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메일이 한 통 왔다. 내가 쓴 한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메일을 쓴다는 중견 작가의 편지였다. <채널예스>에서 어떤 기준으로 인터뷰이를 선정하는지에 대한 물음과 함께 책을 보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로서는 성의 있게, 솔직한 내용으로 회신을 했다. 마음이 보이는 메일이었기 때문이다.
대개 나의 메일함은 출판사 마케터들로부터 오는 메일이 대부분이다. “새 책이 나왔습니다.” “인터뷰 해주세요.” “칼럼, 좀 진행해보면 어떨까요?” 이 외에는 <채널예스>에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는 필자들의 메일이다. 또 간혹 저자의 연락처를 문의하는 대학생 기자들에게 메일이 온다. 이런 메일에는 재빨리 회신을 해준다. “저자가 최근 책을 출간한 출판사로 연락을 하라”고. 가끔은 어이없게도 방송작가로부터 메일이 오기도 한다. 연예인의 연락처를 문의할 때는 소속사로 전화하는 게 당연한 절차인데, 왜 저자는 출판사로 문의하지 않을까? 인터뷰한 기자가 저자의 연락처를 아무렇지 않게 알려줄 거라고 생각하나? 아쉬운 업무 능력이다.
업무 시간의 30%를 메일을 읽고, 메일을 쓰는 일을 하는 것 같다. 얼굴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수십 명의 메일을 읽다 보면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가끔은 우체국에서 일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아직 메일을 읽고 쓰는 일이 싫거나 지겹지 않다. (물론 발신자, 수신자, 내용이 불분명한 메일은 제외하고)
최근 조우하게 된 후배가 출판사에 취직을 했다면서, 마케터 일도 병행할 것 같다며 조언을 구했다. 싹수가 보이는 게, 무턱대고 자사 출판사의 신간을 들이밀며 ‘홍보 좀 해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궁금한 건, ‘메일을 잘 쓰는 법’이라고 했다. (‘법’, ‘노하우’ 같은 단어에는 알러지가 있는 내게 이런 질문을? 헉!) 그러나 작은 팁을 알려주기로 했다. ‘회신율 100% 비즈니스 이메일 쓰는 법’은 아니지만, 내가 수신자 입장에서 받으면 좋은 메일, 얼굴을 모르는 상대에게 신뢰감을 갖게 하는 메일에 대해.
1. 수신자를 분명히 밝힐 것. < > 담당자 말고, 이름을 안다면 필히 명시할 것. 그래야 회신율이 높음.
단체 메일 받아서, 혹 하는 사람은 절대 없음.
2. 발신자도 분명히 밝힐 것. 회사 이름으로 너를 감추지 말 것.
3. 맞춤법, 띄어쓰기도 신경 쓰기. 메일에도 실력이 보임.
4. 구구절절, 같은 이야기 반복하지 말 것. 경제적인 단어를 선택할 것.
5. 빨리 회신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 것. (안 바빠 보이지 않음. 대개 엄청 좋아함)
6. ‘감사하다’는 말은 빼먹지 말 것.
7. 그림말(^^)은 적당히 사용할 것. 상대에게 따뜻한 느낌을 줘서 손해 볼 일은 없음.
(단, 매우 정중하게 보내야 하는 메일의 경우는 생략하는 것이 나음)
간혹, 딱딱한 문체로 메일을 쓰는 걸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굉장히 딱딱한 스타일인데, 얼마 전 몇 통의 메일을 쓰고 받으며 생각을 고쳐 먹었다. ‘문자가 이렇게 잘못 전달이 될 수도 있구나’, ‘내 성격과 말투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오해를 살 수도 있구나’ 싶었기 때문. 하긴, 애인과 메신저로 싸우는 것만큼 한심한 일이 없지 않은가! 민감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문자로 전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며칠 전, 그 마케터 후배에게 문자가 왔다. 책을 꼭 홍보하고 싶었던 매체 기자로부터 회신을 받았다며, 고마운 마음을 무려 기프티콘으로 전해 왔다. (역시 싹수가 있음) 나는 아래와 같이 후배에게 답장을 썼다.
“얼마 전에 한 소설가로부터 메일을 받았어. 받는 순간, 아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구나. 성실한 사람이구나. 왜 작품이 좋은지를 알겠더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몇 달 전 내가 이 소설가의 인상을 꽤 안 좋게 봤어. 그 소설가가 다른 사람에게 보냈던 메일을 내가 업무 때문에 공유 받게 됐는데, 오만해 보였거든. 그리고 이후에 내가 실제 만나기도 했거든? 근데, 사람이 되게 좋더라고. 겸손하고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었어. 내가 실제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가에 대한 인상을 평생 안 좋게 가졌겠다 싶었어.
그러니까 말이야. 아무리 메일에서 사람의 실력과 인격이 보인다고, 그걸 100%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 같아. 중요한 건, 정말 겪어봐야 안다는 거지. 그런데 또 있지. 우리가 만나지 않고 온라인 상으로만 평생 일하는 관계도 많아. 네 진면목을 못 보여줄 가능성도 많고. 그러니, 첫인상이 될 수 있는 메일은 잘 쓰는 게 좋은 것 같아. 손해 볼 일은 최소한 없거든. 우리 직장인들은 말이야. 반가운 메일 한 통에 기분이 좋아지고, 불쾌한 메일 한 통에 기분이 잡치잖아. 네가 전자의 경우를 만들어주면, 그것도 참 좋은 일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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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