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작가의 첫 위안부 피해자 소설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생존자 한 사람의 기억을 통해 300여 건의 증언을 엮은 장편소설 『한 명』을 시작으로 실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김복동 할머니의 증언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를 발표했습니다. 이어 소설가만이 읽을 수 있는 증언 속의 침묵을 다룬 소설 『듣기 시선』을 쓰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오래도록 체화하는 시간을 거쳤습니다. 신작 『간단후쿠』는 쓸 수밖에 없어서 쓰인 소설이라고 합니다. 완벽할 순 없지만 타인의 고통에 닿은 작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작. 우리가 왜 타인의 고통을 느껴야 할까요? ‘되어 보기’ 혹은 ‘되어 보기’를 거친 경험을 알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무언가, 변하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하나의 뿌리로부터 시작된 10여 년의 여정
9년 전 아홉 번째 장편으로 『한 명』을 발표하며 위안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꼭 써서 책으로 남겨야 할 이야기로 위안부 문제를 떠올리게 된 건 어떤 연유에서인가요.
당시 단편을 여럿 쓸 때였어요. 그러다 쓰고 싶은 장편이 생기면 동시에 쓰는 시기였는데 ‘뿌리 이야기’라는 중편을 쓰면서 등장하는 인물 중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계셨고, 그때 이야기가 제게 찾아온 거죠. 내가 무엇에 대해 쓰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저에게 오는 이야기들을 써왔는데 그것들이 책의 모양으로 묶여 나온 후 뒤돌아보니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뿌리 없이 떠도는 사람들,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이나 역사에 의해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도려내졌거나 굴곡진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거죠. 제 책에 잠시 스쳐 지나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한 명』은 우리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과거의 시간대로 돌아가서 기억에 남아 있는 위안소와 주변의 소녀들, 경험들을 들려주는 내용인데 지금 와서는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네요.
예를 들어 배우가 한 역할을 맡아 극을 완수하고 나면 그 세계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듯 글을 창작하는 사람들도 한 세계를 몰입해서 그리고 나면 그 이야기를 자신 안에서 종결짓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작가님은 반대편에 서 계신 것 같아요.
저는 털어버림이 잘 안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위안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초반 작품인 『철』을 통해 조선소를 배경으로 한 조선소 노동자들을 그린 후에 다시 『제비 심장』이라는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적이 있어요. 제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계속 끌어안고 있는 편이에요. 시대도 다르고 살고 있는 공간도 다른데 그냥 그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죽은 자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들도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가봐요.
‘징한’ 만남을 가진 후에야 또, 다시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하셨어요. 소설가이자 한 사람으로서 머리카락 수보다도 많았던 것 같은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을 알게 된 지난 시간들이 어떻게 남아있나요.
저는 담담한 느낌으로 만났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컸어요. 위안부 피해자라고 하는 분들을 대할 때 대표적인 감정들이 있잖아요. 그 감정들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자세를 먼저 갖추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할머니들을 좋아해요.(웃음) 그래서 만나보고 싶은 할머니를 만나서 그냥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요. 트라우마 안으로 들어가는 건 이미 활동가분들과 연구자분들이 해냈고 그 기록물들이 있으니까 저는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어요. 만약에 제가 분명한 목적을 가졌다면 부자연스러운 만남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까 소설이 아닌 다른 그릇으로 담아내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후에 소설이 써지면 써지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였죠.
여기서 잠깐, 할머니들도 작가님을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웃음)
할머니들을 만나면 서로 무장 해제되는 게 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시골에서 자라서 할머니들의 대화 방식이 익숙했던 것 같아요. 그분들의 대화 방식이 재미있고 듣고 있으면 궁금한 게 많아져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또 어떻게 극복해 냈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지는 거예요. 이런 마음을 알아주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할머니들이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실 때 너무 예뻐요.
그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소설가의 입장으로 좀 더 기울어져 보자면.
위안부 피해자분들에게 관심을 갖고 더 깊이 알게 되면서 놀랐던 게 제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에도 살고 계셨던 거예요. 나와 동떨어진 일인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존재하고 있었던 거죠. 『한 명』을 쓰는 동안에는 할머니들을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했어요. 소설이 인연의 끈이 되어 할머니 두 분을 동시에 만나 뵙게 됐는데 바로 소설이 쓰여졌어요.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면서 제가 쓸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증언 소설을 쓰게 되었어요. 지금 이 시대에 제 또래의 여자들이 경험할 만한 보편적인 경험과는 너무나 멀리 있는 경험에 대해서 듣는 거잖아요. 바로 그 몸이 바로 제 앞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그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곧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인 것 같았어요. 『한 명』을 쓸 때는 제가 고통을 겉돌고 있는 것 같았다면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고 나서는 고통에 완전히 가 닿지는 못했지만 고통을 느낄 수는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오히려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살아남아 당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떳떳하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런 사람만이 가진 힘이 담긴 말씀을 들려주셨죠. 할머니들과의 만남은 제가 고통에 가 닿으려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에 대한 끝없는 경이와 감탄을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비로소 신작 『간단후쿠』를 쓸 수 있었던 거네요.
『한 명』을 쓰고 나서야 그 시간으로, 그 장소로, 그 소녀의 눈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체화가 정말 쉽지 않은 게, 소녀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소녀의 몸에서 밤마다 펼쳐지는 악몽 속으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하지만 타인의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기도 하죠. 언어로 완전하게 표현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 있다고 보거든요. 쉽지가 않았음에도 10년 가까이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소설을 쓰면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체화를 거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 고통을 오늘의 내가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고통의 단편의 단편이라도 표현해서 쓸 수 있을 것 같으면 쓰자 싶었어요. 안 그러면 너무 후회할 것 같다. 후회가 남아 계속 뒤돌아보게 될 것 같았어요.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
『간단후쿠』는 어렴풋한 시기와 만주라는 장소가 배경으로 쓰이지만 특정적인 느낌이 없어요. 머릿속 들판에 제 마음대로 집을 짓고 철조망을 치고 읽게 되더라고요.
증언 기록들에도 위안소가 어떤 모습이고 운영은 어떻게 되었는지 실려 있어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달라요. 만주인지 오키나와인지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집의 형태도 다르고 군부대가 운영하는지 일본인 업자인지 조선인 업자인지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저는 만주라는 땅에 제 나름대로 위안소를 지은 거예요. 열 명의 인물이 등장할 수 있는 열 개의 방을 짓고 귀리죽이라는 음식을 상징화했어요. 『간단후쿠』를 쓰면서 제가 의도한 게 있다면 생략이거든요. 너무 세밀하게 위안소를 그리는 것은 정확한 위안소를 상상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오히려 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드로잉 하듯 여백을 많이 넣고 싶었어요.
커다란 사건 속에는 개인이 존재하기 마련이죠. 개인에게 깊게 다가설수록 앞서 얘기한 것처럼 활동가와 연구자는 할 수 없는 글만의 힘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관심 갖기 이전에 이미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증언을 이끌어내고 기록한 일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빚을 지고 있어요. 그들의 노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기록물과 제가 쓰는 소설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그건 바로 침묵이었어요. 증언 기록에는 할머니들이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고 침묵할 때 괄호 속에 점을 찍어 두었더군요. 소설가는 침묵에 숨어 있는 문장들을 찾아내서 써야 되는 사람인 거예요. 수십 문장이 될 수도 있고 단 하나의 문장이 될 수도 있어요. 할머니가 대화 도중 창 쪽을 바라보는 순간처럼 언어화되지 못한 장면을 그려내는 거죠. 시선 속의 불안, 창밖에서 들리는 수군거리는 소리를 어떤 마음으로 듣고 있을지 해설하고 담아내는 작업이 아닌가라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대화와 경험을 통해 깨우친 고통의 감각을 글로 전환하면서 겪은 통증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저 또한 통증을 겪었거든요.
지난 10여 년의 기간 동안 실제 장소에 가본 경험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재작년에 실제 위안소가 있던 장소에 가봤어요. 배를 타고 가면서 생각했죠.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 땅에 사는 사람들과 하늘, 물의 빛깔, 바람까지도 몸으로 직접 느끼는 과정이 저를 바꿔 놓았어요. 그 시간에 존재하지만 몸이라는 실체는 없는 위안부 할머니의 몸 안에 들어갔어요. 그렇지만 끝까지 가진 못했다고 생각해요. 조각과 조각을 모아 담아냈을 뿐이에요.
“존엄을 회복하고 숭고한 모습으로 그 소녀들의,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되어 찾아오실 할머니들께 이 소설을 드린다.” 책의 말미에 이렇게 쓰셨어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찾으면 좋을까요.
소설을 쓸 때 메시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쓰거든요. 제 소설이지만 독자분들께 어떻게 읽히면 좋겠다, 뭘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답을 해야 하죠?(웃음) 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위안소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것이 정말 많았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살아 돌아온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살아 돌아와 또 미치지 않고 계속 말하고 기억하며 감당하고 사는 삶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알면 알려고 할수록 그 무게감을 저도 점점 더 실감하는 중인데요. 저 또한 소설을 썼다고 온전하게 알지 못하기에 이 책이 여러분에게 위안소에 같이 가보자, 그날 밤으로 가보자고 내미는 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숨의 리듬과 운율
『간단후쿠』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소설 중간에 원피스의 단추가 떨어지면서 ‘간단후쿠’가 되는 대목에서는 비통함과 동시에 이 소설의 제목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납득에 이르렀죠.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기 직전까지 ‘원피스’라는 제목이었어요. ‘간단후쿠’는 대화를 나눈 할머니께서 표현을 쓰면서 저에게 온 거거든요. 원고를 보내면서 마지막에 『간단후쿠』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위안부 소녀들의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형상에 익숙하지만 현실적인 옷은 입고 벗기 편한 ‘간단복(‘간단후쿠’의 한국어)’이었던 거죠.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독자들에게 쉬이 전해지지 않는 제목일 수 있는데도 편집자분들이 지지해 주었어요. 저 또한 글 밖에 것들은 편집자를 전적으로 믿거든요. 표지에 나풀거리는 옷도 맘에 꼭 들어요.
소설 속에 등장한 ‘삿쿠’, ‘삐’ 같은 처음 보는 단어의 의미를 더 자세히 찾기 위해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거든요. 자극적으로 다루는 글들도 많아 어쩐지 속이 상하더라고요.
위안소에 살고 있는 소녀들을 그려내기 위해 꼭 들어가야 되는 물건과 언어죠. 그리고 ‘군인의 콧물’, ‘돌림노래’로 대체된 표현도 있고요. 피해자분들에게 다시 피해를 가하는 단어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 쓸 것인지도 과제였어요. 다른 소설보다 더 은유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아요.
목차가 ‘간단후쿠’, ‘삐’, ‘가시철조망 울타리’, ‘지평선’, 삿쿠’, ‘다다미 한 장’ 등으로 이어져요. 첫 장인 간단후쿠라는 옷을 설명하면서 나온 다른 단어가 다음 장의 중심 주제가 되는 점진적인 전개 방식이 독특했어요.
이런 글쓰기를 좋아해요. 특히 이 소설은 어느 순간 노래하듯 쓰게 되었어요. 매일 밤 소녀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돌림노래’로 표현하기도 했죠.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에 집중해서 쓸 때 단어가 변주되면서 돌림 노래의 형식이 저절로 만들어져요.
하나둘, 십 리, 이십 리 숫자의 동어 반복 등이 운율을 만들어내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어요.
오키나와에 딸린 미야코지마 섬에 갔을 때 주민들이 직접 얘기해준 일화에서 가져온 부분인데요. 물이 귀한 섬이라 빨래터가 별로 없었다고 해요. 위안부들이 빨래를 가지고 이동하는 동안 아리랑을 자주 부르던 걸 주민들이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신기하게도 ‘십 리’가 아니라 ‘일 리’로 불렀다는 이야기가 여러 분들에게서 일치했어요. ‘아리랑’을 시대의 정서를 대표하는 곡이라 넣은 건 아니고 이런 기억들로부터 온 것이에요.
추천사를 쓴 박소란 시인의 말처럼 시적이라고 느꼈어요. 『간단후쿠』는 소설과 시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닐지.
시인들은 시를 덜어내는 걸 잘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말해요. 소설을 쓸수록 소설 또한 잘 덜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간단후쿠』의 첫 원고를 보낸 다음 교정지가 오가는 동안 100매를 삭제했어요.(웃음) 다른 소설에서 그걸 못해서 후회되는 마음이 있었어요. 이 소설은 정말 잘 해내고 싶었어요.
소설 쓰기 공부를 혼자 시 습작으로 한 습관 때문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저에게 쓸 것이 오면 써요. 기승전결을 분명하게 해놓고 쓰는 걸 안 좋아해요. 독자 입장으로 돌아갔을 때도 서사가 강한 소설을 즐기지 않아요. 글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제 나름대로 이해한 서사라는 것을 염두하고 글을 쓰려고 하면 재미가 없어요. 내 것 같지가 않은. 그래서 장편은 특히 더 뒤죽박죽이죠. 제 글 쓰는 방식에서 덜어내는 일에 힘을 주다 보니 이런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등장 인물 열 명의 개인 서사가 하나씩 확실하게 와닿았어요. 이 점은 다분히 소설적이죠.
한 소녀에 실제 존재했던 수많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들어앉아 있어요. 조각보처럼 그들의 면면이 기워져 있는 거죠. 개인의 피해를 들추고 해석한 글이 남겨지는 것이 자칫 해가 될 수도 있어 굉장히 조심스러웠지만 처음으로 과감하게 소녀 한 명 한 명이 갖고 있는 기질에 집중했어요. 똑같은 일이 일어나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일은 다른 일이 되는 거잖아요. 각인되는 방식과 트라우마도 다를 테니까요. 그걸 보여주고 싶었죠.
회복하는 내일을 향해
『한 명』은 위안부 생존자가 단 한 명 남았다는 가정하에 쓰였습니다. 『간단후쿠』를 읽고 260인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 단 여섯 분만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애도의 마음 밖으로 여러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소설을 쓰면서 오히려 거리를 두고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해왔던 지라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을 멀리서 바라보려고 한 것 같아요. 올해 초에도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그때도 폭발하는 것들도 있고 아무 폭발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잠잠함이 더 큰 애도로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분들에 대한 애도는 정해 놓은 시기에 이루어질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 차를 두고 이 애도가 10년 뒤에 갑자기 문득, 아니면 20년 후에 아니면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서 그제야 온전한 애도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가님은 소설 속 인물을 쉽사리 보내주지 않는 사람이지만 『간단후쿠』라는 긴 여정의 중요한 부호 같은 작품을 마치고 안녕을 고한 점이 있을까요?
오히려 『한 명』의 개정판을 내고 싶어졌어요.(웃음) 앞으로 꼭 해내고 싶은 작업 중 하나가 『한 명』을 제대로 퇴고해서 다시 내는 거예요. 제가 놓쳤던 할머니의 그 하루를 눈금자의 눈금처럼 쪼개서 아주 세밀하게 그려내고 싶어요. 이제 어느 정도 저 자신을 만족시킬 만큼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1997년 문단에 데뷔한 이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처럼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더불어 사회 사각지대에 있는 평범한 이들의 상처와 삶을 남겨왔어요. 30년 동안 걸어온 길을 뒤돌아봤을 때 어디쯤 와 있는 것 같나요.
일찍 등단해 소설이 뭔지도 잘 모르고 쓰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지금이 더 재미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소설을 좀 알 것 같아요. 이제서야 내가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을 것 같달까요. 주변에 자주 얘기하는데 소설가에게 나이 먹는 건 축복이라고. 그려내려는 인물에게 더 잘 몰입할 수 있어요. 좀 더 자유로워진 것 같고요. 뿌리 없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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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령
여러 패션 매거진의 피처 디렉터로 일하다 지금은 자유롭게 글을 쓴다.

표기식
사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