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다들 다이어트와 외국어 공부, 여행을 1,2,3 순위에 적어놓고 마지막에 마지못해 ‘책 100권 읽기’나 ‘한 달에 2권 읽기’ 같은 양으로 승부하는 계획을 세워놓는 달이다. 그러나 읽어야 할 책은 하루에 수백 권씩 쏟아져 나오는데, 책을 펴려고 굳게 마음을 먹어도 표지가 너무 무거워서 책을 쌓아둔 채 그대로 마음의 짐으로 만들어버린다. 어쩌면 책이 가까이 있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동네서점이 없어지고 책이 멀리 가 버렸기 때문이라고 탓해 본다. ‘동네서점’이라고 부를 필요도 없이 집 근처에 하나씩 있던, 그 서점. 그러나 시나브로 없어지던 동네서점이 독립서점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하나둘씩 나타났다.
소량만 찍어 대형서점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독립출판물을 판매하거나(‘다시서점’), 책 판매하다 말고 영화상영회와 음악감상회를 열고 술을 마시는 서점(‘퇴근길 책한잔’), 아니면 성소수자가 문화를 즐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만들었다는 서점(‘햇빛서점’) 등, 각양각색의 독립서점들이 자리를 잡았다. 어느 정도나 책을 사랑하기에 다 망해가는 와중에 터를 일구는지, 주인을 만나 독서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기로 한다. 서점 주인이라면 뭔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우리의 시들한 독서 계획에 열정을 불러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혹자는 동네서점이 없어진 게 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독과점 행태 때문이라며 돌을 던지겠지만, 다행히 예스24에서 왔다고 소금을 뿌리거나 문전박대한 주인은 없었다. 차도 내주고 좋은 분들이었다. 모쪼록 채널예스 독자분도 많이 많이 가셔서 두루두루 보시기 바란다.
다시 서점을 해보자 - ‘다시서점’ 김경현 대표
다시서점은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독립서점으로 ‘서점이 사라지는 시대, 다시 서점을 해보자’를 모토로 2014년 5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책방지기는 시집을 팔아 월세를 마련한다는 ‘시월세집 프로젝트’로도 유명한 김경현 씨이다. 다시서점이 시 전문 서점이 되기를 바라며, 주로 시집과 시인이 쓴 산문류 책, 텍스트 위주의 독립출판물을 취급한다. 현재 시집 600여 권, 독립출판물 200여종을 갖추고 있다.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42길 34, 지하 1층
아무래도 공간이 좁다보니 책을 선별해서 진열해야 할 텐데요. 책을 선별하는 방식이 있나요?
읽어서 해가 되는 책들은 안 들여 놨거든요. 웬만하면 다 읽어 본 책들이고 그 중에서도 골라서 놔요. 문학과지성사나 문학동네 시집 시리즈를 쭉 가져다놓으면 예쁘고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편하지만 제가 모르는 걸 팔고 싶진 않아서요. 비치한 책 중에 베스트셀러는 김훈 작가님의 책 하나밖에 없는데 왜 서점에 책이 없냐는 손님도 있어요. 그런 경우는 큰 서점에 가면 있다 하고 안내해요. 이태원에는 서점이 없으니까 가끔 찾아오시기도 하고. 사실 거면 주문해 놓겠다고 하죠.
손님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로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시나요?
추천을 잘 안 해주고요, 주로 그냥 둘러보고 골라보시라고 하는 편이에요.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지만 책을 만나는 것도 운명처럼 행복하게 만나야죠. 우연하게 작은 책방에 들렀는데 아, 이런 책이 있구나. 이런 기억이 있으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책을 읽는 자신만의 방법이나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지금은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어요. 이 책이 읽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걸 끝낸 다음에 다른 책 읽으려고요. 지금 거의 한 절반 넘게 읽었어요. 시집 같은 경우에는 후루룩 읽긴 하지만, 소설보다 더 천천히 읽어야 하는 면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일년에 책을 백 권 읽어야지, 이런 계획을 세웠는데, 열심히 읽으면 삼백권도 읽잖아요. 문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인 것 같아요. 『문학이란 무엇인가』도 계속 붙잡고 있는 이유도, 완벽하게 이해를 하든지 아니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싶거든요. 지금은 한 권을 읽더라도 정성스럽게 읽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읽다가 내려둔 책도 많아요. 그러다 생각나면 읽고. 어차피 내 책이니까.
책을 선택하는 데 디자인은 잘 안 보는 편이고요, 디자인이 세련되지 않아도 좋은 책이 많잖아요. 남의 말을 잘 안 믿어서 추천해주는 책은 잘 안 보고요. 무심코 서점에 갔는데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사는 편이에요.
대표님에게 독서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하는데, 그러면 히틀러의 『나의 투쟁』 같은 책에도 길이 있어야 하는데, 아니잖아요. 책 속에 있는 길은 지도에 표시만 해놓는 용도고 현실 세계에서는 그 길을 실제로 걸어야 할 텐데, 사람들은 자기 좋은 얘기만 책에서 뽑아 듣고 실제로 적용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스스로한테도 하는 말인데, 한 종류만 안 읽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들은 ‘이걸 책이라고 만들었어’하고 내던져요. 그런데 사람이 인스턴트도 먹고 과자도 먹고 오렌지주스 먹고 밥 먹고 양식도 먹고 하는 거지, 하나에 꽂혀서 그것만 보면 공산당이죠. 좀 더 열어놓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아요. 다양한 책 많이 읽고요. 고등학생 때 이런 문제가 많았어요. ‘화자가 무슨 의도로 이 말을 했는지 고르시오.’ 이제 답 찾으면서 안 읽어도 되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너 왜 그런 책 읽어?’ 하더라도 그냥 마음 편하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다시서점’ 대표가 추천합니다
느슨하게 취향을 나누는 공간 -‘퇴근길 책한잔’ 김종현 대표
‘퇴근길 책한잔’은 2015년 4월 초에 문을 연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독립서점이다. 책을 판매하는 외에도 영화제 상영과 미니 콘서트, 토크 등 다양한 행사를 운영한다. 운영자는 『카우치 서핑으로 여행하기』의 저자이기도 한 김종현 씨다.
주소 : 마포구 염리동 9-60
간단하게 서점 소개 부탁드립니다.
기본적으로 책을 판매하고 행사를 하는 공간입니다. 행사에 필요한 음료나 술이 준비되어 있고요. 꼭 책에 관련된 행사만을 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독립출판물을 좋아하거나, 제가 선호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좀 더 느슨하게 취향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기성 도서는 너무 종류가 많고 서점은 공간의 한계가 있어서 저희 책방에는 제가 추천할 수 있는 책, 읽어 본 책만 두고 있어요. 나머지는 독립출판인데, 독립출판은 이런 출판물도 있다고 소개를 해드리는 거죠. 제가 따로 선별하진 않고요.
『카우치 서핑으로 여행하기』 저자이시기도 한데요, 해외 여행을 하면서 영감을 받았던 서점이 있었나요?
구체적인 영감이라고 하긴 그렇고요. 유명한 관광지에 가는 것보다는 학교 도서관, 책방, 술집, 제가 좋아하는 장소를 가는 걸 좋아했어요. 다양한 책방을 보는 편이었죠. 꼭 책방을 만들겠다고 처음부터 결심한 건 아니었고 돌이켜보니 도움이 된 거죠.
자신만의 독서 방법이 있으신가요? 주로 읽는 책은요?
책을 가까이에 두는 편이에요. 이를테면 침대 위, 베개 밑에 두어 권씩 항상 있고, 외출할 때도 자연스럽게 가방이나 손에 한두 권씩 그냥 넣고 들고 가는 습관. 제가 움직이는 반경에 다양한 책이 깔려있어요. 거실 테이블에도 깔려있고. 굳이 읽지 않아도 습관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자리에 각 잡고 앉아서 서너 시간씩 책을 보는 스타일이라기보다 자기 전에 몇 페이지씩 짬짬이 보고, 여러 권의 책을 꾸준히 보는 스타일이에요. 많이 읽는 건 사회과학서, 철학서, 소설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고 보긴 어려워요. 지금도 엄청나게 다독을 한다거나 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맥을 안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대표님에게 독서란?
영화나 음악이나 책도 비슷한데, 예를 들어 소설을 볼 때 어떤 내용에 심취해서 스토리에 몰입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전 대체로 저자에 더 관심을 가져요. 책을 쓴 사람이 그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로 생각하는 거죠. 그 말이 마음에 들면 저는 비슷한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그 작가의 작품을 더 파는 편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죠. 연애도 비슷하잖아요. 연애를 하면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게 되는데, 책도 대단한 지혜를 준다거나 세상의 눈을 틔게 해 주는 게 아닌 만나기 어려운 누군가, 내가 관심을 두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거라고 생각해요. 얘기 듣다가 재미없으면 덮어버리면 되는 거고. 한 방향 대화지만 그런 대화조차도 할 수 있는 영역이 (독서 빼고는) 거의 없죠.
‘퇴근길 책한잔’ 대표가 추천합니다
LGBT를 위한 공간 - ‘햇빛서점’ 박철희 대표
‘햇빛서점’은 2015년 9월 갓 오픈한 신생 독립서점이다. 현재 주말만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 최초로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 트렌스젠더의 약자로 대개 성소수자 전반을 일컫는 용어) 관련 서적만 취급하는 전문 서점이다.
주소 :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265-969번지
햇빛서점이 어떤 서점인지, 주로 어떤 종류의 책을 비치하고 있는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햇빛서점은 LGBT가 만들었거나, LGBT를 위한 콘텐츠를 파는 서점입니다. 외국에 보면 성소수자를 위한 서점도 있고 커뮤니티 센터도 활발히 되어 있지만, 한국 LGBT관련 업소들은 주로 술집, 클럽 등 밤에 여는 가게가 대부분이었고, 저는 낮에도 당당한 게이이고 싶었습니다. 아직은 게이 관련 컨텐츠가 주를 이루지만, 항상 LGBT를 생각하며 책을 모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점에는 텍스트보다 이미지 중심의 책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가져오는 것들이 많아서 언어적인 장벽이 있기 때문에 제가 보고 싶은 그림책 위주로 많이 가져오는 편입니다. 서적 이외에도 엽서나 티셔츠 등 LGBT 관련 물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손님에게 책을 추천하는 기준이 있나요?
서점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옵니다. 술에 취한 채 조카를 위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삼촌도 있고, 동성 친구가 갑자기 커밍아웃을 했다며 LGBT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듣고 나서 제가 생각하는 책을 추천합니다.
주로 언제,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2016년 독서 계획이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제가 책을 많이 읽는 서점주인은 아닙니다. LGBT와 관련된 책은 주로 그림을 중심으로 읽는 편이고, 도감이나, 위트있는 소설, 미술/디자인 이론서 등을 좋아합니다. 주로 한가할 때 책을 찾게 되는데, 어울리는 책 2-3권 정도를 섞어가며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를 읽다가 지치면 다른 책을 읽고 또 지치면 바꿔 읽습니다. 집중력이 워낙 없어서 그렇게 하면 더 잘 읽을 수 있습니다. 2016년은 좀 더 책을 많이 읽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햇빛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LGBT 이슈 관련 책을 골라주세요.
최근에 나온 매거진 <뒤로>는 오프라인 미디어에서는 나타나기 힘든 게이 문화에 대해 잘 기록한 책입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나온 『선생님, 저 동성애자인 거 같아요』는 현재 교사들에게 필요한 청소년 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SOGI법연구회에서 나온 『한국 LGBTI 인권현황』 보고서는 현재 한국의 인권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는 책입니다.
‘햇빛서점’ 대표가 추천합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