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 업종에서 천재로 불리는 사람과 동시대를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 음악가로 베토벤에서 슈베르트, 리스트 등을 지도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대대손손 존경과 명예를 안겨줄 수 있었던 그의 삶은 모차르트의 등장으로 판도가 바뀝니다. 만년 2인자, 질투의 화신, 심지어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으니까요. 오죽하면 ‘살리에리 증후군(주변의 뛰어난 인물 때문에 느끼는 열등감이나 시기, 질투심 등의 증상)’이라는 말까지 있겠습니까. 창작뮤지컬 <살리에르>가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재작년 중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특히 음악적인 부분에서 대극장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평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초연을 함께 했던 배우들은 대부분 그대로인데요. 살리에르 역의 최수형, 정상윤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극장도 커졌는데 시원하게 내지르고 있는지, 연습실로 가는 정상윤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성대를 파괴하고 있습니다(웃음). 이 작품은 쏟아내는 게 많아서 공연을 하고 나면 많이 지쳐요. 2회 공연을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지난 일요일 2회 공연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러게요, 재미에 앞서 배우가 걱정되는 공연입니다. 힘들지 않은 공연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뮤지컬 넘버로만 보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작품 톱5에 꼽힐 것 같은데요.
“그렇죠, 살리에리 비중이 높은 데다 캐릭터와 함께 가는 것들이 많아서 고음도 많고, 저음도 많고, 울부짖고. 그래서 공연이 없는 날은 웬만하면 말을 거의 안 해요.”
초연 때부터 참여했던 창작뮤지컬이니까 누구보다 작품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실 텐데, 이번 공연에서 달라진 점은 어떤 걸까요?
“시각적으로는 무대와 의상이 가장 크게 바뀌었죠. 중극장에서 대극장으로 무대가 바뀌면서 세트도 달라졌고, 의상은 굉장히 화려하고 예뻐졌습니다. 저 가발도 쓰는데, 사람들이 잘 어울린다고 하더군요(웃음).그런 면들은 좀 더 시대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나 싶어요. 살리에리 캐릭터도 좀 바뀌었는데, 초연 때 희로애락이 분명해서 모차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여유와 인자함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그런 감정들이 더 복합적으로 꼬여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드라마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이번이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살리에리 음악을 딱히 찾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살리에리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인물로 표현하고 계신가요?
“연습 때 꼬마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적이 있어요. 살리에리를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모차르트는 안대요. 그게 현실인 것 같아요. 물론 당시에는 유명한 궁정 악장이었지만. 하지만 살리에리도 분명 치열하게 살지 않았을까. 모차르트가 천재라면 살리에리는 노력형이잖아요. 그 사람의 신념과 노력, 성실함, 열정을 잘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주변에 모차르트 같은 배우 있나요? 살리에리가 느끼듯이 상대적으로 ‘왜 나는 천재성을 타고 나지 못했을까’ 생각하게 하는 배우요.
“저 천재인데요? 농담입니다(웃음). 잘하는 분들 많은데, 특정 인물을 말하기가 곤란해서요. 그런데 계속 연구하고 생각하는 게 배우라서 배우에게는 천재라는 말 자체가 안 맞는 것 같아요.”
함께 살리에리로 캐스팅된 최수형 씨는 어떤가요? 초연 때 최수형 씨를 인터뷰했는데, 정상윤 씨는 전체를 잘 보는 배우라고 칭찬하던데요.
“수형이 형 잘하죠. 형이랑 워낙 친해서 각별해요. 서로 조언도 많이 하고, 작품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하고. 특히 이번 작품은 창작이다 보니까 동선이나 움직임, 가사에 대해서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많았거든요. 서로 잘 맞고, 좋은 술친구예요.”
성격은 다르지 않나요? 최수형 씨가 훨씬 외향적일 것 같습니다.
“제가 내성적으로 보이나요? 오히려 제가 더 외향적일 걸요? 저한테 여러 이미지가 있는지 첫인상을 차갑게 보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무척 따뜻한 사람으로 보기도 해요. 물론 그 비율이 7대 3, 6대 4 정도지만요. 그리고 좀 있어 보인다는 평도 있던데요.”
그건 무슨 말인가요? 그러고 보니 그 셰프 분과 닮으셨네요.
“최현석 셰프요? 제가 낫지 않나요(웃음)? 뭐라고 할까... 무척 서민적인데 서민적이지 않아 보인다고, 유학파 같다고도 하고(웃음).”
아, 이런 분이셨군요! 허세도 최현석 셰프와 비슷하네요(웃음). 인터뷰하기 좀 힘든 배우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은걸요?
“제가 무뚝뚝할 것 같죠? 아니에요. 다만 낯가림이 좀 있을 뿐이에요.”
앞서 답변에서 살리에리 증후군은 없다는 말씀으로 파악했는데, 배우로서 슬럼프도 없었나요? 데뷔 이후 좋은 작품들을 쉬지 않고 하고 계십니다만.
“개인적인 인생의 슬럼프는 있을 수 있는데, 무대에서는 슬럼프 있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는 항상 그 인물이 돼야 하기 때문에 슬럼프가 있으면 관객들에게 죄를 짓는 거잖아요. 감사하게도 좋은 작품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10년 넘게 하다 보니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공연을 보는 눈이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나 나름대로 발전한 것 같고요.”
무대에서 멋진 모습을 계속 보여주시는 건 좋은데, 너무 열심히 달려서 개인적으로 달콤한 휴식에 대한 로망도 있을 법 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좀 쉬엄쉬엄 하려고 해요. 국내든 해외든 올해는 여행을 좀 다니려고요. 일단 일본 오키나와에 가는 비행기 표를 3장 사뒀고요. 그리고 아이와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도 마련하려고요. 시간이 되면 요리도 배우고 싶고요.”
역사는 현재에 의해 쓰인다고 하잖아요. 과거의 사실은 모르지만 지금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작품에서처럼 얘기되고 있는데요. 지금 이 순간 정상윤 씨는 관객들에게 어떤 배우로 떠올려지고 싶으세요?
“어떤 작품이든 ‘정상윤이 하면 무조건 보러 가야지!’ 이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뮤지컬 <살리에르> 같은 경우는 재연이라서 더 깊게 다가가서 하고 있는데, 제 공연이 10회 차 정도 남았어요. 사실 살리에리는 일반 사람들과 비슷하잖아요.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서 고뇌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죠. 공연이 많이 업그레이드 돼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데, 많이들 오셔서 공감하고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빈 국립 오페라하우스가 1869년 개관 기념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바니’를 초연했다면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은 1778년 살리에리의 오페라 ‘유럽의 재발견’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기자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배우 정상윤 씨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 같군요. 무대 위의 모습, 몇 번의 인터뷰로 그 배우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듯이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관계에는 수많은 추측과 가공의 이야기들만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이야기 중의 하나인 창작뮤지컬 <살리에르>는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3월 13일까지 공연될 예정입니다. 더 깊어진 살리에리 정상윤 씨는 물론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곡이 각각 사용된 ‘오페라’와 ‘멀리서 점점 더 가까이’, ‘라크리모사’ 등의 넘버를 비교해서 듣는 재미도 놓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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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