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명품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는 국립극장 마당놀이 ‘온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고전소설 『춘향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모든 세대에게 익숙한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당놀이 특유의 해학과 풍자 속에 현실의 이야기를 녹여냈다. 중장노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문화적 체험을 안겨준다. 지난해 <심청이 온다>를 통해 ‘극장식 마당놀이’의 탄생을 알린 국립극장은 객석 점유율 99%, 관람인원 31,055명이라는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명품 마당놀이의 시작을 예고했다. <심청이 온다>가 보여준 저력은 <춘향이 온다>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흥미롭고 재미있게 전달하기란 쉽지 않을 테지만, 그 점에서 <춘향이 온다>는 합격점을 받을 만 하다. 당찬 소녀로 다시 태어난 춘향의 사랑은 낡음과는 거리가 멀고, ‘엄친아’ ‘뇌섹남’이라는 현대적인 수식어로 소개되는 몽룡은 여전히 호쾌한 매력을 뽐낸다. 변학도에 대한 재해석도 눈길을 끈다. ‘여색을 밝히는 사랑의 훼방꾼’에 지나지 않던 그가 <춘향이 온다>에서는 사랑에 죽고 사는 또 한 명의 로맨티시스트로 등장한다. 춘향에게 첫눈에 반한 변학도가 바라는 것이라고는 오직 그녀의 마음뿐이다. 이 소박한 바람은 몽룡의 아버지에 의해 가로막히는데, 춘향과 몽룡을 갈라놓으려는 그는 성균관 후배인 변학도에게 춘향을 단념시킬 것을 주문한다. 그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춘향에게 시련을 안겨주게 되었다는 변학도의 변(辨)이다.
<춘향이 온다>에는 선과 악의 뚜렷한 이분법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복잡미묘한 감정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평범한 남녀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사랑을 위해 치졸해지기도 하고, 사랑 덕분에 강해지기도 한다. 그 변함없는 본질은 작품이 가진 강한 호소력의 모태다. 사랑 때문에 태어나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때로는 그 사랑 때문에 죽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아니겠냐는 이야기 속의 외침이 오래도록 귓전을 맴돈다.
시절이 변했다 한들 한결같이 상통하는 것들이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그러하고, 마당놀이만이 안겨줄 수 있는 쾌감이 그러하다. <춘향이 온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흥을 돋우는 길놀이, 관객과 함께 올리는 고사, 뒤풀이 춤판에 이르기까지 활력 넘치는 시간들이 이어진다. 그곳에는 이야기와 이야기가 아닌 것의 경계가 없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와 이야기를 감상하는 이의 구분이 없다. 배우의 농담과 관객의 웃음, 배우의 가락과 관객의 추임새가 한 데 어우러져 작품을 완성한다. 무대 위에서 한바탕 잔치가 벌어지면 객석에서도 춤사위가 흘러나온다. 마당놀이의 맛이란 그런 것이다. 몸으로 노는 즐거움이 있고, 배우와 관객의 기운이 만나 하나가 되는 어울림의 미학이 있다. <춘향이 온다>가 고스란히 계승한 이 맛깔나는 경험은 무대 위에 마련된 가설 객석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마당을 중심에 두고 삼면에 둘러앉은 관객들은 배우와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면서 작품의 일부가 된다.
설 연휴는 <춘향이 온다>와 함께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는 뛰어난 제작진과 배우들의 의기투합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마당놀이를 탄생시킨 연출가 손진책과 <삼국지> <쾌걸박씨> 등 다수의 작품을 써온 극작가 배삼식, 전통무용가이자 안무가인 국수호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30년 동안 마당놀이 배우로 활약했던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연희감독으로 참여했다.
춘향 역에는 세계적인 거장 안드레이 서반의 작품에 1순위로 캐스팅되며 실력을 입증한 배우 민은경과, 손진책 연출과 김성녀 감독이 ‘춘향감’으로 인정한 배우 황애리가 더블 캐스팅됐다. <서편제>의 동호, <배비장전>의 방자 등을 통해 폭넓은 연기를 선보여 온 이광복은 <춘향 2010>에 이어 다시 한 번 이몽룡을 연기한다. ‘국악계의 아이돌’ ‘국립창극단 젊은 피’로 주목 받는 김준수는 또 다른 모습의 이몽룡의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다.
어린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흥겨운 놀이 한 마당을 선보이는 <춘향이 온다>는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2월 10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주 4회 낮 공연이 마련되어 있어 부모님을 모시고 공연장을 찾기에도 부담이 없다. 다가오는 설 연휴를 앞두고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고심하는 이들에게 <춘향이 온다>는 더없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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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