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는 음악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연주자에 속하는 음악가다. 하지만 좀 아이러니한 연주자다. 혼자서는 아무런 소리를 낼 수 없고, 적어도 둘 이상의 다른 이들을 통해서만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
이 이상한 직업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수십 명의 연주자들을 대표해서 화려한 무대의 가운데 단상에 서고, 무언의 몸짓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며, 청중의 환호 또한 한 몸에 받는다. 우리는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추어진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물 위에 떠 있는 새의 모습에 곧잘 비유한다. 가령 우아한 물 위에서의 자태와는 지극히 대조적으로 물 밑에서는 쉴 새 없이 물갈퀴를 움직여야 하는 백조처럼 말이다. 세상의 많은 일이 이면을 가지고 있듯이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지휘자 역시 엄청난 고단함을 동시에 감내해야 한다.
많은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하여 혹독한 준비 과정을 거친다. 한없이 화려해 보이는 지휘자도 또 다른 종류의 연주자인지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다만 보통의 연주자처럼 악기를 항상 몸에 지니며 소리를 확인해볼 수 없다는 점이 다르다.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와 연습하기 전까지는 오직 악보를 보면서 소리를 상상하고 계획하고 예상한다. 그에게 이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참으로 외롭고 치열한 시간이기도 하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음악에도 정답은 없다. 그 누구도 옳고 틀리고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분야이기에 끊임없이 바뀌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그때마다 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연주자들에게는 그 어려움이 곧 즐거움이기도 하다. 정답이 없기에 끊임없이 다르게 생각해보고 가능성을 열어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창조적이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태어나 18년을 살다가 지휘하는 일이 행복할 것 같아서 그 길로 들어선 지 다시 18년이 되었다. 서른여섯의 젊은 지휘자가 하고 싶은 것은 물론 아직 너무 많다. 그래서 자꾸 서두르려고 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이따금 스스로 발견한다. 분명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만의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중이다.
책에 나오는 구절을 잘 외우는 편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전 어느 잡지에서 읽은 한 문장은 지금도 술술 외울 수 있다. 지금은 타계한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가 젊은 지휘자들에게 남긴 말이다.
“자신에게 ‘약간의’ 운과 재능과 결단력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밀어붙여라!”
그의 말을 새기며 앞으로의 지휘 인생을 새롭게 그려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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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마에스트로의 코데타최수열 저 | 아트북스
지난 18년간 자신이 통과해온 수많은 ‘좁은 문’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보고 듣고 만진 다양한 편린을 진솔하게 고백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일차적으로 한 젊은 지휘자의 음악 수업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 그리고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을 보여주는 한 편의 성장소설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꼭 지휘자가 되려고 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예술의 길을 걷거나 그것과 친연성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적잖은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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