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식성이나 입맛은 어느 정도 타고난 면도 없지 않지만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 형성된다는 쪽에 더 기울어진다. 특히나 어릴 적 맛보고 뇌에 인지된 바 있는 음식들은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두고두고 개인의 식성을 지배할 만큼 영향력이 있다. 이러한 맛은 대부분 어머니의 손맛에서 형성이 된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미 탯줄을 통해 학습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날 아가를 위해 정성껏 삼켰단 어머니의 태교 음식들 말이다. 이제는 기억의 의식층에서 떠나버린 신비로운 맛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의 수저를 통해 전달되었을 테고 지금은 무의식 저편에 꽁꽁 숨어있을 미각의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도 문득 문득 생각나는 그리운 맛들이 아닐까 싶다.
흔히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순간처럼 기쁨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세상 어머니들의 자식을 향한 사랑과는 모순되게도 자식은 스스로 수저질을 배우면서 어머니의 손을 거부하는 게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의 이치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부모가 되어 그 어머니의 손길을 맛볼 수 없을 때 그 슬픔은 한없는 그리움으로 승화되는 법이다.
소설가 윤대녕은 『어머니의 수저』에서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모유만큼 완전한 거냐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이내 그는 아이가 수저질을 배운 순간부터 사람은 늘 불완전한 음식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으며 그 불완전함이 곧 삶이라고 답한다.
그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음식에 관해 문외한으로 어머니가 알고 있는 음식은 자기가 만든 음식에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외식문화가 왕성하지 않은 그 옛날 어머니들은 어쩌다 외식을 해도 기껏해야 중국집 아니면 고깃집으로 국한 되었다. 더구나 나이가 들면 음식 취향도 점점 보수적이 되어 평생 익숙했던 음식들을 찾게 되지 맛도 듣도 보지 못한 음식들을 찾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아무리 몸에 좋고 특미인 음식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에게 외식은 다만 자식 입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 것 말곤 그저 낭비로 식당에 들어가도 우선 메뉴판에 적혀있는 가격부터 확인하고 자식이 혹은 남편이 먹자고 하면 따라먹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요즘 브런치 식당들마다 가득가득 차있는 세련된 젊은 엄마들의 취향과는 많이 다른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새삼 이러한 옛 어머니들의 수줍고도 촌스러운 외식 취향이 마구마구 그리운 까닭은 무엇일까. 필자 자신도 나이를 먹고 있다는 뭐 그런 퉁박을 들어도 좋다. 그냥 그립다. 아직 윤대녕 작가의 연륜까지 가려면 먼 나이인데도 어머니를 향한 그의 소박한 꿈이 가슴을 포근히 감싸준다.
그는 어머니와 맛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곤 맛난 음식들을 수저로 떠서 어머니에게 떠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름 미식가로 알려진 그가 어머니와 맛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곳과 음식들이 궁금해졌다. 첫 번째 별미는 강화도 꽃게찜이다. 강화대교를 지나 전등사와 마니산 자락을 휘둘러 외포리를 조금 못 미쳐 위치한 단골 꽃게집을 지정했다. 늙은 호박과 배추 감자를 푸짐히 썰어넣고 된장과 고추장으로 얼큰한 맛을 낸 꽃게찜을 어머니와 함께 먹고는 석양의 서해 바닷가를 거닐고 싶다며.
두 번째 맛 여행지는 전북 고창 선운사 앞 한정식집이다. 윤 작가 자신이 가끔 찾는다는 이 곳에서 동백꽃이 흐드러지는 어느 봄날 맛나고 푸짐한 한정식 차림에 수저질을 하다가 문득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세 번째는 경주 한우집이다. 이 집을 윤 작가가 추천하는 이유는 종종 옛날 기와집에 한번 살아봤으면 되뇌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으로 고즈넉한 문창살 너머로 비치는 둥근 달님을 보며 어머니와의 여행을 꿈꾸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존재할 어머니와의 행복한 시간을 오늘은 음식을 통해 한번 교감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저마다 어머니를 떠올릴 음식이 분명 있을 터이고 그 음식을 통해 지금 나의 어머니를 한번 불러보자.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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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수저 윤대녕 저 | 웅진지식하우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맛있었던 음식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사실 별 하잘 것 없는 음식들이었다. 저녁 밥상에 올라오던 어머니가 해주시던 송송 썬 파가 들어간 계란찜, 할아버지와의 겸상 자리에 올라오던 할머니가 구워주던 짭조름한 굴비. 그런 음식들……. 별다르게 특별한 조리법을 쓰지 않아도, 특별하게 비법이라 부를만한 과정도 없었던 그런 음식들이었다. 지금은 더 맛있는 재료, 더 복잡한 조리법을 거친 음식들을 손쉽게 먹을 수 있고,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이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때로는 그 단순하기 그지없는 맛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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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학전문기자 출신 1호 푸드테라피스트)
의학전문기자 출신 제1호 푸드테라피스트 / 푸드테라피협회장
감귤
2015.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