식 전력보다 더 많아질 때 자연스럽게 힘의 균형은 이루어질 것이다.(80쪽)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생각의 전환이다. 저자는 소비자로서의 힘을 강조하며 “(우리 삶이)단가 안에 계산되지 않으려면 잊었던 것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잊었던 것은 다름 아닌 자급자족의 삶이다.
“돈 벌어서 먹고 산 게 사실 얼마 안 되거든요. 그 전에는 돈 벌지 않고도 그냥 어울려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내 밥을 어떻게 생산하는지 잊어버렸어요. 이 능력을 살리는 것, 이 회복이 엄청난 파워예요. 그러면 나를 흔들 수 있는 게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잃어버린 인간의 능력을 회복하는 거죠.”
“결국은 삶”이라는 저자는 이런 자각들이 모이고, 판이 모였을 때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담담히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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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그 길을 묻다안희경 저 | 이야기가있는집
[경향신문]을 통해 1년여 간 독자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갖게 했던 ‘문명, 그 길을 묻다’에 저자의 피와 살을 보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문명, 그 길을 묻다》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노암 촘스키, 제레미 리프킨, 지그문트 바우만, 장 지글러, 하워드 가드너 그리고 중국의 변화를 이끄는 원톄쥔과 스리랑카의 간디로 불리는 A. T. 아리야라트네 등 세계의 지성을 대표하는 11명의 석학들과 마음으로 소통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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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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