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맞는 일을 이제야 찾은 겁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최근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문학의 꿈을 키웠다든가 살면서 글쓰기를 알차게 해 온 적도 없습니다. 읽은 책도 별로 없고요. 유명 작가들 이름도 거의 몰라요. 그래서 그동안 못 읽은 책을 읽느라 요즘 고3처럼 공부합니다. 신세계를 발견한 거죠. 가장 맞는 일을 이제야 찾은 겁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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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테오도루 24번지』는 ‘신의 선물’이라는 뜻의 그리스 빈민가(테오도루)를 배경으로, 색색의 사연을 품은 이웃들의 연대와 좌충우돌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리스에 직접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빠르게 치고 빠지는 문장과 축제처럼 터져 나오는 다양한 사건들로 구성해 쉴 틈 없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왜 그리스였을까. 저자에게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제 나만의 방에서 나와 함께 어울리자고

 

제6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어떻게 응모하게 되셨고, 수상 후 책이 나왔을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이 분야에 대해서도 잘 몰랐어요. 그저 열심히 써서 부지런히 공모전을 기웃거리는 것 말고는 부딪쳐 볼 방법이 없었죠. 그러다 보니까 자주 우체국에 가게 됐습니다. 우리 동네 원주 흥업면에는 우체국이 딱 하나 있는데 아주 소박해요. 원고를 들고 가면 항상 1번 창구 임 과장님이 제 원고를 접수하십니다. 제가 하도 들락거리니까 얼굴을 서로 알죠. 노란 봉투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다 아는 눈치예요. 제가 들어가면, 또 왔냐, 언제까지 할래, 설마 되겠냐, 뭐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세요. 다 저만의 생각인 거죠. 그분은 항상 저를 반갑게 맞아 주셨거든요. 우체국에 갈 때마다 저 혼자 상상을 하는 겁니다. 이다음에 노란 봉투 대신 내 책을 1번 창구에 보란 듯 내미는 거야. 그러면 임 과장님은 우리 흥업면에 경사 났네, 만세를 부를지 몰라. 동네방네 플래카드를 건다고 하면 어쩌지. 유쾌한 상상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뻗어 나갔지만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얼마 전에 이룬 겁니다. 임 과장님께 그동안 빚진 봉툿값 700원하고 『테오도루 24번지』를 드렸어요. 뭐 특별한 세레모니는 없었습니다. 임 과장님의 쿨한 미소, 그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했습니다.

 

작가님의 이력을 보면 법학을 공부하다가 단편영화 감독으로, 또 사진을 공부하다가 아동청소년문학가로 변신하신 이력을 가지고 계세요. 그 과정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아버지가 종종 제가 말주변이 좋으니 변호사를 하면 잘할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 꼬임에 넘어가 법대에 들어갔는데 막상 법전을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 한문 20점 받았던 실력이니 당연한 일이죠. 공부는 재미없었고 설렁설렁 학교만 다녔어요. 그런데 법학과 강의실을 가려면 미대 건물을 지나쳐야 해요. 그 애들이 물감인지 페인트 자국인지 무언가로 잔뜩 더러워진 앞치마를 펄럭이면서 다니는 게 그렇게 자유로워 보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조소과 선배가 저를 인사동의 한 전시장에 데려가서 벽 한 면을 줄 테니 알아서 하라는 겁니다. 알고 봤더니 그날이 그 선배의 전시 오픈 날이었어요. 아침 9시에 전시장에 들어가서는 허겁지겁 뭔가를 만들었습니다. 겨우 완성하고 벽에 건 시간이 5시, 관람객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우스운 건 제가 맡은 벽 앞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서성댔어요. 그게 어떤 전환점이 되었을 겁니다. 예술이라는 거, 나도 한번 해 보자고.

 

영화는 큰 포부가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예술혼은 불태우고 싶은데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덜컥 영화로 시작을 한 거죠. 운 좋게 처음 만든 영화가 단편영화제에서 상을 탔습니다. 혼자 해낸 게 아니었어요. 같이 작업한 친구들이 최고였어요. 그런데 그 기쁨도 얼마 못 갔어요. 다들 영화에 미쳐 있었는데 저는 아닌 겁니다. 이 길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죠. 그렇게 충무로를 전전하다가 인도로 떠났어요. 다시 돌아와서는 대학 시절, 앞치마를 펄럭이며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아이들이 다니던 미술대학에 들어갔어요. 그렇게 사진 공부를 시작해 나중에는 아테네 미술대학에서 활동할 기회도 있었죠. 환경은 좋았어요. 그런데 진득하게 가질 못했어요. 기술이 많이 부족했고 이게 내 작업이다, 그런 느낌이 좀처럼 없었던 거예요.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최근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문학의 꿈을 키웠다든가 살면서 글쓰기를 알차게 해 온 적도 없습니다. 읽은 책도 별로 없고요. 유명 작가들 이름도 거의 몰라요. 그래서 그동안 못 읽은 책을 읽느라 요즘 고3처럼 공부합니다. 신세계를 발견한 거죠. 가장 맞는 일을 이제야 찾은 겁니다. 

 

『테오도루 24번지』는 동화 『컬러보이』에 이은 작가님의 두 번째 책인데요. 동화를 쓰시다가 청소년소설을 집필하시면서 느낀 차이점이 있으신가요? 그리스가 배경인 이 작품의 탄생 배경도 궁금합니다.

 

『컬러보이』는 장장 원고지 900매 분량의 청소년소설로 출발했다가 다이어트를 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테오도루 24번지』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로 출발했다가 청소년소설로 덩치가 커진 경우고요.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결국 이야기가 자기에게 맞는 형태를 찾아가나 봅니다. 

 

제가 동화의 뜻을 잘 몰라 사전을 찾아봤는데요. 동심을 바탕으로 하여 어린이를 위해 쓴 문학의 한 갈래, 라고 합니다. 근데 동심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어린아이의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라고도 하는데요. 어른인 제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감히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게다가 저는 별로 순수하지도 않고요. 저로서는 동화와 소설의 차이를 잘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이야기는 계속 쓰고 싶습니다.

 

『테오도루 24번지』는 제가 아테네에 살던 4년의 시간이 많이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내내 이오아니논 24번지에 살았는데요. 그리스에도 요즘은 그런 광경을 찾아보기 힘든 게, 이웃끼리 진짜 친했어요. 사는 동안 별난 에피소드도 많았고요. 그곳을 떠나기 전, 옆집 이웃인 파노스와 요타가 차려 준 그리스식 밥상 앞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그래서 책으로 낼 거라고. 예언이었죠. 그때는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리스로 향하다 목숨을 잃게 된 난민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됐어요. 희망이 죽음으로 둔갑하는 재앙이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휴양지 앞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그보다 더 위험에 처한 난민들 모두의 입장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아크로폴리스에 버려진 난민 소녀에 대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는 버려졌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고, 그렇기에 그 아이의 인생도 하찮다고 모두들 여기지만 아이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희망이 있죠. 그 희망을 공유하는 남자아이가 바로 아테네에 살고 있는 한국 아이 민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에 뼈와 살이 붙으면서 두 아이의 이야기는 세 아이, 네 아이의 이야기로 점점 불어나더니 지금의 『테오도루 24번지』가 되었습니다.

 

『테오도루 24번지』를 집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점은 무엇인가요?

 

우리 청소년들은 대부분 학교 안에서 교복 입은 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기에도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노동하는 아이들, 거리에 내몰린 아이들, 난민 아이들. 어딘가에 우리가 모르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죠. 저는 삶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죽도록 우리를 괴롭히는 지금의 현실도 작은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제 나만의 방에서 나와 함께 어울리자고, 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에게 독려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떠들썩하게 등장하게 되었죠.

 

말씀하신 것처럼 『테오도루 24번지』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아랍 상인들 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디미트라, 막냇동생 같은 딸과 함께 난민 캠프를 전전하는 요나, 그 외에도 주민들의 일에 관심 많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오지라퍼 타냐 아줌마 등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돋보이는데요. 인물은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각각의 인물은 모두 실제 그리스에서 살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개성도 조금씩 훔쳐 왔을 겁니다. 타냐는 우리 집주인이었는데 예쁘고 상냥한 여자였어요. 집을 뺄 때가 되니까 본성을 드러내면서 저한테 고약하게 구는 겁니다. 그 바람에 미운 감정이 있었는데 뻔뻔하고 심통 맞은 타냐 아줌마로 등장시키면서 복수를 했죠. 바부시스는 사진학과 교수님을 모델로 했습니다. 제 사진을 보고 젠(Zen) 스타일이라고 추켜세웠는데 그게 좀 웃겼어요. 민수처럼 교수님께 뾰족하게 굴지는 않았지만, 서양인들 눈에 동양인은 개별적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뭉치로 보이는 건 아닌가, 하고 못마땅해했었죠.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제 생각 또한 오해일 수 있겠다고 여겨졌어요. 그렇게 제 속에 남아 있던 교수님에 대한 알 듯 모를 듯한 감정이 바부시스 선생님을 탄생시켰죠. 우리 옆집에 살던 디미트라와 마르타는 자매 사이였는데 세상 어디나 자매들은 늘 옥신각신하기 마련이죠. 실제로 디미트라가 땍땍거리는 성격이긴 했지만 거기에 저의 성깔을 더했습니다. 저도 한때 여왕질 좀 했죠. 콘스탄티노스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잘생긴 데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순한 아이였는데 똥돼지로 둔갑시켰고요.


이 작품의 주인공인 민수에게 그리스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리고 작가님께 그리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민수는 이주 노동자의 아들입니다. 그리스 땅에서 살고 있는 세계시민이죠. 그리스어도 유창하게 하고 그리스 음식도 잘 먹고 문화적 차이도 느끼지 않습니다. 일찍이 자신을 떠나간 엄마처럼, 유년의 상처가 있는 모국은 민수에게 큰 의미가 없죠.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눈에 민수는 이방인입니다. 중국과 일본, 한국의 차이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인생의 혼란기를 겪고 있는 민수는 다른 덩어리일 뿐입니다. 민수는 자신의 인생이 신의 실수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자기가 사는 테오도루가 설사 '신의 선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해도 민수에겐 이 역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요나가 “넌 신이 선물한 거리에 살고 있는 거야.”라고 하자 버려진 아이는 사랑받는 아이로, 테오도루는 자신이 돌아갈 집으로 승격됩니다. 민수에게 한국이냐 그리스냐는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넌 신의 선물이야, 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는 곳. 그곳만이 민수에게 의미가 있는 거죠.

 

민수네가 니코스 아저씨의 꼬임의 넘어가 그리스로 간 것처럼,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 씨한테 속아서 그리스에 갔습니다. 그분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그 안에서 온통 하얗고 파란 그리스의 이미지만을 보았던 겁니다. 판타지였죠. 막상 겨울에 도착한 아테네는 회색빛이고 더럽고 축축했어요. 처음부터 모든 게 엉망이었습니다. 집은 햇빛이 들지 않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병원은 찾지 못했고 매일 비가 왔었죠. 다 물리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여기가 내 집이었으니까요. 환상을 좇아왔지만 그리스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첫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축복해 주러 찾아오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노크 소리가 들려왔어요. 하얗고 빨간 얼굴, 금발 머리 똥똥한 아줌마가 시금치 파이가 담긴 접시를 들고 서 있는 거예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문이 열린 겁니다.

 

민수에게 테오도루 24번지가 있다면 저에게는 이오아니논 24번지가 있습니다. 이웃들이 내 아이를 함께 키워 줬습니다. 고향이죠. 그곳에는 언제든 돌아가도 나를 껴안아 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집필 계획을 말씀해 주신다면?

 

『컬러보이』 2를 고대하는 어린이 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작을 뛰어넘는 대단한 착상이 떠오를 때까지는 감히 쓰지 않을 작정입니다. 다음 작품으로는 아마 미스터리판타지추리공포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창 좀비와 귀신과 마녀에 대해 연구 중이거든요. 아주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모르죠. 이게 나중에 뭐가 될는지. 그건 귀신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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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루 24번지손서은 저 | 문학동네
『테오도루 24번지』는 ‘신의 선물’이라는 뜻의 그리스 빈민가(테오도루)를 배경으로, 색색의 사연을 품은 이웃들의 연대와 좌충우돌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저자가 그리스에 직접 머물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직조한 구체적 인물들이, 빠르게 치고 빠지는 문장과 축제처럼 터져 나오는 다양한 사건들을 타고 쉴 틈 없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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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