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첫 일출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새해 다짐을 점검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다이어리에 ‘독서’를 썼다면 지난 1월에 몇 권을 읽었는지 묻고 싶다.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한 권도 끝내지 못했다면, 그래도 괜찮다. 자신에게 맞지 않은 책을 고른 것뿐이다. 참 좋은 책이지만 어쩐지 눈에 안 들어온다면 당장 덮을 것을 권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스스로 찾아보길 권한다. 만약 쉽고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면 이 특집 기사가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장르소설이라 하면, 특정 장르의 성격을 가진 소설을 말한다. 추리, 스릴러, 공포, 과학, 판타지, 무협, 역사, 게임, 로맨스 등의 소설을 포함한다. 대표적으로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장르소설을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작품들을 소개해 볼 예정이다.
추리 : 박하익 『선암여고 탐정단 1,2』
『선암여고 탐정단』은 제목 그대로 선암여고 학생들이 탐정단을 만들어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해결해주는 이야기이다. 여고생들이 주인공이라 시시할 것 같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2012년 『종료되었습니다』로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 추리소설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된 박하익의 책 『선암여고 탐정단』은 1권 ‘방과후의 미스터리’와 2권 ‘탐정은 연애금지’로 나뉘어 있다.
납치나 살인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책으로 추리소설에 입문할 것을 제안한다. JTBC에서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의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개성강한 주인공들의 매력에 빠져 책에서 손을 떼기 어려울 것이다. 『선암여고 탐정단』에선 잔인한 사건을 거의 볼 수 없다. 대신 학교의 비리, 10대의 혼전임신, 왕따 문제 등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주인공인 다섯 소녀들의 발랄함이 무게의 균형을 잡아준다. ‘채율’, ‘미도’, ‘예희’, ‘성윤’, ‘하재’로 구성된 ‘선암여고 탐정단’은 유쾌하고 따뜻하다.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채율’의 편에 가깝다. ‘채율’은 선암여고의 전학생으로 ‘미도’가 그에게 관심을 갖고 ‘채율’을 ‘탐정단’으로 끌어들이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시대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구성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학원 미스터리물이 적어서 이 책을 썼다는 작가는 『선암여고 탐정단』의 세 번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2권에 그 복선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그녀들의 졸업이 너무도 기다려진다.
판타지 : 미하엘 엔데 『모모』
긴장감 넘치는 모험의 회오리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한 권을 뚝딱 읽게 만드는 힘, 판타지 소설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판타지 소설은 긴 방학이나 휴가 시즌이라면 모를까, 기본 5권을 넘어가는 시리즈가 대부분이라 평소에는 읽을 자신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한 권으로 끝나는 『모모』를 더욱 추천해주고 싶다.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더욱 유명해진 『모모』는 1999년에 출간되었음에도 여전히 스테디셀러이다. 이 소설은 ‘모모’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시간을 되찾기 위한 모험을 그렸다. 모모는 집도, 가족도 없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줄 아는 소녀다. 소녀에게는 관광 안내원 기기, 도로 청소부 베포 등 많은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은 소녀가 사는 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회색신사들로 이루어진 시간 저축 은행이 사람들의 시간을 뺏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뺏긴 시간을 채우기 위해 더 빨리,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그 덕에 돈은 많이 벌었지만 웃음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모모』 98쪽)
모모는 회색신사들로부터 사람들의 시간을 되찾기 위한 모험을 한다. 어쩌면 작가가 모모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위 인용구가 아닐까. 미하엘 엔데가 이 책을 쓴 것은 1970년대이지만 빠르게 변하고 모두 앞만 보며 달리는 것은 여전하다. 오히려 더 심해졌을 지도 모른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시간 낭비라며 자신을 옥죄는 우리는 무(無)에 불과한 회색신사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해리포터’처럼 마법을 쓰며 볼드모트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모모처럼 사는 건 시도해볼 만 하다. 우리의 삶을 옮겨 놓은 듯한 판타지 소설이 단 360페이지에 끝난다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로맨스 : 유오디아 『광해의 연인』
출판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새로운 콘텐츠가 탄생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으로 나타난 ‘웹소설’은 어마어마한 수익구조를 자랑하며 순항 중이다. 특히 2013년 네티즌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연재 내내 ‘네이버 웹소설’ 1위 자리를 지켰던 『광해의 연인』은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에 힘입어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출간 되었다. 『광해의 연인』은 지난해 4월 제 1권이 출간된 이후 3권까지 1만권의 누적 판매부수를 기록했으며 현재까지 총 5권이 발간됐다. 그 후 개정판으로 전 5권이었던 구판을 새롭게 편집하고 미공개 단편을 추가해 본편 3권, 외전 1권으로 다시 구성했다.
『광해의 연인』의 주인공 ‘경민’은 18세 여고생으로 시간여행자의 딸이다. 집안 대대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덕에 경민 역시 시간을 여행할 수 있지만 그녀에게 그 능력은 감추고 싶은 상처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여행에 부정적이던 경민의 눈 앞에 조선의 사내가 나타남과 동시에 과거를 여행 중이던 그녀의 아버지는 갑작스런 죽음을 당한다.
죽음을 믿을 수 없는 경민은 과거에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조선으로 떠난다. 그리고 집에 찾아왔었던 사내 ‘광해’를 찾아 나선다. 연고하나 없는 낯선 땅 조선에서 힘들어하던 경민은 기적처럼 그와 재회하게 되고, 광해와 함께 모진 풍파를 헤쳐나가며 가슴 아픈 사랑에 빠지게 된다.
『광해의 연인』은 ‘역사를 문학소재로 이용하면 어려워진다’는 편견을 깰 수 있을 만한 장르소설이다. 드라마의 단골 이야깃거리가 되는 ‘광해의 시대’와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의 조화가 기가 막히다. 자칫하면 있는 사실이 허무맹랑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게 절충되어 있다. 사연이 많은 광해의 생애에 ‘경민’이라는 가상 인물을 적절히 끼워 넣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문 작가의 꼼꼼한 필력이 인상적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역사 로맨스 소설 『해를 품은 달』, 『성균관 스캔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번 겨울, 『광해의 연인』을 꼭 정독해보자.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입맛이 있다. 엄마가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딸도 매운 음식을 좋아하진 않는다. 오히려 심심한 국물을 좋아할 수도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내 취향이 아닌 책을 억지로 삼키지는 않았는지, 누군가의 시선과 강요 때문에 스스로 내 입맛을 속이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르소설을 읽는 건 죄가 아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읽으면 될 일이다. 순수 문학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것만이 독서의 능사가 아니다. 추리소설에서 주는 긴장감 때문에 땀에 젖은 손을 닦아보기도 하고, 로맨스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두근거림에 설레어 보는 것도 독서로 할 수 있는 폭넓은 경험의 하나다. 내 수준에 맞지 않는 책에 머리가 저리다면 그것은 잠시 내려두고 근처에 있는 장르 소설 한 권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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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소통하는 문화 얼리어답터' 예스24 리포터 김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