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를 봤는지요? 미국의 감독 필립 카우프만이 1988년 만든 영화입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줄리엣 비노쉬가 극중 배역인 ‘토마스’와 ‘테레사’로 나왔었지요. 아마도 이 두 배우를 좋아하는 분들이 꽤 많을 겁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토마스와 테라사뿐 아니라 ‘사비나’와 ‘프란츠’도 중요한 등장인물입니다. 레나 올린과 데렉 드 린트라는 배우가 나왔지요. 스웨덴 태생의 여배우 올린은 <프라하의 봄> 이외에도 상당히 많은 영화로 낯이 익었는데, 데렉 드 린트는 사실 저도 좀 생소한 배우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프라하의 봄>은 이 네 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바라봤을 때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위법이라는 작가적 의도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체제 속에서 겪어야 하는 인간의 무력감, 먼지처럼 부유하는 존재의 허무함 같은 것들도 함께 느끼게 되지요.
알려져 있다시피 원작은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1929~)의 소설이지요. 원래의 제목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입니다. 1968년 일어났던 ‘프라하의 봄’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네 인물의 삶과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 역사의 격랑 속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작품 속의 토마스는 체코 프라하의 유능한 외과의사입니다. 그에게는 사비나라는 애인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다른 여성들과 거리낌 없이 섹스를 즐기기죠. 여러 여성의 각자 다른 기질을 탐닉하는 특이한 스타일의 바람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쿤데라는 소설 속에서 그의 기질을 “바람둥이형 집착”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사비나라는 애인이 있음에도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는 일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테레사를 만나지요. 지방도시에 출장을 갔다가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그녀를 발견합니다. 얼마 후에 테레사는 프라하로 토마스를 찾아오지요. 그녀의 손에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들려 있습니다. 제목만으로도 묵직한 소설이지요. 그렇게 만난 둘은 결국 결혼까지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토마스가 다른 여인들과 섹스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의 ‘바람둥이형 집착’은 계속되고 테레사는 카메라 한 대를 든 채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소련군 탱크가 진주하고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는 현장을 테레사는 사진 속에 담습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토마스는 가볍고 테레사는 무겁습니다. 한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더욱 상징하는 인물은 사비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화가인 그녀는 테레사와 토마스의 관계를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토마스와의 만남을 계속 이어가면서 테레사에게도 잡지사 사진기자로 취직시켜 주는 등의 도움을 주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그녀는 바람 같은 자아를 지닌 사람입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당연히 한 남자에게도 머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소련군의 진주로 프라하가 혼란스러워지자 스위스 제네바로 피란을 가고, 그곳에서 또 한 명의 남자를 만납니다. 바로 프란츠입니다. 대학교수인 그는 참으로 진지하고 무거운 사람이지요. 그는 성적 매력이 넘치는 사비나에게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들면서도 그 만남을 스스로 ‘불륜’으로 인식합니다. 결국 자신의 아내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음을 고백합니다. 아내와 헤어지고 사비나를 선택한 것이지요. 하지만 어떻게 됐을까요? 사비나는 그런 프란츠에게 감동하기는커녕 외려 떠나 버립니다. 그 무거운 남자를 가볍게 차버리고 미국으로 떠나간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날 사비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토마스의 아들이 보낸, 토마스와 테레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리는 편지였지요.
자, 서두가 좀 길어졌나요? 여기까지 읽으면서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오늘 이 지면의 주인공은 체코의 음악가 레오시 야나체크(1854~1928)입니다. 앞서 언급한 영화 <프라하의 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야나체크의 음악들을 또 하나의 영화적 요소로 깔아놓고 있지요. 야나체크 음악들을 여러 장면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빈번히 등장하는 곡은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On the overgrown path)라는 피아노 음악입니다. 야나체크가 어린 시절의 고향마을 후크발디를 회상하면서, 피아노 한 대로 그려낸 자전적인 풍경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라고 할 만한 음악입니다. 야나체크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던 1901년부터 1908년 사이에 작곡했는데 1집은 10곡, 2집은 5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주로 애청되는 것은 1집인데 어떤 곡은 약 1분, 또 어떤 곡은 4분 정도로 전체 연주시간은 30분 가량입니다.
<프라하의 봄>을 만든 필립 카우프만 감독은 처음에는 베토벤의 음악을 OST로 쓰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소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 베토벤의 음악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고 하지요. 한데 원저자인 밀란 쿤데라가 좀더 가볍고 단순한 음악이 필요하다며 야나체크의 음악을 권했다고 하지요. 그의 말대로 베토벤의 음악이 영화에 사용됐다면 너무 무거웠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에 비하자면 야나체크의 음악은 더욱 독백적이고 더 현대적인 느낌, 매우 간결하면서도 생략적인 분위기를 전해주는 것이 사실이지요.
물론 그가 야나체크를 영화에서 사용하도록 권유한 데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쿤데라 본인이 야나체크의 음악을 매우 애호하기 때문이지요. 쿤데라는 더 나아가 야나체크의 음악을 자신의 “미학적 유전자”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그의 에세이 『만남』(민음사)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하지요. “무엇을 통해 내 고국이 내 미학적 유전자에 각인되었는지를 나한테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야나체크의 음악을 통해서라고.”
사실 이 발언에는 좀더 살펴봐야 할 맥락이 있습니다. 체코에서 나고 자란 쿤데라에게 음악은 그저 듣는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예술적 자양분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야나체크가 오랜 세월 살았던 브르노에서 1929년 태어났지요. 야나체크가 세상을 떠난 바로 이듬해였습니다. 체코 모라비아 지역 동북부의 후크발디에서 태어난 야나체크는 열한 살에 브르노의 성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들어가 성가대원으로 노래를 부르고 음악 공부도 시작하지요. 이후에 브르노 사범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그곳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프라하와 라이프치히, 빈에서 지냈던 짧은 시절을 제외하고는 생애의 대부분을 브르노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쿤데라의 아버지인 루드비크 쿤데라(1891~1971)가 바로 야나체크의 제자였습니다. 브르노 음악원의 원장을 지낸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였지요. 쿤데라는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고 젊은 시절에는 소설가가 아니라 음악가를 꿈꿨지요. 실제로 그는 피아노 연주뿐 아니라 작곡에 손을 대기도 했습니다. 에세이『소설의 기술』(민음사)에 함께 수록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물다섯 살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문학보다 음악에 더 끌렸죠. 그 당시 제가 작곡했던 것 중에 가장 괜찮았던 것은 피아노, 비올라, 클라리넷, 북, 이렇게 네가지 악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 그때만 하더라도 제가 소설을 쓰리라는 것은 거의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쿤데라는 매우 음악적인 작가입니다. 특히 야나체크의 음악에서 ‘생략의 미학’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읽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쿤데라 소설의 난해함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런 발언을 같은 인터뷰에서 하고 있지요. “생략 기법은 반드시 필요해요. 그것은 항상 사물의 본질로 곧장 갈 것을 요구하죠. 이런 점에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존경해온 작곡가 레오스 야나체크가 생각나는군요. (…) 그는 관현악을 위한 악보가 아무 필요도 없는 음표들의 부담에 짓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 오직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말하는 음표만이 존재할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소설도 이와 거의 비슷해요.”
영화 <프라하의 봄>에는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On the overgrown path) 중에서도 2곡 ‘바람 따라 가버린 잎새’, 4곡 ‘프리데크의 마돈나’, 7곡 ‘밤인사’(Good Night!), 10곡 ‘부엉이는 날아가지 않았어’ 등이 등장합니다. ‘바람 따라 가버린 잎새’는 가을을 소묘하는 한 편의 정갈한 시처럼 울려퍼지고, ‘프리데크의 성모 마리아’는 야나체크가 브루노 수도원의 성가대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지요. ‘부엉이는 날아가지 않았어’는 단순한 선율과 리듬을 반복하면서 어떤 내밀한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는 것처럼 들려옵니다. 영화에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9곡 ‘눈물을 흘리며’도 선율은 단순하지만 가슴이 아릿한 애상감으로 충만한 음악입니다.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는 이렇듯이, 쿤데라가 말한 생략과 압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피아노 솔로의 걸작입니다.
야나체크의 피아노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루돌프 피르쿠슈니(1912~1994)를 빼놓을 수 앖다. 체코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사망한 왕년의 거장이다. 많은 레퍼토리를 연주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야나체크의 음악에 정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야나체크에게 직접 피아노를 배운 제자였다. 적어도 야나체크의 음악에 관한 한, 그는 최고의 연주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71년 DG 녹음에는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 1, 2집 전곡이 수록돼 있다.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들 중에서는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를 권한다. 만프레드 아이허가 프로듀스한, 정갈하고 투명한 음질을 자랑하는 ECM의 음반이다.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 외에도 <안개 속에서>, <피아노 소나타 1905년 10월 1일> 등 야나체크의 피아노 솔로 걸작들을 포함하고 있다. 피르쿠슈니의 연주가 낭만적 취향을 드러내는 것에 비해, 쉬프의 연주는 한결 정제돼 있다는 느낌을 전한다. 쿤데라가 찬미한 야나체크 음악의 압축과 생략, 절제의 미학!
[관련 기사]
- 사랑에 미친 예술가의 환상적인 세계
-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 국민음악 시벨리우스 , 〈핀란디아〉
- 러시아적 색채와 에너지, 스트라빈스키 〈불새〉
- 드보르작이 느낀 미국이라는 '신세계'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