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나는 영화칼럼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백수에게 칼럼리스트를 시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화기자가 되려 했다.
그러나 영화기자가 되려면 일단 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자가 되려 했다.
그러나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단 글을 썼다.
그 와중에 기자는 술을 잘 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자생각을 접고 소설을 썼다.
우여곡절 끝에 소설가가 됐는데, 긴 시간의 터널을 통과한 후 영화칼럼 청탁을 받았다.
도입부를 보고 기시감을 느꼈다면, 당신은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윗글은 내가 <영사기>를 시작할 때, 쓴 프롤로그의 도입부다. 동시에, <영사기>의 마지막 회 (겸 에필로그)의 도입부다.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내가 ‘수미상관(首尾相關)’식 에세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영사기를 연재하며, 세운 목표는 평생 영화 칼럼을 써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자 10년도 벅차다는 걸 자각했고, 1년이 지나자 5년도 과분하다고 자성했고, 2년이 지나자 3년이면 충분하다고 자위했다. 이 와중에도 수미상관법을 좋아하는 내 머릿속에는 첫 회와 마지막 회가 ‘서로 연관(상관)’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여, 목표를 이렇게 수정했다.
‘첫 회로 쓴 <장고>의 쿠엔틴 타란티노가 신작을 내면, 마지막 회를 쓰자.’
약 1년 전, 그가 차기작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영사기의 여명이 얼마되지 않음을 실감했다. 스스로 정한 기한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묘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환자의 심정 같았다. 귓가에는 의사의 조언도 들리는 듯했다(얼마 남지 않은 시간, 잘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얼마 뒤 아직 집필중인 시나리오가 유출되자, 그는 광분한 나머지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아아, 언제까지 마냥 써야 하지? 수미상관을 지켜야 하는데 말이야!’
촬영은 한동안 지연되었고, 결국 그 덕에 칼럼을 좀 더 쓰게 됐다. 이번에는 당황한 의사의 진단이 들리는 듯했다(“가끔씩 이렇게 오래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평소처럼 지내시면 됩니다”). 나는 하던 대로 매주 개봉관에 가서 예닐곱 시간을 보냈고, 때론 밥을 먹으며, 한강을 거닐며, 그리고 대부분 커피숍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쓸거리’를 고민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하던 대로 계속해보자.’
그리고 이번주 <헤이트풀8>이 개봉했다. 나는 비로소 ‘이제 일단락이군’ 하는 심정으로 키보드를 치고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쉴 새 없는 대사들을 쏟아냈다. 그 언어의 홍수로 인해, 오랜 갈증을 참아온 알코올중독자처럼 대사에 흠뻑 취했다. ‘그래, 이게 영화야! 보라고. 저 넓은 화면, 터지는 총소리, 거침없는 말발굽, 쏟아지는 욕설과 신음,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선혈.’ 오랜만에 잔뜩 흥분했다. ‘이럴 거면 칼럼을 좀 더 오래 쓰기로 할 걸 그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 내 뺨을 때리려다가 참았다.
첫 회의 제목은
인생은 알 수 없다. 삼천포로 빠지나 싶더니, 결국 십 년 전에 점찍어둔 장소에 도착했다.
그래서 깨달았다. 때로 어떤 이는 삼천포로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 글도 수시로 삼천포로 빠질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정색하고 영화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래야 삼천포와 삼천포 사이를 헤매더라 도, 결국은 목적지로 연결되는 다리를 통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시감을 느꼈다면, 당신은 눈치도 빠른 사람이다. 이번엔 아까 그 프롤로그의 결론부였다. 동시에, 이 글의 결론부다. 사실, 칼럼이, 소설이, 영화가 그렇듯, 우리의 삶 역시 비록 도중에 삼천포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 시작과 끝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머리카락 몇 가닥 없이 시작해 머리카락이 거의 빠진 채로 끝나거나, 부모의 힘으로 살아오다 자식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생이다. 중간과정은 다를 수 있지만, 시작과 끝은 크게 바뀌지 않는 ‘수미상관’식이다. 그렇기에, 무수히 삼천포로 빠졌던 이 칼럼의 마감도 결국은 ‘수미상관’식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칼럼의 제목은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라면 아무것이라도 쓸 수 있는
<영사기(英思記)>’다. 영사기는 아무 곳에서나 잘 돌아갈 것이다.
기시감을 느꼈지만 읽고 있다면, 당신은 너그럽고 영화와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이제 이 글도 그러하니, 몇 마디만 덧붙이자.
시작할 때 내가 영화 칼럼을 이렇게 시작할지 몰랐듯이, 언젠가 다시 영화 칼럼을 또 시작하게 될지는 모른다. 어차피 모든 영화는 삶을 대변한다. 그렇기에, 영화의 원형은 바로 삶이다. 따라서 이 별의 73억 주인공들은 각자 73억 편의 영화를 매일 찍고 있다. 이렇듯, 이 칼럼이 아니라도, 영사기는 가깝고 먼 여기저기서 꼬박꼬박 돌아갈 것이다. 영사기는 어디서나, 아무 곳에서나, 계속 잘 돌아갈 것이다.
*
그간 <영사기>를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곧, 새로운 칼럼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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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