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떠올릴 어머니의 음식
소설가 윤대녕은 『어머니의 수저』에서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모유만큼 완전한 거냐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이내 그는 아이가 수저질을 배운 순간부터 사람은 늘 불완전한 음식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으며 그 불완전함이 곧 삶이라고 답한다.
글ㆍ사진 김연수(의학전문기자 출신 1호 푸드테라피스트)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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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식성이나 입맛은 어느 정도 타고난 면도 없지 않지만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 형성된다는 쪽에 더 기울어진다. 특히나 어릴 적 맛보고 뇌에 인지된 바 있는 음식들은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두고두고 개인의 식성을 지배할 만큼 영향력이 있다. 이러한 맛은 대부분 어머니의 손맛에서 형성이 된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미 탯줄을 통해 학습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날 아가를 위해 정성껏 삼켰단 어머니의 태교 음식들 말이다. 이제는 기억의 의식층에서 떠나버린 신비로운 맛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의 수저를 통해 전달되었을 테고 지금은 무의식 저편에 꽁꽁 숨어있을 미각의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도 문득 문득 생각나는 그리운 맛들이 아닐까 싶다.

 

흔히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순간처럼 기쁨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세상 어머니들의 자식을 향한 사랑과는 모순되게도 자식은 스스로 수저질을 배우면서 어머니의 손을 거부하는 게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의 이치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부모가 되어 그 어머니의 손길을 맛볼 수 없을 때 그 슬픔은 한없는 그리움으로 승화되는 법이다.

 

소설가 윤대녕은 『어머니의 수저』에서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모유만큼 완전한 거냐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이내 그는 아이가 수저질을 배운 순간부터 사람은 늘 불완전한 음식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으며 그 불완전함이 곧 삶이라고 답한다.

 

그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음식에 관해 문외한으로 어머니가 알고 있는 음식은 자기가 만든 음식에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외식문화가 왕성하지 않은 그 옛날 어머니들은 어쩌다 외식을 해도 기껏해야 중국집 아니면 고깃집으로 국한 되었다. 더구나 나이가 들면 음식 취향도 점점 보수적이 되어 평생 익숙했던 음식들을 찾게 되지 맛도 듣도 보지 못한 음식들을 찾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아무리 몸에 좋고 특미인 음식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에게 외식은 다만 자식 입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 것 말곤 그저 낭비로 식당에 들어가도 우선 메뉴판에 적혀있는 가격부터 확인하고 자식이 혹은 남편이 먹자고 하면 따라먹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요즘 브런치 식당들마다 가득가득 차있는 세련된 젊은 엄마들의 취향과는 많이 다른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새삼 이러한 옛 어머니들의 수줍고도 촌스러운 외식 취향이 마구마구 그리운 까닭은 무엇일까. 필자 자신도 나이를 먹고 있다는 뭐 그런 퉁박을 들어도 좋다. 그냥 그립다. 아직 윤대녕 작가의 연륜까지 가려면 먼 나이인데도 어머니를 향한 그의 소박한 꿈이 가슴을 포근히 감싸준다.


그는 어머니와 맛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곤 맛난 음식들을 수저로 떠서 어머니에게 떠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름 미식가로 알려진 그가 어머니와 맛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곳과 음식들이 궁금해졌다. 첫 번째 별미는 강화도 꽃게찜이다. 강화대교를 지나 전등사와 마니산 자락을 휘둘러 외포리를 조금 못 미쳐 위치한 단골 꽃게집을 지정했다. 늙은 호박과 배추 감자를 푸짐히 썰어넣고 된장과 고추장으로 얼큰한 맛을 낸 꽃게찜을 어머니와 함께 먹고는 석양의 서해 바닷가를 거닐고 싶다며.

 

두 번째 맛 여행지는 전북 고창 선운사 앞 한정식집이다. 윤 작가 자신이 가끔 찾는다는 이 곳에서 동백꽃이 흐드러지는 어느 봄날 맛나고 푸짐한 한정식 차림에 수저질을 하다가 문득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세 번째는 경주 한우집이다. 이 집을 윤 작가가 추천하는 이유는 종종 옛날 기와집에 한번 살아봤으면 되뇌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으로 고즈넉한 문창살 너머로 비치는 둥근 달님을 보며 어머니와의 여행을 꿈꾸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존재할 어머니와의 행복한 시간을 오늘은 음식을 통해 한번 교감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저마다 어머니를 떠올릴 음식이 분명 있을 터이고 그 음식을 통해 지금 나의 어머니를 한번 불러보자.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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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수저 윤대녕 저 | 웅진지식하우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맛있었던 음식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사실 별 하잘 것 없는 음식들이었다. 저녁 밥상에 올라오던 어머니가 해주시던 송송 썬 파가 들어간 계란찜, 할아버지와의 겸상 자리에 올라오던 할머니가 구워주던 짭조름한 굴비. 그런 음식들……. 별다르게 특별한 조리법을 쓰지 않아도, 특별하게 비법이라 부를만한 과정도 없었던 그런 음식들이었다. 지금은 더 맛있는 재료, 더 복잡한 조리법을 거친 음식들을 손쉽게 먹을 수 있고,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이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때로는 그 단순하기 그지없는 맛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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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어머니의수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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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2015.11.23

다니며 진수성찬을 먹어도 느낄수 없는, 소박한 어머니의 음식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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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학전문기자 출신 1호 푸드테라피스트)

의학전문기자 출신 제1호 푸드테라피스트 / 푸드테라피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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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단국대 불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원」이 당선되었고, 1990년 [문학사상]에서 「어머니의 숲」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출판사와 기업체 홍보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4년 『은어낚시통신』을 발표하며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 책을 통해 존재의 시원에 대한 천착을 통해 우수와 허무가 짙게 깔린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르며 '존재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그려나가고 있다. 오늘의 젊은예술가상(1994), 이상문학상(1996), 현대문학상(1998), 이효석문학상(2003), 김유정문학상(2007), 김준성문학상(2012)을 수상했다. 2019년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은 전혀 뇌리에 남아 있지 않다는 그의 최초의 기억은 조모의 등에 업혀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초등학교에 가던 날이다. 주사 바늘이 몸에 박히는 순간 제대로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일곱 살 때 조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에 들어갔다. 입학도 안 하고 1학년 2학기에 학교 소사에게 끌려가 교실이라는 낯선 공간에 내던져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웠다. 한자 공부가 끝나면 조부는 밤길에 막걸리 심부름이나 빈 대두병을 들려 석유를 받아 오게 했다. 오는 길이 무서워 주전가 꼭지에 입을 대고 찔끔찔끔 막걸리를 빨아먹거나 당근밭에 웅크리고 앉아 석유 냄새를 맡곤 했던 것이 서글프면서도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독서 취미가 다소 병적으로 변해,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우연히 '동맥'이라는 문학 동인회에 가입한다. 그때부터 치기와 겉멋이 무엇인지 알게 돼 선배들을 따라 술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백일장이나 현상 문예에 투고하기도 했고 또 가끔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거의 한 달에 한 편씩 소설을 써대며 찬바람이 불면 벌써부터 신춘 문예 병이 들어 방안에 처박히기도 했다. 대학에 가서는 자취방에 처박혀 롤랑 바르트나 바슐라르, 프레이저, 융 같은 이들의 저작을 교과서 대신 읽었고 어찌다 학교에 가도 뭘 얻어들을 게 없나 싶어 국문과나 기웃거렸다. 1학년 때부터 매년 신춘 문예에 응모했지만 계속 낙선이어서 3학년을 마치고 화천에 있는 7사단으로 입대한다. 군에 있을 때에는 밖에서 우편으로 부쳐 온 시집들을 성경처럼 읽으며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때 군복을 입고 100권쯤 읽은 시집들이 훗날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대 후 1주일 만에 공주의 조그만 암자에 들어가 유예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투명하게 보려고 몸부림쳤다. 이듬해 봄이 왔을 때도 산에서 내려가는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뻔한 현실론에 떠밀려 다시 복학했고 한 순간 번뜩,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문학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데뷔 이래 줄곧 시적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글쓰기로 주목을 받은 윤대녕은 ‘시적인 문체’를 지녔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의 글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그만의 시적 색채가 느껴지는 문체가 있어서이다. 동시에 그의 글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일상을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자연스럽게 포착하여 그려내는 뛰어난 서사의 힘이 느껴진다. 윤대녕은 고전적 감각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동시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지향점을 잃어버린 시대에 삶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젊은 세대의 일상에 시적 묘사와 신화적 상징을 투사함으로서 삶의 근원적 비의를 탐색한다. 내성적 문체, 진지한 시선, 시적 상상력과 회화적인 감수성, 치밀한 이미지 구성으로 우리 소설의 새로운 표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으로『남쪽 계단을 보라』,『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대설주의보』를 비롯해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추억의 아주 먼 곳』,『달의 지평선』,『코카콜라 애인』, 『사슴벌레 여자』, 『미란』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누가 걸어간다』, 『어머니의 수저』,『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