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라는 수식어는 축복이기도, 저주기도 하다.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최초라는 수식은 무게감이 다를 터. 그 중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라는 수식을 가진 김영란 전 대법관은 특히 여러모로 남다른 행보를 보이며 수식의 무게감을 실천하고 있다.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 개업을 하면 3년 안에 빌딩을 세운다는 말이 흔한 세상에, 그는 “안 하는 것으로 어떻게 해보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다만 자신이 다룬 판결들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했다. 아쉬운 판결 앞에서 “‘대과’가 여기저기서 보였고 ‘소과’는 일일이 말하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13쪽)고 겸손하게 고백한다.
대법관 시절 그는 김지형, 박시환,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소수 의견을 많이 내 ‘독수리 5형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 스스로도 ‘다른 생각이 있다’는 소수자의 역할을 잊지 않았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법원의 보수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그를 만나 법과 사회,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므로 무척이나 소중하고, 특별한 일이었다. ‘다시 생각’할 것은 판결뿐이 아닌 시절이니 더욱 그랬다.
너무 하고만 산다
일반이 쉽게 읽어내기 힘든 판결문을 쉽게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하셨습니다. 대중서인만큼 ‘다시 생각’하면서 고민한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 읽히는 책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쓰는 부분보다 사실 제일 어려운 부분이 판결 부분이었어요. 판결을 다시 쉽게 풀어 쓰는 그 작업이 진짜 어렵더라고요. 어디까지 써야 읽힐 수 있는 글인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판결문만 많이 살펴봤었으니까요. 그래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말해주시는 분이 제일 반가워요.(웃음) 판결은 다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더라, 이렇게 말해주면 제일 고마워요.
판결을 톺아보는 일을 반드시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요.
대법관 시절부터 그랬어요. 그만 두고 나가면 무수하게 쏟아 내린 판결에 대해서 뭔가 얘기는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강의를 하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무턱대고 쓰려면 안 써지니까요. 그런 강좌를 열기를 원했어요. 마침 그런 강좌를 열어서 해봤더니 그래도 바로 쓴 것보다는 나았던 것 같아요. 참 힘들었어요.(웃음)
마침내 책이 나왔고, 하려던 일을 마친 기분은 어떠세요?
개운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고요.(웃음) 남을 심판하던 사람이 심판대에 올라간 거잖아요. 다 좋게 봐주셔야 하는데 싶고요. 막바지에 오니까 생각이 없어지더라고요. 잘 써야겠다, 좋은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거든요. 그래놓고 나서 뻔뻔하게(웃음) 사람들이 잘 봐주기를 바라는 게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업하시는 데는 얼마나 걸리셨어요?
2년 걸린 것 같아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집중해서 썼고요. 지난 겨울방학에 절반 정도 쓴 것 같아요.
모두 10가지의 사건을 다루셨어요. 특별히 이 사건들을 다룬 이유가 있을까요? 이 외에 더 다루고 싶은 사건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몇 개 더 끼워 넣을 수도 있는 것들이 있기는 했어요. 근데 너무 욕심내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처음 쓰는 책인데, 그리고 문장도 잘 안 나오는데, 이렇게 생각을 했죠.
그렇다면 추후에라도 또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될까요?
이런 형식을 다시 쓰기는 너무 지쳐서 힘들 것 같고요. 쓴다면 뭘 써야할까, 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어요. 이 책의 반은 판결문으로 채울 수 있었는데 다음에 책을 쓴다면 못 채우잖아요.(웃음) 이런 농담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퇴임 후 회고록 형식은 쓰지 않겠다고 하셨고, 변호사도 하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보통의 행보와 다르게 가려는 어떤 신념 같은 게 있으셨던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판사든 변호사든 남의 사건을 계속 들여다보고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거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두 번째는 안 하는 것도 좋겠다, 너무 사람들이 하고만 산다, 뭔가 안 하는 것으로 어떻게 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런 식의 생각도 해봤고요. 거창한 목표는 세우지 않았어요.(웃음) 너무 많은 판결을 평생 쏟아냈으니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것만 정했어요. 그 대신 다른 것은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고요. 지금도 그래요.
책 출판도 그렇다면?
책도 나서서 여기저기 두드린 게 아니고요.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게 시간적으로 맞았던 거죠. 첫 번째 강의는 그냥 했고, 두 번째 강의부터 녹음을 했거든요. 강의 하면 또 잊어버리니까요. 마침 녹음해놨고, 출판사 연락이 왔고, 해서 녹취를 풀어서 뼈대를 살려 책을 썼어요. 사실 이런 형식의 책 밖에 생각한 것이 없었거든요. 뭔가 쓰고 싶은 걸 찾고 있어요.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최초 여성 대법관으로서 사명감 혹은 문제의식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수식이 주는 무게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명감이 없어도 끌어올려야 하는 거죠. 사명감이 많이 있었어요. 일단은 대(對)사회적인 것도 있지만 법원 내부에 대해 그랬어요. 여성 판사도 많고, 여성 법률가들이 많은데 내가 어떤 전범이 될 것이냐, 어떤 롤모델이 될 것이냐, 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성 후배들에게 인정받아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거죠. 내부 사람들에게 인정 못 받고는 인정받을 수도 없으니까요.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지지는 않았어요.
구조상 남성들이 전부 의사 결정하는 그런 자리에 쭉 있어왔던 사회잖아요. 특히 여성 판사들은 수가 굉장히 늘어나고 있는데 의사 결정 기구 속에 못 들어가고 있었죠.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발언권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상황을 타계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과도 닿아있었고요. 법원에서 뭔가 제대로 전범을 보여주지 못하면 다른 조직도 영향을 받겠다, 생각했어요. 여기서 보여줘야 다른 조직에서도 법원이 모델이 될 수 있는 거죠. 개인적으로 롤모델 역할도 고민이었지만 사회 다른 조직에 대한 파급력도 생각을 좀 했어요. 별로 한 건 없어도(웃음) 생각은 했어요.
아마 그렇기 때문에 자기 검열이 더 필요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네, 그래서 후배들한테 뭘 해줘야 하나, 뭘 보여줘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후배들과 모임도 많이 가지고, 그런 얘기도 많이 나누고요. 주입을 많이 시켰죠. 아이 키우고, 어려운 일 하느라 고생하는 친구들한테 그래도 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볶아대는(웃음) 역할도 많이 했고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런 사명감 때문에 세웠던 의식적인 지침이 있었다면요?
조직에서 의사 결정하는 기구 속에 소수자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여자 판사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생기면 힘들더라도 후배들을 위해 마다해선 안 된다고 했었어요. 어쨌든 뭐든지 새로, 처음 하는 게 많았잖아요. 그래서 그런 의식을 계속 한 거죠.
진보적인 성향의 판사라도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도 말씀하셨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게 생각을 해요. 이 경우 여성은 꼭 ‘섹스’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젠더’로서의 여성이에요. 여성이라고 해서 또 반드시 여성 문제에 진보적이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두루두루 소수자의 생각이나 역할을 염두에 둬야 하는 그런 시간들이었죠.
소수의견에 대한 의식적인 지향을 말씀하셨는데요. 8장 새만금 사건에서 반대의견을 내자 ‘이상에 치우친 감성적인 접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종종 그러한 지적을 받은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그럴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결국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젠더도 그러한데요. 견고한 다수의 구조 속에서 소수자의 역할은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에요. 그것만 해도 일단은 역할이 되고요. 그것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견고한 다수의 생각, 쌓여온 관습, 그 무엇이 변해야 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겠죠. 그 다음에 결국 변하게 만드는 거고요. 항상 일종의 소수자 역할에서 생각해보는 역할이 주어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결국 그것이 궁극적으로 다수자들 삶의 건강성을 보존해주고, 키워주는 것이니까요. 보호하면서 소수자들이 다수 사회에 들어와서 다수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자기네끼리만 말하면 못 알아들으니까요. 미국에 이민 가 한국말을 하는 그룹을 생각하면 그렇죠. 그런 역할을 누군가는 다수의 목소리로 해줘야 하는 거죠. 당장 받아들여지지는 않아도 그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목소리가 커져갈 경우에는 커져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결국 바뀌어야 한다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이런 단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생각을 했던 거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판결이나 소수의견을 많이 내 독수리 5형제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죠. 현재 대법원이 보수화 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여전히 성비 불균형(대법원장 포함 14명 중 2명이 여성) 상태기도 하고요.
역시 ‘젠더’의 문제인데요. 어쨌든 뚜렷한 젠더로서의 소수의 목소리도 별로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어느 정도 보수화된 판결도 보이기는 해요. 제가 근무하던 시기는 변화에 대한 요구가 굉장히 강하던 때였어요. 조심스럽기는 한데요. 사회가 휘몰아치며 변화할 때는 그동안 지켜온 견고한 부분이 함께 변화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은 약간 숨 고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해요. 늘 변하고 있으면 그것도 따라가기 힘들지 몰라요.
변화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을 뿐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속도가 좀 빠를 때도 있고, 느릴 때도 있는 것이다, 하는 생각이죠. 너무 빠르니까 사람들이 조금 숨을 골랐으면 좋겠다고 하는 때가 있고, 또 너무 잠잠하면 이제는 좀 변했으면 좋겠다고 할 텐데요. 이런 사회적 흐름에 결국 법은 쫓아가는 게 아닐까 해요. 법원이 보수화돼서 사회가 그렇게 됐다기보다 사회가 숨 고르고 있으니까 법원도 숨 고르고 있는 거 아닌가, 저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또 변하겠죠.
지금, 그런 목소리가 좀 높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들이 그런 요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가 많이 보장 되고, 표현하고, 그런 요구가 많아지면 또 정치권이나 사법부가 변하는 거고 그런 것이죠. 민주주의니까요. 그런 것인데 지금 당장 눈에 띄게 그렇지 않은 시기도 있을 거예요. 저는 좀 거시적으로 보자, 생각해요.
법원에 몸담은 동안에도 그런 속도 차이를 경험하셨을 테죠.
그러니까요. 70년대부터 80년대, 90년대를 다 산 사람이어서요. 그런 걸 크게 보면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잘 인식하고 나가자는 거죠. 그래서 제가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 얘기를 했던 거예요.(웃음)
대과도 있고, 소과도 있다
법이라면 응당 보편타당해야 할 것 같은데요. 책을 보면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랄까 관습법적인 면이 작용한 지점들이 많이 보입니다. 상지대 사건에도 아쉬움을 많이 적으셨고요.
상지대 사건은 너무 아쉬웠는데 조금만 표현한 거예요.(웃음) 상지대 사건은 자기 돈을 많이 투자해 학교를 설립한 사람한테 사회에 환원한 것이니 손 떼고 나가라고 하는 목소리와 재산을 투입해 학교를 세웠으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끝까지 운영하겠다는 목소리가 부딪친 거거든요. 저는 그 두 목소리 다 지나치다,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거든요. 소수 의견을 제가 썼는데요. 다수 의견에 대해 방어를 하기 위해 쓴 것이에요. 결국 왜 중간 지점을 못 찾아냈는가가 굉장히 아쉬운 거죠. 무조건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을 이겨내지 못해 아쉬운 게 아니고, 왜 의견이 충분히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 중간 지점을 못 찾았는지가 아쉬워요. 왜 극단의 의견밖에 표현을 못 해내는가, 라는 것에 대한 깊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결론에는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적었죠. 아무리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학교를 지었지만 손을 다 떼고 나가라면 그 사람을 최대한 존중해주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조금 더 찾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법원이 그런 걸 다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염두에 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판결 이유가 달라지거든요.
그 사건은 지금까지도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어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뭐든지 선택의 문제로 결론을 내리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은 거죠. 책에 다룬 것은 전부 커다란 사회적 문제인데요. 사회적 문제들이 슬기롭게 해결되지 않아 특히 상지대 사건은 안타까웠어요.
그런가 하면 삼성 사건은 사회적 관심도 높았고, 치열하게 논의하는 분위기였는데 판결 이후 이건희 회장이 사면 복권 되면서 허무하게 끝나버렸잖아요.
사면 복권은 문제가 아니고요. 필요해서 그렇게 했다 치면, 그 사건은 삼성만 처벌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치열하게 다퉜던 거죠. 우리나라 재벌의 지배구조는 굉장히 비민주적 지배구조예요. 지배주주가 경영권도 행사하잖아요. 미국은 주주와 경영권이 견제하는 관계인데 우리는 같은 권력이란 말이에요. 그랬는데 이 사건은 마치 주주와 경영자가 분리되어 합리적으로 경쟁하는 것처럼 전제하고 판결을 내렸다는 거죠. 다수 의견, 소수 의견 모두 그랬죠. 우리 사회 지배구조의 문제를 보겠다고 해서 이 사건을 시민단체나 법학교수협의회에서 제기한 문젠데 본질은 안 보고 법률해석에만 그친 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아쉽다고 한 거예요. 설득력 있나요?(웃음) 삼성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더라고요.
무척 설득력 있습니다.(웃음)
삼성 판결을 어떻게 쓸지 방향을 잡지 않고는 이 책을 쓸 수 없겠더라고요. 삼성을 빼면 뺐죠. 그런데 그냥 다수 의견, 반대 의견, 소수 의견 해설해버리고 말아서는 쓰나마나 한 게 되겠다, 본질은 무엇인가를 고민을 했어요. 이런 저런 책도 찾아보고요. 다들 미국식 주식회사만 머리에 두고 쓰고 있으니까 본질이 안 보였던 거예요. 우리나라 주식회사가 미국식으로 되고 있느냐 하면 아니잖아요. 거기는 오히려 경영자들이 주주보다 더 많은 권한을 누리고, 월급을 많이 가져가서 비난받는 구조였잖아요. 우리는 경영자가 지배 주주에 대해 독립성이 있는지 의심 많이 가잖아요. 우리는 독립된 경영자가 성공한 케이스가 거의 없다고 보이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여러 생각을 한 끝에 이 문제는 바로 그 문제인데 그에 대해 사건을 다룰 때는 생각을 못했구나, 이렇게 된 거죠.
삼성 외에 다른 사건도 책을 쓰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부분들이 많이 있었나요?
꼭 생각을 못했다기보다는요. ‘제사주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장남으로 가게 되면 전원합의 하나마나였다는 게 제 생각이었고요. 저는 김지형 대법관이 내신 의견에 동의해서 법원에서 여러 사정을 고려해 정해주자고 했었죠. 그걸 다른 분들이 가정 법원의 규칙을 개정해서 가정 법원에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다수 의견 측에서 보충 의견에 그런 말들이 나왔는데요. 이 사건도 가정 법원이 아니고 민사 법원에서 한 사건이거든요. 법원에서 당연히 어차피 할 수 있는 사건인데 거기에 대해 적절한 반격을 못했구나(웃음), 다시 읽다가 그런 아쉬움이 들었어요. 시간에 쫓겨 판결을 쓰다보면 적시에 적절한 반격을 못하는 경우가 생겨요.
제가 대과도 있고, 소과도 있다고 했는데요. 그런 게 다시 읽어보니까 좀 눈에 띄긴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대륙법 체계를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책에는 미국 사례가 많습니다. 서두에도 미국 로스쿨행을 준비하다 국민권익위원장 역임 등의 사정으로 무산되었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말하기도 했는데요. 미국 법체계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 메시지가 될 수 있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책에서 미국, 영국의 사례를 많이 인용한 것은 다른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설득력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고요. 미국에 가보려고 한 이유는 말이죠. 우리는 미국과 법체계는 굉장히 다르거든요. 독일, 일본이 대륙법 체계고 미국이나 영국은 영미법 체계예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성문법(written law) 시스템이고, 영미법은 불문법 시스템이잖아요. 불문법이란 것은 개념적으로 문자화되지 않은 거니까 해석에 있어 법의 기본적 원리를 항상 찾아가는 방법론이죠. 보통법 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늘 법의 기본 원리를 찾아가는 해석이 많이 있어요. 판결문도 좀 더 자유롭고요. 우리나라는 법관들이 있는 법을 해석하는 훈련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것은 그만큼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거잖아요. 좋은 점은 자의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거죠. 불문법은 자의적인 해석도 어쩌면 가능할 수 있으니 장단점이 있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견고한 법 해석학을 뚫으려면 미국 같은 불문법 시스템에서는 도대체 무슨 기준을 갖고 판결을 할까, 라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와 다른 시스템이기 때문에요. 그것이 궁금했어요.
사담이지만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에서 주인공이 판결문을 무척이나 공들여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말씀을 들으니 그 장면이 떠오르네요.
재미있죠?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워낙 이언 매큐언의 팬이에요.(웃음) 그 법도 우리와 비슷해요. 결국 우리도 비슷해요. 우리도 백혈병 아이들이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혈을 받지 않았던 사건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주인공은 피아노도 잘 치고(웃음) 다르죠.
소설 좋아하세요?
소설을 많이 읽어요. 한동안 안 읽다 요새 조금 읽었더니 역시 소설이 제일 좋은 책이구나(웃음) 싶더라고요. 사회과학서는 너무 머리가 아프구나, 했어요.
김영란법
9장 출퇴근 사고를 산재로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처럼 대법원 판결이 오히려 불합리한 제도 유지를 정당화하거나,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사법소극주의 또는 사법적극주의에 대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당시 판결은 재정적 부담이 너무 커지니까 그것은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정해주는 게 좋겠다, 이렇게 간 거죠. 공론화되어야 해요. 결국 소극주의를 취할 것이냐 적극주의를 취할 것이냐는 이 시대에 필요한 시대정신을 읽고, 거기에 맞는 헌법정신을 해석해내야 하는 문제거든요.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요.
사회적으로 많은 토론이 있어야 하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법원에도 반영이 된다면 사회적 분위기가 경직됐을 때는 법원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지나고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입법, 행정의 영역도 물론이지만 아무래도 사법부가 비난을 더 받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사법부에 대한 기대가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고요. 또 지나간 뒤에 결론을 내려주니까 더 그럴 수도 있겠죠. 또 사람들이 당사자가 되어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결론을 요구하는 거니까 더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여러 가지로 그럴 수 있겠네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언급하셨지만 ‘김영란법’에 대한 의견을 여쭙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웃음) 내년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이 법, 아직 계류 중인 부분도 있고 발의 당시보다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애초 가지고 있던 생각은 무엇인지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이 법을 처음에 제안했을 때부터 일종의 문화를 바꾸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흔히 더치페이 안 하고, 한 사람이 다 사잖아요. 반드시 돈 많은 사람이 사는 것도 아니에요. 또 명절 되면 인사할 사람에게 고가의 선물을 한다든지 그런 식의 허세부리는, 청탁하는 문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정답이라고 뚝딱 해서 내놓는 게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거든요. 저는 그냥 사람들이 생각해봐주길 원했어요. 과연 이게 옳은 건가, 하고요. 그래서 모두가 바뀌자고 말할 때는 사실 이 법이 없어도 저절로 바뀐 거겠죠. 그렇게 사회에 문제를 던진 거예요. 시간이 많이 걸려도 좋으니 토론만 해달라고 얘기를 해왔어요. 그러는 사이에 우리가 바뀌니까요. 부패다 뭐다 하지만 많이 깨끗해졌어요.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부패하다고 생각하는가, 부패지수는 왜 안 바뀌는가를 생각해볼 때 제일 어려운 걸 바꿔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더라고요. 어려운 걸 바꾸는 문제니까 이것은 일단 여기서부터 시작, 이렇게 하는 것보다 많이 찬반토론을 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더 많이 비판하고, 토론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토론하면서 우리가 바뀔 것 같아요.
계속 계류를 하더라도 논의가 많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선심 쓰듯 카드 긁는 거 안 했으면 좋겠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 걸어서 부탁하는 거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 거예요.(웃음) 문화를 바꾼다는 게 제일 큰 거예요. 공무원들은 동네 어르신이 전화하면 참 곤란한 경우가 많거든요. 어르신은 누가 부탁을 하는데 가까운 사이라고 전화 한 통은 해야지, 그렇게 돼요. 저는 커다란 부패 문제라기보다 그런 것부터 고쳐나가기 시작하면 커다란 부패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람들은 고위공직자들에게만 이걸 적용하자고 해요. 이건 문화 자체를 바꾸는 거니까 고위공직자만 적용해서는 실효성도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이 문화가 정착되면 고위공직자도 함부로 어디 전화 걸어서 부탁하는 이런 걸 못할 거예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기 시작하면 10년 안에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문화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가랑비에 옷 젖듯 선을 잠깐씩 넘기가 너무 쉽잖아요. 반드시 공무원 사회뿐 아니라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 법은 핑계를 댈 수 있게 하는 법이라고 말했어요. 구체적인 법 조항을 따져서 이건 위반 아니니까 해도 돼, 이런 문제가 아니라 이런 법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이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이 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를 하는 거죠.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웃음)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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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다시 생각한다김김영란 저 | 창비
저자가 재직 당시 참여한 중요한 판결들을 꼽아 판결의 의미와 배경, 논쟁의 과정을 꼼꼼히 되짚고 개인적인 견해와 반성까지 솔직하게 밝힌 이 책은 대법관 스스로 자신의 판결에 대한 의견을 조목조목 밝힌 귀한 발언이자, 대법원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 법과 민주주의의 의미를 탐구하는 의미 깊은 작업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흐름,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법의 논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일반인을 위한 법률 교양서로도 유익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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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
jjin9098
201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